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아주 길을 간다

쑥부쟁이 길을 간다

내가 팔 흔들며

옷깃 날리며 갈 때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온 풀들

나와 같이 길을 간다

머리 위에는 또

길가는 달

둥글게

잘도 굴러가는데

구르다 빙글 번쩍

먼 빛을 쏘는데

명아주 길을 간다

쑥부쟁이 길을 간다

그 길로 나도 가고

달도 간다

 

        《작가정신》 2004

 

 

 

 

 

 

 

 

 

 

 

 

먼 길

 

 

屛城川 온전히 제 몸 갖다 바치는

合水口

낙동강 언저리에 火葬場 있다

그 옆 하천부지

금보리 익고

앞산 뒷산

밤꽃 노랗다

먼 길 가려고

씀바귀 밭둑 돌아 온 사람

국구구 멧비둘기 울 때

물길은 굽이치며

江倉 저 멀리

하늘로 간다

 

         《작가정신》 2007

 

 

 

 

 

 

 

 

 

 

 

 

 

 

 

 

울진 가는 길

          

 

산등선 껑충껑충 잘도 뛰 넘는

송전탑

은빛 찬란한

그 길고 늘씬한 다리를 보니

옛날 친구

莊子만 같은데

동해 蔚珍 가는 구불구불 36번 국도에서

울그락 붉그락

시름에 꼼짝 못하는

작고 구차한 맘이여

불영계곡 따라서

깨어지고 팽개친 몸돌은

아 望洋亭 바다에

처얼썩 처얼썩

 

                  《시와 문화》 2008 여름호

 

 

 

 

 

 

 

 

 

 

 

 

 

 

具常    

 

 

구상문학관 앞 길,

볼펜 한 자루

내 주머니에서 흘러 나왔다

나는 가고

길에 볼펜만 남았다

오늘도 강물은 흐르고

햇볕 좋은데

몰래 흘러나온 볼펜

그 뱃속에 까만창자 있다

강물 속 강피리처럼

길 헤메고 다닌다

검은 눈동자

골똘한 생각을 뿌리고 다닌다

오늘도 강물은 흐르고

내 볼펜

이리 저리 길 위에 있다

 

                  《시와 문화》 2008 여름호

 

 

 

 

 

 

 

 

 

 

 

 

 

 

어처구니로 앉아                    

 

 

새가 나는 것은

바람이 새의 날개를 새가 나는 속도로 와서 부딪치거나

바람 고요할 땐

새가 바람의 속도로 나래치는, 그런 일인데

우리 집 앞뜰과 뒤뜰 사이

멧새며 텃새가 쌩쌩 날아가고 또 날아온다

바람이 마구 부는 것을 보며

그 중간에 집은 우두커니 있는 것이다

우두망찰

집이여 오도카니 창살에 갇힌 나를 지키고

난 거기 어처구니로 앉아

어디로 흐르는 것인가.

 

                     《유심》 2009년 7/8월호

 

 

 

 

 

 

 

 

 

 

 

 

 

 

 

 

무논의 꿈

 

 

무논은 평평하다

삶아 놓은 무논은 마당이다

운동장이다

거기 한 그루 두 그루

잘 자라는 벼여!

뜨거운 태양

따끈한 물

개구리밥 잎줄기 깔리고

올미, 고랭이, 너도방동사니, 나도방동사니 어울려 자라고

논둑이 있는 저만치까지

물은 기울지 않고 찰랑인다

그 벼는 그렇게 사이좋게 자라서

평평한 床을 차리는 것인데

찬밥, 더운밥, 진밥, 식은밥, 마른밥, 고두밥

차별이란 무언가

따끈한 물

평평한 무논에서 자란 벼의 꿈

이 가없는 세상에

우리들 밥상처럼

평등한 꿈이여

 

            《작가정신》 2004

 

 

 

 

 

 

 

 

 

 

속리산휴게소

 

 

 

밤새 달려 온 그대는

바퀴를 멈춘다

아- 가득한 산바람

잠시 마시더니

詩가 가득한 지갑을 꺼낸다

그 중 낡은 것 한 수 집어서

커피 자판기에 주르르 밀어 넣더니

향기로운 차 한 잔 탁 앉힌다

딸깍딸깍

쇳덩어리 利子처럼 떨어진다

九屛山 꼭대기에

눈발이 희끗한 풍경 속에서

한 모금 한 모금

행간을 새기며

가슴 속에 뭉친 긴 숨을

내쉰다 

 

 

               2010 경북작가 시선집 『귀싸대기 한 대』

 

 

 

 

 

 

 

 

 

 

 

 

黃澗에서

         

 

 

봄이 오는 駕鶴樓에 올라

나는 훨훨 나르는 꿈꾸며

서성거렸고

당신은 봄나물 캐고 있었었지

아이는 "가자" "가자" "집에 가자"

노래를 불렀고.

 

초강천 흐르고 바람이 분다

 

아이가 자라서

집을 나갈 때까지

나는 날지 못했고

아내는 나물만 캤다

 

오늘 다시 이 누각에 올라서

절벽 아래를 바라보는데

집 나간 그 아이가 생각 나

눈물 흘린다

 

                     《불교문예》 2010 가을호

 

 

 

 

 

 

 

 

 

 

 

다이아몬드            

 

 

사람들 틈을 걷다가

유리 진열장 열고

다이아몬드 하나 산다

큼지막하고

비싸다

집은 망해도

당신은 살아 남으라고

흰 목에 빛나는 목걸이

걸어준다

어디 있어도 찬란한 빛

간직하라고

                

              《불교문예》 2009 봄호

 

 

 

 

 

 

 

 

 

 

 

 

 

 

 

 

꽃은 피고

  

       

내가 아파트 저 밑 계단을

걸어서 올라 올 때

그 깨끗한 세멘 바닥에

지친 구두 뒷굽이 닿는 소리를

안다

우리 집 강아지도

침대에 누웠던 아내도

안다

그 첫 음이 들릴 때

강아지는 왕왕왕 짖기 시작하고

아내는 설거지통에 수돗물 튼다

나는 세상 끝에 갔다가도

이 발자국 소리로

돌아와야 한다

꽃은 피고

카나리아 노래 부른다

 

            《들문학》 2010

 

 

 

 

 

 

 

 

 

 

 


시계


 


사는 동안 매인 手匣

이 예물 은색 시계


죽어 누워 멈추려나

하염없이 가고 있네


흠집이 긋고 그여도

바꿀 마음 없어라

 

 

             <중앙일보> 1989.7.27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이 약속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 맘에 딱 맞는 맵시로

웃으면서 다가오는

아름다움은 분명 그 옛날 어디에 약속해 둔

기다림 이었던가

처음 볼 때부터

당신을 알아보게 되는 그 신통력

아름다움으로 약속하여 둔 기다림이여

그대 그 아름다운 모습에

이끌리는 것은

그 옛날 표시해 둔 그 시절의 약속을

지키는 것인가

 

                                 

                              《우리詩》 20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