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말한다면─『지붕의 등뼈』(푸른사상사, 2011)

                                         박승민

 

*문학적 모태

 

   유년기, 남들 앞에 서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대학을 가서도 그 증상은 개선되지 않았다. 수시로 변할 수 있는 보호색이 없었던 나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얼굴색부터 붉어져서 늘 낭패였다. 말투에는 억센 경상도 방언들이 출신성분을 한눈에 알아보게 했다. 그런 선병질적 촌놈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감히, 도무지, 어쩌자고 문학회 문을 두드렸다. 나나무스꾸리를 닮은 생머리의 여자 선배가 담배 연기를 이쪽으로 날리면서 선문답을 걸어왔다.

 

他: “아가, 여긴 머더러 왔냐?”我: “시쓸라고요”他: “니가 시를 알간?”我: “모르는데요---”他: “언제까정 쓸거시여?”我: “평생 쓸건데요”

 

   그 대답을 듣자 그 나나무스끄리 선배는 피식, 웃었다. 용기만 가상하다는 듯… 그때부터 열심히 써클실 웨이터로 살았다. 선배들은 문학 대신 술을 가르치려 덤볐다. 시집 대신 사회과학서적을 놓고 언어의 적절성 여부를 따졌다. 소주병이 화염병이 되었고 교내 보도블록들이 짱돌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주 당연히 나는 나의 문학적 모태신앙은 80년대 중반, 그곳에 있다고 믿는다.

 

   1   최루탄이 등꽃처럼 터지던 날   143번 버스가 학생회관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대가 있는 대학극장 4층 목조건물까지는   이 세상 가장 긴 일주문   낡은 중세의 유리창 위로   일몰의 서해가 황금 도가니탕처럼 끓고 있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原典   사랑이지만   그대가 앉아있는 무대 위    불란서식 고급살롱에는   소작농의 후예가 오를 수 없는 곳                ―「등꽃」 부분

 

*청산가리의 문제

 

   고등학교 다닐 때, 민음사의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가 책장에 있었다. 형이 보려고 사다놓은 것인지… 어쨌든 숫자개념에 태생적 장애를 안고 있던 나는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 대신 그 시집을 뽑아들었다. 혁명, 설움, 고독, 비애, 자유… 라는 이 이방인의 언어는 나를 단칼에 때려눕힌 주술적 방언들이었다. 나는 한 단어가 한 젊은이의 행로를 역주행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에 한동안 멍, 했다.    대학 입학 후, 역시 민음사의 『김수영산문집』을 알았고 역시나 행간의 의미는 무시한 채 “죽음을 통과하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니다”라는 이 문장에 걸려서 또 낑낑거렸다. 어떻게 하면 죽음을 통과할 수 있을까? 죽으면 가능할까? 폐결핵과 우울증까지 겹쳐 청산가리를 사러 청계천 근처 화공약품 상회를 배회했다. 죽음이 허무와 닿아 있는 듯도 했다. 허무가 초월과, 초월이 혁명과 닿아 있는 듯도 했다. 결국 김수영 식으로 “죽음은 자유다”라고 속단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변적(思辨的)으로 내 내부는 사변(事變)이 나고 있었다.   한 아이가 죽었다. 1996.3.16 생~2004.12.14 몰(沒). 너무 짧았다. 그 아이의 죽음 이후 사변적 죽음이 구체적 죽음으로 턱밑까지 차올랐다. 이제 죽음이 별로 두렵지 않다. 요즘은 죽음을 기다리지도 재촉하지도 않는다. 오면, 그냥 받을 뿐이다. 전봉준이 희끗희끗, 나무 가마 타고 눈발의 검(劍)을 받듯.

 

   아이는 방안에만 누워 있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우연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인간이 무엇을 예측할 수 있을까   그는 대답도 없는 질문을 혼자 하는 버릇이 생겼다   시간의 고무줄이 너무 빨리 당겨지고 있었다   누가 먼저 내리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生은 어차피 낯선 여인숙에 들러    누군가 죽어나간 이불위에서    생시처럼 一泊하는 것

 

   아이는 갱도 같은 식도가 점점 막히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아들」 부분

 

*눈부신 음각(陰刻)

 

   어찌어찌해서 시집을 냈다. 피라미드구조로 되어 있는 한국문학의 상층부부터 원고를 투하해서 낙방하는 동안 자존심도 좀 상했다. 작심3일이듯 그러나 상처도 3일만에 잊기로 했다. 아니 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삶이 기본적으로 “찬 도시락 싸들고 공공근로 나온 행위”이거나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전봇대에 매인 벽보 한 장의 삶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시간들이 나에게 희망이랄까, 전망이랄까, 뭐 그런 것들을 조금씩 버리게 했다. 그 결과 내가 하향지향적 희망수치를 가지게 된 것에 대해서 별 불만도 없다. 다만 살아가는 날까지 강과 얼음이 한 몸으로 만나는, 나와 당신이 눈부신 음각(陰刻)으로 만나는 그런 희한한 장면 한 두개가 더 내 생애의 목록에 추가된다면 아주 밑지는 삶은 아니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당신의 流速은 너무 빨랐습니다   그럴수록 당신의 몸에 내 몸 섞으려는    제 마음의 보폭은 더 성급해져서…

 

   저는 차창 밖에서    가만히 낯익은 발소리만 기다리는   항시 어떤 정거장일 뿐이었습니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전봇대에 매인    벽보 한 장의 삶일 뿐이었습니다

 

   城밖 민박집을 나와   강둑을 걷다 보았습니다

 

   강물의 속도가   얼음의 속도와 꽉 물려 있는

 

   아주 편안한 체위로   흐르는 강물의 결 위에   자신의 몸을 슬쩍 얹고   눈부신 陰刻으로 만나는

 

   어젯밤 당신과 나 사이에 무슨 일 있었나요?             ―「결」 전문

             ─『시에』 2011년 겨울호

 

 

박승민 경북 영주 출생. 2007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 시집 『지붕의 등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