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8호...
   2020년 04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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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창길 시인)나의 문학관 file
편집자
2765 2012-02-10
나의 문학관 한국인들은 지금 총선 정국이니, 대선 정국이니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일반 국민들은 스스로 선택한 잘못된 권력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분노도 섞여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현정권이야 자신들 손아귀에 잡힌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쌍심지를 켜들고 있지만 분명히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 이상 착오를 불러 일으키지 않아야겠다는 성찰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약자로 내몰린 서민대중들의 희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 정권들어 잘못된 이슈들이 여럿 불거졌다. 한미 FTA 불법처리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 미네르바 사건, 4대강 운하사업, 용산참사와 MB악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미디어법 파동 등이 계속 이어졌다. 또한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가 중단된 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실상은 국민 입장에서 보면 답답하고, 통일에 대한 전망도 요원하기 짝이 없다. MB정권은 북한 핵포기라는 전제를 달아 대화를 중단하고, 금강산 관광 등 민간차원에서의 교류도 사실상 전면 중단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의 해법을 위해 좀더 섬세하고 진지한 고민을 해 봤으면 하는 심정이다. 무릇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가능한 대안들이 모색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아직도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정국이다. 반민주세력 척결을 위해 민주세력의 합리적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에서 말한 내용들이 나의 문학적 근거와 창작의 뿌리를 둔 강령이거나 주제이거나 미래의 과제이기도 하다. 문학이 시대적 상황과 민족의 현실을 배타적으로 여긴다면 역할과 책임 뿐 아니라 존재의 정당성마저 허약해질 수 밖에 없다. 모순된 역사와 부조리를 해소하는데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약력: 전북 김제 생. 1984년 <두레시>동인지로 작품활동 시작. 1980년대 구로노동자문학회와 민청련 문학분과 활동. 월간<철원> 편집장 역임. <고양문화> 취재기자 역임. <불교문예> 편집장 역임. 시집 <철길이 희망하는 것은>. 현 <창 작21> 편집주간. <작가연대> 편집주간. 고양시민사회연대 대표자회의 위원. 다문화창작네트워크 대표. 창작21작가회 대표. 주소: 서울 중구 필동3가 28-1 서울캐피탈빌딩 B202호 (우 100-273) <창작21> 편집실 문 창 길 앞 전화: 02-2267-6833, 010-5308-6833  
3 (문창길 시인)자선대표작 10편
편집자
2102 2012-02-10
 조선누이 이옥선할머니의 란중일기 .1 1942년 나의 7월은 월경의 역사 그것이었다 백주에 끌려온 열여섯 꽃가슴에 거센 폭풍은 꽃을 꽃으로 피지 못하게 하고 꿈을 꿈으로 갖지 못하게 하고 끝내는 댕기머리 하얀 치마저고리 조선의 딸년이라 듣지도 부르지도 못하게 하였다 아 나의 죽음같은 천리타향 만주로 가는 화차통은 왜 그리도 속절없이 달리던지 울산기생집 앞 백주대로에서 끌려와 도문을 지나 연길에 도착해서야 동갑내기 가시내들의 눈물바람도 뭔지 몰라 그냥 죽어버리자던 제일 큰언니 흐느낌 소리도 이 옥선이년은 그제서야 벼락같은 슬픈 운명이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하늘도 무심하게 푸른 계절 동갑내기 가시내들이 보는 앞에서 옥선이년 아니 도미코년 아카다년으로 검정치마 하얀저고리 벗겨진 채 사쿠도 안쓴 인간도 아닌 흉악한 일본군들에게 옥색같은 알몸을 뺐기고 또 뺐겼다 아 어머니! 아 나의 조선이여! 홍익의 어진, 나라의 어진 가시내들을 꽃사슴같은 딸년들을 어찌 버리시나이까 꽃보다 아름다운 열여섯 나의 첫 월경은 일본군 동비행장 근처 위안소에서 시작되었다 칼끝같은 그 쓰라린 일본군인놈의 그것이 찌르고 지나간 뒤였다 참으로 순정한 옥선이년 제 몸에서 진달래 꽃 피는 줄 모르고 조선의 붉은 핏빛인 줄 모르고 뜨거운 지 에미 애비 피눈물인 줄 모르고 흰 솜 쑤셔넣고 짐승처럼 왜군을 상대한 이 무지렁이 딸년 악다구니도 쳐보고 반항도 해봤지만 표딱지를 들고 서 있는 저 왜놈군인들 가차없이 허리띠를 풀어 어디랄 것 없이 내리치는데 나의 운명은 운명이 아니었다 나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 나의 시간은 시간이 아니었다 어느덧 큰바람 불고 겨울 눈보라 친다 어김없이 찾아드는 아기달집 통증으로 단군의 곰같은 딸년이나 심청이를 낳은 어진 에미는 될 수 있을지 오 그러나 나에게도 이팔청춘 사랑은 있었다 연변위안소에서 몰래 정분을 나눈 조선 사내 하나 와락 끌어 안았다 조선이 해방된 줄도 모르고 옥선이년 얼씨구나 댕기머리 풀었다 그러나 그림자처럼 말없이 밀려드는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고 또 시작이었다 결혼 나흘만에 군대 나간 서방님 그냥 생이별이었다 청청 하늘 희망과 꿈을 그리며 무명치마 옥색저고리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조선 사내 하나 다시 끌어 안았다 청실홍실 짝지어 팔도진에 살림 차렸다 조선 아낙 옥선이 가슴에 꿈이 돋았다 공작활동도 하고 동네 부녀주임도 청년단위 조장도 열심히 했다 하다 하다 연극배우도 하면서 지나간 회한의 삶을 지우고 일본군인에게 빼앗긴 나를 찾기 위해 어히 어허 얼씨구 살풀이를 하고 싶었다 살맛나는 세상을 다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년 팔자는 나를 낳아준 어머니 같은 에미는 될 수 없었다 일본군이 놓아준 그놈의 수은으로 만든 사르바르 606호 주사 한 방으로 이년의 아기달집 깡그리 헐어버렸다 아 이순신 장군같은 사내 하나 갖고 싶었다 심청이 같은 딸년 하나 낳고 싶었다 조선누이 이옥선할머니의 란중일기 .2 나 옥선이 만주 용정 살다 칠년전 남조선으로 왔지 해방 62년, 광복 62년 내 나이 여든일곱 위안소에서 배가 고파 돼지풀을 뜯어먹던 그 세월을 잊을 수가 없지 돼지같은 땅딸보 일본헌병놈이 남긴 밥을 집어 먹으며 빼빼왜군놈이 입다버린 속내의를 주워 입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삼켰었지 조선 딸년들의 마냥 슬픈 운명을 생각했었지 그리고 이를 악다물었지 나는 지금 일본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않고 일본 놈이라 부르지 아니 짐승이라 부르지 누가 왜냐고 묻거든 나는 대답하지 아직도 내 아랫도리를 벌리며 조센징이라 킥킥대던 그 짐승으로 서 있던 일본군인이 살아 있다고 저 섬나라 아베 이등병과 함께 잘 훈련된 군국주의자 도조 히데끼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아 옥선이년 이 조선의 딸년은 하얀옷의 아름다운 어머니를 보고 싶네 힘 좋은 어깨춤으로 비상하는 내 아비의 조국을 보고 싶네 붉게 물드는 저 노을 속 나의 울분은 아직 식지 않았네 버마에서 수도승을 만나다 쉐다곤 파고다 금탑을 지나다 금탑벽을 향해 면벽 수도하는 스님을 만났다 벽은 온통 금으로 싸여져 눈이 부셨다 온몸을 금빛에 그을린 스님 눈을 감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뒷자리에 앉아 금벽을 바라보았다 찰나 무엇에 찔린 듯 나는 눈을 감았다 하 거기에는 또 한 분의 스님이 자리 잡고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방인의 속물적 관심을 눈치 챈 것일까 무언의 눈빛은 내 안의 나를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는 이내 작은 숨소리를 감춘다 도대체 이 적요한 인연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나는 위압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13톤의 금을 덫칠한 탑신보다 더 무거운 내 어깨는 언제쯤 가벼운 무게로 일어설까 감고 있는 내 눈의 눈빛은 하 정말 지루하다 나팔꽃 어린 나팔꽃 한 줄기 자신의 애증어린 근대사를 적고 있다 참 무심하게도 서 있는 벚나무가로수를 기대고 일어서려다 꼬여버린 한 세상 버티기 힘들어 무성한 덩굴손을 펼쳐든 수다반 타령반으로 손사래를 치는 김밥 파는데 정신이 팔린 필동아줌마 유일한 나의 보호자다 한무리의 손님이 빠져나갈 때마다 몇모금의 담배연기를 입안 가득 담고 벚나무 그늘에 숨어있는 나를 찾는 그러다 살며시 다가와 물고 있던 담배연기를 후욱 뿜으며 내 흘러내리는 허리춤을 곧추세우는 50줄의 김밥장수 필동아줌마 심하게 쿨럭거리는 나의 몸부림에도 아랑곳 없이 다시 한 모금 입에 물고 사랑반 걱정반으로 벚나무 밑둥치에 비닐끈을 매어주며 눈길을 맞추는 유일한 나의 친구 때마침 행복예식장을 돌아 작은 사거리를 막무가내로 건너오던 돌개바람이 심술궂게 김밥가게의 비닐문을 들춘다 이윽고 만사가 끈적거리는 뒤태가 한없이 넙데데한 필동아줌마 심사가 뒤틀리는지 내게 다가와 이미 발목까지 흘러내린 덩굴줄기를 끌어 올리며 넵다 한마디 내뱉는다 이놈아 언제 철나게 분홍꽃 한번 피울래 그때다 덩굴겨드랑이 안쪽에서 뻐근히 올라오던 망울 하나 꽃눈을 뜨는게 아닌가 에어컨 수리기사 김종상씨 익숙한 솜씨로 드라이버를 돌리는 그의 이마에는 벌써 심오한 절망이 맺힌다 올여름은 몇십년만에 더울거라는 딴에는 즐거운 비명이라도 질러댈성 싶은 에어컨 수리기사 김종상씨 해묵은 에어컨 뚜껑을 열자마자 시원한 목소리로 언제 샀냐는둥 이것저것 물어 보더니 이름모를 부품들을 뜯어 제낀다 굉장한 고장이라도 난걸까 아니면 심각한 희망이라도 찾아낸 걸까 가끔씩 소매자락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훔쳐내는 그의 피둥둥한 얼굴에는 검정기름때 스물스물 스물 몇살의 역사가 척박하게 그려져 있다 실내기 팬을 교환해야 된단다 아마 핵심적인 부품인가 보다 하기야 제품 생산연도가 이십년은 넘었으니 제까짓 수명이 다 되었을 것 같다 기사님 수리비는 얼마나 나옵니까 이십 몇만원쯤 나올거란다 이십대의 김기사는 매우 정열적인 행위로 늙은 에어컨을 잡도리 한다 실내 분위기가 후덥지근하다 에어컨 밑구녕을 쑤셔대던 김기사가 한참을 씩씩대더니 순간 악하고 외마디를 지른다 금방 열이 올랐나 아니면 에어컨이 뜻대로 말을 안듣나 그도 아니면 젊은놈 게송을 외치나 손에 쥔 드라이버를 훽 내던지며 피 흘린 엄지손가락을 빨아대던 눈동자가 갑자기 일그러진다 에이 씨버랄 막심한 입담으로도 자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에어컨 수리기사 김종상씨 뭔가 빙점의 흔적을 확인하듯 그 아래를 훑으며 조심스럽게 에어컨 스위치를 켠다 굳이 미안할 것도 없는 나는 흥건히 땀 젖은 그의 손아귀에 이십육만원을 건네주며 한마디 일갈한다 모든 늙고 헐거운 것들도 날카롭고 예민한 구석이 있습니다 조심합시다 서서히 열반에 드는 바람처럼 우리는 이별하는 도반이 되어 가슴을 식히고 있다 원당사를 지나며 한밤의 독경소리 무량한 법음이구나 밤벌레 또랑한 염불소리에 중생욕을 씻어내니 삼라의 심오한 번뇌 다시 가득 차오른다 이 속좁은 우주의 문살을 뚫고나온 연화불빛 하나 바라밀을 향한 내 어설픈 발길을 비출랑가 태백 마지막 광부 폐광촌 스레이트 지붕위에 별빛 흐르면 주삣주삣 주인 잃은 티브이 안테나가 지친 어둠에 묶인다 실낱같은 한가닥 희망이 시린 바람끝으로 가슴을 지나면 살아가는 길만큼이나 꿈틀대는 갱도를 따라 더 나아갈 곳이 없는 막장에 박힌 꿈들을 송두리채 캐내고 싶은 폐광촌 마지막 광부들 궤도차가 흔들릴때마다 절망반 시름에 겨워 탄가루에 묻히는 자신들의 삶을 말없이 태우고 있다 소래포구 황씨 끈적한 새벽 안개를 사르며 일어서는 태양 헤진 그물끝으로 빛살을 뻗친다 달큰한 정기가 서리는 걸까 밤새 뒤척이던 마누라의 정분에 녹아든 걸까 나는 떠지지 않는 눈두덩을 비비며 뻐근한 두 다리에 비린내로 찌든 작업복을 꿴다 오늘은 좀더 먼 바다로 나갈 것이다 먼 바다로 나가면 나갈수록 나의 희망은 저 먼 수평선 끝자락으로 밀려나지만 그래도 손익은 그물을 던지면 반 꿈은 이루어지는 것 같다 포구 어귀엔 이미 뱃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연평호 선장 윤씨가 먼저 눈인사를 보내며 어깨를 툭툭 친다 제발 우리 배 좀 같이 타자 으응 지난 봄부터 윤선장은 내 일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떠날 채비를 마친 뱃사람 하나 둘 뱃머리를 따라 갑판 위에 오른다 저마다 걷어부친 소매자락엔 검정 이끼들이 뼈저린 사연으로 까막따개비처럼 붙어 있다 미련없이 떠나 어김없이 그 자리로 돌아올 우리네 포구의 생목앓이들 망망 바다에 욕망의 모든 촉수들을 풀어 헤치고 끝없는 절망과 또는 애증어린 희망을 포획하기 위해 태평양 연안의 낯선 꿈들을 재고 있다 득량만 밀물들 때 말없이 무념의 귀를 기울이면 쉼없이 다가오는 저 바람의 혼들 이미 파도의 잠을 쫓으며 길을 만든 명민한 기억들이 갯내를 지우고 게딱지 같은 득량도의 역사를 파묻고 있다 오 보아라 저 보성만에서 떠내려오는 목선을 그 안엔 섬을 섬으로 보지 않고 뭍을 뭍으로 보지 않고 바람길을 따라 뭍 섬으로 길을 오가는 우리 아버지와 내 어머니의 뭉클한 연정이 실려 있니라 하늘에 박힌 청청한 별빛을 보며 바다길을 가늠했던 무정한 시대를 알싸한 정분으로 흘려 보냈니라 밀물드는 하오 그물질로 불거진 득량만 사내들의 팔뚝엔 이미 헤진 닻줄과 잡고기 한 상자 힘에 겨웁다 승냥이처럼 다가드는 횡포한 일상들이 사십줄의 어깨를 한손아귀로 덮칠 때 의심많은 갯바람 아낙의 무명자락을 흔든다 이제 섬도 아닌 뭍도 아닌 그래서 길도 잃어버린 득량갯벌 서녘 끝에서 쭈삣거리던 물고래들을 무참히 포획한다 포구목까지 차오른 물비늘을 벗긴다 슬픈 희망처럼 그 살속엔 생존의 모든 관계가 채워져 있다 남자의 여자 남자는 떠난 여자와 여자는 떠나지 않은 남자와 세월이 함께 흐르는 곳에서 물 같은 또는 피 피 같은 또는 물 역전으로 가는 몇대의 버스에 그만큼의 밀어를 실어 보낸다 우우 바람 속에 서서 여자의 가슴 밖으로 그려지는 샤갈의 그림 한 점  
2 (임술랑 시인)길 위에 있는 詩와 人生 file
편집자
1936 2012-01-10
 길 위에 있는 詩와 人生 세상 모든 것은 길 위에 있다. 그 길은 조금도 이탈을 허용하지 않는다. 마치 기차가 궤도가 없는 곳에선 달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 길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길 따라 생명은 가게 마련이다. 그 길은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묵정밭처럼 황폐하여 없어지기도 한다. 물 따라 가면 물의 길이 되고 산 따라 돌면 산길이 된다. 나는 많은 길 위를 서성거렸다. 시를 찾는 사람으로 당연한 방황일지도 모른다. 두 갈래 길이 있다면 한 길을 가다말고 돌아와서 다른 길도 가 보곤 했다. 자연 그 길은 고단한 길이다. 최치원은 속리산 詩에서 “道不遠人人不道”라고 했다. 길은 사람들 가까이 있는데 사람들 그 길과 멀어져 있다는 말이다. 가까운 길, 먼 길, 편한 길, 험한 길, 이 길, 저 길들. 수만 가지 길이 세상에 존재하므로 그 사람에게 맞는 길을 찾기 어려움도 있으리라. 길은 소통이고 화합이다. 사람들과 멀어져 있는 길은 길이 아니다. 사람은 늘 길 위에 있고 그 길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 길 위에 가능성은 늘 있으되 가능하지 않은 것도 길에 있다. 노자는 “道可道 非常道”라고 하여 늘 그러한 길은 항상 그 길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세상은 변화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머무르지 않는 이치를 알려준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는 이 길에서 영원한 어떤 것을 구하지 못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때나 남의 것이 되고 만다. 내 것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 길 위에 다 놓고 가야한다. 다시 걸어오고 있는 행인에게 그 길을 내줘야 한다. 그러고 보면 장자는 내 길을 좀 평탄하게끔 생각하게 한 지혜를 준 것 같다. 齊物論에서 이야기한 상대적 절대는 세상사 험난한 파도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한 지혜를 제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길이란 사방으로 통하며 또 사방으로 열려 있는 것이다. 길은 도처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가지 않은 길이 없는 길은 아니다. 여기에 또 한 길이 있다. 大學에서 말한 格物致知가 그것이다. 앎의 완성을 격물로 본 것인데 사물의 품격을 가리고 그 지위랄지 본질을 헤아릴 수 있음을 말함이리라. 여기에서 물은 사물을 포함한 타자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나에 대한 상대인 것이다. 삶이란 타자와 끊임없는 소통에 있으므로 그것이 나 밖의 또 한 길이리라.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울한 것이 내 본성이므로 타자와의 거래는 늘 부자연스러울 뿐이었다. 정신은 육체를 매개로 존재한다. 육체(物)가 없으면 정신도 없는 것이다. 귀신은 없다. 귀신은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육체는 現物이며 現在이고 現象이다. 육체가 해체된 상태인 무기물이 어떤 형태로던 다시 결합하여 유기체가 되기 전에는 그 自性은 아직 없다. 정신은 육체의 운전자다. 한때 아름다움이란 무었인가 하고 천착한 적이 있었다. 왜 아름다움에 이끌리는가. 그건 존재의 허기가 아닐까 여겨 본적이 있다. 존재란 불완전한 형태다. 그리고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늘 배고픔이리라. 아름다움은 이상이며 기쁨이며 전부인 것이다. 여기에 시의 길이 있다 시는 은유가 많아서 불가사의한 세상의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옛날 성인은 비유로서 시대를 예언했듯이 시인은 은유로 시대를 표현하고 비판한다. 시의 표현은 음각일 수도 있고 양각일 수도 있다. 자연법칙은 논리적인데 비해, 인간의 운명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그러므로 자연법칙에 빗대어 인간의 운명을 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한 일부이므로 그 육체적인 삶은 자연법칙이 적용되게끔 되어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육신을 이끄는 운명이란 별개의 것이니, 자연법칙을 배경으로 이해하려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노자의 "天地不仁"이 그것이다. 이 말로부터 자연의 법과 인간의 법이 다름을 알려주고 있다. 인간운명의 可變性이야말로 자연법의 불변(不仁)과 배치되는 것이다. 길과 인생과 그 운명 앞에서 잡설이 길었다. 별로 시작에 도움 되지 못하는 음울한 생각일 뿐이다. 아래 간단한 詩歷을 밝히고 이 글을 마무리 한다. 1959년 경북 상주시 사벌면 목가리 출생 1982년 제2회 상주 학도문화제 漢詩백일장 장려상 1989년 3월호 샘터 시조 "두타산" 발표(朴在森 選) 1989년 4월 13일 중앙일보 시조 "甑山에서" 발표 1989년 7월 27일 중앙일보 시조 "시계" 발표 (金濟鉉 選) 1989년 7월호 샘터 시조 "푸른 동산"발표(尹今初 選) 1992년 9월 28일 중앙일보 시조 "장미와 돌탑" 발표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희양산봉암사" 당선(이근배 選) 2003년 계간 《불교문예》여름호 시 "메리야스를 갈아입으며"외 4편 신인상(나태주 選) 등단 2006년 시집『상 지키기』 발간(모아드림) 1990년 젊은숲,그들同人 참여 『내 몸 가누기도 힘든 세상에』 발간 1996년 들문학회 동인지 3집 『들, 그 가운데』부터 ~ 2011년 18집 까지 참여 2002년 경북작가회의 참여 《작가정신》3호 ~ 12호 현재 참여 2003년부터 현대불교문인협회 본회 및 대구경북지회 참여 2012년 상주작가회의 참여(고창근,김철희,김재순,임술랑)  
1 (임술랑 시인)자선 대표작 10편
편집자
1926 2012-01-10
 길 명아주 길을 간다 쑥부쟁이 길을 간다 내가 팔 흔들며 옷깃 날리며 갈 때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온 풀들 나와 같이 길을 간다 머리 위에는 또 길가는 달 둥글게 잘도 굴러가는데 구르다 빙글 번쩍 먼 빛을 쏘는데 명아주 길을 간다 쑥부쟁이 길을 간다 그 길로 나도 가고 달도 간다 《작가정신》 2004 먼 길 屛城川 온전히 제 몸 갖다 바치는 合水口 낙동강 언저리에 火葬場 있다 그 옆 하천부지 금보리 익고 앞산 뒷산 밤꽃 노랗다 먼 길 가려고 씀바귀 밭둑 돌아 온 사람 국구구 멧비둘기 울 때 물길은 굽이치며 江倉 저 멀리 하늘로 간다 《작가정신》 2007 울진 가는 길 산등선 껑충껑충 잘도 뛰 넘는 송전탑 은빛 찬란한 그 길고 늘씬한 다리를 보니 옛날 친구 莊子만 같은데 동해 蔚珍 가는 구불구불 36번 국도에서 울그락 붉그락 시름에 꼼짝 못하는 작고 구차한 맘이여 불영계곡 따라서 깨어지고 팽개친 몸돌은 아 望洋亭 바다에 처얼썩 처얼썩 《시와 문화》 2008 여름호 具常 구상문학관 앞 길, 볼펜 한 자루 내 주머니에서 흘러 나왔다 나는 가고 길에 볼펜만 남았다 오늘도 강물은 흐르고 햇볕 좋은데 몰래 흘러나온 볼펜 그 뱃속에 까만창자 있다 강물 속 강피리처럼 길 헤메고 다닌다 검은 눈동자 골똘한 생각을 뿌리고 다닌다 오늘도 강물은 흐르고 내 볼펜 이리 저리 길 위에 있다 《시와 문화》 2008 여름호 어처구니로 앉아 새가 나는 것은 바람이 새의 날개를 새가 나는 속도로 와서 부딪치거나 바람 고요할 땐 새가 바람의 속도로 나래치는, 그런 일인데 우리 집 앞뜰과 뒤뜰 사이 멧새며 텃새가 쌩쌩 날아가고 또 날아온다 바람이 마구 부는 것을 보며 그 중간에 집은 우두커니 있는 것이다 우두망찰 집이여 오도카니 창살에 갇힌 나를 지키고 난 거기 어처구니로 앉아 어디로 흐르는 것인가. 《유심》 2009년 7/8월호 무논의 꿈 무논은 평평하다 삶아 놓은 무논은 마당이다 운동장이다 거기 한 그루 두 그루 잘 자라는 벼여! 뜨거운 태양 따끈한 물 개구리밥 잎줄기 깔리고 올미, 고랭이, 너도방동사니, 나도방동사니 어울려 자라고 논둑이 있는 저만치까지 물은 기울지 않고 찰랑인다 그 벼는 그렇게 사이좋게 자라서 평평한 床을 차리는 것인데 찬밥, 더운밥, 진밥, 식은밥, 마른밥, 고두밥 차별이란 무언가 따끈한 물 평평한 무논에서 자란 벼의 꿈 이 가없는 세상에 우리들 밥상처럼 평등한 꿈이여 《작가정신》 2004 속리산휴게소 밤새 달려 온 그대는 바퀴를 멈춘다 아- 가득한 산바람 잠시 마시더니 詩가 가득한 지갑을 꺼낸다 그 중 낡은 것 한 수 집어서 커피 자판기에 주르르 밀어 넣더니 향기로운 차 한 잔 탁 앉힌다 딸깍딸깍 쇳덩어리 利子처럼 떨어진다 九屛山 꼭대기에 눈발이 희끗한 풍경 속에서 한 모금 한 모금 행간을 새기며 가슴 속에 뭉친 긴 숨을 내쉰다 2010 경북작가 시선집 『귀싸대기 한 대』 黃澗에서 봄이 오는 駕鶴樓에 올라 나는 훨훨 나르는 꿈꾸며 서성거렸고 당신은 봄나물 캐고 있었었지 아이는 "가자" "가자" "집에 가자" 노래를 불렀고. 초강천 흐르고 바람이 분다 아이가 자라서 집을 나갈 때까지 나는 날지 못했고 아내는 나물만 캤다 오늘 다시 이 누각에 올라서 절벽 아래를 바라보는데 집 나간 그 아이가 생각 나 눈물 흘린다 《불교문예》 2010 가을호 다이아몬드 사람들 틈을 걷다가 유리 진열장 열고 다이아몬드 하나 산다 큼지막하고 비싸다 집은 망해도 당신은 살아 남으라고 흰 목에 빛나는 목걸이 걸어준다 어디 있어도 찬란한 빛 간직하라고 《불교문예》 2009 봄호 꽃은 피고 내가 아파트 저 밑 계단을 걸어서 올라 올 때 그 깨끗한 세멘 바닥에 지친 구두 뒷굽이 닿는 소리를 안다 우리 집 강아지도 침대에 누웠던 아내도 안다 그 첫 음이 들릴 때 강아지는 왕왕왕 짖기 시작하고 아내는 설거지통에 수돗물 튼다 나는 세상 끝에 갔다가도 이 발자국 소리로 돌아와야 한다 꽃은 피고 카나리아 노래 부른다 《들문학》 2010 시계 사는 동안 매인 手匣 이 예물 은색 시계 죽어 누워 멈추려나 하염없이 가고 있네 흠집이 긋고 그여도 바꿀 마음 없어라 <중앙일보> 1989.7.27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이 약속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 맘에 딱 맞는 맵시로 웃으면서 다가오는 아름다움은 분명 그 옛날 어디에 약속해 둔 기다림 이었던가 처음 볼 때부터 당신을 알아보게 되는 그 신통력 아름다움으로 약속하여 둔 기다림이여 그대 그 아름다운 모습에 이끌리는 것은 그 옛날 표시해 둔 그 시절의 약속을 지키는 것인가 《우리詩》 20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