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혹은 허세

 

 

문학관이라니! 나에게 그런 것이 있기나 하겠는가? ‘문학’이라는 단어의 값도 아직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라는 것도 그렇다. 초등학교 삼학년 때 동시 써오기 숙제가 있었다. 그 무렵 우리집은 가세가 막 펴지는 때였던지 꽤나 큰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 집 뒷곁에 꽤나 넓은 남새밭과 더불어 집 울타리 안에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전에 살던 집엔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감나무 한 그루 없었으므로, 집안의 감나무에서 직접 감을 따 먹을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신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숙제로 써간 동시는 희미한 기억으로 되살려 보니 감나무에 까치가 날아와 ‘감하나 주세요. 감하나 주세요.’라고 했다는 것과 그렇게 해서 나와 까치가 친구가 되었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그때 아침 마다 감나무에서 깍깍깍 하고 까치 소리를 들었기에 그것을 형상화해서 쓴 내용이었는데 어쩐 일로 선생님께서 정신이 없을 정도로 칭찬을 하셨고 그 일을 계기로 학교 대표로 군 대회에까지 나가게 되었다. 우리학교가 생긴 이래 군 대회에서 문예부(?)가 처음 입상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군 대회에서 쓴 작품(?)은 ‘나비’라는 제목이었는데 어린아이 눈에 팔랑거리는 나비의 날개 짓이 아름답게 보여야 정상일진데 참 꼴값스럽게도 나는 꿀을 찾아 ‘노를 저어간다’고 했다. 아마 하늘을 나비의 바다라고 하였던 것 같다 그 일 이후 선생님(진은옥선생님이시다)께서 이담에 크면 ‘시인’이 되겠다는 주술 같은 말씀을 나에게 남겨 주셨고, 나는 그것을 ‘진언’처럼 간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청년시절을 그냥 보냈으며, 시라는 것은 까맣게 잊었다고 생각 했었고, 급급하게 살았다. 어찌어찌하여 30여년 후 시를 ‘생각’ 사람이 되었다.

시를 생각하고, 어쭙잖게 긁적거리기 시작한지 15여년이 되었다. 이 짧은 시간동안에 시에 대해, 문학에 대해 무슨 적확한 생각을 가졌겠는가? 그러나 첫 시집(통조림)과 두 번째 시집(차경)의 해설에서 똑 같이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 ․ ‘자기 성찰의 서사’라는 분에 넘치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을 보면, 나의 시(문학)에 대한 생각은 거기쯤이 아닌가 싶다. 지금 나의 이름 앞에 혹은 뒤에 자의로 타의로 ‘시인’이란 이 위험하고 황홀한 것을 달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의 삶에 대한 갈증 혹은 허세이다.

 

 

<김은령의 연보>

*1960년 1월 7일 (음력), 대구시 대명동에서 태어났으나 돌배기 시기 경북 고령군 성산면 박곡동으로 이사. 호적엔 1961년 3월 1일 경북 고령 출생으로 되어 있음.

*1967년 박곡초등학교 입학, 6학년 까지 줄곧 부반장(여자는 반장을 할 수 없었음)을 할 정도로 꽤나 똑똑하다는 소리 들음. 3학년 때 동시 ‘우리집’을 계기로 학창시절 백 일장에 다수 참가. 다수 수상하였음.

*1973년 성산중학교 입학, 2학년 3월 아버지 돌아가심. 충격과 슬픔으로 몽상가가 됨, 성적 도 떨어짐. 급격하게 가세 기울어 짐.

*1976년 대구여자 상업고등학교 입학, 상업고등학교임에도 ‘부기’와 ‘주산’ 급수를 취득하지 못함. 반 62명중 석차 36등으로 졸업함. 내 생애 가장 짜증나고 적응 못한 시절이 었음. (실패.1)

*1979년 고총사촌 오빠가 대표로 있는 회사(꽤 규모가 큰 건설관계 회사)에 취직. 도대체 세상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기 시작함. 이후 2년간 사회생활 경험.(실패.2)

*1982년 7월, 가족 몰래 경북 상주에 있는 남장사 부속암자인 모 사찰에서 절밥을 먹기 시 작함, 몸의 부적응으로 결국 절집에서 퇴출, 집으로 돌아옴.(실패.3) 1년 정도 구 속 수준에서 치료와 감시받음.

*1986년 4월, 구속의 장소가 집에서 남편 김용식의 집으로 바뀜. 딸 둘을 낳았고, 지금 까 지 그런대로 잘 견디고 있음.

*1998년 『불교문예』에 송수권시인의 심사로 <겨울 폭포>외 9편으로 신인상 받음.

*1999년 2월,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대구지회 입회함

.*2000년 1월,『사람의 문학』편집위원으로 합류, 2011년 말까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 음.

*2000년 2월, 염무웅, 김용락, 두 분 선생님의 추천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 본회 입회함.

김용락 시인의 추천으로 대구시인협회에 입회함.

*2000년 3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함.

*2001년 2월, 한국작가회의 대구지회 총무직을 맡아 이하석, 김용락 시인을 회장으로 차 례로 모시고 4년간 일하였음.

*2001년 봄, 22인 공동시집 『작은새가 잠긴 늪』에 참여함.

*2002년 9월, 도서출판 <모아드림>에서 첫 시집 『통조림』출간함

*2003년 6월, 30여명의 직원을 데리고 회사를 운영하던 남편이 준비 없이 완전히 망함. 문학 판엔 철저히 함구하였음. 문학 판을 제외한 모든 관계들로부터 간벌 당함. 학업 포기함.

*2004년 3월, 가산의 풍비박산 와중에 어떤 힘에 끌려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 경북지회 발족함. 2007년 6월까지 초대지회장직을 수행하였음.

*2009년 2월, 한국방송통신대학에 복학하여 2010년 학업 마침.

*2010년 3월, 영남대학교 대학원 한국학과 입학함

*2012년 2월, ‘원효 설화 연구’ 논문으로 영남대학교 대학원 한국학과 석사 마침. 현재 박 사 과정 진행하고 있음.

*2012년 2월, 대구시인협회 제무국장직 맡음

*2012년 2월, 도서출판 <황금알>에서 시집 『차경借憬』출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