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풍경


며칠 내가 집에 없응께 집 터서리에 풀이 천지라 저것들은 잘 뽑히지도 안해여 뽑아도 뿌리에 흙이 타박하게 붙어서 잘 죽지도 안 한데이


채울 것 없던 헛간을 밀어내고 만든 텃밭

어머니 질긴 풀을 뽑으신다

저것들도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게다

못 쓴다고 눈에 들지도 못하는 것들

질기게 살아야 씨라도 뿌리는 걸

되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콘크리트 담이라도 숨구멍이 있는 곳이면 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을

봄날 따신 밥 위에 얹히지도 못한 독한 풀

납작하게 눌러 붙어 잘 잡히지도 않는 것을

한 줌씩 뜯다가 후벼 파다가

더러 뽑히기도 하다가

주절주절 할 말이 많아진다

끝끝내 고분고분하지 않는 몇은

땅을 움켜쥐고 멍울멍울 자란다


그래도 저것들도 희꾸무리한 꽃이 핀데이




탱자나무


촘촘하게 가시를 품고

지나가는 바람도 걸러낼 것처럼

빈틈도 없어 보이는 탱자나무 속

참새떼가 날아든다

그렇게 독하게 들이밀던 가시는 다 어디가고

저 느슨함이라니

제 집인 듯 폴랑거리며 날아다니는 저 날개 좀 봐

짹짹거리는 소리 가시 끝에 매달고

감히 손도 뻗지 못하게 감싸안는다

아무도 도망가지 못하게 독을 품은

벽인가 했더니

저렇게 쉴 곳 많은 빈 곳 투성이라니



닭들이 모여서 잠을 잔다


며칠째 내리는 비

처마 밑 닭장이 질척하다

사선으로 부는 바람

오돌오돌 돋아나는 닭살

아무리 모가지를 흔들어도

축축하게 스며드는 빗물

먹음직스럽게 오른 살점들이

앙상하게 드러난다

차츰 몰려드는 어둠에

대쪽 같던 다리가, 부리가

모여든다

서로 날갯죽지에 머리를 들이밀고

쉼 없는 잠꼬대로 젖은 날개를 비비고 있다




안개 잦은 지역


내가 사는 곳은

수시로 안개가 몰려온다

음산한 기운을 불러 아득하게 정신을 홀리는

여우 누이의 꼬리 같은

앞날이 늘 안개 같다던 친구는

열아홉에 살림을 차렸고

서른아홉에 혼자 돌아왔다

그의 어머니 낙동강 나룻배를 타고 떠난

그 안갯속으로


제법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으나

차가운 기운만 가져본 친구는

부푸는 돈이 몰고 오는 뜨거운 기운에

아내를 잃어버렸다

흔히 있는 일이지 안개가 내리는 곳은

둥둥 떠다니는 출구가 없는 이야기들


맑은 날 울 일이 많아

차를 타고 길을 나서면

누군가 울다 간 물방울이 길을 잃고 헤매는 중


속도를 줄이고

전방을 주시할 것





목공소 이야기



사람 손으로 하는 것이 똑같은 것이 있나

나뭇결 따라 순리대로 켜야지


골목 안에 자리 잡은 목공소

언제부터인가 대패 켜는 소리 죽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던 목공술

문짝에는 구멍이 숭숭

나무를 먹고사는 버러지만 산다


평생 기술 하나면 밥 빌어먹을 일 없다더니

세상은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정직하게 살아온 나무가 거짓말을 한다


길 건너 우레 같은 소리로

나무를 켜는 가구공장

정답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뿌옇게 톱밥이 들러붙은 창 너머

켜다 만 목수의 삶이 방치된 채

멈춰 있다


틀에 박힌 문짝이 즐비한 거리

누구 하나 눈여겨보는 이가 없다





폭염

―영군이 아재


이마에 흐르는 땀 훔쳐내는 그의 오른손

한 번도 주눅 들지 않는 그 손

엄지만 남아 항상 최고인 손

네 개 손가락

미련없이 날려버린 그날

사랑도 숨죽이고

독하다 독하다

오른손 화약 냄새만 남았다고

그의 나이 쉰아홉

아직도 정착하지 못한 사랑

잠깐씩 눌러앉는 여자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매년 농사를 지어도 줄줄 새는 주머니

실없다 똑바로 보아주는 이도 몇 없지만

찌든 농사일에도

목숨 던질 만한 사랑이 있었다고

척척 감기는 논바닥에서

오른손 길을 헤치고 웃자란 피를 뽑는다




시래깃국


아버지 마지막 엮어놓은

시래기 다발을 풀어 국을 끓였다

뿌옇게 안경알에 서리는 김을 후 후 불며

뜨거운 국물을 삼킨다

냄새만 맡아도 고개를 돌리던

평생 좋아할 리 없다고 장담하던 그 맛

아버지 냄새가 난다

구수하게 잘 익은 말 같고

걸쭉하게 묻어나는 마음 같은

내가 몰랐던 그 시절 아버지 같아

후루룩 한 그릇 밥을 말아먹고

두둑해진 배를 두드린다

거 봐라,

건너편 바삭하게 말라버린 아버지

자꾸만

참견이시다



넝쿨



어머니 가꾸시는 텃밭은 넝쿨 아닌 것이 없다


호박, 수세미, 박, 울양대

행여 허물어진 속살이 보일까

서로 덮어주면서

천둥이라도 치면 번개라도 치면

서로 몸을 비비며

한고비 넘고

쉬이 달래지지 않는 마음이라도 있으면

넝쿨넝쿨 담이라도 넘어가

맺히는 것 없이

걸리는 것도 없이

술술 풀어내는 인생


어머니 텃밭은

풀어보면 한 알 한 알 목 메이지 않는 것이 없다





정월 대보름


유리가 덮인 육교에 분홍색 공단 바지를 입은 노인이 좌판을 펼친다 ‘사주궁합봅니다’ 저 혼자 털어낼 수 없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육교는 희미한 햇살로 온기가 없다 반쯤 펼친 사주 책 위에 자갈돌을 수호신인 양 네 모서리에 놓고 신수를 꼭꼭 집어낼 돋보기도 가지런히 놓는다 막 출근시간이 지난 육교 안은 조용하다 글자가 어둡다 노인은 부적 종이가 어긋나지 않도록 몇 번이나 매만지며 먼지를 날리고 있다 오늘 쟁반 같은 달이 지면 액땜도 끝나는 거야 무딘 주름이 잡혀있던 한복 바지에서 신음소리가 난다

노인이 창문을 닦는다 먼지에 걸려 넘어오지 못하는 햇살을 훔치고 있다





개구멍


이끼 낀 담에


쩍 금이 가더니


주먹만한 구멍이 생겼다


개 한 마리가 구멍을 파


들락거린다


금계줄 같던 담


스스로 문이 되었다


느슨해진 철조망이나 허물어진 담


개구멍은 늘 지름길이다


이제 개는 구멍에서 잠을 자면서


금계가 사라진,


헐거운 시간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