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차 례

 

작가의 말

서(序)

첫째 날- 읍성 점령/정리해고/새 세상/증언

둘째 날- 보복/회유/징치/가장

셋째 날- 살반계/소망/소녀/또 다른 현실

넷째 날- 민보군/친구/예천 농민군/농사/어머니/주먹패

다섯째 날- 소문/변화/밀약/산 자

여섯째 날- 이름/순임/혼례/동료애

일곱째 날- 살육

결(結)

 

 

 

 

서(序)

 

고향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멀쩡했다. 축사에서 소에게 건초를 주다가 돌아보곤 무심하게, 왔냐? 했다. 순간 재우는 당황했지만 일단 안심은 되었다. 고향에 오면서 내내 상상했던 것은 아버지가 마당가에 앉아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거나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아 애를 태우는 광경이었다. 재우의 표정을 본 어머니가 다가왔다.

“니 아버지 땜에 죽겄다야, 죽겄어.”

어머니는 아버지와 재우를 번갈아 보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괜찮으신데요?”

“괜찮기는 머가. 시방은 저래도 귀신이 씌여도 단단히 씌였구만.”

“귀신이요?”

재우는 무슨 얘기인가 하고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할부지가 씌였다잖아. 할부지 귀신이.”

“할아버지요?”

“그려. 할부지 귀신. 그니께 니게는 증조부 되시는.”

어머니는 어느새 무당에게 다녀온 모양이었다.

“약은 드세요?”

치매약이었다.

“먹긴 먹는데 빼먹는 게 많아. 나도 정신머리가 예전 같지가 않아여.”

여든이 넘은 노인들인지라 예상했던 터였다. 축사에는 한우 다섯 마리가 아버지가 준 건초를 먹고 있었다. 지난 구정 때는 스무 마리가 넘게 있었는데, 소값이 폭락했다고 하더니. 재우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따스한 햇살이 몸으로 파고들었다. 햇볕을 받으면 따뜻하고 그늘에 있으면 좀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는 가을이었다.

아버지는 축사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꺼내물고 소가 건초를 먹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얀 담배연기가 아버지의 흰 머리카락 위로 피워 올랐다 흩어졌다. 치매엔 담배가 독이라던데. 재우는 다가가 담배를 빼앗아 멀리 던지고 싶은 충동을 지그시 눌렀다. 울화가 치밀어오를 땐 심호흡을 하세요. 길게 숨을 들이쉬고 길게 내쉬세요. 정신은 단전에 두고 내쉬는 숨만 의식하고요. 파업참가자 및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료차 온 정신과 의사는 친절하고도 헌신적이었다. 재우는 눈을 감고 호흡 조절법으로 숨쉬기를 했다. 하지만 정신은 집중되지 않고 흐트러졌다.

재작년 겨울 아버지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서울로 모셔가 Y대 부속병원에서 치매 검사를 받고 결과를 듣던 날이었다.

“치료할 약은 없습니다.”

혹 치료할 수 있느냐는 재우의 말에 의사는 MRI 사진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현대의학으로선 치료할 약은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약물로 진행 상태를 늦추는 방법밖엔 없지요. 물론 본인의 의지에 따라 진행속도도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지요. 술과 담배는 금물입니다.”

아버지는 가끔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지 못 했다. 아버지가 현재라고 믿고 있는 시간은 몇 년 전이기도 했고 수십 년 전이기도 했다. 치매 진단이 났을 때부터 거의 20개월이 지났으니 아버지는 이제 점점 현재는 없어지고 과거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몰랐다.

“에미는 잘 있고? 진숙이와 진수도 잘 있제?”

어머니도 마루에 와서 걸터앉았다.

“어제는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재우는 어머니의 말을 못 들은 척 말머리를 돌렸다. 어머니는 머리에서 수건을 벗어 옷에 묻은 먼지를 털다 멈추었다.

“거 머시야. 동학인가 뭔가 위령제 지낸다꼬 갔다가 그렇게 안 되었냐. 집에 붙어 있으면 좀 좋아.”

어제는 아버지를 찾아다니느라 고생께나 한 것 같았다.

“위령제요?”

“그려, 위령제.”

“그럼 어제 집을 나가 길을 잃었다는 게 그것 때문이었어요?”

“말도 마. 니게 전화하고 밤새 찾아다녔다니께.”

어제 저녁 무렵 정리해고특별위원회에서 회의를 하고 대리운전 사무실로 가는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아침에 나가 아직 안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 좀 기다려보세요. 아직 초저녁인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겉으론 태연하게 말했다.

- 아녀, 아녀. 지금껏 밖에 나가 저물도록 있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카이.

간간이, 어째 네 아버지가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더 한다야, 어머니는 전화기 너머로 하소연을 했지만 집을 나가 못 들어올 정도는 아니었다. 재우는 일단 경찰서에 신고하라고 했다. 밤 12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갈 무렵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 집에 왔다야. 아이고, 시내에서 막차를 놓쳐뿌려서 집으로 걸어오던 중이었다야. 그 먼 길을

시내에서 집까지 40km가 넘었다. 다행히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순찰을 돌다 발견했다고 했다. 재우는 경찰이라는 말에 순간, 움찔했다.

- 낼 찾아뵐게요.

자신도 모르게 불쑥 말을 뱉었다.

- 회사는 우짜고?

- 쉬는 날이라요.

재우는 하마터면 이젠 안 나가잖아요, 할 뻔 했다. 집에 다녀오고 싶기도 했다. 정리해고자 복직 투쟁도 밤에 뛰는 대리운전도 지쳤다. 그냥 어디 가서 조용히 쉬고 싶었다. 활동해야 합니다. 가만히 집에 있으면 증세가 더 심해집니다. 정신과 의사는 집에 조용히 있는 시간을 경계하라고 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어떤 일에 집중하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집중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꼭 가야 되겠어요?

오늘 아침 아내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재우에게 말했다.

- 괜찮아.

- 점심 때 약 잊지 말고 먹고요.

- 걱정 마.

아내의 걱정하는 커다란 눈이 떠올랐다. 아내의 걱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재우 또한 스스로 느끼는 비슷한 불안이었다. 투쟁을 벌인 지 1000일을 하루 앞두고 21번째의 죽음이 있었다. 모두들 불안했다. 이제 누가 22번째가 될 것인가. 내가 될 수도 있고 내 아내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아침에 인사하던 그 동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모두들 21번째 죽음을 대하는 모습엔 분노보다도 불안의 기운이 맴돌았다. 재우는 고개를 흔들며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병원서는 뭐라고 하는데요?”

진단은 서울에서 받았지만 치료는 시내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받고 있었다.

“머시야. 시방 우리가 사는 것하고 옛날 거하고 구분을 못 한다야. 그니까 저렇게 소를 키우고 있어도 니 아버진 옛날 생활하는 거라 카더라.”

점심 먹고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 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마루로 다가 왔다. 재우는 아버지가 앉도록 옆으로 비켜 앉았다.

“소가 많이 줄었어요.”

아버지가 마루에 앉는 걸 보며 재우가 말했다.

“값이 많이 내렸어. 어디 사료값이라도 벌겠냐.”

아버지는 멀쩡했다. 재우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저렇게 온전할 땐 생사람 같다니까.”

어머니는 혀를 쯧쯧, 찼다.

“먼 소리, 시방.”

아버지는 역정을 냈다.

“저 봐라. 내 말이라면 성질부텀 낸다니까. 노망도 곱게 들어야지.”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가 노려보았다.

“소 키우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아버지는 여든 셋이었다.

“아직 괜찮다.”

아버지는 바지를 털더니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섰다. 내 정신 좀 봐. 어머니는 점심 준비해야겠다며 입식부엌으로 건너갔다.

 

점심을 먹고 아버지는 담배를 물고 다시 축사로 갔고 재우는 마루에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 하루에 30분 이상 햇볕을 쬐세요. 우울증 예방에 아주 좋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말이 귀에서 앵앵거렸다. 재우는 두 손을 깍지 끼고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었다. 옆으로 몇 번 흔들다 두 팔을 내리고 머리를 좌우로 몇 번 큰 원을 그리며 돌렸다. 몇 차례 그렇게 하니 뻐근하던 몸이 좀 개운한 것 같았다. 몇 번 더 몸을 흔들다 마루 기둥 옆에 있는 노란색 팜플렛을 발견했다. 옆으로 누워 팔을 쭉 뻗었다. 팜플렛이 손에 겨우 닿았다. 재우는 누운 채 팜플렛을 눈앞으로 가져왔다.

 

S동학농민혁명연극제

 

견고딕체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예요?”

재우는 속으로 읽으며 어머니에게 건성으로 물었다. 어머니는 물걸레로 마루를 닦다 팜플렛을 보고는 쯧쯧, 혀를 찼다.

“동학에 미쳤다카이.”

재우는 무슨 뜬구름 잡는 얘기라는 듯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제도 무슨 위령제한다케서 안 갔더나. 요새 니 아버지 동학에 미쳤다야.”

재우는 어머니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팜플렛으로 눈길을 돌렸다. 길쭉하고 커다란 돌이 서 있는 사진이었는데 세로로 S동학농민혁명기념탑이라고 새겨진 글씨가 눈에 띄였다.

“니 아버지가 동학에 미쳤는 게 할부지가 씌여서 그렇데여.”

어머니는 걸레질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재우는 건성으로 들으며 대충 밑으로 읽어갔다.

 

위령제: 0000 년 10월 19일(일요일) 오후 6시 30분

연극일시: 0000 년 10월 20일 (월요일) - 10월 26일 (일요일)

장소: 왕산 공원 內

주최: (사)S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주관: S 연극단체

후원: S시

경상북도

 

19일이면 어제였다. 이런 게 왜 집에 있나 하며 한 장 넘겼다.

"그닝께 니한테는 증조부가 되지. 그래서 니 아버지가 저렇게 됐다카더라."

"점쳤어요?"

재우는 팜플렛에 눈길을 준 채 물었다.

 

초대의 말씀

 

지금부터 120년 전인 1894년 반봉건 반외세 깃발을 높이 치켜든 S동학농민군이 양력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S 읍성을 점령한 것을 기념하여 …… 같은 날 읍성 점령을 연극으로 재현하니 ……

……

 

(사) S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

 

무심하게 다시 한 장을 넘겼다. 그 다음엔 행사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첫날에는 개막식 및 위령제를 지내고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읍성점령을 똑같이 재현하는 연극을 한다는 것이었다. 연극에는 시민 누구나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읽고나서 팜플렛을 덮으려다 재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팜플렛을 든 채 자세를 바르게 했다.

 

연극에 도움 주신 분

 

증언 : 강형석(동학농민군 유족)

자료 : 곽성철(H대학교 교수) <Y대학교 동방학지 S편 제51집>

<Y대학교 동방학지 S편 제52집>

이성환(S여자중학교 교사) <19세기 후반 S지방의 농민항쟁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어?"

재우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강형석은 아버지 이름이었다.

"아버지 이름이 왜 여기 있어요? 아버지가 무슨 증언을 했어요?"

"야가 지금까지 무슨 얘기 들었다냐. 긍께 니 아버지가 조부 귀신이 씌여서 그렇다닝께.”

“귀신이 씌이다니요? 좀 알아듣게 자세히 말해보세요.”

재우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옛날부터 사람들이 찾아오고 하길레 그때부텀 알아봤다니께.”

“예전에 찾아왔었어요? 누가요?”

“나도 몰라. 무슨 대학 교수라카던가. 동학 연군가 뭔가 한다고 니 아버질 그렇게 꼬시더니만.”

재우는 팜플렛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곤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증언이라. 유족이라.

"그럼 우리 조상 중에 동학하신 분이 있단 말이에요?"

“너한테 증조부 되시는 분이 있지 않냐.”

“근데 그거하고 이번 연극하는 거 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니 아버지가 그래도 그때 일을 상세히 안다카더라. 조부가 그렇게 활동했다고 자기 아버지한테 들었다나 머라나. 아이고, 얄궂어라.”

어머니는 잠시 걸레질을 멈추고 말했다.

“그러니까 동학하는 사람들이 읍성인가 뭐를 점령한 사건을 아버지가 제일 잘 안다고요?”

“그렇다니까. 네 아버지가 말한 게 책으로도 나왔는걸. 일주일 동안 이쪽 사람들이 어떻게 싸웠는가. 아, 몰라. 지랄도 작작 좀 하지. 요샌 그거 때문에 니 아버지 살판났다.”

어머니는 영 불만이었다.

"살판나다니요? 왜요?"

"연극인가 뭔가 지랄한다고 연습하는데 매일 갔었다, 매일."

"매일이요?"

"그럼. 그라고 니 아버진 지금이 동학난리난 시댄 줄 안다야."

"설마요."

"그렇다니까. 허허, 참. 웃음이 다 나오네."

어머니는 헛웃음을 지었다. 재우는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럼 어제 길을 잃은 것도 거기 행사에 갔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재우는 팜플렛에 어제 날짜로 개막식과 위령제를 지낸다는 구절을 다시 보았다.

“왜 아냐. 아마 오늘도 갈 걸.”

재우는 다시 몸을 반쯤 드러누워 팜플렛을 바라보았다.

 

S동학농민혁명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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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9월 22일(음력) S농민군 읍내관아 점령

28일 낙동의 일본군 S 읍성 기습 읍성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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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우는 팜플렛을 덮어 마루 한쪽으로 밀쳐놓았다. 가슴이 답답해 왔다. 패배. 결국은 농민군의 읍성은 무너지지 않았던가. 우리가 그토록 옥상에서 저항해도 맥없이 진압되었듯이. 가슴이 벌렁거리고 쿵닥쿵닥 뛰었다. 점심 먹고 약을 먹었는데 왜 이럴까 싶다. 파업이 끝나고 수시로 나타나는 증세였다. 거대한 괴물과 싸우고 있는 듯한 막막한 느낌이었다. 동료들이 한 명 한 명 자살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여 지병으로 죽어갈 때마다 엄습해오는 불안, 공포. 오늘 아침에 집을 떠나 고향으로 오는데 갑자기 드는 생각.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게 집을 떠나는 마지막 길이 아닐까.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 할 것 같은 방정맞은 생각.

재우는 마루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걸레를 빨았고 아버지는 축사 안에 들어가 소똥을 치우고 있었다. 바람이나 좀 쐬고나서 집으로 올라갈까 싶어 마당으로 내려와 집밖으로 나가려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재우를 잡았다.

"멀리 가지 말거라."

재우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도 허리를 펴며 재우를 바라보았다.

"오늘도 가봐야지."

"어디요?"

"어디긴 어디야. 성에 가봐야지. 죄다 성으로 쳐들어간다는데."

"아버지."

재우는 울음이라도 터트리면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마저 왜 저럴까.

"거 봐라. 오늘밤에도 기필코 갈 모양이다."

어머니는 걸레를 마루에 던지며 말했다. 재우는 오늘 집으로 가긴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밤부터 읍성 점령 재현 연극을 하는데 아버지가 간다면 따라가야 할 것 같았다. 또 길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 더구나 패배한 싸움은 더욱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날 때까지 어디 가서 차를 마시고 있다가 아버지를 모시고 와야 할 것 같았다.

 

 

 

 

 

 

 

 

 

 

 

 

 

 

 

 

 

 

 

 

첫째날

 

읍성 점령

 

천지신명이시여……

빌고 빌고 또 비나이다.

천지신명이시여……

 

여인은 마당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빌고 있다. 빌고 빌어야겠는데 무슨 말로 빌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빌어야 한다.

천지신명이시여……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 한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아니다. 수십 명의, 수백 명의 발걸음 소리다. 바람을 타고 발걸음 소리가 퍼져나간다. 대지를 흔든다. 저 중에 남편도 있을 것이다. 속이 탄다. 애가 탄다.

천지신명이시여……

부디 몸 성히 다녀오도록 해 주시오.

 

천지신명이시여 ……

제발 아무 탈 없게 해 주소서.

제발 원하는 대로 되게 해 주소서.

천지신명이시여 ……

여인은 정화수 앞에서 두 손으로 빌고 또 빈다.

 

저벅, 저벅 저벅 …… 공기를 가르고 땅이 울린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 바람을 가르고 산이 울린다.

개가 짖지 않는다. 꼬리를 사타구니에 넣고 집안에 처박혀 밖에 나올 엄두도 못 낸다.

 

컴컴하던 어둠이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밀려 물러났다. 사람들은 자꾸만 모여들었다. 이미 모인 사람들은 죽창을 든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이제 모여드는 사람들은 낫이며 괭이를 들고 있었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다. 22일 동트기 전에 천봉산 아래 북천에 모여라. 손에는 아무거나 들고 오면 된다. 소문은 소문을 물고 이 집 봉창에서 저 집 댓돌로 옮겨다녔다. 남자들의 담배연기를 타고 피어올라 여인들의 치맛바람을 타고 멀리 퍼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다니요.”

머리에 흰 무명천을 두른 사내가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저들의 뜻을 하늘인들 모르겠소.”

역시 무명천을 이마에 두른, 얼굴이 온통 수염으로 덮인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내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포수한테서 거금을 주고 산 화승총이었다. 생명보다 더 아끼는 것이라고 했다. 털보 주위에는 화승총을 든 이가 몇 명 더 있었다.

“이미 승패는 결정난 것 같소,”

옆에서 역시 화승총을 든 이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이제 우리 세상이 오는 거요. 양반 상놈 없는 평등 세상이오.”

“사람이 하늘이요. 곧 사람이 하늘 대접받는 세상이 오는 거요.”

무명천을 이마에 두른 이들은 계속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을 더 잇지 못 했다.

죽창을 든 사람들은 대부분 동학교도로서 미리 연락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며칠 전부터 거동에 있는 박생원 집 뒤에서 대나무를 베어와 죽창을 만들었다. 하지만 낫을 들고 괭이를 든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죽창을 만들 시간이 없어 손에 익숙한 농기구를 들고 왔다. 농기구를 든 사람들은 손에 익어 차라리 죽창보다 낫다고 자위했다.

농기구를 든 사람들이 죽창을 든 사람들보다 많았다. 농민군 지도부는 혹 농기구를 든 사람들이 명령에 따르지 않고 멋대로 행동할까봐 걱정되었다. 죽창을 든 이들은 대부분 동학교도들이기에 접주인 자신의 말에 잘 따르리라 믿고 있었다.

“각 동임들은 모이시오.”

미리 각 동네별로 책임자를 정해놓았다. 농민군 지도자는 동임들을 모아 죽창을 든 이나 농기구를 든 이나 관계없이 동네별로 사람들을 모으라고 했다. 동임들은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손나발을 불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 동임들의 꽁무니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뱀의 꼬리처럼 사람의 줄이 길게 늘어났다. 죽창을 든 사람들이 재빠르게 뒤를 따랐고 농기구를 든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죽창의 뒤를 따랐다. 동임들은 서로 내기라도 하는 듯 손나발을 불면서 꽁무니에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긴 줄이 엉켜 난장판이 되어 끊어졌다가 곧장 질서를 회복하고 이어졌다.

“네가 여기 웬일이야.”

누군가 소리쳤다. 이제 열 살쯤 되었을까, 긴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소년이 지게다리를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 원수 갚으러왔어요.”

소년은 다부지게 말하였다.

“어디서 왔느냐?”

옆에 선 다른 사람이 물었다.

“봉대서 왔어요.”

“아이고 그 지주들 심한 데서 왔구나.”

누군가 탄식을 했다.

“네 아버지는 어떻게 됐는데?”

“며칠 전에 관아에 끌려갔다가 곤장 맞고 장독이 퍼져 돌아가셨어요.”

“저런.”

“저런 죽일 놈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네 엄마는 무얼 하시고? 말리지 않더냐?”

“누워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울고만 계셔요.”

“고만 가거라. 우리가 원수를 갚아주마.”

“아니에요. 저도 싸울 거예요."

소년은 입을 앙 다물었다.

“너 고추가 여물긴 여물었냐?”

누군가 농을 했고 웃음이 와, 터져나왔다.

“에이씨.”

소년은 농을 한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래 정 그러고 싶으면 제일 뒤에서 따라오거라. 나중에 읍성을 점령하고 나면 너도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걸 보고 다가온 동임은 소년을 타일렀다.

그때 저쪽에서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여자가 무슨 싸움을 한다고요. 얼른 집에 가소.”

대여섯 명의 여자를 둘러싼 사내들이 히죽거렸다.

“나도 싸워야 혀요. 작년에 우리 애 아버지가 목사 윤태원한테 맞아 죽었소.”

“원수는 우리가 갚아드리리다. 여자가 어찌 싸우겠소.”

점잖게 생긴 사내가 어서 돌아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우리가 왜 못 싸운다요. 하다못해 돌이라도 날라주기도 하고 던질 수도 있는데.”

“그러다 없는 애 떨어지겠소.”

또다시 와, 하고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왜들 이러시오. 우리도 싸우겠소. 지금 집에 애들이 굶고 있소. 양식이 없소.”

“우리가 쳐들어가서 양식을 뺏어올 테니 집에 가 계시오.”

사내들이 달랬다. 하지만 여자들은 완강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였다.

“좋습니다. 함께 하시지요.”

굵직한 목소리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농기구를 든 사람들이 모여들 때 감격해 하던 털보였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늘이요.”

털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마운 일입니다. 여자들도 할 일이 많을 게요.”

“맞아요. 밥도 해야 하고.”

누군가 나서자 여기저기서 옳소, 하는 소리가 났다.

“바로 그거요.”

털보는 흐뭇한 웃음을 띠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자분들은 일단 저쪽으로 가 계시오. 나중에 접주님의 명이 떨어질 거요.”

털보는 사내들이 없는 빈 공터를 가리켰다.

“고맙구만요. 고맙구만요.”

여자들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때 우렁찬 목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자, 모두들 조용히 해 주시고 이 사람을 보아주십시오.”

키가 약간 작고 호리호리한 남자가 바위위에 올라가 소리치고 있었다. 체구에 비해 목소리는 우렁찼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동임들이 자기 동네의 사람들의 줄을 똑바로 세우느니, 조용히 하라느니 하며 부리나케 돌아다녔다. 죽창을 든 사람들은 동임의 말을 잘 들었지만 농기구를 든 사람들은 잘 따르지 못 했다.

“여러분!”

앞에서 우렁찬 소리가 다시 들렸다. 옆 사람과 얘기를 하던 사람들은 말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왜 여기 모였습니까!”

바람소리마저 멈추자 사방은 조용했다.

“목사놈 모가지 따러 왔소!”

“그렇소!”

여기저기서 소리가 났다.

“여러분! 우리가 왜 가난합니까. 우리가 사시사철 일만 하는데도 왜 가난합니까. 우리가 게을러서 그렇습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랑게요!”

여기저기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럼. 우리가 낭비해서 그렇습니까? 맨날 술 먹고 노름하고 좋은 옷, 좋은 음식 먹어서 그렇습니까?”

“돈이 어디 있다고 술 먹어.”

“우리가 언제 노름했다꼬!”

“부모 제사상에 고등어 한 손 올려놔봤으면 소원이 없겠구먼.”

“죽이라도 실컷 먹어봤으면.”

여기저기서 소리가 터져나왔다.

“여러분!”

잠시 뜸을 들였다.

“부인네들이 살림을 잘 못 했습니까?”

“그런 숭헌 소리 하지덜 마소!”

“양식이 있어야 잘 하고 못 하고나 있지.”

“여러분. 맞습니다. 여러분들의 말이 맞습니다.”

카랑카랑한 소리가 다시 울러퍼졌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잠잠해졌다.

“우리가 이렇게 못 먹고 못 입고 맨날 일만 하는데도 저들은 무얼 합니까. 목사란 작자는 무엇 때문에 맨날 애먼 사람 잡아다 족치고 돈을 울궈냅니까. 양반 지주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합니까. 맨날 노는데도 왜 그렇게 곳간에 재물이 쌓이기만 하고 우리는 하루 종일 땡볕에 일만 하는데도 하루 두 끼 죽만 먹어야 합니까. 사람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가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늘입니다.”

“맞소. 모든 사람이 하늘이오.”

“뒤엎읍시다!”

“이놈의 세상 뒤바꿉시다.”

“옳소!”

“옳소!”

또다시 여기저기서 소리가 터져나왔다.

“사람은 하늘입니다. 부자고 가난한 사람이고 남자고 여자고 모두 하늘입니다. 우리는 이제 사람이 하늘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오늘 죽기를 각오하고 그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쳐들어갑시다!”

“우리 세상을 만듭시다.”

사람들은 죽창과 농기구를 높이 들며 소리쳤다. 바위위에 선 사람은 잠시 말을 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게 민초들의 뜻이구나. 가슴이 저미어 왔다.

“여러분.”

다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오늘 목사의 목을 치고 우리가 빼앗겼던 재물을 되찾을 것입니다. 그동안 나라에서 정한 각종 세에다 무명잡세까지 거두어 우리의 피눈물을 짜낸 그들을 몰아내고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오늘 오신 한 분 한 분이 모두 한울님입니다. 모두 힘을 합쳐 우리의 세상을 만듭시다.”

“옳소!”

“우리의 세상을 만듭시다.”

“양반 없는 세상을 만듭시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창을 높이 치켜들었고 농기구를 흔들었다. 사람들의 열기에 호응이라도 하듯 동쪽에 희뿌연 밝은 기운이 퍼졌다. 얘기하던 사람이 내려가고 털보가 바위위에 올라섰다.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웅성거리던 군중이 조용해졌다.

“오늘 우리는 읍성을 쳐들어갑니다.”

“아, 긴 말 말고 당장 갑시다.”

“그래요. 갑시다!”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다 때려부수고 우리에게 빼앗아간 것을 찾아옵시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일순 조용해졌다.

“그냥 쳐들어가면 저들의 총에 활에 칼에 맞아 죽습니다. 우리가 숫자는 많지만 무기가 적습니다. 그러니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잘 따라 주십시오.”

털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지금은 전쟁입니다.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입니다. 만약, 제 명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우리는 읍성을 점령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명을 어기는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 제 명에 따르겠습니까?”

“여부가 있소.”

“따르겠소. 명만 내리소.”

사람들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여러분의 의견에 동조하여 제가 모든 명을 내려 읍성을 점령하고 여러분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각 동임들의 명에 따라주십시오. 모든 계략은 동임들에게 미리 얘기해 놨습니다. 만약 멋대로 행동하는 자는 절대 용서 못 합니다. 그런 분들은 미리 집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그리고 각 동임들은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털보는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바위를 내려갔다. 동임들은 앞으로 나아갔고 사람들은 각자 들고 온 죽창이나 농기구를 꼭 쥐었다. 동임들이 얘기를 하는 동안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동임들은 각자 동네 사람들에게 다가오더니 젊은 사람 몇 명씩을 데려갔다. 따라가는 자는 말이 없었고 나머지는 이를 꽉 깨물었다.

담배 두 대를 피울 참이 지났을까, 다시 털보가 바위위에 올라섰다.

“많이 기다렸소이다.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들으시오.”

털보는 잠시 뜸을 들였다. 사람들 사이에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부터 동네별로 각 성문을 맡아 쳐들어갑니다. 쳐들어가되 항복하는 자는 용서해줍니다. 절대로 사사로이 사람을 해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제 말을 잘 듣고 공격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문은 어느 동네가, 북문은 어느 동네가, 서문은 어느 동네가, 남문은 어느 동네가 …… 털보는 동네별로 공격해야할 네 개의 성문을 정해주었고 사람들은 네 무리로 갈라섰다. 공격의 시점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일사천리로 행동했고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자, 갑시다.!”

맨 처음 올라섰던 깡마른 사람이 다시 올라 소리쳤다.

“갑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모두들 한결같이 소리쳤다.

“지금부터 쳐들어가는 길에 아무 소리도 내면 안 됩니다. 말은 물론 발소리도 내면 안 됩니다. 절대 명심하십시오. 조용히 갑시다. 절대로 소리를 내면 안 됩니다.”

깡마른 체구가 내려가자 곧이어 명이 내려졌다.

“진군!”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농민군들은 네 갈래로 갈라섰다. 맨 앞줄에는 동임들에게 불러갔던 젊은이들이 섰다. 남문을 향하는 농민군들은 개운리 쪽으로 갔고 동문을 향하는 농민군들은 화개 쪽으로 갔다. 서문과 북문은 얼마 안 되는 거리였지만 농민군들은 서둘렀다.

농민군들이 각각 성문 앞에 도착했다. 모두들 성문을 노려보았다. 성문 앞에는 나졸 두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둥 둥 둥.

북이 세 번 울렸다.

“갑시다!”

앞에서 동임이 소리쳤고 농민군들은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때 성문을 지키던 나졸 두 명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농민군들을 바라보았다. 나졸은 도망갈 생각은 잊고 멍하게 창을 잡고 서 있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항복하면 살려주겠다.”

동임이 소리치자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듯 창을 버리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농민군들은 저항 한번 받지 않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곧장 동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동헌을 지키는 나졸 몇 명만 있을 뿐 텅텅 비어 있었다.

“목사 어디 있느냐?”

창을 버린 나졸에게 물었지만 나졸은 목사가 아직 내아에서 안 나왔다고 했다. 농민군들은 내아로 달려갔다. 문을 벌컥 여니 속옷 차림의 어린 여자가 이부자리에서 떨며 앉아 있었다. 목사가 어린 기생을 끼고 밤에 잔 것 같았다.

“목사 어디 갔느냐.”

농민군이 짚신을 신은 채 방안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새, 새벽에 보니 어, 없어졌…… .”

기생은 벌벌 떨며 말했다.

“에이.”

화가 난 농민군들이 이불을 들추고 병풍 뒤를 샅샅이 뒤졌지만 목사는 보이지 않았다. 객사까지 다 뒤졌지만 목사는 없었다.

“목사 윤태원이 도망쳤다!”

농민군들은 대창과 농기구를 흔들며 아쉬워했다. 성안에는 나졸들만 있을 뿐 목사를 비롯하여 수교나 좌수 등 높은 자들은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그때 이미 목사는 S를 벗어나 있었다. 목사는 어린 기생을 끼고 밤새 술추렴하다 새벽녘에 잠들었는데 갑자기 수교가 깨웠다.

- 무슨 일이냐.

아직 술에서 깨어나지 못 한 목사는 게슴츠름하게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았다.

- 농민들이 난을 일으켰습니다. 빨리 피하소서.

- 뭣이? 난?

목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 목사는 동부승변로 전임되어 수령직인계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5만 냥을 중전에게 주고 목사직을 사 왔느니 이번엔 8만 냥을 주고 동부승변을 사서 승진했느니 하고 소문이 무성하던 참이었다. 며칠 뒤면 떠날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더 백성들을 우려먹자 싶어 무고한 백성들을 잡아들여 죄를 덮어씌우고 돈을 내면 풀어주곤 했다. 갈 때까지 최대한 백성들을 우려먹을 참이었다. 그러니 목사에게 죄 없는 죄를 지어 동헌 마당에서 물고를 안 당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거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돈이 없는 백성들은 몸으로 때우다 겨우 돈을 구해 풀려나면 매 맞은 후유증으로 장독에 걸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약은 못 지어 먹고 몇 년 묵은 똥물을 걸려먹고는 했다. 하지만 장독은 몸으로 퍼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때 책사가 소식을 들었는지 달려 왔다.

“이걸로 옷을 갈아입으시지요.”

책사는 농민들이 입는 다 떨어진 옷을 내밀었다.

“내가 이걸 입어야한단 말이냐?”

목사는 얼굴을 찡그렸다.

“급합니다. 빨리 갈아입고 농민인 척하고 성안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목사는 억울했다. 중전과 민씨 일가에게 바친 돈을 마저 벌려면 백성들을 더 족치어 돈을 우려내야 하는데 아쉬웠다. 어쨌든 자리를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었다.

“내 이놈들 두고 보자. 내 꼭 다시 오리.”

목사는 이를 악 물었다. 책사와 함께 옷을 갈아입고 성을 빠져나가 예천 쪽으로 길을 잡았다. 예천은 양반들이 민보군을 결성해 8월에 성을 쳐들어온 농민군을 물리쳤기에 안전하다 싶었다.

 

“목사란 작자가 싸워보지도 않고 맨 먼저 성을 버리고 도망가다니.”

“뒤를 쫓아 목을 매답시다.”

“목사를 잡아라.”

농민군들은 분노에 치를 떨며 곧장 예천 방향으로 선산 방향으로 대구 방향으로 보은 방향으로 네 길을 잡아 추격했다.

깨깽깽깽!

둥둥둥둥!

풍물 소리가 울려 처졌다.

“우리가 성을 점령했다.”

“우리가 이겼다.”

농민군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만세를 불렀다. 풍물패가 성안을 돌아다니며 징을 울리고 꽹과리를 치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목사란 놈이 평소에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백성들을 못 살게 굴더니 이렇게 쉽게 쥐새끼처럼 도망칠 줄은 몰랐소.”

농민군 지도자들은 동헌 마당에 둘러섰다.

“그러게 말이요. 민소(民訴)를 올려 억울함을 호소해도 들어주기는커녕 장두(張頭)선 사람을 붙잡아 고래고래 소리치며 태형을 치던 기세는 어디 가고. 쩝쩝.”

“원래 그런 놈들은 약한 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한 자에게 또한 한없이 약한 자들이 아니요.”

“매를 맞고 장독에 걸려 죽은 이가 한두 명이 아닌데 원수를 못 갚아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요.”

“사방 길로 좇아갔으니 잡겠지요.”

농민군 지도자들은 목사를 놓친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때였다.

“여기 나졸이 있다.”

농민군이 소리쳤고 나졸 하나가 마루 밑에서 기어 나왔다.

“이놈 맛 좀 봐라.”

농민군들은 나졸에게 죽창으로 내리쳤다.

“아고고.”

나졸은 죽는 소리를 냈다.

“이놈!”

사람들은 나졸을 발로 찼다.

“평소에 목사 믿고 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에라이 이놈아!”

사람들은 나졸을 두들겨 팼다.

“여기도 있다.”

객사에 숨어 있던 나졸 한 명이 잡혀 왔다.

“살려 주시오.”

나졸은 꿇어 앉아 살살 빌었다.

“니 놈도 목사만큼 나쁜 놈이야.”

죽창으로 후려치고 발로 찼다.

“그만 하시오. 그러다 절단 나겠소.”

지도자는 말렸다.

“매운 맛 좀 더 봐야 하오.”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발로 차고 죽창을 후려치고 주먹으로 때렸다. 나졸은 땅에 엎어져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그제야 사람들은 손으로 옷을 털며 다른 곳으로 갔다. 여전히 다른 곳에서도 나졸들의 비명소리와 와, 하는 사람들의 악쓰는 소리가 났다.

 

정리해고

 

재우는 농민군들에게 집단으로 얻어터지는 나졸들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는 걸 느꼈다. 아무리 연극이라지만 도저히 편안하게 볼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사람들 틈새로 빠져나왔다. 재우도 점거 농성 때 잡힌 용역을 본 적이 있었다. 진압대와 싸우다 우연히 잡은 용역이었다. 처음엔 경찰인가 구사대인가 했지만 유령 경비회사 직원이었다. 진압대에게 워낙 당한 터라 잡으면 다리라도 뭉개어놓으려 했는데 막상 잡고보니 너무 앳되어 보였다. 노조원들은 노려보기만 했다. 차마 주먹질은 할 수 없었다.

“왜 그랬소? 우리의 사정을 알만한 나이인데.”

지부장이 직접 조사했다.

살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용역은 고개를 숙였다. 처음엔 완강하게 신분을 밝히지 않던 용역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집이 가난하여 대학에 겨우 들어갔고, 돈이 없어 휴학을 하고 군대를 다녀왔지만 형편이 나아진 건 없다고 했다. 취직자리도 없었다. 돈을 벌어야 복학을 할 텐데.

“그래도 경비 회사가 페이가 좀 셌소.”

군대에 갓 다녀온 젊은이가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한정되었다. 좀 고되고 위험이 있지만 경비 회사에 취직해 노조진압을 전문으로 하는 게 그나마 수입이 낫다고 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태권도 유단자라서 쉽게 들어갔다고 했다.

“우리의 처지를 정말 모른단 말이요.”

지부장의 안타까운 말에 용역은 고개를 꺾었다. 그때 재우는 절망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 노조를 강제진압하는 저 악랄한 자들.

재우는 관객들을 벗어나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 용역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아직 취직도 못 하고 있다면 또다시 어느 회사 노조를 파괴하고 있을지 몰랐다. 재우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무대를 돌아보았다.

연극 무대는 왕산을 등지고 평지에 설치되었다. 마치 마당극처럼 사람들이 무대를 중심으로 둥글게 반원을 그리며 앉아 연극을 구경하였다. 무대와 관객들 사이에는 몇 걸음 되지 않아 원하는 사람들은 무대에 올라 연극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주요한 대목이야 연극을 주관하는 쪽에서 하지만 농민군들이 성으로 몰려가 만세를 부르고 소리를 지를 땐 관객들도 무대에 나아가 함께 어울렸다.

재우는 시화가 걸려 있는 왕산으로 올라갔다. 애초부터 연극에 관심이 없었던 터였다. 왕산은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채 4-5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 야트막한 동산이었다. 시내 중심지에 있는 산인데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오르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우범지대였다. 소위 논다는 애들은 아침 학교에서 어젯밤에 왕산에서 어느 여고생을 따먹었느니, 하는 말들을 무용담처럼 지껼여댔다. 실제로 그 옆길을 가다 보면 고등학생 몇 명이 어울려 담배를 피우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제는 왕산 주변에 있는 집들을 철거하고 공원을 만들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왕산이 옛날 읍성안에 있었던 것도 연극을 왕산에서 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ㄱ자로 된 쇠파이프를 땅에 심고 시화를 매달아놓았다. 왕산에 오르는 두 곳의 돌계단 양쪽과 산 곳곳에 설치되어 마치 무슨 깃발처럼 시화는 나부꼈다. 음성 점령 마지막날까지 전시한다고 안내판에는 적혀 있었다.

재우는 시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계단을 오르며 건성으로 시화를 바라보았다. 대충 제목만 보는 식이었다. 재우는 시들을 보며 계단을 올라 정상에 올랐을 때 아내가 떠올랐다.

- 나 홍보부장 맡았어.

가족대책위에 나가던 아내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 당신이 왜?

아내는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 시를 좋아한다고.

-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좋아한다고?

재우는 어이없어했다.

- 그러게 시를 좋아한다고. 깔깔깔.

아내는 웃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웃는 웃음이었다. 회사가 중국의 S자동차로 팔리고부터 웃을 일이 없었다. 오히려 울 일은 많았다. 갑자기 솟구쳐오르는 울음에 목구멍이 쏴했고 가슴이 먹먹했다. 전태일 묘 앞에서 그랬다. 6개월 동안의 감옥 생활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간 곳이 모란공원 전태일 묘였다.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지만 정리해고특별위원회에서 미리 일정을 맞추어 놓았기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묘 앞에 왔을 때에도 그냥 무덤덤했었다. 그냥 평범한 묘에 무심하게 눈길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묵념을 하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마치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목구멍이 쏴했고 눈이 뜨거웠다. 순간적인 일이라 재우는 당황하였다. 그러다 마치 핏덩이가 올라오듯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서 쿨렁쿨렁 솟구쳤다.

어, 어, 어.

마치 벙어리처럼 입에서 기괴한 소리가 났다. 눈은 뜨거워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냥 서러웠다. 서럽고 또 서러웠다. 바로, 하는 소리를 듣지도 못 하고 한참 동안 그렇게 뜨거운 울음을 토했다. 함께 간 사람들이 등을 두드려주었을 때에야 재우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여러 열사들의 묘를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갑자기 그때의 일이 생각난 것은 왜일까. 재우는 S 시내가 보이는 정상에서 전태일 묘역 앞에서 운 일이 떠오르자 가슴이 먹먹하고 눈이 뜨거워졌다. 어쩌면 연극하는 내내 그런 마음이 있었던지도 몰랐다. 저 읍성을 점령한 농민군들처럼 그렇게 좋은 적이 있었던가. 저 농민군들이 읍성을 점령하고 느꼈을 희열을 맛본 적이 있었던가. 재우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보면 파업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그냥그냥 살아온 인생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를 다녀왔고 고향을 떠나 직업훈련원을 거쳐 SS자동차 회사에 입사했다.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기쁨은 있었다. 만족했다. 그러다 아내를 만났고 결혼했다. 아이 둘이 생겼고 이제는 큰애가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내 소원이 뭔 줄 알아? 그냥 우리가족 둘러앉아 밥 먹고 애들 학교 보내고 집안 청소하고, 끝나고 나면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시를 읽는 거야.

파업이 끝난 후 회사측의 기만으로 정리해고자들이 복직이 되지 않아 투쟁이 길어지고 있을 때 아내가 한 말이었다. 그런 작은 소망이 허물어진 징조는 애초부터 SS자동차가 중국 S차에 팔린다는 소문이 나고부터였다.

몇 명이 해고될까.

나는 해고 명단에 오르지 않을까.

S차는 100% 고용 승계와 1조 몇 천억 투자를 약속했지만 소문을 잠재우지는 못 했다. 노조에서 격렬히 반대를 했지만 재우는 참가하지 않았다. 정부 차원에서 이미 결정했다면 반대하나마나였다. 또한 정부에서 결정한 일인데 노조에서 반대한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 했다. 다만 해고자 없이 100% 고용이 된다는 말에 안도를 했다. 하지만 기술유출과 하청기지화를 우려하는 노조의 말처럼 결국 S차는 5년 동안 신차 개발을 위한 투자는 전혀 하지 않았다. 3-4년 안에 빈 깡통이 된다는 노조의 말이 자꾸만 현실이 되는 것 같아 불안했다.

불안. 일을 하면서도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몇 명만 모여도 담배를 물고 어떻게 될 거냐고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646명을 정리해고한단다.

어느 날 회사 안에 소문이 퍼졌다. 5월 8일 어버이 날이었다. 그 말은 사형선고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해고는 살인이다. 이미 5여 년 동안 1,500여 명이 떠난 상태였다.

아마도 그때부터 웃음을 잃은 지도 몰랐다. 동료들과 만나도 말을 별로 하지 않고 술만 마셨다. 누가 정리해고 명단에 오르느냐가 문제였다. 모두들 초조해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회사를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말 잘못했다가 정리해고자 명단에 오를까 그것이 걱정되었다. 점점 회사 동료들끼리도 아주 절친한 경우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 노조에서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20여 년 동안 열심히 일한 직장이었다. 노조 활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노조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하기 싫으며 나가면 되고 회사가 내 것도 아닌데 저들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는 게 옳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만 했는데 정리해고라니. 재우는 피우던 담배를 발로 비벼끄고 새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산 아래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새 세상

 

“쌀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우르르 몰러갔다. 곳간이었다. 누군가 곳간 문을 때려부순 것이었다.

“놔라. 이거.”

“저리 비켜.”

서로 쌀을 가져가려고 야단법석이었다. 너도나도 서로 바가지에 쌀을 담으려니 흘리는 게 오히려 더 많았다.

“모두들 물러가시오.”

농민군 지도자가 달려가서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들은 척도 안했다. 오직 쌀을 평생 처음이라도 본 것처럼 앞다투어 서로 많이 가져가려고 할 뿐이었다.

“쌀을 주겠소. 주겠으니 제발 물러가시오.”

장정 여럿이 나서자 바가지를 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우리가 도둑이요?”

농민군 지도자가 곳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들 아무 말도 없이 오직 쌀만 바라보았다.

“우리가 강도요?”

“집에 노모가 굶고 있소. 벌써 여러 날째요.”

한 사람이 나섰다. 눈이 휑하니 들어가고 볼이 홀쭉했다.

“우리 집엔 아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소. 이 쌀은 우리가 애먹게 농사지었다가 애달게 뺏긴 거요.”

또 한사람이 나섰다. 그 사람 또한 입술은 불어터지고 볼은 홀쭉한 게 며칠은 굶은 거 같았다.

“그렇소. 이 쌀은 모두 우리가 부당하게 착취당한 것이요. 그러니 이 쌀의 임자는 우리요. 쌀을 나눠주겠소. 하지만 이렇게 도둑질하는 것처럼 가져가면 안 되오. 자 한 줄로 서시오.”

쌀을 주겠다는 말에 사람들은 서로 앞에 서려고 밀고 당기고 난리를 쳤다.

“빨리 주시오.”

뒤에는 앞쪽에 서려고 다툼을 벌이는데 앞줄에 미리 선 사람들이 재촉했다.

“좋소. 우선 각자 한 바가지씩만 주겠소. 그리고 나중에 곡식이 얼마나 있는가 파악한 후 나머지도 집집마다 다 나눠줄 것이오.”

쌀을 받은 농민들은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살을 꼬집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쌀을 받은 농민은 품에 안고 성밖으로 뛰어갔다.

“밥을 하시오. 오늘 성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두 배불리 먹이시오. 모두들 아침을 안 먹었을 테니 빨리 하시오. 저녁 땐 잔치를 벌이겠소.”

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아침에 나왔던 여자들이 쌀을 받아갔다. 남자들도 거들었다. 여자들에게는 미리 취사 쪽으로 일이 주어진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쌀을 나눠주는 게 끝날 무렵이었다.

“무기다.”

이번엔 무기고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농민군들은 무기고 문을 뜯어낸 후 무기들을 마당으로 끄집어냈다. 그러나 쓸 만한 무기는 거의 없었다. 화승총이 수십 자루 있고 창과 칼이 각각 백여 자루가 넘었으나 모두 녹이 슬어 쓸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화승총을 먼저 가지려는 이들이 녹슨 것을 보자 주춤했다.

“죽일 놈의 목사놈. 백성을 지켜줄 무기는 전혀 관리 안 하고 백성의 고혈만 짜내 제 배만 채웠구나.”

사람들은 어이없어 허탈하게 웃었다.

“자 각자 무기는 한 쪽으로 모아 쓸 수 있는 것과 수리해야 할 것을 구분하시오.”

털보가 말했다.

“저기 저 화승총은 내 것이니께 아무도 넘보지 말어.”

농민군 한 사람이 눈을 부릅떴다.

“난 창이 좋으니께 저 것이 내 꺼여.”

다른 농민군이 말을 받았다. 주로 농기구를 든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든 농기구가 영 미덥지 않았다.

“아부지.”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허리가 구부러진 중년의 남자를 젊은 사람이 부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옥문을 부수고 갇힌 사람들을 데리고 나온 것 같았다.

“허허허.”

중늙은이는 얼굴은 웃는데 입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저 사람 봉대 천서방 아니여?”

“맞는 것 같은데?”

“안즉도 살아있었구먼. 다행이여, 다행.”

저마다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찼다.

천서방이라는 중늙은이는 아내가 지주에게 겁탈을 당하자 밤에 지주 방에 들어가 지주에게 낫을 찍었다. 하지만 지주는 팔만 다치고 천서방은 그 집 하인들에게 잡혀 죽도록 얻어맞고 관에 끌려온 것이었다. 물론 관에서도 매질은 계속되었다. 부인은 자살을 했고 소작은 떼였다.

옥에 갇힌 모든 사람들은 풀려났다. 대부분 목사가 없는 죄 씌워 뇌물을 받으려고 잡아넣은 사람들이었다. 간혹 도둑질을 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 또한 잘못된 세상의 희생자라 하여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풀려났다.

“나도 여기 있을라요.”

“나도 싸우겠소.”

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서 우선 몸을 추스르시오. 그래야 싸울 수 있지 않겠소.”

농민군 지도부가 만류했으나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 좋은 세상이 왔는데 집에 가서 누워 있다니요. 그리고 저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싸워야하지 않겠소. 여러분들이 우리의 은인이오.”

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함께 있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다. 농민군 지도부들은 몸이 아주 안 좋은 사람들은 집으로 보내 치료하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성안에 있되 의원을 불러 치료하게 했다.

“밥 먹으시오.”

사람들이 큰 그릇에 밥과 반찬을 날라왔다. 사람들은 그대로 바닥에 퍼질러앉았다.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아 음식 도구를 제대로 준비를 못 했다. 큰 그릇에 여럿이 모여 밥을 퍼 먹었다.

“이게 쌀밥이라는 것이로구나.”

“이 사람아 천천히 먹어. 체할라.”

“그냥 입에서 사르르 녹네, 녹아.”

사람들은 반찬은 먹지 않고 밥만 퍼먹었다. 금방 밥이 동이 났다.

“이리 주시오. 더 가져오리다.”

누군가 밥을 가져왔다. 금방 동이 났다. 또 가져왔다. 그제야 사람들은 절인 배추 반찬을 먹기 시작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도 정작 그들은 쌀밥을 한 번도 먹지 못 했던 것이었다.

“아이고, 대장님들은 동헌 마루로 올라가시지요.”

밥을 가지고 온 여인이 농민군 지도자들을 보고 말했다.

“그러시오. 우리들이야 맨땅에서 먹어도 괜찮지만.”

농민군들도 지도자들에게 동헌 마루로 올라가라고 했다.

“아니요. 우리도 똑같이 땅에 앉아서 먹겠소.”

“아이고 송구스럽게서리 왜들 이러시오.”

여인과 농민군들이 강권했지만 지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도 똑같은 농민군이요. 다만 하는 일이 다를 뿐이요. 하는 일이 다르다고 행동도 다르게 한다면 지금 세상과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세상이 뭐가 다르겠소. 모든 사람은 다 똑같소.”

지도자들은 농민군들이 먹던 곳에 퍼질러앉았다. 그리곤 숟가락을 들고 농민군들이 먹던 그릇에서 밥을 퍼먹었다.

밥을 다 먹고 한참이 지났을 무렵 목사 윤태원을 좇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공성 쪽과 화서 쪽이었다. 좀 지나자 낙동 쪽과 문경 쪽으로 갔던 사람들도 돌아왔다. 한결같이 허탈한 표정이었다.

“쥐새끼 같은 놈이 하늘로 솟았는가 땅으로 꺼졌는가 본 사람이 없네요. 무슨 귀신 곡할 노릇이요.”

좇아갔던 사람들이 분을 못 이겨 죽창이나 낫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목을 매달아야 하오.”

“물론이요. 곡식을 빼앗긴 것도 그렇지만 곤장맞아 죽은 사람이 어디 한두 사람이요.”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도 애통해서 울부짖었다.

“언젠가는 목 매달 날이 있을 거요. 수고했소. 우선 밥이라도 드시오.”

지도자의 말에도 좇던 사람들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자기들이 잘못해서 목사를 놓친 표정들이었다.

 

지도자들은 동헌 마루에 올라가 한참동안 회의를 하였다. 사람들은 동네별로 모여서 담배를 피우거나 휴식을 취했다. 한참 후 지도자들이 동임들에게 지시했다.

“자 모두들 동헌 마당에 동네별로 모이시오.”

각 동임들은 손나발을 불면서 자기의 동네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죽창 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농기구를 든 사람들도 재바르게 움직였다.

“지금부터 회의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깡마른 체구가 동헌 마루 댓돌에 올라서서 말했다. 역시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었다.

“먼저 창의도소를 설치하겠소. 도소는 다 아시다시피 우리들의 자치기구입니다. 말하자면 이제부터 우리들 스스로 S의 행정 및 모든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좋소!”

“옳소!”

여기저기서 소리가 넘쳐났다.

“먼저 총책임자인 집강은, 비록 못났지만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저는 강희영올시다. 서기는 저 화서의 김정익 씨가 맡고 성찰은 조윤서 씨가 맡기로 했습니다.”

집강으로 뽑힌 강희영은 집강소를 운영해 갈 간부들을 일일이 소개시키고 한 마디씩 하라고 했다. 간부로 뽑힌 사람들은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열심히 하겠다고 했고, 사람들은 옳소, 옳소, 하는 소리로 화답했다.

“그럼 우선 우리가 지켜야할 것을 말씀드리겠소. 우선 사사로운 보복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우리가 사사로이 보복이나 하자고 일어난 것은 아니오.”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난 어미의 원수를 갚아야겠소.”

“난 아비의 원수를 갚아야 속이 풀리겠소.”

여기저기서 불평이 쏟아졌다. 주로 농기구를 든 사람들이었다. 죽창을 든 사람들은 대부분 가만히 있었다. 같은 동학교도들이라 미리 대충 얘기가 된 탓이었다.

“그렇다고 사사로이 원수를 갚아야겠소?”

“난 그 땜에 나왔소. 밥도 밥이지만 구천에 헤맬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겠소.”

사람들은 지지 않고 말을 되받았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집강은 웅성거리던 사람들을 보고 있다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전체의 이름으로 원수를 갚자는 것입니다. 탐관오리들 모두 잡아다 죄목을 일일이 따져보고 그에 맞게 엄징할 것입니다. 꼭 여러분들의 원대로 탐관오리들을 징치하겠소.”

사람들은 잠시 조용해졌다가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악독 지주들은 어떡할 거요?”

“못된 양반들은 그냥 두고 볼 거요?”

“동학을 배척하자고 통문을 돌리던 서원도 때려부숩시다!”

한 사람의 말이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끄집어냈다.

“그건 곧 얘기하려던 참이었소. 횡포한 부호들을 엄징할 것입니다. 또한 불량한 유림과 양반들을 징벌할 것이오.”

그제야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또한 노비문서는 불 태우고 칠반천인(七班賤人)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평양립을 없애겠소.”

“옳소!”

“옳소!”

“잘 한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께서는 집에 있던 여자 노비 한 명은 수양딸로 또 한 명은 며느리로 삼았다지 않소.”

누군가 나서서 말했다.

“맞소. 나도 들은 적이 있소.”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옆 사람과 소리치며 손을 높이 흔들었다. 집강은 그제야 얼굴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청춘과부의 재혼을 허락할 것입니다.”

“이야, 과부들 살판났구나.”

누군가의 말에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무명잡세는 모두 폐지하고 왜와 내통한 자는 엄징할 것입니다.”

집강은 잠시 말을 끊고 주위를 둘러보곤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공사채를 막론하고 지난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입니다.”

“그럼 지주한테 꾸어온 돈은 안 갚아도 된다는 말이여.”

“말인즉 그렇다는 거 같네.”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

“가만히 안 있으면? 이 죽창으로 배따지를 콱 찍어버릴팅께.”

또다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모든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집강은 상기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여? 그럼 땅을 우리한테 준다는 얘기여?”

“설마 그냥 주겠어?”

“방금 얘기할 때 통시깐에 갔었는가? 토지를 똑같이 주겠다고 분명히 말하는 걸 못 들었는가?”

집강은 여러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소. 땅은 농사짓는 사람들이 가져야 합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땅을 모두 나눠주겠다는 말입니다. 양반들도 직접 농사를 지어야 땅을 줄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파격적인 말이라 무슨 말을 못 하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몇개월 전 농민군 대장이신 전봉준 장군과 전라감사가 서로 합의한 사항을 바탕에 두고 말씀드렸습니다. 꼭 실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도 저희 집강소의 말을 잘 듣고 행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장님 만세!”

“집강님 만세!”

사람들은 손을 높이 들며 소리를 질렀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문서를 가져오시오.”

집강은 옆에 선 서기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몇 사람이 동헌 안으로 들어가 문서를 안고 나왔다.

“저 마당에 쌓으시오.”

사람들은 문서를 마당에 놓고는 또다시 동헌 안으로 들어가 문서를 한 아름씩 안고 나왔다.

“여러분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노비문서입니다. 모두 불태울 것입니다. 이제 관에 딸린 노비는 면천이 될 것입니다. 양반 개인에 속한 사노비도 모두 속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서 중에는 또 다른 문서도 있습니다. 우리 S목 모든 사람들의 가족관계, 농사짓는 땅, 이런 것을 상세히 적은 것입니다. 아마도 목사가 백성들의 생활상을 자세히 파악해서 돈을 우려낼 목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불태웁시다!”

“그렇소, 불태웁시다.”

사람들은 고함을 질렀다.

“그렇소. 불을 질러 우리의 세상이 왔다는 걸 보여주겠소.”

집강은 옆을 돌아보며 불을 붙이라고 했다. 서기는 제일 밑에 있는 문서에 불을 붙이자 불이 금세 활활 타올랐다. 앞에 선 농민 한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 불을 여기저기 옮겨놓았다. 그러자 불길이 사람 키보다도 더 높이 솟았다. 사람들은 문서를 빙둘러 섰다.

“아따, 그 잘 탄다.”

누군가 속이 시원하다는 듯 말을 했다.

“이제 무명잡세는 안 내도 되는 것이지?”

사람들은 아직도 못 믿긴다는 듯 수군거렸다. 불은 오래도록 탔다. 불에 비친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벌겋게 빛났다.

“난 이게 꿈인가 생신가 모르겠네.”

“근데 이렇게 해도 되는가?”

사람들은 한편으로 좋아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동헌 앞으로 달려왔다. 모두들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집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집강님. 저희들은 관에 속한 노비들입니다. 이렇게 저희들을 속량해주시니 감격해 눈물이 흐를 뿐입니다.”

관노비들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꼈다.

“저희들도 농민군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죽을 힘을 다 해 싸우겠습니다.”

“잘 왔소. 일어서시오.”

집강은 일일이 노비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시키는 일은 무슨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우리가 관에서 궂은 모든 일을 했으니 여기서도 그런 일 시키시면 성심성의껏 다 하겠습니다.”

노비들은 눈물을 흘리며 얘기했고 집강은 잠시 듣고만 있더니 정색을 했다.

“그 무슨 소리요. 여러분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하고 똑같이 행동할 겁니다. 누구는 천한 일하고 누구는 쉬운 일하고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밥을 먹을 겁니다.”

집강은 여전히 손을 잡은 채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저희들이 감히 어떻게 같이 합니까. 그저 궂은 일 마다하지 않을 테니 시켜만 주십시오.”

노비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여러분도 여러분에게 맞는 일이 있을 겁니다. 곧 시킬 테니 돌아가서 기다리십시오. 또한 어떻게 될까 걱정되어 아직도 숨어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도 나오게 하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노비들은 큰절을 하고 물러났다. 상황이 어떻게 될까 싶어 나오지 못 한 노비들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걸 집강은 눈치를 챈 것이었다.

“목사놈이 옷도 제대로 안 입혔구나. 저 떨어진 옷 좀 보게. 불알이 다 보이겠네.”

사람들은 욕을 하면서도 와, 하며 웃었다. 농민군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마치 자기들이 노비들을 면천시켜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가슴 뿌듯한 일이 있었을까. 코끝이 찡했다.

“이제야 실감이 나는군.”

“그러게 말이야. 노비하고 우리가 같다니.”

“좀 이상하긴 해도 어쨌든 좋은 세상 아닌가.”

“그래도 뭔가 찜찜하네.”

“그러게.”

못마땅한 이들도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않았다.

“양반 상놈 없는 세상 아닌가.”

“모두 평등한 세상일세.”

“우리 농민들이 주인인 세상이야.”

대부분 사람들은 감격에 겨워했다. 불은 사람들의 열기를 받고 더욱 더 활활 타올랐다. 사람들의 얼굴이 불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불길이 거의 꺼질 무렵이었다. 성문에서 보초를 서던 농민군이 안으로 들어와 집강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집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초가 성문으로 간 뒤 말 한 필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집강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다가갔다. 농민 복장을 한 사내가 말에서 내렸다. 지도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뭐라고 얘기를 하더니 갑자기 크게 웃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집강이 댓돌에 올라섰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집강에게 눈길을 돌렸다.

“여러분 희소식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재만 남고 중앙에만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워 올랐다.

“방금 들어온 소식이오. 우리 옆 고을인 선산에도 오늘 농민군들이 읍성을 점령했다는 소식이요.”

“선산 농민군 만세!”

“만세!”

사람들은 손을 높이 치켜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전국 곳곳에서 모든 백성들이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집강은 흥분을 감추지 못 하고 큰소리로 말을 했다.

“만세!”

“만세!”

사람들은 옆 사람과 부둥켜안고 고함을 질렀다. 농민군들은 말은 못 했지만 일말의 불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대구에서 감영군이 쳐들어온다면? 나중에 다시 저들 세상으로 온다면? 마음속에 불안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하지만 선산에서 농민군들이 일어나 읍성을 점령했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들고일어난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일어난다면 정말이지 나라가 뒤집혀질 것이라 확신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에이씨!”

“에이, 정말.”

감격스러워하는 사람들 중에서 몇몇 사람이 손을 부르르 떨며 분개를 했다.

“왜 그러시오?”

옆 사람이 의아해서 물었다.

“우린 예천서 왔소. 지난 8월에 우리도 예천읍성을 공격했지만 실패했잖소.”

“분하오. 그때 읍성을 점령하고 수령 모가지를 땄어야 했는데.”

예천에서 온 사람들은 주먹을 쥐며 이를 갈았다.

“여기 정리가 되거든 예천으로 총공격하면 되지 않겠소. 이 많은 농민군이 몰려가면 어떠한 방어를 하더라도 이길 것이오.”

주위 사람들이 위로를 했다.

“거긴 양반과 지주들이 민보군을 결성해서 쉽지 않다오.”

“그래도 여러 고을에서 합세하면 누가 당할 것이오.”

한 사람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우선 이것으로 회합을 마치고 저녁 무렵에 잔치를 열겠습니다. 그 사이에 창고에 있는 곡식과 재물 목록을 작성하는 대로 군량미로 쓸 것은 제쳐 두고 나머지는 여러분들에게 골고루 나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양반들이나 지주들에게 빼앗긴 재물도 되찾아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시급한 것은 우리 농민군을 군대조직으로 편성하는 것입니다. 동학교도들은 이미 대충 얘기가 되었으나 동학교도 아닌 사람들이 많이 모였기에 다시 군대 조직을 편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부분은 여기 고명환 씨가 담당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이 분은 12년 전 임오군란 때 장교로 있다가 군란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저녁때까지 모두들 휴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집강이 댓돌을 내려가고 털보가 올라왔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제가 고명환올시다. 우선 군대 조직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군대조직은 총 쏘는 부대, 창 쓰는 부대, 칼 쓰는 부대로 나뉘겠습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희망에 따라 밥하는 취사부 등에서 일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우선 여러분들이 어느 부대로 갈 것인가 각 동네 동임들에게 말씀해주시면 희망대로 부대를 편성하고 내일부터 훈련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털보가 내려가자 사람들은 흩어질 생각은 안 하고 그대로 서서 옆 사람을 보며 수군거렸다. 칼을 써 본 사람도 창을 써 본 사람도 없었기에 사람들은 같은 동네에서 온 사람에게 서로 어디로 갈 것인가 묻기에 바빴다.

해질 무렵 집강은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깃발 세 개가 동헌 마당에 세워졌다. 군대 조직에 들어갈 사람 명단을 발표했고 사람들은 동네별로 서 있다가 각 부대 깃발이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이제는 뭔가 다르구나 하며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들이었다. 털보가 댓돌에 올라갔다.

“여러분.”

수군거리던 사람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제 우리는 군인입니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삽니다. 한 사람이 군율을 어기면 그 부대는 몰살합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내 부대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각 부대 대장의 말을 절대로 따라야 합니다. 만약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군율로서 엄하게 다스리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털보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알겠소!”

“좋소!”

사람들은 털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복창을 했다. 털보는 각 부대의 대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각 대장 밑에 참모 몇 명을 지명하고 인사를 시켰다.

“대장님 만세.”

사람들은 각 대장들이 인사를 할 때마다 큰소리로 화답을 했다. 털보는 곧이어 보초 당번을 정해줬고 내일부터 훈련에 들어간다고 했다. 불평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각각 소속 부대가 정해지자 집강이 댓돌에 올라섰다.

“오늘 밤에는 잔치를 벌입니다. 소를 열 마리나 잡았습니다. 쌀밥도 넉넉히 했습니다. 많이들 드시고 마음껏 놀도록 하십시오. 쌀밥은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는 잡곡밥으로 아껴 먹도록 하겠으니 그리 아십시오. 오늘 밤새도록 흥겹게 노십시오.”

집강이 내려가자 여자들이 고기와 술을 가져와 동헌 마당 여기저기에 놓았다. 어느새 여자들의 숫자가 많이 늘었다. 사람들은 음식이 놓인 곳에 모여앉았다. 떡과 밥이 날라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밥은 먹지 않고 고기만 먹었다. 명절 때조차도 먹지 못하던 고기였기에 걸신이 들린 듯 사람들은 먹었다. 언제 소문을 들었는지 봉기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도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탓하지 않고 나눠먹었다. 아이들도 모였고 골방에서 골골 기침하며 오늘내일하던 노인들도 엉금엉금 기어왔다. 농민군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오시느라 수고 많았다며 먼저 인사했고 그들은 송구스러워했다. 성안에는 사람들이 꽉 차서 성밖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소를 더 잡느니 밥과 떡을 더 하느니 야단법석이었다. 그래도 일하는 여자들은 불평불만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일한 적은 없었기에 오히려 신이 나서 일을 했다. 농민군 지도자들도 따로 먹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술도 따라 주고 또 받아먹었다. 너무 많이 먹었다고 손사래를 치면 왜 남의 술만 받고 자기 술은 안 받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깨깽, 깽깽깽.

어느 정도 배불리 먹자 풍물패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왔다. 어떤 이들은 일어서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에해야디야, 상사디야.

누군가 상소리를 했다.

에해야디야, 상사디야.

사람들은 뒤를 받았다. 하나 둘 사람들은 일어섰다. 양 팔로 서로서로의 어깨를 둘렀다.

에해야디야, 상사디야.

에해야디야, 상사디야.

사람들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