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 쌓기 

 

쌓은 높이만큼 무너지고 있었다. 

브레진스키가 만리장성을 보았다는 날 

나는 저마다 멋대로 생긴 돌로 돌담을 쌓았다. 

판에 박은 벽돌처럼 일정한 것이면 

쉽게 쌓을 수도 있는 일인데 

좀처럼 그렇게 되어 지질 않았다. 

모가 나고 벙거지고 납작 넙적 하고 동실한가 하면 

크고 작은 것이어서 어렵기만 했다. 

그런데 어인일인가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한 이것들이 

아래위와 좌우로 용케 맞아 떨어져서 

제 모습을 지니면서도 맞아 떨어져서

한 계단 한 계단 높아지고 있음은 

담이 높이 오를수록 나는 발돋움을 해야 하고 

목을 빼면서 하늘을 보아야 하고 

이만큼 물러서서 산을 보아야 했다. 

논두렁에 핀 허연 망초꽃도 보이지 않고 

청개구리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나는 자꾸만 이런 것들과 결별을 하고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며 

나를 가두고 있었다 

공화국의 백성이 되고 있었다.

   

    

                   東學

                 -尙州 (2)

 

창덕가唱德歌 한 구절에서

싱싱한 풀잎의 음성을 듣는다.

아픔의 빛을 품고

어둡고 머언 산하山河를 넘어온 사내여

오늘 우리는 가슴이 막혀

박제가 된 피에로.

말해다오.

북더기 같은 거친 손에서

깨끗한 피의 불꽃이 밝혀짐을,

짓밟혀 온 가슴에서

빛의 뿌리는 더욱 튼튼해짐을 ,

쓴 익모초益母草 짙은 물이라도 벌컥벌컥 마시고

여름을 나야하는

그래서 박쥐의 거짓을 알려야 하는

접신接神의 땅

상주시 은척면 우기리

팔매질 하는 아이들의 손바람에 이는

하늘 가르는 풀잎소리를 듣는다.

 

    

 

                       바위 

 

나를 벙어리라고 그러지 말게 

나를 고독하다고 그러지 말게 

 

나는 여지껏 나의 언어를 수 놓으며 살아왔네 

그래서 내 가슴은 굳어졌네 

 

나는 줄곧 내 심정을 노래하며 살아갈 것이네

그래서 내 가슴은 더욱 굳어질 것이네 

 

내 소리를 들은 척도 말게 

내 전부를 아는 체도 말게 

 

나를 아는 이는 나를 낳아 길러준 산뿐이네 

아니 참으로 나를 아는 이는 나뿐일 것만 같네 

    

 

 

                     굴뚝새

     -새(10)

 

굴뚝새가 보이지 않는다.

굴뚝새는 캄캄한 굴뚝 속으로 영영 숨었는가.

메마른 겨울 복판에서 굴뚝새를 기다린다.

 

귓전에 싸락눈 내리듯

재재거리는 소리가 앉는다.

 

포록포록 나는 어둔 갈색의

줄무늬 굴뚝새는 어디로 갔는가.

골 깊은 강원도 너와집 마을로 떠났는가.

사할린 찬 땅에 누운 동포의 무덤가로 떠났는가.

 

소쿠리에 담긴 따뜻한 꿈은 부서지고

긴 겨울의 끝 봄은 느린 황소걸음이다.

 

굴뚝새가 오지 앉는다.

굴뚝새처럼 사는 사람도 오지 않는다.

 

비인 벌판

바늘 같은 바람 속에

침엽수림이 울고 있다.

 

 

 

 

 

풀린다 

   

풀린다는 말 

그 소리에는 길이 열린다 

얼어붙었던 땅의 근육이 부드러워지고 

핏줄처럼 따뜻하게 이어진 길 

길 가에 냉이 꽃다지 

앙증스러운 꽃들이 하늘거린다 

바람이 꽃대를 흔들고 간다 

산과 들을 깨우며 가는 바람의 노래 

노래로 밝아오는 세상 

한 시대를 옭아맸던 끈이 

실개천 같이 누워있다. 

  

 

 

          은행나무

  나무의 시(35) 

 

땅속에서도 빛나는 황금의 말을 가졌다. 

그의 말은 인생독본이나 명언집의 말보다 아름답고 깨끗하다.

떠나는 순례자의 마지막 모습 

진한 상징의 손짓을 알지 못한다. 

부끄럽다. 

그냥 떨어지는 잎만 볼 뿐이다. 

그냥 수북이 쌓인 잎만 볼 뿐이다. 

 

짚  

 

나도 

함께 묻어다오. 

 

소의 먹이가 되고 싶다.

느긋하게 되새김질하는 

나도

함께 묻어다오 

 

소의 덕석이 되고 싶다 

차디찬 땅속에 묻힌  

 

 

 

 바늘 길을 베고

  尙州 (111)

            

비둘기소리 후줄근히 젖는

진종일 비 오는 날이면

엄마는 반짇고리 난전처럼 펼쳐 놓으시고

베게모를 만드셨습니다.

쓰다 남은 색색가지 자투리 천으로

모자이크하듯 베게모를 만드셨습니다.

호박꽃이 담장을 밝게 비추면

어울려 피는 엄마의 여름 꽃밭

뒤웅벌이 윙윙거리며

화답을 합니다.

작은 조각이 어울려 그려낸

머리맡의 아름다운 세상

티벹스님의 만다라 같은

무념無念의 공간이 자리 잡습니다.

이 쪽과 저쪽이 다른 색으로 맞이한

가지런히 오고 간 바늘 길을 베고

나는 꿈을 꿉니다.

향기로운 꽃 속에 포근히 잠자다가

길속에서 길 찾는 꿈을

먼 길 헤매다가

돌아오는 꿈을

  

 

    일미식당 아주머니

  尙州 (114)

 

동아아파트 옆 일미식당 아주머니는

혼자 국수를 내놓으신다.

철따라 나오는 푸성귀로 전을 부치기도 하고

재바른 열 손으로

스무 해가 넘도록 익혀온 국수

자식들 공부 시키고

새집지어 몸져누운 어른도 편안케 하신다.

밀가루 반죽에 묻어나는

가정사 이야기를 들을 양이면

국수물 같은 진한 눈물이 속으로 흐르고

사는 게 국수같이 구수하고

후룩후룩 국수물 마시듯 쉽지도 않아

국수 삶듯 삶을 삶아온 아린 세월

마음 끓이는 날은 국수를 삶으며

긴 국수발 같은 한숨을 마시며

전 굽듯 쉽게 뒤집지도 못해

어쩌다 쉬는 날은 산문을 찾아 절을 하며

정성의 탑을 쌓는다.

아픈 다리와 저린 허리를 편다.

열무김치 익는 일미식당에 가면

국수발같이 긴 이력의 길이 열리고

푸짐한 고향의 정을 안고

따뜻한 집을 나선다.

 

 

 

       가을에는 

 

가을에는 어디론가 떠나야하네 

산마루에 올라 사슴처럼 뒤돌아보지 말고| 

훌훌 털고 떠나야하네

우리들 사랑도 물이 들어 단풍으로 타는

목마른 가을 산의 갈증을 누가 아는가 

만남은 낯선 길을 찾다가 

숲에 가려 길을 잃듯 

늘 서투른 시늉으로 머뭇거리고 

쏟은 마음 추수하듯 모두 거둬들이면

뒤주처럼 부풀어 넉넉한 식탁이 될테지만 

아닐세,보낸 마음 시래기 엮듯 엮어도 

빈 하늘에 비껴가는 새떼들뿐 

허수아비의 젖은 속을 누가 아는가 

일찍 지는 해도 떨어져 

논두렁 허리 아픈 굽은 잔등 위로  

땅거미가 몰려든다. 

가을에는 어디론가 떠나야하네 

손 흔들며 떠나는 잎새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