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나무라는 짐승

 

 

 

그날은 해변에서 야자나무를 마주했다

몸뚱이는 바람에 닳고 닳아 밋밋하고

겨우 머리끝에 줄기를 만들고 열매 맺어

바다라는 우리에서 울며 육질을 키웠다

그 가히 없는 울음들이 열매 안에 고였다

 

야자나무를 닮아 거친 피부의 적도 사람들은

밋밋한 야자나무의 몸뚱이를 타고 올라가

, 열매를 따 야자나무로 엮은 집으로 갔다

붉은 사랑의 흔적 찾아 음식을 만들고

해와 달의 슬픔과 바람의 흔적을 마셨다

 

야자나무 열매를 먹은 사람들은 전봇대처럼

다시 연인과 살을 비비며 해변을 걸었다

연인은 야자나무 밑에서 사랑을 나누었고

야자열매 같은 아이를 낳아 길렀다

아이들도 열매를 먹고 마시며 자랐다

 

그날 할 일 없이 해변을 걷던 내 몸도

수없이 파도에 부딪혀 팔과 다리 잃고

정수리에 꽃 피고 열매 맺음에 서러워서

수만 번 서러워서 울고 울어

그 눈물 열매 안에 넣어 삭이고 삭였다

 

야자나무는 파도와 바람이 빚은 짐승이다

 

  

 

망고나무 아래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망고나무 아래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고국의 오래된 은행나무 같이 망고나무는

버스 정류장에서 그늘을 만들고

오가는 버스를 맞고 보내곤 했다

내 옆엔 혼혈의 젊은 필리핀인들

휴대폰에 문자를 넣어 어디론가 보냈다

서양에서 범선 타고 왔던 스페인 사람들과

계단식 논 만들어 농사짓고 고기를 잡던

아이타산족*) 누구에게 보냈는가

 

언제나 버스는 정해진 시간에 오지 않았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의 종착지는 스페인이거나

필리핀의 한 마을이나 한국의 내 고향이거나

저승의 문턱일 거다, 그곳까지 멀리

에둘러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야 했다

지금은 호흡을 가다듬고 꿈 속 헤매듯

망고나무의 잎 떨어져 싹 오를 때까지

내 몸의 푸른 피 마를 때까지

버스를 기다려야만 했다

 

젊은 필리핀인들이 내 고향에 전파를 보내

버스를 당겨오고 있었다

 

 

 

*) 필리핀 루손 섬 북부의 토착민족 중의 하나임





내 마음의 태풍

 

 

 

그야말로 태풍 전야다

남태평양 바다는 여름이면 많은 태풍을 만들어

중국과 일본으로, 한국에도 보내곤 하는데

태풍이 오기 전날은 활시위를 당긴 궁사처럼

모든 것이 팽팽한 긴장을 하고 무언가를

무너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태풍 오기 전날엔 내 마음도 서서히

그동안 모아두었던 긴장감을 한 곳으로 모아

강한 바람과 비를 만들고 회오리를 만든 후

고국의 어머니와 가족, 채소와 가축에게 보냈다

 

내 마음의 태풍은 고국을 돌아 소멸되지 않고

우주를 향하게 되었는데 먼저 달에 도착했다

달에 도착한 태풍은 계수나무가 있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달에 처음으로 비를 내리게 하자

토끼들은 신이 나 온 대지를 뛰어다녔다

대지엔 식물과 곡식이 자라나 굶주리며 살았던

토끼들에게 양식이 되었다

 

태풍은 소멸되지 않고 살아 화성에도 도착했으며

화성을 지나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에 갔다

내 마음의 태풍은 영원히 우주 속에서 살아

평화와 안녕의 메신저가 되어 모든 별을 향했다

 

 

  

 

혁명가의 가족사진

 

   1928년 공산 혁명가였던 박헌영 가족이 찍은 사진을 보았지요. 난 그것을 본 순간 엉뚱하게도 박헌영의 첫째 부인 주세죽의 미모에 눈길이 갔는데요, 일제하에서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여인은 서양식 정장을 했고 포즈도 오늘날과 다르지 않았지요. 사진의 내용을 모르는 이에게 요즘 찍은 누구 가족사진이라면 믿을 것도 같았어요.

 

 그 사진은 기구한 여인의 운명의 시작이었지요. 공산주의 운동을 같이 하다가 만난 박헌영과 결혼했으나, 얼마 후 남편과 같이 일경에게 붙잡혀 감옥엘 갔지요. 혁명가의 가족은 감옥에서 출소 후 소련에 도착하자마자 그 사진을 찍었지요. 두 혁명가는 사진을 찍으며 혁명의 전의를 불살랐을 테지요. 소련에서 공산주의자 양성학교를 마치고 남편과 상하이로 가서 공산당 활동을 하던 중, 남편이 일경에 체포되어 행방이 끊기자, 남편의 친구였던 이단야와의 재혼, 이단야의 죽음과 소련 유배지에서의 고단한 생활, 그리고 박헌영이 있는 북한에 가려했으나, 소련 정부의 불허로 이국땅에서 머물러야 했던 일들이 빠르게 지나갔지요

 

 자신과 전 남편이 그토록 원했던 공산주의 국가 북한에서, 박헌영이 미국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수감된 사실을 알았고, 박헌영의 구속으로 인해 딸의 안전을 위해 딸을 찾아 모스크바에 가던 중 폐결핵으로 죽어야 했던 운명을 미리 알았던 신을 난 저주하고 싶었지요. 역사를 되돌려 그녀를 살려내고도 싶었지요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딸과 함께 찍은 사진 속, 내 또래 중년 여인의 향기를 미치도록 맡고 싶었지요. 한 알의 약도 되지 못한 모든 이데올로기를 바다 속으로 던져버리고 부부를 환생시켜 세상에서 가장 단란한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싶었지요

 

 

 

  세온도(歲溫圖)를 그리다

 

 

  추사(秋史)가 유배지 탐라에서 세한도(歲寒圖)를 그렸을 무렵, 난 필리핀 루손섬1)에서 세온도(歲溫圖)를 그렸다 세한도의 소나무 대신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망고나무와 파파야나무 그려 넣고 초가 대신 바파이쿠보2)를 그려 넣었다 그가 세찬 바람과 눈 내리는 탐라에서 독한 술 마실 때, 난 바닷가 카페에서 차가운 맥주 마셨다 추사가 그림의 소나무처럼 변치 않는 기개를 바랬으나, 난 열매 맺어 가난한 나라의 사람에게 주는 나무들의 풍요로움을 간절히 원했다

 

  추사와 난 따로 기나긴 겨울과 여름을 지내며 고독했다 그랬다, 언제 어디서나 유배자여서 고독했다 살아가며 가슴에 섬 하나씩 품고 있는 거였다 섬은 때로 고립되고 모든 인류가 더불어 사는 곳이 되기도 했다 나는 잘사는 나라를 처절하게 원하고 추사는 따뜻한 나라를 목숨보다 원했던가

 

추사는 세한도를 그리며 가슴속엔 세온도를 그리고 있었다

 


 

1) 루손섬 : 필리핀수도 마닐라가 위치한 섬

2) 마파이쿠보 : 필리핀의 전통 가옥

 




수빅영화관*) 앞에서

 

 

 

수빅영화관 밖에서 서성거렸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한 생을 그대로 묵인하는 것,

끝까지 생을 묵인하지 않으려

오지 않을 사람 기다리다가

수억 년 동안 살아 온 바람을 만났다

 

바람은 내가 죽거나 영화관이 사라져도

또 누군가의 입술에 키스하며

은밀하게 사랑을 나눌 거다

당대 사람들은 죽어도 그 후손들과 사랑하며

그들을 영화관 안으로 등 떠밀 거다

 

끝내 바람으로 사라질 필리핀인들 몇이

사랑을 마음에 품고 안으로 들어갔다

몇은 밖에서 누군가를 계속 기다렸다

영화관 안에서 해골들이 서로 손잡고

구름 되어 사라질 영화를 보다가 사라졌고

바람은 내 등도 세차게 밀었다

 

내가 밀려들어 간 곳은 얄타미라 동굴,

동굴 안에서 지금까지 벽화를 그려 왔던

해골들과 인사하고 함께 벽화를 그렸다

내가 그린 벽화를 바람이 지우면

해골이 되어 저승을 떠돌다 되살아나

다시 그리기를 되풀이했다

 

내가 벽화를 그리는 동안 수천년 된 박쥐들은

수 없이 날아다녔고

 

 

*) 필리핀 수빅시에 있는 영화관 이름






다호리*)에서 밭을 일구다

 

 

 

벚꽃이며 진달래가 핀 다호리에서

이천년 전의 사람들이 무덤을 나와

밭을 일구고 씨 뿌렸다

노인들은 산에서 진달래를 따

술을 담갔으며 손자들을 돌봤다

 

대장장이는 청동 검을 만들었으며

농사에 쓸 삽과 괭이를 만들었다

여자들은 머리에 진달래 꽂은 채

아이에게 젖 먹이고 밥을 지었다

 

지배자는 철검 차고 부하들과

낙동강과 마산만을 시찰하며

배로 드나드는 중국인과 낙랑인을

보살피고 객주를 마련해 주었다

지배자의 아버지 널무덤엔 철검이며

청동검, 부채, 거울, 붓을 넣었다

 

이천년 전의 사람들이 환생하여 그 땅에

주말농장을 일구어 밭을 갈았다

아이들은 휴대폰으로 다호리의 모든 것을

검색하고 사진을 찍어 저 세상에 내보냈다

 

다호리엔 고분이 있고 주말 농장이 있다

 


 

*) 경남 창원시 동읍에 있는 마을 이름. 1980년 이후 선사시대 유물이

   대량 발굴 되고 있다.





죽음 또는 영상

 

 

 

모두 떠났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노래는 끝났다

좋아했던 가수는 스스로 죽었고

조금은 위안이 됐던 정치지도자도 스스로 죽었고

절친했던 노동시인 형은 술병으로 죽었다

 

지금 남은 것은 그들이 남겨놓은 영상뿐이다

가수는 노래공연 장면과

정치지도자는 청와대에서의 집무 장면을

노동시인은 시낭송 장면을 남겨놓았다

 

난 조시(弔詩) 몇 편으로 그들 죽음을 애도했으며

가끔씩 그들의 영상 보며 흐느꼈다

그들이 남긴 노래하며 살아있음에 안도했고

죽어 고인돌이 된 그들 몸 위에

일상의 욕심으로 만든 내 육체의 돌 얹었다

 

추억이 깊으면 은하수가 될까?

내 추억의 힘이 우주에 흩어진 그들 별에

도착해 그들을 만날 날은 언제인지

내 사랑이 완성되는 그날들*), 그날들인지

 

그날들은 별들을 만나러 떠나는 날이다

 

 *) 고 김광석 가수의 노래 제목인 “그날들”을 인용함





K시인에게

 

 

 

망고가 주렁주렁 달린 망고나무 그늘이 짙습니다

난 그 그늘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 고국의 모든 강산에는 온통 눈으로 덮였고

나무들은 앙상하고 소나무만 푸르게 서 있겠지요

청년 시절, 우리는 겨울만 되면 무언가에 아파했고

눈 덮인 강가를 걸으며 문학을 얘기했지요

 

때론 봄이 아득함에 대한 안타까움이며

분단된 나라와 야근에 시달리는 누이들 떠올리며

찬 소주를 새벽까지 마시고 노래하며

원고지의 빈 칸을 밤새도록 채워 넣곤 했지요

오지 않을지도 모를 사랑 찾아 걸었으며

사랑이 너무 아파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지금 고국의 들판엔 바람이 가득이 살겠지요

사람들의 마음에도 바람이 살아 겨울엔

허전한 마음이 더 자리하고 있겠지요

또한 고국은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예전의 누이들은 청소 일과 식당에서 일하다

정규직을 외치며 차가운 거리로 나섰다지요

 

겨울이 없이 여름만 지속되는 적도의 나라에서

따뜻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죄 짓는 것 같아

망고나무의 풍성함이나마 바람에 실어 보냅니다

지금도 겨울이 오면 잊지 않고 강을 찾아

원고지에 뭔가 빼곡하게 채워 넣고 있을 당신을

이국에서 또렷하게 생각하며 지내겠습니다

 

 

 

 

 

수빅박물관*에서 조선인을 만나다

 

 

 

스페인 군대가 필리핀에 상륙했을 무렵

일본 군대는 조선을 침략하였다

필리핀인들은 이내 패하여 조약을 맺었다

조선은 이순신, 권율 장군과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일본 군사와 끝까지 싸웠다

조선의 이순신은 전쟁에서 승승장구했고

스페인 군사는 필리핀인에게 피를 섞었다

조선의 논개는 남강에서 일본군 장수를

품고 뛰어내려 절개를 지켰다

 

태평양전쟁에서 한국인은 일본군과 싸웠고

필리핀인은 미국과 함께 일본군과 싸웠다

전쟁 중 수만 명의 희생이 있어서야

한국과 필리핀은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었다

해방이 되어서도 두 나라 사람들은

독재의 칼날에 소리죽여 살다가 끝내는

광주와 마닐라에서 독재를 무너뜨렸다

 

제국주의에 희생당하고 독재에 억압받다가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고달프게 사는 지금도

한국은 여전히 두 쪽으로 갈라져 있고

필리핀은 여전히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

 

  

 

*) 필리핀 수빅시에 있는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