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가 날아와서

 

 

풀씨가 날아와서

풀씨가 날아와서 내 살 땅을 달라네

거친 삶 추스리며 천리만리 훨훨 날아

노래 흩어진 언덕 잿빛 침묵의 기슭에

작은 발 디디며 내 살 땅을 달라네

정든 사람 떠난 땅, 비 피하듯 사라진 신작로

끝내 버리고

오늘은 어느 하늘 끝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인지

막걸리 한 사발로 아린 속 적셔내며

망초 개망초 하얗게 부서진 땅

무늬 진 손끝으로 일으켜 세우며

풀씨가 날아와서

풀씨가 날아와서 그대 죽을 땅을 달라네

찬란한 오기로 돋아난

지칭개 여뀌 땅비수리 모두 거느리고

 

손님으로 날아와서

 

 

 

 

 

 

 

뼈를 추리며

神市 16

 

쓸만한 뼈는 거두어라

십년도 못 견딜 뼈는

아예 멀리 던져버려라

메뚜기 한철 지나면 저절로 우수수

삭아질 잔뼈들은

그냥 두어라

군데군데 꺼멓게 썩어가는 척추뼈

입만 살아 휘어지는 갈비뼈

모두 던져버려라

 

쓸만한 뼈는 거두어라

펄펄 날리는 눈발 속으로

신발 끈 동여매고 성큼 나서는 발뼈

꺾일지언정 휘지는 않으리라

속으로 새김질하는 목뼈

 

 

 

 

 

 

그 해 여름                                                           

 

(▲ 한 인민군 전사의 소지품에서 나온 사진으로김용호, 리영록, 김기원, 김용생, 김두형, 주중환

여섯 동무가 568연대 직속 사격장 밑에서 촬영

하였다고 기록돼 있었다.<2007.6.24 오마이뉴스>)

 

따발총을 내려놓고

군모를 벗고

견장을 풀면

 

공산군 표정이 금방 사라지는

익숙한 얼굴들

뿔이 없는

김용호 리영록 김기원 김용생 김두형 주중환

여섯 젊은 동무들

 

남과 북 어느 학교 어느 출석부에 흔한

이름 석 자 뉘 집 귀한 아들인지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만나는

편안한 사람들

 

그해 여름

가슴 주머니 속에 붉게 간직한

한 장 흑백사진

이름 여섯 눈매 여섯

이제 남의 것이지만

 

모니터에 이마를 대고

가만히 부르면

 

따발총을 내려놓고

군모를 벗고

견장을 풀고

화르르르 달려올 청춘들

 

 

 

 

 

 

 

삼강나루

 

수심가

한 보따리 이고 와

진하게 풀어놓는

방물장수 눈정 뒤에

우두커니 핀

진달래 붉은 하소

실어 나르는 산비둘기

푸른 울음

 

강마을

낮은 가락 초가 한 채

수묵화로 강 건너다

백사장에 아랫도리 젖어

하루 종일 노는

조선 백로 한 마리

낙동강 칠백리

숨 쉬는 이정표

 

홀어미

혼자 자기 심심해

중얼중얼

삼강주막 나그네들 답례로

흔들흔들

강물 따라 흘러가다

콘크리트에 막힌 마음이

서걱서걱

 

 

 

 

 

 

김숙자

 

문전옥답을 물밑에 넣고

보상금이 풀리자

사내들의 주머니 속으로

진한 화장을 한 철새들이 몰려들었다

이주단지 아랫녘 합판지붕 술집 마다

아 아 예안의 밤이여 젓가락 장단소리

새들이 부르는 유행가 요란했다

 

새 한 마리 돌아가지 못했다

숱 많은 머리 둥근 눈망울 붉은 입술

그만 돌아 갈 날 잊고 말았다

가방 가득히 지폐를 담아

남행열차 따라 훌훌 날아가야 했는데

한 사내가 세운 하루 밤 더운 사랑에

그만 청춘이 매이고 말았다

 

호반식당 있던 자리에서 늦은 점심이다

노릿한 꽁치구이 냄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집 한 채를 세내어 이젠 아가씨가 아니라

주인으로 잉어회를 뜨며 술을 팔았다

사내를 꼭 닮은 아이 둘

예안 호 푸른 물속에 넣지 않고 키웠다

손님 방 벽에 아이들의 상장을 걸어놓고

가끔 악몽처럼 찌르는 신분의 못을

탱탱한 엉덩이로 꾹꾹 눌렀다

 

그 언니 인물은 참 좋았지요

출신이 솔직히 첩이잖아요

송씨 아재는 두 아들을 자기 자식으로 인정하질 않았지요

서른이 넘도록 벌이는 안 하고

부산 바다에 낚시만 다닌 데요

분열증 약을 먹으며 모텔엔가 청소 다닌 데요

아직 뒤태가 처녀 같아요

 

남자 성 보고 결혼 했다는 식당 여주인은

그 언니 사는 꼴 보고 가슴이 아팠단 말을 여러 번 했다

 

종유석처럼 자란 못은 끝내

철새의 뒤태를 뚫고

아이들의 서른 살을 꿰고 말았다

 

 

 

 

 

 

첫사랑

 

홍매 지고

일 년 내내 기다리던 자리

다시 첫사랑 어리다

 

맑은 실핏줄 펴

옛 하늘 손짓하는

얇은 가지 가지마다

다시 첫사랑 고이다

 

푸른 이내 자욱한 날

먼 길 걸어가

소실점이 되는

여인의 하얀 고무신 닮은

낮달

 

그 홍매 사라지자

깊이 울던 새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황사 부는 어느 날 문득

살아서 휘는 마디 마디마다

첫 화선지 피다

 

 

 

 

 

 

내 시가 떨어져

옹천역전 키 큰 은행나무들

슬며시 지운 잎 따라

돈이 된다면

 

오후 두 시 화물 열차 곱배 가득

서울로 가 정든 골목마다

한 보따리씩 가만히 놓으리

누구마다 한 줌씩 가져가

살아있는 즐거움 활짝 피도록

 

내 시가 떨어져

양식이 된다면

산에 들에

기약 없이 떨어지는 함박눈이 된다면

 

크고 작은 생물들

한 바가지씩 퍼 가

식구들 허기 달래고

 

남는 건 하늘에 돌려

그 이가 쓴

보이지 않는 글자마다

그리움이 숨 쉰다고

 

 

 

 

 

달맞이꽃

초등학교 27

 

현학이 현국이 형제

아기 때 갔던 길 되짚어 돌아왔다

녹전에서 사북까지 아버지 한 생애 석탄 속에 묻고

4학년과 2학년 되어 키 껑충한 어머니 손잡고

크고 작은 달맞이꽃 지천으로 핀 고향에 돌아왔다

달맞이 꽃씨 기름이 비싸요 몸에 그리 좋다네요

황 선생이 하는 말에 귀가 솔깃하였다

얘들아 동네 여기저기 달맞이꽃 참 많지

기름이 그리 비싸단다 너희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용돈 벌이가 될 거다 

며칠 뒤에 현학이가 선생님요 엄마하고요

달맞이꽃씨를 많이 따 모았어요 어떻게 하면 되요

달맞이꽃씨 사시지요 몸에 좋다는데요

교무실에서 만난 황 선생은 뜨악한 표정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두 형제와 달맞이꽃 어머니가

부지런히 따 모았을 까만 꽃씨들

말 한 마디로 두 형제를 노동 시킨 선생은

대답이 막막하였다   

 

 

 

 

 

 

못난이

초등학교 80

 

 

올해도 닭 기릅시다

잡아도 먹고 사모님들 좋아하게 집에도 가져가고

병아리하고 사료 값은 선생들이 내고 관리는 이 주사

겨울이 지난 빈 우리에 주먹만한 병아리 스무 마리를 넣었다

병아리 사세요 봄 트럭에 실려 온 암 병아리 열 셋에 수 병아리 일곱

양지바른 우리에서 모양과 크기가 고만고만한 것들 다정하더니

한 달 남짓 지나자 처녀와 총각 편으로 갈라졌다

어린 암탉들은 수줍게 모여 떨고 어린 수탉들은 떼로 우우 몰려다녔다

가끔 수탉들끼리 싸움이 붙더니 승자의 벼슬이 더 붉게 높아졌다

모이를 주면 수탉들이 허겁지겁 먼저 먹고 암탉들은 슬며시 그 사이에 들었다

수탉 여섯이 하나를 콕콕 쪼아서 모이를 못 먹게 했다

수탉 여섯은 날이 갈수록 덩치가 커졌으나 하나는 왜소했다

덩치가 가장 큰 수탉이 암탉 등에 올라타 씹을 하고 난 다음에

다른 수탉들이 주뼛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번개 씹을 했다

암탉들도 못난이에게는 보지를 주지 않았다

못난이는 하루 종일 도망 다니다가 겨우 구석에서 비실비실 하더니

어느 날 아침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조용히 죽었다

자지 차고 태어나 한 번도 써먹지 못했다

선생들도 못난이는 재수 없다며 먹지 않고 퇴비더미에 버렸다

저 놈이 대장이라고 혼자 너무 설쳐 안 되겠어

다른 닭들은 살이 안찌니 저놈을 먼저 잡아먹어야지

대장이 삶아지고 난 몇 시간 후에 새 대장이 섰다

 

 

 

 

 

 

 

金江里

 

 

몇 학년이니 오학년이라고 남자친구 안 만나고 엄마 일 거드는구나

이집 반찬이 맛있지 저 봐 삐졌잖아 아 우리 딸도 있는데

자 빨리 먹고 오후 공사 해야지

 

우리 신가가 4대째 살고 있는데 반대도 많이 했지만 이젠 다른 수 없고 이주단지나 잘 되면 거기 가서 살고 산이나 확 밀어 시설채소 같은 생계대책이나 해 주면 좋지요 강동리 석씨네 문중산인데 밀면 한 이만사천 평 투기꾼이 달려들어 난릴시더 고시 되면 덜 하겠지요 예고개는 생계대책이 없어요 해발 200이란데 160까지 물 찬 호수가 훤히 내려다보이니 관광객들이 많이 오면 점빵이나 잘 되면 좋고요 이주단지 그 거요 교수들이 와서 제일 낫다고 평가한 곳인데 공무원과 오운리 사는 모씨가 장난치는 바람에 투표한다는데 무어 순리로 안 될리껴 젊은 사람들이 앞장 서 일하다보니 여러 소리 듣니더 머 욕심낸다고 일보다도 그런 소리 들으면 힘이 빠져요 안동댐 예안단지 꼴 안 나도록 생계대책도 수자원공사와 시에서 세워줘야 해요

 

나라에서 하는 일 어찌 할 도리 없지만 당최 시끄러워 살 수가 없어 저기 솔 솔 사이로 뵈는 저놈의 쇳덩어리들 하루 종일 강바닥 긁어대니 금강마을 성황 되어 산지 오백 년인데 이제 사람들 떠나고 물이 들면 어떡해 따라 갈 수도 없고 물귀신 되어야지 그래 맞아 나도 자네와 같은 신세 우리 인동장씨 여기 터전 잡은 지 오백 년 저놈의 영주댐 때문에 자손들이 천지사방으로 흩어져야 한다니 누워 있어도 잠이 안 와 그 스님 이곳 터 잡아주며 천 년은 넘긴다더니 반 토막 내 뼈가 어디로 갈지 겨울시인 한 잔 더 주게 강산을 저리 깎아대면 끝이 안 좋은데 업보는 나중 일이고 서울 사는 지주들이야 쌀 도지보다 보상금 목돈이 훨씬 좋고 묵은 산밭 갈아엎어 사과나무 촘촘하게 심은 산주들이야 횡재해서 좋지만 남의 땅 부쳐 먹던 농꾼들이 낭패여 낭패 가솔하여 어디 가서 뭐해먹고 살꼬 한숨 소리 깊이 아파 내야 바위를 미륵불로 만들어 줘 한 사백 년 해마다 공양 받으며 편히 살았고 지방문화재이니 새마을로 안 데려가겠나 거기 가서도 장씨들 복 지켜주며 살면 되겠지

 

성황당신 한잔 남의 조상신 한잔 미륵불 두잔 겨울시인 석잔

안주는 마른 벌레집 묘 이장 공고 묵은 기와집 낯선 간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