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있는 詩와 人生

 

 

세상 모든 것은 길 위에 있다. 그 길은 조금도 이탈을 허용하지 않는다. 마치 기차가 궤도가 없는 곳에선 달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 길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길 따라 생명은 가게 마련이다. 그 길은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묵정밭처럼 황폐하여 없어지기도 한다. 물 따라 가면 물의 길이 되고 산 따라 돌면 산길이 된다. 나는 많은 길 위를 서성거렸다. 시를 찾는 사람으로 당연한 방황일지도 모른다. 두 갈래 길이 있다면 한 길을 가다말고 돌아와서 다른 길도 가 보곤 했다. 자연 그 길은 고단한 길이다.

 

최치원은 속리산 詩에서 “道不遠人人不道”라고 했다. 길은 사람들 가까이 있는데 사람들 그 길과 멀어져 있다는 말이다. 가까운 길, 먼 길, 편한 길, 험한 길, 이 길, 저 길들. 수만 가지 길이 세상에 존재하므로 그 사람에게 맞는 길을 찾기 어려움도 있으리라. 길은 소통이고 화합이다. 사람들과 멀어져 있는 길은 길이 아니다. 사람은 늘 길 위에 있고 그 길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 길 위에 가능성은 늘 있으되 가능하지 않은 것도 길에 있다.

 

노자는 “道可道 非常道”라고 하여 늘 그러한 길은 항상 그 길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세상은 변화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머무르지 않는 이치를 알려준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는 이 길에서 영원한 어떤 것을 구하지 못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때나 남의 것이 되고 만다. 내 것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 길 위에 다 놓고 가야한다. 다시 걸어오고 있는 행인에게 그 길을 내줘야 한다.

 

그러고 보면 장자는 내 길을 좀 평탄하게끔 생각하게 한  지혜를 준 것 같다. 齊物論에서 이야기한 상대적 절대는 세상사 험난한 파도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한 지혜를 제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길이란 사방으로 통하며 또 사방으로 열려 있는 것이다. 길은 도처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가지 않은 길이 없는 길은 아니다. 

 

여기에 또 한 길이 있다. 大學에서 말한 格物致知가 그것이다. 앎의 완성을 격물로 본 것인데 사물의 품격을 가리고 그 지위랄지 본질을 헤아릴 수 있음을 말함이리라. 여기에서 물은 사물을 포함한 타자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나에 대한 상대인 것이다. 삶이란 타자와 끊임없는 소통에 있으므로 그것이 나 밖의 또 한 길이리라.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울한 것이 내 본성이므로 타자와의 거래는 늘 부자연스러울 뿐이었다.

 

정신은 육체를 매개로 존재한다. 육체(物)가 없으면 정신도 없는 것이다. 귀신은 없다. 귀신은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육체는 現物이며 現在이고 現象이다. 육체가 해체된 상태인 무기물이 어떤 형태로던 다시 결합하여 유기체가 되기 전에는 그 自性은 아직 없다. 정신은 육체의 운전자다.

 

한때 아름다움이란 무었인가 하고 천착한 적이 있었다. 왜 아름다움에 이끌리는가. 그건 존재의 허기가 아닐까 여겨 본적이 있다. 존재란 불완전한 형태다. 그리고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늘 배고픔이리라. 아름다움은 이상이며 기쁨이며 전부인 것이다. 여기에 시의 길이 있다

 

시는 은유가 많아서 불가사의한 세상의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옛날 성인은 비유로서 시대를 예언했듯이 시인은 은유로 시대를 표현하고 비판한다. 시의 표현은 음각일 수도 있고 양각일 수도 있다.

 

자연법칙은 논리적인데 비해, 인간의 운명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그러므로 자연법칙에 빗대어 인간의 운명을 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한 일부이므로 그 육체적인 삶은 자연법칙이 적용되게끔 되어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육신을 이끄는 운명이란 별개의 것이니, 자연법칙을 배경으로 이해하려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노자의 "天地不仁"이 그것이다. 이 말로부터 자연의 법과 인간의 법이 다름을 알려주고 있다. 인간운명의 可變性이야말로 자연법의 불변(不仁)과 배치되는 것이다.

 

길과 인생과 그 운명 앞에서 잡설이 길었다. 별로 시작에 도움 되지 못하는 음울한 생각일 뿐이다. 아래 간단한 詩歷을 밝히고 이 글을 마무리 한다.

 

 

1959년 경북 상주시 사벌면 목가리 출생

1982년 제2회 상주 학도문화제 漢詩백일장 장려상

1989년 3월호 샘터 시조 "두타산" 발표(朴在森 選)

1989년 4월 13일 중앙일보 시조 "甑山에서" 발표

1989년 7월 27일 중앙일보 시조 "시계" 발표 (金濟鉉 選)

1989년 7월호 샘터 시조 "푸른 동산"발표(尹今初 選)

1992년 9월 28일 중앙일보 시조 "장미와 돌탑" 발표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희양산봉암사" 당선(이근배 選)

2003년 계간 《불교문예》여름호 시 "메리야스를 갈아입으며"외 4편 신인상(나태주 選) 등단

2006년 시집『상 지키기』 발간(모아드림)

 

1990년 젊은숲,그들同人 참여 『내 몸 가누기도 힘든 세상에』 발간

1996년 들문학회 동인지 3집 『들, 그 가운데』부터 ~ 2011년 18집 까지 참여

2002년 경북작가회의 참여 《작가정신》3호 ~ 12호 현재 참여

2003년부터 현대불교문인협회 본회 및 대구경북지회 참여

2012년 상주작가회의 참여(고창근,김철희,김재순,임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