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序

 

 

 

할머님의 꽃상여가 나가던 날,

흰나비 두 마리 집 안과 밖을 몇 바퀴 휘돌다 나갔다

순간, 가시는 할머님의 마지막 인사임을 알았다

 

어머님께는 애증의 어머니셨지만 내게는 어린시절

엄마의 부재를 메워주신

엄마 이상의 어머니셨던 나의 할머님.

 

꽃 같은 청춘을 기도와 묵상으로

홀로 걸어오신 할머님

아름다우셨을 그 열일곱 살 소녀 할머님께

이 시집을 올린다.

 

2014년 하지

김인구

 

 

약력

 

전북 남원 인월에서 출생, 서울에서 성장했다.

명지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1991년 시집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펴낸 시집으로는 <신림동 연가> <아름다운 비밀>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현재 한국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 시우주 시낭송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ingu8151@hanmail.net

 

해설

시의 판타지- 죽음을 넘어가려는 숭고한 욕망

 

김백겸(시인, 계간 『시와 표현』과 웹진『시인광장』주간)

 

김인구 시인의 시집 원고를 읽고 김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이 수줍음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구의 영웅서사처럼 씩씩하고 강렬한 문학이 없는 것은 아니나 동양의 시는 대체로 시인의 성정性情을 사물의 정경에 의탁해 수줍게 드러내는 서정시를 말합니다. 김인구 시인의 시는 이런 의미의 전통서정시는 아니지만 현대의 모더니즘이 가미된 서정입니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도시생활의 경험과 삶의 반성을 통해 시인의 영혼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주제를 드러냅니다. 시집 해설이란 저자의 시적의도와 장점을 발해서 독자들에게시인의 시적세계를 이해시키는 일이지요. 이 시도를 위해 저는 이 시집 중 다음 시편으로 시작합니다.

 

수줍음

 

 

이쁜 것들은 모두 땅속에 묻어야 해

나는 내가 창피해 마음보다 먼저 얼굴이 달아오르지

사랑이라 믿었던 의혹들 모두 테잎 풀어지듯 늘어지고 나면

외설처럼 욕설처럼 입안에 껄끄럽게 남는 좁쌀 같은 언어의 굴욕들

모두 얼굴로 가 붉은 꽃잎처럼 피어나지

 

슬픈 건 내가 나를 욕망한다는 것

부재된 사랑의 힘 알 수 없어

모든 것 사랑으로 착각된다는 거지

착각이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저 수많은 눈들 속에서

내가 숨을 곳은 나밖에 없다는 거지

 

내 안에 꽃피는 이 착각

정말 사랑인지도,

분노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거지

정말 슬픈 건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

세상을 향해 터져 나가는 일갈의 침묵도

내 안의 침묵인지 알 수 없다는 거지

 

나는 나, 너는 너

우리로는 함께 꿈꿀 수 없는 슬픈 방정식의 함수

밤마다 거울 속에서 확인 사살하는 총구는

나를 향하고 있다는 거지

혼재된 욕망이 열꽃처럼 핀 얼굴로

멋들어지게 버무려 견뎌내야 한다는 생의 법칙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에 구겨 던져버릴 수 있다는

내 안의 착각 신전처럼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거지

 

숨을 곳 없는 붉은 꽃잎들의 흔적

오늘도 밤을 흔들어 내 어깨를 깨워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이 삶의 정의

비록 꽃 필수 없다 해도

나는 나의 꽃

 

(시 「미스 홍당무」전문)

 

사랑에 빠진 영혼은 그 열정을 감출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열정을 감추고자 할 때 눈은 대상을 직접보지 못하고 눈길을 아래로 향하게 합니다. 발화하지 못한 정념은 얼굴과 목에 홍조로 나타납니다. 많은 문학작품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이 침묵과 그윽한 눈길로 말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침묵하는 연인 사이에는 긴장이 있지요. 사랑에 빠진 정신―시도 이와 비슷한 위기와 과정을 거칩니다. 시적 대상에 매혹당한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시를 씁니다. 현실가는 욕망의 대상을 싸워서 쟁취합니다. 권력과 돈과 육체적인 힘으로 얻습니다. 시인은 현실의 약자이기에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합니다. 연애에 비유하면 구혼을 못하는 것이죠. 그러나 욕망은 감출 수 있는 성질이 아니어서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수줍게 표현하는데 저는 문학의 아름다움과 매혹이 여기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졸저 『시를 읽는 천개의 스펙트럼』중 「침묵하는 연인의 홍조와 열망」에서 인용)

라깡식 이해로는 수줍음의 욕망은 환상 속에서 본 대상과 실제로 얻은 대상과의 차이에서 생겨납니다. 환상속의 대상은 언제나 크고 영원한 타자이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얻는 것은 그 대상의 파편과 부분 그리고 일회적인 사물입니다. 영원한 연인이라는 이상에 비해 실재의 연인은 언제나 그 사본이지요. 사랑의 욕망은 그래서 현실의 섹스로도 결혼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잉여환상으로 남습니다.

시 「미스 홍당무」는 김인구 시인의 사랑에 대한 나르시스적 수줍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은 시 자체가 충분히 설명하고 있기에 필자는 이 시의 기표(표현)를 가지고 시인의 욕망과 대상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이 시에서는 “외설처럼 욕설처럼 입안에 껄끄럽게 남는 좁쌀 같은 언어의 굴욕들 /모두 얼굴로 가 붉은 꽃잎처럼 피어나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시인은 이 대목에서 욕망의 수줍음이 아닌 수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욕망을 통해 사랑의 대상을 얻을 수 없기에 시인은 질투를 하고 그런 자신의 수치가 언어의 굴욕으로 남고 얼굴에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고 말합니다. 시인에게 수치심은 노출하고 싶은 욕망에 대한 방어기제입니다. 동시에 수치심은 사회적질서의 초자아에 의해 거절당할까 두려운 예상과 불안입니다.

수줍음과 수치심은 다른 말이지만 모두 사랑하는 대상에게 직접적인 보상을 얻지 못한다는 자의식의 결과인 점은 같습니다. 소망의 거절은 마음속에 콤플렉스로 남고 심한 경우에는 정신적 외상trauma이 되지요. 문학이 혹은 시가 시작되는 점은 이 지점입니다. 시는 자신의 욕망을 전이해서 표현하는 대리물, 즉 욕망의 연애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욕망하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연인은 사실은 시인 자신의 이미지입니다. 시인은 상상계의 꿈을 벗어나지 못하는 환상에 있는데 언제나 자신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존재이지요.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영원하지도 순수하지도 않습니다. 시인의 목숨과 존재자체가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시인의 욕망은 언제나 결핍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망을 긍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비록 욕망의 실체가 무의 자기 현시라 해도 인간은 무엇인가 실체가 있다고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욕망이 없으면 세상이 곧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김인구 시인이 이 시의 마지막에서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이 삶의 정의/비록 꽃 필수 없다 해 /나는 나의 꽃”이라고 절규한 이유입니다. 이 얘기를 좀 더 확장하기 위해 김인구 시인의 작품 한편을 더 살펴보기로 하지요

 

 

희생의 마조히즘

 

 

사실, 난 헤어진 전 애인의 애장품이었어요

느낌표가 많았던 애인은 내속의 나를 요구하며

주머니마다 지퍼를 달고 접혀진 메모지마다

함구하는 자화상을 그려달라 칭얼거렸죠

 

쑥청색 네모 반듯한 고정관념은 날마다 공격 받기 일쑤였고

내게서 튀어 나오는 것들은 모두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 것들

가끔씩 나는 어두컴컴한 구석 의자에 허리가 꺾일 만큼의 난타를 당하며

고흐처럼 살다간 친구의 자서를 떠올리며 울기도 했었죠

 

애인이 아껴 준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날마다

희망을 풍선처럼 부풀리며 거리 곳곳을 누볐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지구 밖을 향해 가도 나쁠 건 없지 않겠냐며

봄여름 가을겨울 사계절을 애인의 어깨에서 돋아나는 새싹과

지는 나뭇잎의 고해성사를 들었어요

 

사랑이 어떻게 왔다 어떻게 가는지를 보았어요

이제 난 다시 또 다른 누군가의 어깨로 가야해요

빈 기억의 창고라도 지켜야 하는 전 애인의 아주 단순한 습관 때문에

내가 걸어가야 하는 이 길

 

사실, 누군가의 모든 것을

반듯하게 담아 간직한다는 것

그게 제 운명인 걸요

 

(시 「낡은 가방의 회상」전문)

 

이 시에서 김인구 시인은 ‘낡은 가방’에 자신을 전이해서 연인이라는 타자와 기억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애정을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 기억입니다. “나는 어두컴컴한 구석 의자에 허리가 꺾일 만큼의 난타를 당하며/ 고흐처럼 살다간 친구의 자서를 떠올리며 울기도 했었죠”라고 회상하는 기억. 그 기억은 ‘낡은 가방’의 운명처럼 화자가 품고 살아야 하는 기억입니다.

사랑은 에로스를 기반으로 하는데 그 형태의 하나가 사도매조히즘sadomasochism입니다.

흔히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성적 도착을 말하나 이를 문화일반으로 확장하면 삶의 다양한 가치체계에 스며있습니다. 인간의 많은 사고와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가피학적 만족과 관련되어있습니다. 사디즘은 놀려주기, 풍자, 익살, 비방의 형태로 드러나고 마조히즘은 무의식적 죄책감에 의해 벌을 받거나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도덕적 피학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인간은 국가라는 권력, 신이라는 숭고한 대타자의 힘을 숭배하고 그 지배에 복종함으로써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마조히즘의 존재입니다. 종교의 성자들이 금욕과 고행으로서 자신의 영혼의 죄를 속죄하려는 시도도 마조히즘의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영혼의 정화katarsis라고 말하지요.

이 시는 김인구 시인의 사랑에 대한 마조히즘적 희생의 자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지구 밖을 향해 가도 나쁠 건 없지 않겠냐며/ 봄여름 가을겨울 사계절을 애인의 어깨에서 돋아나는 새싹과/ 지는 나뭇잎의 고해성사를 들었어요”라는 구절을 생각해봅니다. 타자(애인)에 대한 희생을 말하고 있으 ‘애인의 어깨에서 돋아난 새싹과 지는 나뭇잎의 고해성사’란 애인에 투사한 화자 자신의 고해성사입니다. 고해성사를 들으면서 고해성사를 하는 죄책감의 기쁨이지요. 낡은 가방으로 은유한 화자가 왜 이런 희생의 자세에서 사랑의 기쁨을 느낄까요. 저는 화자 종교적 성향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연 “사실, 누군가의 모든 것을 / 반듯하게 담아 간직 한다는 것/ 그게 제 운명인 걸요”라는 결귀가 진솔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누군가의 모든 것’을 낡은 가방의 애인이 아니라 신 혹은 진리 같은 대타자의 이름으로 확장해서 이 시를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거티브negative

 

시인들은 무때문에 시를 쓸까요. 자기 자신과의 관계설정이나 세계와의 관계설정에서 불화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주체는 시를 쓸 이유가 없지요. 세계와의 화해가 이루어졌는데 시라는 콤플렉스로 자신을 치유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특히 사회관계 속에서 주체의 위치와 의식이 정해지지요. 시인도 인간인 만큼 사회 속에서 인정받는 이름과 위치를 원합니다. 김인구 시인이 이런 사회적인 갈등을 드러낸 시를 살펴보지요.

 

모국어에 빠져 외국어에 몰입 할 수 없을 때

나의 그녀 네거티브를 만났지

S여상을 수석졸업 후 S은행에 입사해 야간대학 영문과를

S대처럼 다니던 그녀

단기간의 어학연수라도 다녀오겠노라고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어 나르며 말했지

난 한창 모국어와 열애 중 자고나면 시가 될까

연신 숟가락으로 조바심을 퍼 날랐지

그녀의 꿈은 순식간에 현실이 되고 경쾌한 발걸음의 사표를

백지수표처럼 날린 뒤 비행기 트랩사이로 사라져 간 나의 그녀

나는 별 볼 일 없는 시절을 지나 어리숙한 모국어의 비빔밥을

비비며 청춘과 시간을 비볐지

영화 속 여배우처럼 다시 비행기 트랩 사이로 나타난 나의 그녀

굴러가는 알파벳을 주워 혓속에 가득 가두고 환히 웃던 그녀는

하버드대를 수석 졸업한 듯 입이 째지게 웃으며 나를 안았지

누런 빠다 냄새와 고형의 치즈 냄새가 그녀 어깨를 빛내며 건너왔지

그녀는 미국유학을 다녀온 M과 결혼해 나의 조국을 떠났고

나는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그녀와의 거리를 레일처럼 남기며

이 땅에 남았지

 

아메리카 대륙 어디선가 콩나물 값을 물으며 살아가고 있을

나의 그녀 네거티브, 네이티브

 

(시 「negative//native」전문)

 

이 시는 아마도 김인구 시인의 라이벌이었을 친구의 신데렐라 성공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네거티브negative는 사진필름의 음화陰畵이지만 이 시에서는 화자가 되고 싶었던 다른 자아를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사물의 이면을 드러내는데 쓰는 기법이자만 화자는 자신의 욕망이면을 가리키는 말로 썼지요. 즉 화려한 친구의 일생이 부러운 자아. 그림자shadow의 욕망입니다. 공식 사회관계에서는 페르소나personna가 전면에 나서지만 그림자는 주체가 감추고 싶은 자아이기에 콤플렉스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한편으로 토종한국인native이 아닌 외국인으로 변한 친구의 모습, 즉 화자 자신의 투사대상을 비판하는 시각도 드러냅니다. 네거티브negative는 원래 자아(참자아)의 반대라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시의 기표를 통해 다중 기의를 드러내는 수법을 우리는 중의법衆意法이라고 부르죠. 이 시의 기법상 매력입니다. 주체가 타자(대상)를 욕망하면서도 부정하고 부정하면서도 욕망하는 마음의 갈등, 이게 인생이 사회관계에서 겪는 투쟁입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주체와 타자로 구분되는 인간의 의식들이 서로 의존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권력을 가진 주인은 죽음의 두려움을 가진 노예를 지배하고 노예의 노동에 의한 산출물을 향유합니다. 노예의 복종과 인정에 의해 주인은 주체의식을 가집니다. 노예는 욕망의 단념과 주인에 대한 봉사와 노동의 강제 속에 실제세계의 사물을 산출하기에 지속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자각합니다.

이 시의 구조를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틀을 빌려 내용면에서 좀 더 분석해 보지요. 한국의 전통문화와 가치관이 미국문화의 장에 편입되면서 한국문화의 자양을 받은 화자(주체)는 미국문화에 의해 객체화됩니다. 우월한 주체의 지위를 획득한 문화는 타자를 자신의 노예로 부리고자 합니다. 서구문화의 동양지배, 국제금융자본의 시장지배, 기독교문화의 종교지배, 과학기술이데올로기의 진리이념지배, 모두 주인의 도덕으로 세계를 지배하고자 합니다.

이 시의 화자(주체)는 우월한 문화의 객체가 되면서 갈등을 겪습니다. 객체는 주체가 되어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정신현상학의 틀을 이 시에 대입하면 세계와의 관계에서 자기산출을 하는 노예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화자가 주인의 지위를 향유한 자본과 미국문화에 동화된 친구(주인의 도덕)을 선망하면서도 그 삶이 주체가 아니라는 부정적인 인식 즉 negative를 암시하고 있는 데 이 시의 묘미가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노예 즉 native의 삶이 더 진실함에 주목한 철학자였지요. 우리가 속한 사회란 이런 주체와 타자, 주인과 노예의 도덕이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자 하는 투쟁의 장이지요. 이 시는 자본사회의 이런 갈등을 시인의 삶에 의해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금욕의 스탠스stance

 

그러나 김인구 시인이 이러한 현실과 자아의 갈등에만 시선이 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시는 종교적 깨달음과 시인의 자아확장을 주제로 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른 셋, 예수가 되고 싶었다

깨진 날계란의 세례를 받으며 유유히 무덤 속을

걸어 나오는 부활의 예수이고 싶었다

 

예수는 성공했고 나는 실패 했다

 

마흔 셋, 또 다른 예수를 꿈꿨다

거미줄에 걸려 나오듯 고달픈 일상의 희비가

끊이지 않고 나를 찾아와 주문을 걸었다

그러나 나는 오병이어 기적도 일으키지 못했고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우지 못했으므로 밤마다

때 절은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어야 했다

 

예수를 제대로 보기는 한걸까

물음표에 십자가를 매달고 생의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가슴을 쥐어뜯으며 물어도 끝내

십자가는 대답하지 않았다

붉은 네온사인이 사방에 주파수를 맞추어도 끝내

명쾌한 답을 주지 않았다

 

다시 예수를 꿈꾼다

한 끼의 저녁식사를 반납하며 다시 올

나 닮은 예수의 재림을 위해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 주기도문 한 줄 외운다

 

나의 나를 지키게 하소서,

나의 나로 살게 하소서

 

(시 「불타는 집」전문)

 

김인구 시인은 자신의 자아를 「불타는 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화택火宅이니 불가에서 석가가 이 세상의 고해를 비유한 유명한 말이지요. 그런데도 본문은 기독교의 예수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는 30세에 선지자로서의 생애를 시작해서 33세에 십자가 못 박혀 죽음으로서 기독교 역사의 기원을 이루었습니다. 짧은 예수의 생애가 서구 역사와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생애가 어떠했기에 수많은 기독교 순교자와 성인을 만들어내고 오늘날의 신자를 만들어 냈을까요. 또 김인구 시인이 예수 같은 성인의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해서 이 시를 쓰게 하였을까요.

예수는 삼년의 설교동안 일관해서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왕국이 지상의 나라가 아니니 그 나라는 지상의 현실을 초월한 영적세계의 왕국입니다. 이 시는 “서른 셋, 예수가 되고 싶었다/ 깨진 날계란의 세례를 받으며 유유히 무덤 속을/ 걸어 나오는 부활의 예수이고 싶었다”라고 첫 연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김인구 시인은 예수의 삶을 본 받아 하늘나라의 선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냅니다.

예수를 비롯해서 제자들과 기독교의 성인들,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는 하늘나라의 자녀가 되기 위해 순결과 금욕을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대타자(신)에게 복종하는 마조히즘의 기쁨을 보여주지요. 속죄와 영혼의 정화라는 테마는 고해사제와 참회자의 고백으로 나타나고 종교적 예언가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줍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사울 등 구약의 선지자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죄를 참회하는 선지자들이었지요, 예수도 이런 전통에 서 있고 회개하고 하늘나라의 자녀가 되라는 구원사상을 강조했습니다.

김인구 시인이 예수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은 어떤 이유일까요. 자신의 가치를 고양하려는 소망과 신에 가까운 지도자라는 역할에 대한 선망입니다. 이러한 정신욕은 현실과 거리가 있는 이상주의나 형이상학적인 회의라는 승화로 나타납니다. 일반인들은 청춘기의 이상이 중년의 현실세계에 이르러 거의 사라집니다. 그러나 중년에 이르러서도 정신의 흥미가 형이상학이나 종교적 사변에 있다면 그런 류는 시인과 철학자 종교가가 되지요. 현실적으로는 미숙한 사람이 문화적으로는 현실욕망의 억압이나 승화에 의해 문화적 인간이 됩니다. 김인구 시인의 시적경향은 이러한 금욕주의적 자기고양이라는 스탠스stance에 서 있습니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 “나의 나를 지키게 하소서/ 나의 나로 살게 하소서”는 이러한 시인의 원망願望을 보여줍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뿌리의 힘

 

이 시집의 여러 시편들은 시인이 자신의 내면과 혹은 그 투사로서의 세계와의 화해와 불화의 기록을 보여줍니다. 김인구 시인의 삶은 인생의 희로애락과 소원과 좌절, 그 여러 굴곡을 거쳐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통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앞서 소개한 시편들의 욕망과 환상을 모두 지나 이제 김인구 시인이 내면에 대한 시선이 한층 깊어진 시편이 있습니다.

 

 

어느새 숲이 넓어졌어요

살금살금 숲속으로 기어들어 온 시월이

건초더미처럼 야위고 있어요

낮은 나무 위로, 높은 나무 아래로 웅크리고 앉아

산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 시월

타닥타닥 불타오르는 숲 속으로 천천히

가을이 태어나고 있어요

아시나요?

숲 속 나무들은 하지 이후로는 자기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대요

그냥 그대로 마르고 말라 나무를 떠나간대요

숲속의 법칙엔 아무도 반기를 들지 못하는 법

숲속에선 꽃보다 아름다운 뿌리의 힘으로

좌절조차 금지되는 것을 아시나요?

숲이 깊어졌어요

슬그머니 숲 속으로 기어들어 온 어둠 안에

동그랗게 눈 뜬 시월

가을이, 숲속에서 자신의 또 다른 생애에

화들짝 놀라고 있어요

(시 「숲속의 진언」전문)

 

저는 이 시를 보고 김인구 시인의 시세계에 대한 안심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인생의 욕망과 환상이란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고 반복할수록 갈증이 나는 시지프스의 언덕이어서 어느 때인가는 길에서 주저앉는 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김인구 시인은 이제 “살금살금 숲 속으로 기어들어 온 시월이/ 건초더미처럼 야위고”있는 인생의 길목에 있습니다. 시인의 마음은 고요하고 깊어져서 시월의 숲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뿌리의 힘”을 봅니다. 가을은 봄과 여름동안 성장한 생명이 열매를 맺고 죽음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겨울은 대지의 계절이면서 죽음의 계절이지요. 생명이 모두 죽은 것 같지만 흙에는 뿌리의 시간이 잠자고 있어서 봄이 오면 다시 새 생명의 이파리를 피워 올립니다. 이 인생의 순환이 자연의 법칙이자 도입니다.

김인구 시인이 숲의 일생에 자신을 투사해서 이 시가 이루어졌기에 우리는 “가을이, 숲속에서 자신의 또 다른 생애에/ 화들짝 놀라고 있어요”라는 언술이 곧 김인구 시인 자신에 대한 언술임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또 다른 생’은 시인이 세계 속에서 발견해낸 실재實在(죽음)의 다른 모습이지요. 이 눈을 발견한 자만이 인생의 시인과 현자가 됩니다. 김인구 시인은 시라는 판타지를 선택한 사람입니다. 시의 판타지는 언제나 죽음을 넘어가려는 숭고한 욕망을 가집니다. 김인구 시인의 숭고한 욕망이 죽음과 삶을 모두 포괄하는 큰 시를 독자들에게 선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도서: 권택영 『잉여쾌락의 시대』, 문예출판사 2003년 9월

이정우 『주체란 무엇인가』, 그린비 2009년 11월

에른스트 크레치머 『천재의 심리학』,늘 푸른나무 1990,6월

체자레 롬브로조 『천재론』,을유문화사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