글쓰기로 오르는 삶의 진홍빛 계단

시인 하재영

 

나의 문학은 삶을 탐색하는 여행이고, 드러냄이고,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한 살 더 나이 들고, 세월이 흐르면서 내 생활의 많은 것들이 타성에 젖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늘 마음만은 푸릇하게 멋진 작품을 창작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미 세월의 머리카락은 내가 젊은 시절 바라보던 조부님의 흰머리처럼 꼬부라진 흰색으로 흐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음을 종종 깨닫고 내가 어째 이렇도록 게으르게 살아왔지 반문하곤 한다. 하지만 그 역시 부질없는 생각이고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 떠는 일 같아 그냥 무시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놓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나의 문학은 삶을 탐색하는 여행이다.

20대 초반이었다. 내 시와 창작 의욕을 바라본 선배 문인이 잡지에 추천해 주겠다고 하였다. 신춘문예에만 염두에 두었던 난 고맙다는 말만 하고 11월 밤을 글과 함께 지냈다. 정말 빛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좋은 글은 외로움을 동반해야 함을 선배 문인들이 쓴 작품을 읽으며 발견하곤 했다.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글로 그들에게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낯선 땅(포항)으로 직장을 옮기며 난 책읽기와 창작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국 더딘 발걸음으로 문단을 향해 돌진한 난 ‘포항문학’이란 울타리 안에서 내 문학관을 조금씩 키울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난 후 그랬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판에서 서툰 글을 쓰면서 내가 욕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내가 젊은 시절 책을 통해 여행했던 작품들의 세계였다. 당시 난 구도자의 모습처럼 세계 명작 여행을 통해 인간 구원문제를 화두로 끌어안고 있었다. 특히 70년대 프랑스 콩쿠르 문학상을 받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내 문학 세계에 어떤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문학은 적어도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야하고 그것은 인간의 구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것과 함께 오랫동안 나의 뇌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책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 도서실에서 빌려본 아나톨 프랑스의 ‘신은 목마르다’란 소설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인간의 나약함, 비참, 더 나아가 처참한 피흘림. 결국 사랑이야말로 신의 갈증이란 역설적인 작품으로 난 지금도 그 소설 제목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내가 남의 작품을 읽으며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것도 이런 소설이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 세상의 문학을 보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음을 종종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막상 난 그런 작품을 꿈꾸었을 뿐 쓰지 못했다. 앞으로도 쓰지 못할 것이다. 결국 감성을 앞세운 폭 좁은 작은 그릇에나 어울리는 시를 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것도 전업 시인도 아닌 아마추어 시인이나 다름없는 문학인으로서 말이다. 시를 쓰면서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내 시가 직장 동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일이다. 종종 쓴 시를 대학 아니 대학원까지 나온 동료들에게 보여주면 그들은 못 먹을 음식을 먹은 듯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한다. 한 마디로 어렵단다. 난 쉽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안타깝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우리 문학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내 시가 미래의 독자에게 향하는 것도 좋지만 내 주변 사람에게 우선 사랑받기를 원한다. 더욱이 몇 편의 시로 유명하여 세상 많은 사람들이 독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런 일은 전업으로 시를 쓰는, (먹고 살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양다리 걸치듯 낮이면 직장에 나가고, 밤이면 이런저런 사람과 만나 술과 차를 마시며 글을 써 온 생활이었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전업 문학인보다 직장인이 수월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쓰고 싶다. 산 하나를 이룬 많은 작품이 아니어도 좋다. 일제감정기 이육사나 윤동주의 많지 않은 작품 수에도 그분들의 시가 후세에 널리 읽히듯 나도 그런 시를 쓰고 싶다. 그런 시를 쓰고 싶다는 것은 문학인 누구나 갖고 있는 욕심일 것이다.

정말로 멋진 작품을 쓰고 싶다. 꼭 쓸 것이다.

그것은 내가 꾸준히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고, 노력할 때, 파불로 네루다(Pablo Neruda)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시가 나를 찾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나의 문학은 일상의 드러냄이다.

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프로 사진가도 아니면서 나처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해마다 한 대씩 카메라(디지털 자동)를 교체할 정도다. 늘 카메라들 들고 다니고,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의 대상은 자연풍경에서부터 내 이웃의 예술가, 하물며 식당의 음식, 환경을 파괴하는 현장도 어김없이 들어간다. 사진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가져다준다. 출발은 그랬다. 20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긴 글 쓸 때 상상으로만 쓰는 것보다 보다 정확한 묘사를 위해 찍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하나의 습성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어떤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는 도구다. 그렇다고 예술성 있는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다. 포토 다이어리 형태로 기억에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그저 찍을 뿐이다. 일기를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영상의 시대라 할 요즘 긴 글은 이미 몇몇 눈 좋은 마니아 독자에게나 읽히는 힘든 문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 글 역시 좀 길게 쓰려고 작정하기에 읽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지만) 신문 기사 역시 사진 한 장의 의미가 억수로 길게 잘 쓴 기사보다 전달력 있음을 우리는 깨닫고 있다. 찍은 사진을 종종 책 넘기듯 보며 그것에 대한 이면을 들여다본다. 몇 년 전 난 포르투갈 카보다로카에 갔었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이다. 포르투갈 서사시인 카몽에스의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한다’란 싯구가 있는 곳으로 그곳을 찾았을 땐 억센 비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차에서 내려 상징탑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일조차 힘든 비바람이었다. 난 비를 몸으로 맞으면서 우산은 카메라를 가리고 그곳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곳을 찾았던 기억은 흐릿한 안개에 잠기는 풍경처럼 지워지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났어도 그 때 찍은 사진을 보면 당시의 풍경을 오밀조밀한 글로 쓸 수 있다. 사진이 글이 되고, 글이 사진이 되는 그러기에 나의 문학은 삶의 모습을 사진처럼 보여주는 드러냄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의 문학은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어떤 종교든 종교는 인간 구원을 목표로 한다. 구원이라는 의미엔 종교 종파마다 다른 뜻을 갖고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영원한 평화이면서, 현생 이후의 행복한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다. 문학을 통해 구원의 길로 들어선다는 일은 작품을 통해서 신을 찬미하고,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였듯 한 편 시, 한 편의 동화, 한 편의 소설, 한 편의 수필은 인간이 창조한 언어로 재창조하는 위대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작업은 신과 인간의 중간 위치에서 신성스럽게 의식을 하는 행위로 혼을 찾아 넣는 일이다. 그 일은 절대로 하루아침에 성사될 수 없다. 영적인 것을 작품에 넣는다는 일은 평범한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기에 창작 공간은 지성소며, 창작행위는 사제가 올리는 불가능의 세계에 접근하는 신비한 의식이다. 그렇기에 문학은 인간 구원의 한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이라 난 믿는다. 난 문학으로 내 삶을,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는 구원의 한 양식이 되어야 훌륭한 문학이 탄생한다고 지금까지 믿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 문학은 내 생활의 한 부분 문학일 뿐이다. 내가 포항에서 만난 많은 선배 문인들이 문학을 하나의 종교처럼, 성전을 짓는 일처럼 혼신의 힘으로 전력질주한 것처럼 나도 그런 생활을 하고 싶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럴 때 난 진정으로 문학인이라는 이름표를 내 앞에 걸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 나이 예순 넘어 더 나이가 들었을 때가 될 것이라고 내 자신에게 암시하고, 그렇게 되도록 내 인생을 끌고 나가려 약속한다. 그 때 내 문학관은 지금보다 확실하게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껍질뿐인 지금의 모습에서 알맹이를 채워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함을 난 익히 알고 있다. 문학 세상에는 좋은 것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오직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글을 쓰는 일이다.

곱게 물든 벚나무 이파리 몇 장 늦은 가을 햇살에 살며시 지상에 내려앉으며 첼로 소리를 낸다. 아름다운 가을, 그 소리를 들으며 내 인생도 흐르고 있다.

 

 

***** 약력 *****

충북 청원 출생

1988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동화당선

1989년 아동문예 작품상 동시 당선

1990년 매일신문 신문문예 시당선

1992년 계몽사아동문학상 장편소년소설 당선

- 시집 ‘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 등

 

현, 지역무크 ‘포항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