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그물



서 정 화



그물코에 끼인 채 발버둥치는 물고기

비명소리 쫓아가 뛰어드는 물고기 떼

겹겹의 유령그물이 비명으로 뒤엉킨다


게덫과 자망에 걸려 붉게 우짖는 바다새

손을 쓸 새도 없이 쓰레기와 썩어가는

거대한 무덤이 되어 악취 속을 떠다닌다


날카롭게 날을 세운 독기들로 가득한

밑바닥 속속들이 파고드는 폐그물

바다의 아픈 유령이 긴 자락을 끌고 간다


* 유령그물: 어선에서 버리거나 유실된 어망



장안경로당



누가 고도리를 꼭꼭 감춰두고 있을까

조심스레 패를 뜨고 종달새 먹으려 움켜쥔 손, 우산 든 사나이에 난데없이 꿩이 날고, 에라이, 똥이나 먹자, 어머나, 자뻑을 다 하시네, 쌍피에 흘깃대는 눈들, 바닥에 깔린 휘파람새 아무도 먹지 않아 입맛 다시며 안절부절 못하다가 그만 봉황도 놓치고 어안이 벙벙, 솔광을 뚝심 있게 내려놓자 두루미가 날아가니 환장하겠네, 공산은 어디 갔는지 철새가 훨훨 날아가고, 헐, 홑껍데기만 남았구나.


오늘도 끗발 세우려다 어느덧 해는 지고….



조각보 여자


캄보디아서 시집 온 새댁인 영세 호앙

전통 치마 한 벌과 1달러 지폐 몇 장뿐

그녀의 소지품 중엔 주민증이 아직 없다


남편과 정성 들여 일구는 농장처럼

자투리 천 꽃잎 깁듯 손끝으로 덧대가며

한 올씩 그리움 꿰매 조각보를 만들었다

접고 펴다 뒤틀어져 풀려나간 생의 조각

다독이듯 매만지며 이어 덧댄 개미상침*

오방색 바둑무늬로 환한 봄빛 걸려 있다


* 세땀상침 바느질법



고물상밴드


고물상에 소나기가 쏜살같이 들이치자


빗줄기가 손톱을 세우고 통기타처럼 어둠을 튕긴다, 툭툭 드럼 치듯 흥을 돋우는 세숫대야, 건반을 두드리듯 이 빠진 접시들도 신나게 퉁탕퉁탕, 주전자와 쭈글쭈글한 양은냄비 손때 묻은 프라이팬과 솥뚜껑도 들썩들썩, 잠시 네온간판이 오색조명 비추자 버슴새*로 타 넘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철거로 버려진 것들 신명나게 연주한다


*버슴새: 절정을 만끽하고 다시 천천히 뜸을 들이는 연주법




THE DAY


눈치 보는 기념일, 길의 끝은 어디인가


입 딱 크게 벌리고 상추쌈 우적우적 씹는 삼겹살데이, 솔로들을 위한다는 블랙데이 자장면을 먹으며 커피를 마셔도 블랙, 옷을 입어도 블랙, 껀수와 이벤트 좋아하는 커플에게 절호의 로즈데이 솔로들에겐 이 날이 옐로우 데이, 지난 달 짜장면 먹었으면 이번 달엔 카레 먹으라네, 구구데이 구구구 닭울음 소리에 양념치킨 구미 당기는, 닭 먹고 알 먹고 맛닭 파닭 청계천 초대형 조형물로 요리전문 페스티벌 매년 영접하는 오 나의 치느님 데이, 빼빼로 데이에서 가래떡 데이랑 애들은 가라 넥타이 데이까지 나왔다는데 아니 그럼 스카프 데이는 안 나오나?


오, 이런! 나의 기념일은 빚진 만큼 아득하데이


그믐달 노인


벌겋게 녹 슨 낫이 까무룩 졸고 있다

마당 끝 한구석에 금성TV 버려져 있고

어깨가 무너진 축사엔 거미집이 무성하다


약으로 곯고 지쳐 우그러진 문씨 노인

지문 닳아 뭉개진 손 붕대로 동여매고

두어 평 옥수수 밭을 갈면서 끌고 온 길


듬성듬성 켜진 불빛 자리 하나 보태는 밤

세 손자 다독이며 업어 키운 굽은 등

조막손 뒤춤에 맞잡고 노을을 업고 가네


*충북 청원군 은행리 20가구에서 지금은 4가구만 남아 있는 한센인 정착촌



 고비사막에서


수많은 인파에 묻혀 놀이공원 바라본다

사구의 목덜미를 칭칭 휘감은 케이블카

어디에 발을 들여도 거친 모래 춤을 춘다


붉은 깃발 사이로 줄지어선 양산들

모래썰매 올라타고 황홀한지 손 흔든다

낙타를 길게 거느리며 끌고 가는 발자국


폭풍에 쏠린 길들 지친 어깨 울음 너머

마른 바람에 은밀히 떠도는 검은 연기

빼곡한 공장굴뚝에 온 세상이 빙빙 돈다




전자쓰레기 마을


낯익은 로고들이 모여 있는 구이위*

전 세계 전자제품 쓰다버린 기계폐품들

대량의 폐기물 싣고 덤프트럭 밀려온다


납가스와 다이옥신 소각장에 새어나와

연기 속 얽히고설킨 독성이 들끓는 마을

검은 강 썩은 진물에 악취가 진동한다


끝없이 쌓아올린 어마어마한 전자쓰레기

병이 든 채 부품 뜯는 부부 곁에서 노는 아이

모두가 폐품이 되는 오욕의 길 가고 있다


*세계 전자제품 쓰레기의 약 80%가 아시아로 수입되고 있고 이중 90%가 중국으로 흘러 들어와 전국이 전자제품 폐기물로 뒤덮여 있다.




숲 도서관


연한 잎새 젖어드는 안개길 열고 있다

고요의 두께 만큼 깊어지는 물그림자

검지에 침 묻혀가며 숲을 헤쳐 나간다


바람의 젖은 입술 문 여는 책들 사이

기다림이 길이라며 맑게 핀 이슬방울

책장을 넘길 때마다 별빛 내려 앉는다


산다는 건 제 안의 빛을 찾아 가는 것

물소리 끌어안고 길어 올린 은빛 말씀

내 안의 은사시나무 나이테로 감긴다




봄, 리폼


바늘 끝에 실을 물고 시침하는 보슬비

실표 뜨기 점선 따라 가위로 재단하듯

도처에 처진 어깨들 솔기 터서 가봉한다


겹침 많은 굴곡에 얽혀 감긴 상처들

매만지고 보듬으면 주름도 꽃이 되는

이제 막 새 자켓 입은 봄이 성큼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