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누이 이옥선할머니의 란중일기 .1 

 

1942년 나의 7월은 월경의 역사 그것이었다

백주에 끌려온 열여섯 꽃가슴에 거센 폭풍은

꽃을 꽃으로 피지 못하게 하고

꿈을 꿈으로 갖지 못하게 하고

끝내는 댕기머리 하얀 치마저고리

조선의 딸년이라 듣지도

부르지도 못하게 하였다

아 나의 죽음같은 천리타향 만주로 가는 화차통은

왜 그리도 속절없이 달리던지

울산기생집 앞 백주대로에서 끌려와

도문을 지나 연길에 도착해서야

동갑내기 가시내들의 눈물바람도

뭔지 몰라 그냥 죽어버리자던

제일 큰언니 흐느낌 소리도

이 옥선이년은 그제서야 벼락같은

슬픈 운명이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하늘도 무심하게 푸른 계절

동갑내기 가시내들이 보는 앞에서

옥선이년 아니 도미코년 아카다년으로

검정치마 하얀저고리 벗겨진 채

사쿠도 안쓴 인간도 아닌 흉악한 일본군들에게

옥색같은 알몸을 뺐기고 또 뺐겼다

아 어머니! 아 나의 조선이여!

홍익의 어진, 나라의 어진 가시내들을

꽃사슴같은 딸년들을 어찌 버리시나이까

꽃보다 아름다운 열여섯 나의 첫 월경은

일본군 동비행장 근처 위안소에서 시작되었다

칼끝같은 그 쓰라린 일본군인놈의

그것이 찌르고 지나간 뒤였다

참으로 순정한 옥선이년

제 몸에서 진달래 꽃 피는 줄 모르고

조선의 붉은 핏빛인 줄 모르고

뜨거운 지 에미 애비 피눈물인 줄 모르고

흰 솜 쑤셔넣고 짐승처럼 왜군을 상대한

이 무지렁이 딸년

악다구니도 쳐보고 반항도 해봤지만

표딱지를 들고 서 있는 저 왜놈군인들

가차없이 허리띠를 풀어 어디랄 것 없이 내리치는데

나의 운명은 운명이 아니었다

나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

나의 시간은 시간이 아니었다

 

어느덧 큰바람 불고 겨울 눈보라 친다

어김없이 찾아드는 아기달집 통증으로

단군의 곰같은 딸년이나

심청이를 낳은 어진 에미는 될 수 있을지

오 그러나 나에게도 이팔청춘 사랑은 있었다

연변위안소에서 몰래 정분을 나눈

조선 사내 하나 와락 끌어 안았다

조선이 해방된 줄도 모르고

옥선이년 얼씨구나 댕기머리 풀었다

그러나 그림자처럼 말없이 밀려드는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고 또 시작이었다

결혼 나흘만에 군대 나간 서방님

그냥 생이별이었다

청청 하늘 희망과 꿈을 그리며

무명치마 옥색저고리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조선 사내 하나 다시 끌어 안았다

청실홍실 짝지어 팔도진에 살림 차렸다

조선 아낙 옥선이 가슴에 꿈이 돋았다

공작활동도 하고 동네 부녀주임도 청년단위 조장도

열심히 했다 하다 하다 연극배우도 하면서

지나간 회한의 삶을 지우고

일본군인에게 빼앗긴 나를 찾기 위해

어히 어허 얼씨구 살풀이를 하고 싶었다

살맛나는 세상을 다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년 팔자는 나를 낳아준 어머니 같은

에미는 될 수 없었다 일본군이 놓아준

그놈의 수은으로 만든 사르바르 606호 주사 한 방으로

이년의 아기달집 깡그리 헐어버렸다

아 이순신 장군같은 사내 하나 갖고 싶었다

심청이 같은 딸년 하나 낳고 싶었다

 

 

조선누이 이옥선할머니의 란중일기 .2

 

나 옥선이 만주 용정 살다 칠년전 남조선으로 왔지

해방 62년, 광복 62년 내 나이 여든일곱

위안소에서 배가 고파 돼지풀을 뜯어먹던

그 세월을 잊을 수가 없지

돼지같은 땅딸보 일본헌병놈이 남긴 밥을 집어 먹으며

빼빼왜군놈이 입다버린 속내의를 주워 입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삼켰었지

조선 딸년들의 마냥 슬픈 운명을 생각했었지

그리고 이를 악다물었지

나는 지금 일본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않고

일본 놈이라 부르지 아니 짐승이라 부르지

누가 왜냐고 묻거든 나는 대답하지

아직도 내 아랫도리를 벌리며 조센징이라

킥킥대던 그 짐승으로 서 있던 일본군인이 살아 있다고

저 섬나라 아베 이등병과 함께 잘 훈련된

군국주의자 도조 히데끼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아 옥선이년 이 조선의 딸년은

하얀옷의 아름다운 어머니를 보고 싶네

힘 좋은 어깨춤으로 비상하는

내 아비의 조국을 보고 싶네

붉게 물드는 저 노을 속

나의 울분은 아직 식지 않았네

 

 

버마에서 수도승을 만나다

 

쉐다곤 파고다 금탑을 지나다 금탑벽을 향해 면벽 수도하는 스님을 만났다 벽은 온통 금으로 싸여져 눈이 부셨다 온몸을 금빛에 그을린 스님 눈을 감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뒷자리에 앉아 금벽을 바라보았다 찰나 무엇에 찔린 듯 나는 눈을 감았다 하 거기에는 또 한 분의 스님이 자리 잡고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방인의 속물적 관심을 눈치 챈 것일까 무언의 눈빛은 내 안의 나를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는 이내 작은 숨소리를 감춘다 도대체 이 적요한 인연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나는 위압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13톤의 금을 덫칠한 탑신보다 더 무거운 내 어깨는 언제쯤 가벼운 무게로 일어설까 감고 있는 내 눈의 눈빛은 하 정말 지루하다

 

 

나팔꽃

 

어린 나팔꽃 한 줄기

자신의 애증어린 근대사를 적고 있다

참 무심하게도 서 있는

벚나무가로수를 기대고 일어서려다

꼬여버린 한 세상 버티기 힘들어

무성한 덩굴손을 펼쳐든

수다반 타령반으로 손사래를 치는

김밥 파는데 정신이 팔린

필동아줌마

유일한 나의 보호자다

한무리의 손님이 빠져나갈 때마다

몇모금의 담배연기를 입안 가득 담고

벚나무 그늘에 숨어있는 나를 찾는

그러다 살며시 다가와

물고 있던 담배연기를 후욱 뿜으며

내 흘러내리는 허리춤을 곧추세우는

50줄의 김밥장수 필동아줌마

심하게 쿨럭거리는 나의 몸부림에도

아랑곳 없이 다시 한 모금 입에 물고

사랑반 걱정반으로 벚나무 밑둥치에

비닐끈을 매어주며 눈길을 맞추는

유일한 나의 친구

때마침 행복예식장을 돌아 작은 사거리를

막무가내로 건너오던 돌개바람이

심술궂게 김밥가게의 비닐문을 들춘다

이윽고 만사가 끈적거리는

뒤태가 한없이 넙데데한 필동아줌마

심사가 뒤틀리는지 내게 다가와

이미 발목까지 흘러내린 덩굴줄기를

끌어 올리며 넵다 한마디 내뱉는다

이놈아 언제 철나게 분홍꽃 한번 피울래

그때다

덩굴겨드랑이 안쪽에서 뻐근히

올라오던 망울 하나 꽃눈을 뜨는게 아닌가

 

 

에어컨 수리기사 김종상씨

 

익숙한 솜씨로 드라이버를 돌리는 그의 이마에는 벌써 심오한 절망이 맺힌다 올여름은 몇십년만에 더울거라는 딴에는 즐거운 비명이라도 질러댈성 싶은 에어컨 수리기사 김종상씨 해묵은 에어컨 뚜껑을 열자마자 시원한 목소리로 언제 샀냐는둥 이것저것 물어 보더니 이름모를 부품들을 뜯어 제낀다 굉장한 고장이라도 난걸까 아니면 심각한 희망이라도 찾아낸 걸까 가끔씩 소매자락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내는 그의 피둥둥한 얼굴에는 검정기름때 스물스물 스물 몇살의 역사가 척박하게 그려져 있다

실내기 팬을 교환해야 된단다 아마 핵심적인 부품인가 보다 하기야 제품 생산연도가 이십년은 넘었으니 제까짓 수명이 다 되었을 것 같다 기사님 수리비는 얼마나 나옵니까 이십 몇만원쯤 나올거란다 이십대의 김기사는 매우 정열적인 행위로 늙은 에어컨을 잡도리 한다 실내 분위기가 후덥지근하다 에어컨 밑구녕을 쑤셔대던 김기사가 한참을 씩씩대더니 순간 악하고 외마디를 지른다 금방 열이 올랐나 아니면 에어컨이 뜻대로 말을 안듣나 그도 아니면 젊은놈 게송을 외치나

손에 쥔 드라이버를 훽 내던지며 피 흘린 엄지손가락을 빨아대던 눈동자가 갑자기 일그러진다 에이 씨버랄 막심한 입담으로도 자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에어컨 수리기사 김종상씨 뭔가 빙점의 흔적을 확인하듯 그 아래를 훑으며 조심스럽게 에어컨 스위치를 켠다 굳이 미안할 것도 없는 나는 흥건히 땀 젖은 그의 손아귀에 이십육만원을 건네주며 한마디 일갈한다 모든 늙고 헐거운 것들도 날카롭고 예민한 구석이 있습니다 조심합시다 서서히 열반에 드는 바람처럼 우리는 이별하는 도반이 되어 가슴을 식히고 있다

 

 

원당사를 지나며

 

한밤의 독경소리

무량한 법음이구나

밤벌레 또랑한 염불소리에

중생욕을 씻어내니

삼라의 심오한 번뇌

다시 가득 차오른다

이 속좁은 우주의

문살을 뚫고나온 연화불빛 하나

바라밀을 향한 내

어설픈 발길을 비출랑가

 

 

태백 마지막 광부

 

폐광촌 스레이트 지붕위에 별빛 흐르면

주삣주삣 주인 잃은 티브이 안테나가

지친 어둠에 묶인다

실낱같은 한가닥 희망이

시린 바람끝으로 가슴을 지나면

살아가는 길만큼이나 꿈틀대는

갱도를 따라 더 나아갈 곳이 없는

막장에 박힌 꿈들을 송두리채 캐내고 싶은

폐광촌 마지막 광부들

궤도차가 흔들릴때마다 절망반 시름에 겨워

탄가루에 묻히는 자신들의 삶을

말없이 태우고 있다

 

 

소래포구 황씨

 

끈적한 새벽 안개를 사르며 일어서는 태양

헤진 그물끝으로 빛살을 뻗친다

달큰한 정기가 서리는 걸까

밤새 뒤척이던 마누라의 정분에 녹아든 걸까

나는 떠지지 않는 눈두덩을 비비며

뻐근한 두 다리에 비린내로 찌든 작업복을 꿴다

오늘은 좀더 먼 바다로 나갈 것이다

먼 바다로 나가면 나갈수록 나의 희망은 저 먼

수평선 끝자락으로 밀려나지만 그래도

손익은 그물을 던지면 반 꿈은 이루어지는 것 같다

포구 어귀엔 이미 뱃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연평호 선장 윤씨가 먼저

눈인사를 보내며 어깨를 툭툭 친다

제발 우리 배 좀 같이 타자 으응

지난 봄부터 윤선장은 내 일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떠날 채비를 마친 뱃사람 하나 둘

뱃머리를 따라 갑판 위에 오른다

저마다 걷어부친 소매자락엔 검정 이끼들이

뼈저린 사연으로 까막따개비처럼 붙어 있다

미련없이 떠나 어김없이 그 자리로 돌아올

우리네 포구의 생목앓이들

망망 바다에 욕망의 모든 촉수들을 풀어 헤치고

끝없는 절망과 또는 애증어린 희망을 포획하기 위해

태평양 연안의 낯선 꿈들을 재고 있다

 

 

득량만 밀물들 때

 

말없이 무념의 귀를 기울이면

쉼없이 다가오는 저 바람의 혼들

이미 파도의 잠을 쫓으며 길을 만든

명민한 기억들이 갯내를 지우고

게딱지 같은 득량도의 역사를

파묻고 있다 오 보아라 저

보성만에서 떠내려오는 목선을

그 안엔 섬을 섬으로 보지 않고

뭍을 뭍으로 보지 않고

바람길을 따라 뭍 섬으로 길을 오가는

우리 아버지와 내 어머니의 뭉클한

연정이 실려 있니라

하늘에 박힌 청청한 별빛을 보며

바다길을 가늠했던 무정한 시대를

알싸한 정분으로 흘려 보냈니라

 

밀물드는 하오 그물질로 불거진

득량만 사내들의 팔뚝엔 이미

헤진 닻줄과 잡고기 한 상자 힘에 겨웁다

승냥이처럼 다가드는 횡포한 일상들이

사십줄의 어깨를 한손아귀로 덮칠 때

의심많은 갯바람

아낙의 무명자락을 흔든다

이제 섬도 아닌 뭍도 아닌 그래서

길도 잃어버린 득량갯벌 서녘 끝에서

쭈삣거리던 물고래들을 무참히 포획한다

포구목까지 차오른 물비늘을 벗긴다

슬픈 희망처럼 그 살속엔

생존의 모든 관계가 채워져 있다

 

 

남자의 여자

 

남자는 떠난 여자와

여자는 떠나지 않은 남자와

세월이 함께 흐르는 곳에서

물 같은 또는 피

피 같은 또는 물

 

역전으로 가는 몇대의 버스에

그만큼의 밀어를 실어 보낸다

 

우우 바람 속에 서서

 

여자의 가슴 밖으로 그려지는

샤갈의 그림 한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