숟가락 여섯

 

 

애들은 자라서 객지로 나가고

당신과 나

둘만 사는 집이라

숟가락 두 개, 젓가락 두 매

이렇게 수저통에 넣어 두면 되는데

그래도 섭섭하여

애들 셋과 사위 하나를 보태서

숟가락 넷과 젓가락 네 매를 더

수저통에 꽂아 두었다

어제는 큰 딸과 사위가 왔는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저녁도 먹고 늦게까지 있다가 잤다

아침에 설거지를 하면서 보니

설거지통에 숟가락 여섯이 다 담겨져 있었다

딸과 사위 왔다고

이것저것 음식을 장만하고 먹으면서

그 여섯 숟가락이 다 쓰였던 것이었다

큰딸 내외만 왔었는데

실은 우리집 여섯 식구가 다 와서

분주히 지냈던 것 같았다

 

 

 

 

 

 

 

 

 

 

 

 

 

도리사(桃李寺) 지나는 길

 

 

누워있는 당신은

측은도 하다

코 고는 당신은

더 안돼 보여

눈물도 한 방울

훔쳐보는데

국도 25호

도리사 지나는 길에

누워있는 당신만 같은

그런 산을 본다

깨어 있을 땐

강짜만 부려도

누워있으면

측은한 당신

그 누워있는 저 산이

당신만 같다

 

 

 

 

 

 

 

 

 

 

 

 

 

당신이 신발을 신을 때까지

 

 

방에서 식사를 하다가

마치고

홀(hall)로 나와서 집에 가려고

당신이 신발을 신는다

좀 먼저 나온 나는

당신의 그 큐백이 반짝이는

어여쁜 구두를 신을 때까지

구부려 도와주고 있었다

근데 홀에서는 식사 주문을 하던

전 국회의원과 시장출마예정자가 서 있었다

그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얼른 인사를 차리고

자기들대로 일정을 진행하려던 것이었는데

당신이 더뎌서

그들이 당황하고 있었다

아 그러나 나는

당신이 신발을 다 신을 때까지

걸음마를 뗄 때까지

엎드려 신발 끈을 고치며

보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청풍(淸風)에서

 

 

열 여드레 둥근 달이

금수산(錦繡山) 뒤로 다가서며

산 어깨를 떠민다

높다란 어둠이 뒤척이며 일어선다

옛날의 까만 거울 속에서

당신이 성큼 걸어온다

풀어 헤친 기인 머리

백화(白樺)나무 흰 몸 떨리는데

회오리바람

마른 나뭇잎들 모두 쓸어 올려 돌리는

먼 하늘 수묵화(水墨畵)

(청풍) 한 잔 들고 마주 앉은 그대

검은 블라우스에 뜬 달도

봉긋하다

 

 

 

 

 

 

 

 

 

 

 

 

 

다이아몬드

 

 

사람들 틈을 걷다가

유리 진열장 열고

다이아몬드 하나 산다

큼지막하고

비싸다

집은 망해도

당신은 살아남으라고

흰 목에 빛나는 목걸이

걸어준다

어디 있어도 찬란한 빛

간직하라고

 

 

 

 

 

 

 

 

 

 

 

 

 

 

꽃은 피고 

 

 

내가 아파트 저 밑 계단을

걸어서 올라 올 때

그 깨끗한 세멘 바닥에

지친 구두 뒷굽이 닿는 소리를

안다

우리 집 강아지도

침대에 누웠던 아내도

안다

그 첫 음이 들릴 때

강아지는 왕왕왕 짖기 시작하고

아내는 설거지통에 수돗물 튼다

나는 세상 끝에 갔다가도

이 발자국 소리로

돌아와야 한다

꽃은 피고

카나리아 노래 부른다

 

 

 

 

 

 

 

 

 

 

 

 

 

있을 뿐이다

 

 

나도 여기 있을 뿐이다

울릉 도동항 바라보며

있을 뿐이다

누가 이야기 했는가

이 많은 세상의 삶에 대해서

단편소설도 쓰고

장편소설도 쓰고

어떤 이는 수기도 썼는데

나는 그냥 여기 있을 뿐이다

맑은 날에는 멀리 독도까지 보인다는

망향봉 꼭대기에서

그냥 있을 뿐이다

바다는 막막하고

인생은 어디에서 왔는지

답답한데

여기 있을 뿐이다

이 벼랑

이 절벽

그대와 그냥 있을 뿐이다

 

 

 

 

 

 

 

 

 

 

 

 

 

희사함(喜捨函) 

 

 

보싯돈 희사함은 우리 아이 주머니 같다

어두운 통 속으로 주르르 밀어 넣는 돈은

아이의 용돈이지 싶다

돈도 내고

절도 하는

큰 부처님 앞은

아이와 내가 소통되는 장소이다

아프지 마라

배곯지 마라

조심조심 건너는 세상

어두운 희사함 속 지폐는 잘 날아가서

우리 아이 주머니 속에 들어 갈 것이니

땀 흘리며 일 배(拜) 이 배(拜) 백팔(百八) 배(拜)

품 떠난 자식을

다시 안아 보는 것이다

 

 

 

 

 

 

 

 

 

 

 

 

 

황간(黃澗)에서

 

 

봄이 오는 가학루(駕鶴樓)에 올라

나는 훨훨 날으는 꿈꾸며

서성거렸고

당신은 봄나물 캐고 있었었지

아이는 "가자" "가자" "집에 가자"

노래를 불렀고

 

초강천 흐르고 바람이 분다

 

아이가 자라서

집을 나갈 때까지

나는 날지 못했고

아내는 나물만 캤다

 

오늘 다시 이 누각에 올라서

절벽 아래를 바라보는데

집 나간 그 아이가 생각 나

눈물 흘린다

 

 

 

 

 

 

 

 

 

 

 

 

 

남장사(南長寺) 약수터

 

 

이 약수터에 와 본지도 오래되었다

우리 집 아이들과 같이

물 긷는 차례 기다리던 곳

지금은 한겨울

물은 바위틈 얼음 밑으로

여전히 소리 내 흐르고

낙엽들만 가득하다

아이들 모두 서울로 가고

저녁 답에 홀로 서성이는데

(인생이란 무언가)

키 큰 소나무 참나무

한참 올려다본다

그 대답은 나무들이 평생 말하지 않는

이유와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