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120년 전, 내가 살던 고향에서 밥을 달라고 싸웠다가 100여 명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상주동학농민혁명이다.

각종 세금에다 수탈 등 양반들과 지주들의 횡포에 맞서 농민들은 밥을 위해 읍성을 점령했다. 그러니까 당시 농민들의 읍성 점령은 먹고 살기 위한, 생존권의 문제였다. 농사를 지으면 80%이상을 양반 지주들에게 빼앗기고 그나마 각종 이름 없는 세금까지 부담했어야 했으니 굶어죽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굶어죽을 지경인 농민들에게 밥을 주기는커녕 일본군을 시켜 읍성 점령한 농민들을 조준사격해서 죽였다. 당시 읍성 안에서 1000여 명이 죽창으로 일본군과 맞서다 100여 명이 죽은 것이다.

나는 옛 읍성 자리를 어슬렁거릴 때마다 진저리를 쳤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밥이거늘, 밥을 달라는 백성들에게 일본군을 시켜 총질을 해댔던 양반과 지주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나는 진저리를 칠 때마다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 했다.

 

농민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읍성을 점령했고 해방의 극치를 맛보았으리라.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 없는 모든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누렸으리라.

하지만 읍성 점령 1주일 동안 내내 불안했으리라.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양반 지주들과 일본군들.

옛 읍성 자리를 어슬렁거리면서 그 1주일 동안의 읍성 점령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또한,

몇 년 전 어느 재벌 회사는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 수천 명을 해고했다.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며 파업을 했고 20여 명의 노동자들이 죽음을 당했다. 생존권 투쟁인 노조의 싸움은 비참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때 나에게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지금도 백성의 밥을 빼앗아가는 야만의 시대구나. 노동자는 누구인가. 120여 년 전 농민혁명을 일으킨 농민들의 후손이 아니던가. 아직도 농민혁명은 현재진행형이구나, 싶었다.

 

밥은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이다. 밥이 없으면 체면이고 희망이고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1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밥을 위해 싸우는 시대다. 국민의 10여% 부자가 나라의 밥 대부분을 가져가고 대다수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들이 나머지 밥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부자들의 밥을 국민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는다면 싸울 일도 죽을 일도 없는 천국이요 극락 세계가 될 것일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돈이 주인인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세상에 내보낸다. 함께 다 잘 사는 세상을 위해서.

 

2014년 9월 주막듬에서

고 창 근


줄거리


77일간의 옥쇄파업과 20여 명의 죽음으로 얼룩진 ss자동차의 노조원과 1894년 S지방에서 일주일 동안 일어난 동학농민군의 읍성 점령의 두 이야기를 축으로 전개.

 

ss자동차 노조원인 재우는 정리해고로 파업에 참여하였으나 아직 복직되지 못 하고 대리기사 등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다. 그러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전갈을 받고 고향에 내려왔는데 자신이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군의 유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다 당시 읍성점령을 재현하는 연극을 관람한다.

 

악독 지주와 양반들의 횡포에 s지방의 동학농민군들은 참지 못 하고 읍성을 쳐들어간다. 목사는 미리 소식을 듣고 도망쳤고 싸움 한번 하지 않고 읍성을 점령한다. 농민군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한다. 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차리고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준다. 악독한 지주들과 양반들을 잡아들여 징치하고 재물을 회수한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해방의 기쁨도 잠시 총으로 무장한 일본군들이 쳐들어오고 죽창과 농기구로 무장한 농민군들은 싸움 한번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성안에서 100여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보은 방향으로 퇴각한다.

 

재우는 동학농민군의 일주일 동안의 읍성점령 과정과 마지막 날 일본군들에게 살육당하는 농민군들을 보면서 77일간 파업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전율한다. 파업 상황과 농민군의 싸움이 마치 똑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연극 마지막 날에 농민군들이 일본군들에게 살육당하는 것을 보면서 재우는 자신도 모르게 무대에 뛰어올라 일본군들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하소연 한다.

재우는 연극이 끝난 후 농민군의 후손들이 그 후 독립운동 했고 현재 노동자들이 그 후손이고 현재가 그때와 다를 바가 없다며 평택으로 가면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표4


이 소설은 시종 핏빛으로 가득하다. 스물네 명의 목숨을 앗아간 ss자동차 노동자탄압 문제와 120년 전 상주읍성을 점령하였으나 엿새만에 일본군에 괴멸된 동학농민군의 이야기를 두 축으로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고 있는 이 소설은, 억압과 착취에 항거하는 민중들의 분노와 그 처연한 슬픔을 차마 마주보기 힘들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소설 속 “새 세상을 만든다는데 밥해 주러 왔다”는 한 어머니의 절규는 또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까지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이처럼 피 냄새로 가득한 이 불편한 소설은 그러나 말미에 뜻밖의 감동적인 판타지를 보여 줌으로써 한 창작물이 ‘희망’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뭉클하게 확인시킨다. 더불어 투쟁 언저리의 다양한 고달픔을 집요하리만치 샅샅이 들춰낸 작가의 끈기가 대단하다. - 임영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