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 쓰기를 위하여

 

 

나는 산문을 잘 쓰지 않는다. 시도 잘 쓰지 못하는 주제에 산문을 쓴다는 것은 언감생심, 감히 바랄 수 없는 것이어서 그렇고 시라도 제대로 써보자는 생각에서 그렇다. 그런 까닭에 『문학마실』 편집자로부터 “문학관”을 써 달라는 청을 받고 참 망설였다.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한다.”는 오래된 경구(내게는 참 좋은 구실?)도 그 망설임이 오랫동안 머무는데 크게 한몫을 했다. 그러나 『문학마실』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구색은 갖추어야 한다는 알량한 사명감으로 오랜 망설임을 버리고 이 글을 쓴다. 그러니 크게 기대하지 말기를 우선 부탁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시란 모름지기 음풍농월도 아니며 자아도취도 아니어서 시대나 세상에 대한 공분이나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온다.”라고 하셨다.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경부선 이원역에서 새내기 철도인으로 젊은 패기를 다독거리고 있던 나도 다산 선생의 그런 생각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강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공분’에는 가까이 가지 못하고 대신 ‘안타까움’을 끌어안게 되었는데, 1998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된 「철도궤도공의 편지」연작이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철도 궤도공의 편지 3

 

삼월이라지만 아직 밤바람은 차갑네요 형님

경부선 간이역 지탄 못 미쳐 금강 제2교량에서

닳고 닳은 구철을 오십 미터 장척 레일로 바꾸고

피곤과 새벽 추위에 쫓겨 서둘러 찾아들어온

면 소재지 여인숙 연탄은 활짝 피었는데

외풍 탓인지 방안은 서늘하네요

힘든 일 끝에 늘 그렇듯이

마른 입술에 흘린 소주 몇 잔으로

나이 많은 사람들 쉽게 코를 골고

피곤보다 먼저 내 몸을 빠져나간

남은 기력이 아무렇게나 구석으로 밀리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네요 형님

바닷가가 고향인 정 아저씨

젊어서 단단히 챙기려던 한몫을 끝내 못 잡고

고향 바닷가 근사한 횟집을 물 건너보낸 뒤

남은 것은 파삭파삭 마른 살껍질이라더니

자면서도 연방 그렁그렁거려

짜르르 공복을 더듬는 소주 기운으로 움츠린

우리 몇몇 젊은것들 절대로 그러지 말자고

어금니 사이로 오래된 오기를 되씹으며

쉽게 잠을 못 이루네요 형님

평생 쎄빠지게 일하고도 저 꼴이라니 원

아득바득 살아가는 날들이 원망스럽지만

너무 걱정마세요 형님

일당으로 잡혀지는 꿋꿋한 어깨

일당으로 날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너무 일찍 더러운 꼴에 젖었지만

우리도 사람답게 살아봐야지 않겠어요, 그럼

 

당시 이원역에서 열차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철도신호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하고 있던 나는 열차운행이 중단된 심야시간에 일하는 철도궤도공을 자주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무거운 침목과 레일을 힘들게 바꾸고 동 틀 무렵에야 여인숙으로 돌아와 소주 몇 잔과 함께 쓰러지는 그들을 보면서 노동과 사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편지글 형식의 「철도궤도공의 편지」연작에서는 단단함과 희망을 말했지만 사실 그 시절 내게 비친 사람과 사물의 모습은 대부분 ‘안타까움’이었다. 그 ‘안타까움’은 이원을 떠나 상주와 김천, 왜관 등지를 전전하는 동안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고 지금도 가슴 한편에 마치 평생 안고가야 할 짐처럼 남아있다.

 

이원을 비롯한 현장을 떠나면서 나는 의도적으로 ‘안타까움’을 멀리 하고 ‘따뜻함’을 가까이 했다. 첫 시집의 후기에서 밝혔듯이 “그늘지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시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울분과 분노도 때로 위안이 되지만 나는 내 삶에 바탕을 둔 시를 통해 너와 내가 만나서 따뜻한 우리가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환한 집

 

담배참 되어

삽자루 그대로 놓고

철둑에서 땅 파던 보통인부들

호두나무 아래로 들어가니

오종종 개미들처럼 기어드니

지루해, 축 늘어져 있던 호두나무

설익은 호두알 딱딱거리며 일어나네

그늘이 둥둥 넓어지네

아무렇게나 몸을 내린 인부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집 하나 얻었네

이파리들 환하게 웃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위하고 사람과 자연이 기꺼이 교감하는, 평온한 우리들의 세상을 나는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시는 ‘따뜻한 글쓰기’에 있다. 물론 ‘따뜻함’의 범주를 벗어나는 시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내 시가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기를, 그리하여 더욱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지기를 원한다.

 

시가 무엇이냐고, 시를 왜 쓰느냐고 물으면 내 답은 간단하다. 시가 내 삶의 버팀목이고 시 쓰는 게 좋으니까 쓴다. 나아가서 내가 좋아하는 내 시를 다른 사람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때문에 나는 좀 더 ‘따뜻한’ 시를 쉽게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속에 인간 본연의 순수와 진정을 담아서 말이다. 이게 내 문학관이다. 쉬운 듯하지만 실천하기에 언제나 버거운,

 

* 윤 임 수

- 충남 부여 출생

- 1998년 실천문학 신인상 당선

- 시집 『상처의 집』(실천문학사, 2005)

- 한국작가회의 회원

- 대전작가회의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