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방

 

드럼통 속 이글대는 장작불이 불똥 튀기듯

오늘도 허탕이란 소리 귓전을 때린다

 

칸칸이 궁핍을 들인 골목길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외쳐보지만

아무리 새벽을 밟아도

좀처럼 나아가지지 않는 발걸음이

다시 또 산(山)만한 그림자 이끌고

돌아와 녹슨 방에 메아리 되어 눕는다

 

채워지지 않을 공복으로

후미진 골목 휘우듬히 들어서면

관 같은 영점 칠 평, 어둠으로 빼곡하다

나지막한 천장을 타는 거미 한 마리

곰팡이 꽃 만개한 꽃자리에서

생의 그물을 깁고 있다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에서 쉴 새 없이

똠방 똠방 똠방

지금 누구에게 타전 중이다

 

그 무작정의 기다림 뒤로하고

삶의 덧문을 통과한 소식들만

불쑥,

들어설지 모를 죽음과의 거리를

불온하게 좁혀온다

 

가난한 부자

 

소렌토 행(行) 기차가 허름한 역에 닿자

승객들 비집고 밀려드는 손풍금 선율

헐은 내 마음 속으로 애살스레 파고드는데

폴짝, 뛰어오른 여섯 살 됨직한 아이의 손에

종이컵 하나 들려 있다

뒤미쳐서 오른 빛바랜 표정의 아비가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흥건히 풀어놓는 동안

아이는 여행객만 찾아들어 절절하게 눈 맞춘다

좁은 보폭을 따라 손풍금소리 가늘어지고

끄무레한 하늘이 몸을 풀어

차창에 빗줄기들 사선을 그어댈 즈음

기차가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에

아이의 손 낚아채 하차하는 아비의 뒷모습

타지도 않을 기차에 오르고

다음 기차를 또 기다리겠지

세상의 어둑한 모퉁이를 표류하는

낮별 같은 가난한 부자의 하루가

구겨진 종이컵에 담겨

비 젖는 레일을 붙잡고 있다

 

 

그 여름날의 올갱이

        

          

홈골도랑* 헤집으며 종일 멱 감던

동네 조무래기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갈 즈음,

울긋이 불긋이 노을 지펴

안산 서쪽 능선 너머 꽃물 들이면

함지박만한 궁둥이들 도랑을 다시 채운다

오금에서 반 뼘쯤 살풋

드러난 허벅지에 휘우듬히 감겨드는 노을빛

저녁 비린내 곰실대는 살진 올갱이

소쿠리 그득 채워지면

사위(四圍)는 어둠에 그들먹해지고

저녁 짓는 연기 허공을 늘이고 있다

된장을 뚝 뚝 풀어 끓이는 올갱이국 냄새

싸리울 넘어 골목골목 쏘다니다

논둑길 가로질러 마실을 가는지

뒷마당엔 멍석이 펼쳐지고

탱자나무 가시에 쏘옥 이끌려 나와

졸깃하게 씹히는 들큰 쌉싸롬한 살점들  

근대 아욱 어우러진 해장국에

시골밥상 들썩이며 허기를 내몰고 나면 

포만감에 젖은 열사흘 달 불끈 떠올라

어두워지는 하늘가를 훔치어 내고 있다

파르스름한 올갱이 살점 같은 별들

빛의 똬리 회회 틀고 있다

 

* 홈골도랑: 충북 보은군 회남면(현재 대청호 속)에 소재했던 도랑의 이름

 

 

불통1 

                

       

횟집 수족관 뜰채로 건져 올린 건

한 마리 활어(活魚)가 아니다

신음으로 팔딱이는 한마디,

활어(活語)다 

 

부릅뜬 두 눈 부딪는

마른 허공에 대해

가까스로 아가미를 통과하는

들숨 날숨에 대해

뜯겨나간 비늘에 대해

난만한 꼬리지느러미에 대해

지리멸렬한 살점과

몸통의 남은 가시에 대해

 

생선으로 명명되는 순간

이미 내 것 아닌 목숨일 뿐

달려 나간 바다는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싱싱한 미각을 위해

잘 저며진

신음 한 접시

 

 

 

불통2

 

 

이곳에선 단숨에 숨통을

끊을 듯 끊어놓지 않는 게 법칙이라네

횟집 수족관의 뜰채가 무시로 들락거릴 때마다

똥구멍까지 치받는 죽음

근사하게 유예시켜  

혼신의 힘으로 진저리치도록

  

그 환한 형장을 빠져나오며

두 눈 부릅뜬 채 듣는

심해의 느린 뒤척임 소리

마비된 통점을 후벼파네

혼미해지는 의식

추슬러 헤엄쳐 나간들

닿을 수 없는 열망의 거처여

 

이따금

삼척 정라항 짙푸른 물결에

느긋한 시선을 푹 담그었다 꺼내며,

흐뭇한 임종을 포식하네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귀머거리들 

 

 

어지럼꽃 피었다 진다

                                     

진종일 아이는 강가에 서서

담방담방 물수제비 뜨고 있다

아이의 몸이 강물과 함께 기울면  

속도를 실은 얄따란 돌멩이  

한 땀 한 땀 수면을 깁고 

접혀 들어간 잔볕의 허리 거꾸러진다 

물수제비 뜬 자리마다 

미세한 시간차로 살아나는 동심원

그 어지럼꽃 화안하게 피었다 진다 

멈춘 시간의 문턱을 짚듯, 돌멩이

강바닥에 몸을 묻는다

아이가 던지는 둥그런 말들은

온통 강물의 꽃무덤 되어 흘러 

기다림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고

앞산이 강물 깊숙이 제 그림자 새겨 놓는데

저물도록 아이는 물수제비 뜨고 있다

불현듯 솟아오른 개밥바라기별

둥글고 얄따란 아이의 손을

오래오래 쓰다듬고 있다

물수제비 뜬 자리마다

어둠 삼키며 피었다 지는

어 지 럼 꽃

 

 

허구한 날

  

 

막다른 골목을 스적스적 돌아드는

아버지 굳은살 박인 뒤꿈치가 홍시처럼 바알갛다

 

물기 바짝 마른 아버지의 일상이

안산(案山) 기슭 늙은 감나무를 닮아

마음의 삭정이들 하릴없이 부러져 내리는데

 

능선 너머 농익은 불덩이 하나 떨어지고

담장 위 감나무가지에서 감꼭지

투욱, 몸 틀어 세상을 엿듣는지

골목이 슬쩍 몸 비트는가 싶더니 이내 고요하다

 

자박자박 보폭 좁은 어머니 발자국소리로

가는귀먹은 두 귀 곱다시 열어 둔 채

슬리퍼 짝으로 비쭉 내민 맨발 얼얼하도록

 

골목의 외등으로 선 아버지

 

 

오줌싸개

 

허청에 팽개쳐진 삼태기처럼

담벼락에 비뚜름히 세워 놓은 몽당비처럼

무서리 내려 얼룩진 자리

더 꺼칠해진 누런 소국더미처럼

아무도 눈길 주지 않아

벗겨놓은 아랫도리에서, 으슬으슬

등줄기 타고 오른 한기에

목쉬고 눈물 마른지 오래

어슬어슬 날 저물도록 

뒷문가에 세워진

네 살배기 계집아이,

 

그 막막함 불쑥 불쑥 치밀어

마흔 해 넘도록 허둥대는데

마음 자꾸 곱아오는데

 

 

길, 잃어야겠네

 

열네 살, 첫 달거리가 끝나던 날

월남전에서 왼다리 잃은 삼촌의

자전거 훔쳐 타고 내달린 적 있지

숨 가쁘게 페달을 밟으면 두 바퀴에 칭칭

햇살은 감겨들고 한달음이면 솟구쳐 오르던

언덕배기 바람보다 더 빠르게

다리를 건너고 들판을 지나 아랫마을까지

 

되짚어올 만큼만 달렸을 뿐

마을의 반경 십 리도 벗어나지 못했네

떠남과 돌아옴의 경계 그 안전선 언저리에서

가슴 졸이며 머뭇거렸을 뿐

 

밋밋한 길바닥 같은 마흔 해

 

나 이제라도 길 잃어야겠네

해묵은 페달 기운차게 밟아

사뿐히 바람을 싣고 녹슨 바퀴살에

눈부신 그리움 챙챙 감으며

당신 향한 일방통행의 길 좇아

삼천리보다 더 머나먼 세상 밖으로

나 이제부터

 

 

오후 두 시

 

 

정류장에 닿은 버스가 황급히 옆구리를 벌려

아이와 아낙을 꺼내놓고는

허리춤 추켜올릴 새도 없이 자리를 뜬다

아이는 세상의 근심 다 쓸어 담아 울상이고

아낙은 그 근심 죄다 쓸어내 주려는 듯

서둘러 아이를 들쳐 안고 길섶

산수유 노란 꽃그늘 속으로 든다

한켠에 팽개쳐진 짐 가방이 뿌루퉁하다

아이의 부끄러움 감추기 위해

뒤돌아 앉은 아낙의 등짝, 거리낌 없이 훤하다

그 부끄러움 추스를 새도 없이

주섬주섬 짐 가방 챙겨 든 모녀는 사라지고

궁색한 해우를 마친 촉촉한 자리에

수선스레 봄 햇살 무더기로 몰려와

춘곤에 겨운 목숨들 죄 깨워놓고야 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