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詩를 찾아서

 

 

윤 임 수(시인)

 

1. 고석근의 詩는 사람이다.

 

고석근의 시를 보면서 시는 무엇일까? 내게, 우리에게 시는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내게 시는 생활이었다. 질곡의 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시는 내 지난한 삶의 버팀목이었고 뒤를 돌아보면서 앞날을 똑바로 열어가게 하는 큰 힘이었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아픈 나와 슬픈 우리가 있었다. 나는 내 시가 나처럼 외롭고 그늘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기를 바랐다. 표현 방법은 약간 다르지만 고석근의 시도 그런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그가 꿈꾸는 시의 세상은 훨씬 넓다. 100편이 훨씬 넘는 시를 통해서 그는 시가 세상에 대한 관심이고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에 대한 세밀한 반성이고 가야할 길을 생각하는 염원이며 철저하게 올바른 우리 모두의 생활이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과거의 추억도 단순하게 지나간 일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문이다. 그 모든 것을 통틀어서 고석근이 생각하는 삶은 사람이다.

 

산림浴 일광浴 해수浴......

나는 사람浴을 하고 싶다

 

- <사람浴>전문

 

이 시를 통해서 그는 자신의 전부를 밝히고 있다. 세세하게 하나하나 끄집어 나열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몸을 맑게 해주는 산림욕도 좋고 밝게 해주는 일광욕도 좋다. 더위를 씻어주는 해수욕도 좋다. 그러나 진정 그가 하고 싶은 것은 사람浴.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진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으며,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 사람浴을 몇 번 읽다 보면 ‘사람 욕’이라는 느낌도 든다. 살면서 욕 한 번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억압에 대하여, 폭력에 대하여, 비굴에 대하여, 외면에 대하여 그도 강하게 욕을 하고 싶었을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석근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뱉는 욕설도 ‘사람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나와 네가 만나는 우리들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그의 생각은 <참회록>에서도 잘 나타난다.

 

나를 스쳐간 사람들은

다 베었다

나를 다 보여주었는데도

그건 진정한 내 속이 아니었다

그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속은

진정한 내 속이 아니었다

그들의 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온 몸으로 운다

그들에겐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 소리 없는 울음

이제 나를 녹이며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말없이 다가가

그들의 살갗에서

찰랑거리고 싶다

-

 <참회록 - 얼음의 자서전>전문

 

이 시에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말은 울음이다. 그렇다, 그는 “온 몸으로 운다”. 날카로운 자신에게 베이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울고 진정한 속을 보여주지 못한 마음이 안타까워 또 운다. “그들의 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하는 자신이 슬퍼서 소리 없이 운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진정성의 세상. 그는 그들 모두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다가가서 살갗을 맞대고 찰랑거리고 싶다고 말한다. 아픔이 없는 삶이 있을까? 우리 모두는 나로 인해 상처를 입은 너 때문에 아파야 한다. 그렇게 아파하면서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다. 고석근은 간절하게 그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2. 고석근의 詩는 관심이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기에 당연하다 하겠지만 고석근의 시는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관심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출발하여 아이들에게로 이어지고 노숙자들과 막일꾼 김씨를 안고 누 떼와 황조롱이를 거쳐 상처와 평등과 소망으로 확대된다. “밭고랑에 하얗게/웅크리신 어머니”(<어머니 생각>)와 “절대로 보여 주실 수/없었던 속내/묵묵부답으로 지켜오신”(<아버지 무덤에>) 아버지로부터 출발한 그의 관심이 “이 세상이 신기엔/너무 낡아버린 몸”(<노숙자들>) 으로 신발처럼 어지러이 널려 있는 노숙자에게 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모두 슬프고 안쓰럽기 때문이다. 가슴 짠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안타까움에서 멈추지 않고 슬픔과 안쓰러움이 함께 손을 잡고 서로를 다독거리며 일어나는 세상을 꿈꾼다.

 

저 먼 별에게 말할 게 있으면 네 곁에 있는 아주 하찮은 별에게 말하렴 별은 별끼리 마음이 통하니까 네 말을 전해 줄 거야

 

- <소망>전문

 

그가 생각하는 함께 하는 세상은 “아주 하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마음이 통하는 세상이다. 멀리 있는 높은 이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낮은 현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다. 그렇게 낮은 모습들이 마음을 모아서 더 나은 세상으로 가자고 그는 말한다.

청미천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코가 맹맹했다 강피리 한 마리가 손 사이를 미끈 빠져 나가고 물방울이 튀어 올라 눈에 들어 왔다 와하하하 웃음이 물결 반짝이며 멀리 멀리 퍼져 나갔다

 

그렇게 웃으며

그는 철근 건조물 옆에 서 있었다

 

- <노가다 김씨>전문

 

낮은 사람들이 모이면 별 것 아닌 것에도 웃음이 나온다. 막일하는 김씨는 강피리(버들치) 한 마리를 잡으려다 놓치고 튀어 오른 물방울만 잔뜩 맞았지만 물결이 반짝이도록 건강하게 웃는다. 그렇게 밝은 웃음이기에 철근 건조물 옆에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고석근이 많은 관심을 통해 꿈꾸는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닐까? 낮은 곳으로 향하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있어 내가 편안해지고 있다.

 

3. 고석근의 詩는 반성이다.

 

고석근은 이렇게 세상 속으로 따뜻하게 다가서는 사람이기에 반성도 참 많이 한다. 하기야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자가 어찌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고 마음 깊이 품을 수 있겠는가? 그는 형식도 없이 꾸밈도 없이 스스로를 세상에 내어놓고 늘 바로잡고자 노력한다. 그런 모습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했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먼저 나타난다.

 

너에게 나를

막무가내 구겨 넣으려 했었다

너는 늘 만신창이로 떠났다

 

- <로그인 - 입력오류>전문

 

자신의 신념이 아무리 올바르다 해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반감을 사게 하고 반발을 가져올 뿐이다. 고석근은 한때 그러했던 모습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있다. 그러면서 “늘 만신창이로” 떠나간 너를 안타깝게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진솔한 뉘우침에 돌아오지 않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만신창이로 떠난 몸이지만 기꺼이 돌아와 어깨를 걸고 진정한 우리가 되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이렇게 속내를 드러내놓고 다시 추스르는 것이 고석근 시의 힘이다.

 

나도 모르게 다 풀려버렸다

꽁꽁 다잡은 마음

 

- <봄>전문

 

반성 시의 한 대상이 외부에 있다면 다른 한 대상은 내부에 있다. 고석근은 <봄>이라는 시를 통해 꽁꽁 다잡았지만 어느새 풀려버린 자신을 나무라고 있다. 이 시를 통해서 그의 어떤 마음이 다 풀려버린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그의 시와 삶의 궤적을 볼 때 “다잡은 마음”이 바르고 당당한 세상을 향한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또, “다잡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다 풀려버렸다”고 진술할 수 있는 그의 마음이 내 믿음의 또 다른 근거이다. 솔직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건강한 모습을 나는 믿는 것이다.

 

4. 고석근의 詩는 생활이다.

 

고석근은 의도적으로 시를 만들지 않는다. 그저 살아가면서 느낀 생각을 토해 놓고 평소의 신념을 풀어놓을 뿐이다. 그래서 시가 깔끔하지 못하다고 탓할 것인가? 미사여구의 아름다운 문장이 부족하다고 나무랄 것인가? 고석근 앞에서는 시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식의 문예창작 강의실 말씀일랑 제발 버리시기 바란다. 나는 색조화장으로 한껏 치장한 시보다 순수하게 맨 얼굴을 드러낸 시를 더 좋아한다. 거기 순수함이 있고 진정함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삶이 온전하게 담겨 있다면 금상첨화일터! 이제 그렇게 삶을 담은 그의 생활시를 따라가 보자

 

백지장에 베일 때가 있다

상처를 지그시 누르고

그를 보면

그는 속도 없다

그저 얇디얇은

하얀 몸이

그의 전부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

모두 백지 한 장이다

 

- <상처>전문

 

누구나 살아가면서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그도 그렇다. 그는 어느 날 종이의 한 모서리에 손을 베이고 나서 그동안 입었던 상처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상처를 준 사람들이 종이 한 장과 같이 별다른 뜻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종이와 사람은 다르기에 사람에게 받은 상처도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석근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무한다. 삶의 단편적인 모습에서 좀 더 넉넉한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 고석근 생활시의 특징이다.

 

낚시터 매점에서 막걸리를 한 병 사자

사내가 재빨리 열무김치 한 종지를

쟁반에 받쳐 내준다

길쭉하고 푸릇한 열무김치

덥석 받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쭈뼛쭈뼛 받는다

파라솔 밑에 가져가

물비린내를 맡으며

막걸리를 들이킨다

고요히 앉아 말 없는

낚시꾼들

이따금

낚시 바늘에 꿰인

물고기들만 파닥댄다

햇살에 生을

반짝이는 것들

열무김치를 잘근잘근 씹는다

 

- <낚시터에서>전문

 

고석근은 막걸리를 사면서 매점 주인이 건네주는 열무김치 한 종지도 덥석 받지 못한다. 그러나 조용히 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그 사내가 건네준 열무김치를 잘근잘근 씹을 줄을 안다. 매점 사내가 따스하게 건넨 마음을 고석근은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이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또, 그런 생활시가 지금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고석근을 생활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5. 고석근은 생활시인이다.

 

나는 고석근이 시를 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가 원고 한 묶음을 보내오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원고를 읽으면서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계속 교차했다. <노가다 김씨>처럼 환한 웃음을 만날 때는 덩달아 밝아졌고 <봄>을 읽을 때는 내 마음도 풀린 것은 아닌지 속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사람浴>앞에서는 내가 과연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나마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한참을 머물렀다. 내 마음의 눈길을 오래오래 잡아둔 고석근의 시는 생활시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시인이기보다는 참 좋은 생활인이기를 감히 바란다. 그래야 더 좋은 생활시를 쓸 수 있을 테니까. 그가 생활인으로서 꿈꾸는 바르고 당당한 세상에 나도 한 발을 가만 들여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