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들의 마을 

 

몽상가들의 마을에서는 몽상이 비처럼 음악처럼 또 신화처럼 흐른다.

 

신화는 데카메론의 시절 수세기동안 내와 강과 바다를 넘나들며, 빈번한 급사 객사 과로사로 한 대륙을 휩쓸어 인적 드문 마을로 새 판 짜던 토스트.

 

도시에서 세차게 일어난 신화는 하수구를 거쳐 운하를 타고 시골과 숲과 사막까지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신화에 자발적으로 감염된 몽상가들, 쥐 먹은 토스트를 삼키고 미처 봄 오기도 전에 공든 탑 부수고 나가 봄날 꽃노래에 취한다.

 

신화는 이제 몽상가들 마을의 최선의 주식.

 

신화에 얹는 아빠의 손맛으로는 부자와 성공이 단연 으뜸.

 

몽상가들은 부자와 성공을 곁들인 신화 식탁으로 온 몸 다 밀어 한껏 줄기를 뻗는다.

 

가난의 맵고 쓴 맛 씹든 씹지 않든 신화 토스트 전염에 적극 자원한 광신화 바퀴들, 부자와 성공의 광고판을 높이 달고 이리저리 행을 걸치며 우물우물 빠르게 말 굴리며 달리는 밤.

 

신화 토스트 뼈 속속 침투시킨 몽상가들, 봄여름가을 부지런히 잎 주고 꽃 주고 열매 주고도 깊은 잠에 드는 겨울마저 깨워 쉴 사이를 잊는다.

 

온 줄기에 주렁주렁 살과 피를 태우는 조팝꽃등 달고, 슬쩍 연을 걸친 부자와 성공의 신화 문장 틈에서 덧쌓이는 피로 맨몸으로 견디며 억억, 틔는 열꽃 밤새 터뜨린다.

 

(2009. 02)

 

 

오늘은

 

오늘은 꿈이 자살처럼 솟는 날이다.

오늘은 꽃이 기절처럼 터지는 날이다.

오늘은 봄이 비명처럼 틔는 날이다.

 

오늘은 저 먼 길의 끝을 당겨

우뚝, 절벽을 세운 날이다.

짧고 뜨거운 봄 여름 가을 꿈결인 듯 지나쳐

차고 거친 긴 겨울을 문득, 덥석, 안은 날이다.

돈에 휩쓸려 애써 잊은 만성두통을 찾은 날이다.

 

우리 미처 잠을 다 깨지 않은 날이다.

우리 미처 봉오리를 다 빚지 않은 날이다.

우리 미처 화음을 다 맞추지 않은 날이다.

당긴다고 당겨온 길의 끝이 벼락처럼 꺼져

오가는 길 모두 돈처럼 가르는 날이다.

 

오늘은 잠도 꿈도 아닌 잠에서 깨어

다시 깊은 잠을 자는 날이다.

올곧은 꿈을 꾸는 날이다.

사철 숨과 숨을 이어 환하게 터지는 꽃,

다시 씨앗을 뿌리는 날이다.

오래 함께 환호하며 부를 봄노래,

다시 목청을 가다듬는 날이다.

 

꿈이 이미 자살처럼은 솟지 않는 날이다.

꽃이 이미 기절처럼은 터지지 않는 날이다.

봄이 이미 비명처럼은 틔지 않는 날이다.

돈으로 일찍 늙힌 민주 회춘하여

오늘은 굽은 머리카락 허리 펴는 날이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해보는 날이다.

 

(2009. 05)

 

 

아니오

 

무덤의 나라에는 아니오가 없다.

 

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허물고 쌓고 허물고 쌓는 것들은

모두 무덤

 

무덤들 위에 새로 피우고 돋우는

꽃들도 무덤

풀들도 무덤

 

무덤이 된

꽃들이 슬프다.

풀들이 슬프다.

 

아니오가 없으면

아니오가 없는 나라도 무덤

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무덤

 

아니오가 없는 무덤이 슬프다.

아니오가 없는 나라가 슬프다.

그 나라의 산천이 모두 아프다.

(2010. 01)

 

 

벗다

 

무덤에 안 드니 경칩 지난 눈바람도 무지 매섭다. 골골 휘저으며 눈발로 등성이를 내리 뭉개니 시려 가슴을 웅크려 오므린다. 눈밭에 몸을 숨기니 겨울은 아무래도 못 건넌다.

 

무덤에 드니 한겨울의 칼바람도 다소곳하다. 찬 기운 오래 일도록 밤새 빚은 눈의 뼈 굳히지 않고, 잠깐 든 햇살에도 모두 삭힌다. 무덤에 몸을 묻으니 겨울은 아무튼지 건넌다.

 

무덤에 들어 겨울을 건너니 느닷없는 봄이 오고, 드디어 무덤마저 다 벗는다.

 

(2010. 04)

 

 

앓는 강

 

막무가내 모래를 퍼 올리는 기계소리에 꿈이 어지럽다. 없는 무덤에서 고려장 당한 주검으로 웅크려 숨을 졸인다. 물길을 막으니 오탁에 썩어 찌든 눈언저리의 검은 그림자가 두껍다. 오랜 선잠에 샘이 끊어진 마른 눈이 쓰라리다. 인공샘물을 채우고 더듬거리며 꺼풀을 찢는다. 보일락 말락 언뜻번뜻하는 눈동자는 맑은 하늘을 담지 못 한다. 오래 하늘을 품지 못한 눈동자는 녹이 슬어 벌겋다. 인공샘물은 밑 빠진 독이다. 묻지 마 관광에 묻지 마, 미래를 저당 잡아 당겨쓰는 이 누구인가. 마침내 밑 빠진 시멘트 독에 취해 실명하니 첫 키스의 풍경을 다 잃는다. 미래가 가뭇없다.

 

(2010. 04)

 

 

무너져라, 벽!

 

큰 집 대문과 무덤 사이에

벽이 있다.

 

귀를 잃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벽은

눈을 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벽은

입을 잃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벽은

 

번듯한 군대마냥 나름 꿋꿋하고

도시에 쏟아진 폭설처럼

호들갑스러우나 시방 더 이상 자라기를 멈춘

피로한 식물이다.

 

가로막은 벽 이 편 무덤가에는

큰 집 대문을 향해 나아가는

무덤을 뛰쳐나온 거듭 거듭나는

여러 무리의 새 아이들

 

벽을 무너뜨려라.

 

쿵!

한 무리의 아이들이 앞서며 땅을 밟으니

쿵! 쿵!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뒤이어 땅을 밟고

쿵! 쿵! 쿵!

또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연이어 땅을 밟는다.

 

무너져라, 벽!

 

무너진다, 벽!

 

(2011. 01)

 

 

양치기

 

이 양치기는

 

아흔아홉 마리 양들을 들판 가운데 버려두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는

착한 양치기

 

붉은 안개를 몰고 다니는

노을을 등진 늙은 양치기

 

(근대화양치기친일양치기반공양치기사대주의양치기신자유주의양치기시장만능싹쓸이양치기자유민주주의양치기역사망각노예육성양치기......)

 

수시로 붉은 안개 속에 얼굴을 감추고

이념의 모자를 바꾸어 써도

모자 아래의 이마는 늘 탐욕으로 번지러워

근본은 전혀 바뀌지 않는

 

1%

 

기득권자

 

들판 가운데 버려둔 아흔아홉 마리 양들의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잃었다는 한 마리의 양까지 끝끝내 찾아서 가두네.

 

(2011. 10)

 

 

꽃과 새가 있는 집

 

1.

꽃들이 창백하다.

이 집에 든 꽃들이 창백하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이름만으로도

앞뒤 어떤 꾸밈말 없이

색깔만으로도 어울림만으로도

어여쁘고 빛나는 이름들이

이 집에 들어 창백하다.

하늘의 무지개

하늘의 별도 이 집에서는

경쟁이다!

전쟁이다!

모두,

창백하다.

 

2.

일요일, 봄맞이 산행을 갔다. 마른 나무껍질을 비집고 틘 어린 새들을 보았다. 무엇을 버티는 것일까, 날개를 한껏 오므린 어린 새들. 내려올 때 보니 올라갈 때보다 더 날개를 말며 웅크리고 있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뒤집힌 계절의 깡 추위와 오랜 가뭄이 이 어린 새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감옥이구나, 무덤이구나. 뒤이어 떠오르는 아이 생각. 0740 0730 0720 0710 0700 에서 2300 2310 2320 2330 2340 까지. 아이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학교에 갔다.

 

3.

나의 꽃잎, 너의 꽃잎, 나의 깃털, 너의 깃털,

하나만이라도,

 

창백한 꽃잎, 오므린 깃털,

그러하더라도, 하나만이라도,

 

내밀어,

내밀게 바꾸면,

자꾸 내밀고 또 내밀게 바꾸면,

 

처음엔 한 이파리 스치듯 지나는 가벼운 바람일지라도,

내민 꽃잎 내민 깃털 함께 꼭 잡게 바꾸면,

 

협력의 물결 고요하게 일렁이고,

공생의 바람 반란처럼 온 이파리 흔들어,

 

마침내 바뀌는 집,

마침내 따라 다 바뀌는 세상.

 

우선 하나만이라도,

내밀어,

내밀게 바꾸면,

 

(2012. 06.)

 

 

숨은 꽃

 

어떤 이에게 사랑은

벼랑 끝에 핀 꽃이다.

 

굳이 숨기지 않더라도

숨은 꽃이다.

 

사랑의 절정! 같은 말은 어울리지 않아라.

가슴 깊숙이 감춘 손은 오래 전에 자라기를 멈추었으니.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 사랑은

손닿을 수 없는 벼랑 끝의 영원히 손닿지 않는 꽃이다.

 

(2012. 07)

 

 

하늘

 

퇴근길 서울 여의도 거리에서는 실직한 30대 전직회사원이,

오후 울산의 단골가게에서는 무직의 20대 청년이,

심야 수원의 어떤 가정집 거실에서는 술에 취한 일용직 30대 노동자가,

칼을 휘둘렀다.

모두 지난 한 주에 일어난 일이다.

 

퇴근길 서울 여의도 거리에서는 분노한 30대 전직회사원이,

오후 울산의 단골가게에서는 절망한 20대 청년이,

심야 수원의 어떤 가정집 거실에서는 술에 취해 자포자기한 30대 노동자가,

칼을 휘둘렀다.

모두 지난 한 주에 일어난 일이다.

 

뭉뚱그려 우리는 이 모두를 묻지 마 범죄라고 부른다.

묻지 마 하류, 묻지 마 벼랑 끝,

묻지 마 칼부림, 묻지 마......

 

퇴근길 서울 여의도 거리에서는 분노한 하늘이,

오후 울산의 단골가게에서는 절망한 하늘이,

심야 수원의 어떤 가정집 거실에서는 자포자기한 하늘이,

칼을 휘둘렀다.

모두 지난 한 주에 일어난 일이다.

 

(2012.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