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사골

 

지리산 하산 길에

뱀사골 병풍소 계곡물에

아내는 땀을 씻었다.

 

청류수(淸流水) 물방울 듣는

아내의 얼굴에는

티끌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여름날, 기나긴

오후의 햇살이 눈부셔

깜빡 눈을 감았다.

 

새가 떠난 자리

 

새가 떠난 자리

새가 없는 자리

 

나도 없고

나뭇가지만 흔들립니다.

 

나도 없고

활시위만 마냥 떨어댑니다.

 

 

 

 

고드름

 

겨울밤이었다.

아버지가 따온 고드름

양푼에 가지런히 담긴

눈물의 크리스탈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동생도

하나씩 입에 넣고 깨물었다.

올해는 틀림없이 풍년이 든다고

이가 시리도록 으득으득 씹었다.

 

 

약손

 

어머니

아들놈 횟배 앓으면

아픈 배 슬슬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 시진만 문지르면

아들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천번만번 만져주면

방정떨던 회충이 꽁무니 뺐고

아픔도 불안도 짜증도 사라졌다.

그렇게 하늘도 감동시켰던 것이다.

슬슬 쓰다듬는 손이

신들린 듯이 횟배 안팎을 오가면서

환부도 씻어내고 통증도 감싸주고

그 손으로 밤을 밝혀 빛을 내면

아들놈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배고프다고 왜장쳐댔다.

 

지금도 어머니

아들놈 배 아프다고 하면

대바늘 내려놓고 손부터 내민다.

 

 

임종

 

병상에서 어머니

새로 태어나고 계셨다.

동쪽으로 머리를 두시고

쪽머리 곱게 단장하시고

껍질에서 깨어나려고

참꽃 되려고 몸살하고 계셨다.

 

꽃잎 지는 오후였다.

아직도 창문 너머

봄꿈이 푸르른 데

어머니는 이제

탄생의 환희를 염려하는지

호흡이 가파라지면서

지독한 산고를 견디고 계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를 낳고

연줄이 연줄을 낳고

이제 어머니는

푸른 하늘을 보면서 

당신의 당신을 낳고 계셨다.

 

물거품처럼 어머니가

새로 태어나고 계셨다.

눈에 밟히며 꾸르럭거리는

소화불량처럼

뱃속에서 도무지 나오지 않는

당신의 당신이

아주 천천히 연줄을 끊어내고 계셨다.

  

환시

 

돌아가신 어머니

방 가운데 앉아 계시다.

옥색 한복 입고 곱게도 앉아 계시다.

이젠 여기 사람 아니니까

어서 돌아가라고 해도

여기가 당신 집이라고

끄덕도 않으신다.

반갑고 고맙지만 이젠

저기 세상 가야 한다고

애원해 봐도 눈을 부라려도

그대로 앉아 계시다.

이러니 허물할 수 없어서

오늘은 밤이 이슥하니

주무시고 내일 가시라고

잠자리 보아 드렸더니

모로 누워 잠이 드신다.

나도 그 곁에 모로 누워서

이 얼마만인가

이렇게 아들과 자리하는 게

어머니 소원이었던 모양이다.

 

연리지(連理枝)

 

은적산 능선 삼거리에서

아내와 둘이서

결이 통한 때죽나무

연리지(連理枝)를 보았다.

살가죽을 맞대고 비집고 들어차서

한 나무가 되어버린 가시버시

때죽나무에게도 사랑이 있었나보다.

 

연리지 연결부위를 쓰다듬었다.

나무 매듭 거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온다.

다름을 인정하기 위하여

왼 하나가 되기 위하여

20년 겹으로 덧씌운 화해의 육질이었다.

때죽나무에게도 아픔이 있었나보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아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때죽나무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굴절되는 호기심이 수관(水管)을 타고 도는데

우리 부부에게도 사랑이 있었나보다.

 

나무 위의 여자

 

아침 무렵,

석산(石山)을 오르는 길

산중턱 쉴참마루에서

한아시 굴참나무를 보았다.

아내는 먼동을 본다며

세월의 틈새를 디디면서

‘나무 위의 여자’가 되었다.

 

하늘햇살 내리는

황금이파리 가지마다

거미집 이슬방울 아찔한데

‘나무 위의 여자’가 된 아내는

매미소리 흉내 내고

새소리도 지어내면서

말하는 굴참나무가 되었다.

 

바람이 흔들고 가는 자리

범접하지 못할 위대함이여.

이제 ‘내 사람’이 아닌 아내

높고 높은 내 머리 위에서

주인처럼 위세를 부린다.

굴참나무 굵은 가지에서

뒤바뀐 권력이 춤을 춘다.

 

 

새벽은 온다

 

가장 캄캄할 때

새벽은 온다.

어두운 밤의 갈기에

완전히 밀리고 절망할 때

새벽은 온다.

그믐밤 긴긴 죽음의

시퍼런 묘지를 열치고

뚜벅뚜벅 걸어서 온다.

 

가장 두려울 때

새벽은 온다.

족제비 살쾡이 으르렁거리고

검은손이 목덜미 잡아가도

새벽은 온다.

믿음의 깊이만큼

주린 좀비들 몰아내고

양떼들 거느리고 온다.

가장 아파할 때

새벽은 온다.

꽃이 피어나는 아픔으로

온몸으로 피 흘릴 때

새벽은 온다.

이산저산 소쩍새 소리

바우가 깨어지는 감격으로

새벽은 온다.

 

모래알

 

바닷가 모래알

그 폭신한 것이

각을 세우고

맨발을 자극한다.

 

작은 모래들도

저마다 고집이 있는 것일까

짓밟히고 밀리면서도

원각으로 치받는 걸 보면

 

저렇게 어처구니에게 눌려서

가슴이 빠개지면서도

백악기 연륜으로

풍상의 두께로, 역사로 맞선다.

 

움푹 파인

자리마다

푸른 하늘 은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