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나누기

 

두 마리의 소가 마주 서 있다. 길쭉한 얼굴로 서로 맞대어 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맞댄 것은 입이 아니라 볼이었다. 최근에 작품집을 낸 어느 老 사진작가의 '모정(母情)'이라는 작품이다. 사진 속에는 어미 소와 송아지가 다정하게 서로의 볼을 비비고 있었다.

볼을 마주 댄 모습이 정겹다. 목을 길게 뺀 송아지와 그 키에 맞춰주기 위해 한껏 목을 움츠려 낮춘 어미 소의 주름진 목덜미가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표정 또한 정겨움이 잔뜩 배어있다. 어미 소와 송아지의 두 귀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뒤쪽으로 모아 쫑긋 세웠고, 눈망울은 감미로움에 도취되어 있는 듯하다. 그것을 보자 내 아이들과 뺨을 비벼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뽀뽀하는 것을 좋아했다. 틈만 나면 '뽀뽀' 하면서 나의 얼굴에 제 얼굴을 들이댔다. 처음에는 입과 입을 맞댔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아이들과의 가슴 벅찬 친밀감이 느껴져서 나 또한 흐뭇했다.

어느 날 부턴가 아이들은 코로 뽀뽀하기를 원했다. 내가 버릇처럼 입술을 내밀면 '아니' 하고는 코를 들이밀었다. 코로 하는 뽀뽀는 입술로 하는 것보다 또 다른 달콤함이 있었다. 한동안 서로의 코를 맞대어 비비고 나면 새록새록 情이 더 깊어갔다.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면서 아이들은 코를 맞대려하지 않았다. 그것이 유치하다고 느껴졌는지 대신에 볼과 볼을 비비는 볼 뽀뽀를 원했다. 우리는 마주하기만 하면 볼 뽀뽀를 해댔다.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인사가 '잘 잤어?'라는 말을 건네며 서로의 볼을 맞대는 일이었다. 학교에 갈 때는 물론 집에 돌아와서도 볼을 비볐다. 속상한 마음 털어놓을 때면 눈물 젖은 볼을 지그시 눌러 비볐고, 기분이 좋을 때에는 발그레한 볼을 맞대어 훈기를 느끼게 했다.

볼에 뽀뽀를 할 때마다 아이는 자신의 몸을 나의 키에 맞추기 위해 까치발을 했다. 엄마인 나도 가슴께에 머문 아이의 키에 맞추려 허리를 구부렸다. 그런 모습에서도 우리는 진하게 오가는 사랑을 느꼈다.

내가 어린 시절, 우리들 부모님은 과묵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여건 때문인지 우리들과 얼마간의 거리를 두셨다. 대신 그윽한 눈길과 짧지만 힘이 되어주는 말로 우리를 다독여주셨다. 힘든 내색이라도 보이면 '너는 잘 될 거야.'라는 말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듣던 그 말은 중년을 넘어선 지금까지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

잊히지 않는 부모님의 모습이 있다. 버스가 흔치않던 학창시절, 버스에서 내리는 마을 입구까지 꽤 먼 거리까지 나와서 서성거리시던 모습이다. 언제나 막차를 타고서야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절의 나는 버스 불빛에 비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안도감과 함께 가슴이 찡해왔었다. 결혼을 하여 일 년에 한 번 부모님을 찾을 때도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발을 딛기 바쁘게 반기시며 '지금 오니?' 라고 던지는 말씀은 더없이 편안하고 푸근했다.

승용차를 타고 친정을 오가게 된 요즘 변함없던 부모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어김없이 서 계시던 마을 입구는 휑하고, 부랴부랴 친정집 앞에 도착해서야 부모님의 구부정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마당에 내려 선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연로한 부모님을 끌어안는 것뿐이다. 부모님의 몸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기력이 약해 지팡이에 의지한 채 간신히 서 계신다. 앙상한 팔다리와 물기어린 촉촉한 눈이 애잔하다. 몸이 맞닿을 때마다 메마른 살갗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아리다.

이제 나의 두 아들도 성인이 되었다. 막내인 딸아이도 어느새 고등학생이다. 몸을 굽혀야 얼굴을 맞댈 수 있던 아이들의 키도 훌쩍 커졌다. 그러나 볼을 맞대고 비비며 나누는 정은 여전하다. 서로의 볼을 맞댈 때마다 내 키를 훌쩍 뛰어 넘은 아이에게 맞추려고 나는 까치발을 한다. 아이들 또한 나의 작은 키에 맞추려고 몸을 한껏 구부린다. 그러면서 '엄마, 왜 자꾸 키가 작아지세요.'라고 말하며 안쓰럽다는 표정이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아이들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 갈 것이다. 당연한 것이라는 듯 부모에게서도 멀어져 갈 것이다. 좋은 사람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겨날 것이다. 그때쯤이면 그들도 자신의 아이와 뽀뽀를 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입으로 하는 뽀뽀에서 코로 하는 뽀뽀를 거쳐 볼을 맞대고 비비는 볼 뽀뽀의 순서를 밟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고들빼기

 

오솔길에서 유난히 짙은 초록빛깔을 보았다. 그것은 누렇게 사그라진 풀잎 틈새에서 나의 눈을 확 잡아끌었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야리야리한 잎사귀 끝이 뾰족하다. 고들빼기였다.

언젠가 담아 본 고들빼기김치가 생각나서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 흙을 헤집었다. 손끝으로 잡아당기면 뽑힐 것 같았는데 뿌리가 끊어졌다. 고들빼기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이 박혀있었다. 두리번거리다가 끝이 뭉툭한 막대기를 찾아냈다. 한 무더기의 흙을 파내고서야 캐 낸 고들빼기는 다시 피어날 듯 싱싱하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뿌리도 오동통했다.

고들빼기는 몇 발자국 옮길 때마다 하나씩 눈에 띄어 캐내는 재미가 났다. 잠깐 동안이지만 모아 쥘 수 없을 만큼 많이 캤다. 흙속에서 캐 낼 때 입은 뿌리의 상처에서는 우윳빛 진액이 하염없이 흘렀다. 다른 식물보다 먼저 싱싱한 새싹을 틔운 것은 굵고 튼실한 뿌리의 영향도 있겠지만 눅진한 진액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끈적끈적한 진액이 손에 쩍쩍 달라붙었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진액은 금방 거무스름하게 변해서 찜찜했지만 자꾸만 마음이 일렁였다.

어머님은 말끝마다 진이 다 빠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발그레하던 얼굴빛은 희끄무레했다. 손등 위로 불룩불룩 솟아오르던 핏줄은 살갗보다 쳐져서 골이 졌다. 눈을 가까이 하고 살피지 않으면 찾는 것조차 힘이 든다.

어머님은 몸이 많이 아프시다.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서 방바닥에 앉는 것도, 일어서는 것도 어렵다. 가끔씩 찾는 집 앞의 노인정에 갈 때에도 몇 번을 쉬었다가 간다. 약을 자주 먹다보니 위장에도 탈이 났다. 그런저런 이유로 끊이지 않고 약을 찾는 어머님은 몸 뿐 아니라 마음도 편치 않다. 노심초사, 자식들 걱정에 매일같이 잠을 못 이룬다. 자식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어머님은 걱정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어머님은 외로우시다. 아침이면 가족 모두 집을 나서서 밤이 되어야 돌아오기에 아파트 넓은 집에서 혼자 있는 하루하루가 지루하다. 어머님이 생각 날 때마다 며칠에 한 번씩 전화를 걸면 전화요금 많이 나오게 될 것을 걱정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신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사람이 그리운 어머님은 곁에 있는 사람의 몸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 마주앉아 이야기 나눌 때면 나의 손이나 무릎을 연신 쓰다듬는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람 만지는 것이 좋은지 몰라.” 곁에 있는 사람을 만지는 것이 큰 죄라도 되는 양 미안해하는 어머님에게 ‘어머님이 정이 많으셔서 그래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 외로움이 나에게까지 전해져서 짠하다.

젊은 시절의 어머님은 어떤 것이든 위하고 받들었다. 뒷산도 위하고 터주항아리도 위했다. 뒤뜰의 장독은 물론 그 옆에 우뚝 선 감나무까지도 소중하게 여겨서 장독대에 그늘지는 것이 거슬려도 감나무 가지를 감히 쳐내지 못하였다.

어머님은 매사 조심스러웠지만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언젠가 담 너머 아랫집으로 늘어진 감나무 가지가 쌍동 잘려나간 모습을 보고 어머님이 불호령을 내렸다. 한마디 말도 없이 나뭇가지를 자른 아랫집 여인을 불러다가 호되게 다그치시던 모습은 여린 나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다.

시부모와 자식 그리고 부모 잃은 조카들과 두 명의 일꾼까지 부양하던 어머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밥과 새참을 해서 나르느라 바쁘면서도 이틀에 한 번 꼴로 술을 빚었다. 직접 술을 빚는 밀주를 단속하는 ‘술 조사’라는 것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술 조사하는 세무서 직원의 존재는 술을 담그지 않은 사람도 겁에 질릴 정도로 위협적이었는데 그들이 올 때마다 어머님은 무거운 술 항아리를 들어 이리저리 옮기곤 했었다.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이 세고 건강하던 어머님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픈 곳이 점점 늘어났다. 처음에는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무릎관절로 고생하는 중에 쓰쓰가무시병에 걸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있다. 몇 년 전에는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골반 뼈에 골절상을 입고 보름동안 입원을 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언제 건강했었느냐는 듯 아픈 곳이 많아졌다. 발을 헛디디거나 힘없이 쓰러질 적이 잦았다.

오솔길에서 캐 온 고들빼기를 물에 담갔다. 고들빼기김치를 담기 전에 쓴 맛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룻밤을 물속에 잠겨 있던 고들빼기는 되살아나서 잎이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있을 쓴 맛을 마저 빼려고 끓는 물에 데치자 푸른 잎사귀가 제 모습을 잃었다. 빛깔은 더욱 짙었지만 후줄근하다. 잎사귀뿐만이 아니다. 통통하던 뿌리도 부들부들하다. 건드릴 때마다 찐득거리던 진액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자신을 지탱해주던 진액마저 말린 고들빼기를 바라본다. 핏기 잃은 어머님의 지친 모습이 떠오른다. 쪼그라들어 자글자글한 손등도 눈에 아른거린다. 자식을 향한 몸부림으로 진액이 다 빠져버린 그 모습이 애절하다.

살짝 데쳐 낸 고들빼기에 맛깔스런 양념이 흠씬 배어들었다. 발그레한 것이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마지막으로 솔솔 뿌려 놓은 통깨가 도드라져 솟아올랐다. 먹음직스럽다. 그러나 나는 손에 쥔 젓가락을 만지작거릴 뿐이다.

 

 

 봄앓이

 

겨우내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스치는 연둣빛이 새치름하다. 여린듯하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얼굴을 버스 차창에 대고 뚫어지게 바라본다. 거무스름한 나무줄기에 새순이 연하게 감돌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처로이 겨울을 드러내던 나무였다. 허허로운 산속에 그저 ‘나, 살아 있다’고 벋어나간 가지만 가볍게 떨고 있었다. 흑갈색으로 짙어가는 나뭇가지를 보며 봄은 아직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겨울 추위가 유난했던 만큼 햇살이 더 강하게 내리쬐어야 한다고 믿었다. 가슴속까지 온기가 퍼질 때 웅크렸던 가지가 기지개를 켜고 새 잎을 틔울 것이라 여겼다.

버스를 타고 벌거벗은 산을 스칠 때면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가끔씩은 ‘저곳에도 숨 쉬는 생명이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애잔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불쑥 이파리가 돋아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던히도 애태웠을 나무를 생각해본다.

나무는 그간 숨 가쁘게 살아왔을 터이다. 힘겹게 새순을 틔우고 잎사귀를 펼쳤을 것이다. 앞 다투어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수없이 반복했으리라. 열매는 튼실한 것도 있었을 테고, 부실하여 가엾어 보이는 것도 많았을 것이다. 그 과정을 겪으며 나무는 진이 빠졌으리라. 앙상한 가지가 허허롭게 보인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샘솟듯 이어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다. 감미로움도 있었지만 낯설고 힘겨워서 끙끙거리기도 했다. 서로를 향하여 겨루고 버티느라 한없이 초췌해진 적도 있었다. 저마다 빛깔이 있는 사계절을 수없이 지나왔다.

계절의 흐름은 때에 따라 달랐다. 사계절을 지나는데 꼬박 일 년이 걸릴 때도 있었고 수년이 걸리기도 했다. 어느 땐 한 시간, 아니 순간이 될 때도 있었다. 때로 지루하기도 했지만 아쉬울 때가 많았다.

계절이 순서대로 오는 것만은 아니었다. 봄과 여름이 함께 오기도 했고, 가을과 겨울이 겹쳐질 때도 있었다. 더러는 여름과 겨울이 함께 와서 혼란에 빠질 때도 있었다.

무더위에 옷을 훌훌 벗어던지다가 한겨울을 만나 두터운 외투까지 덧입을 때도 있었다. 가을이 되어 풍성한 수확을 하다가 천둥번개 치는 한여름의 소나기를 만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지독한 몸살에 시달렸다.

한동안 심하게 앓고 나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비틀거렸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바로 서 보면 어느새 키가 한 뼘은 커져 있었다. 그것은 삶의 길에 알 수 없는 힘으로 작용했다.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차창에 닿을 듯 다가간 얼굴을 바로 하여 고개를 든다. 빠르게 스쳐가는 산과 들녘을 바라본다. 또렷하게 드러난 나무줄기 위에서 세상은 온통 연둣빛으로 반짝인다. 아름답다.

눈동자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을 뺀다. 시야 가득 풍경이 들어온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그림으로 만들어져 줄기차게 이어진다. 여린 빛깔은 바라보고 있는 순간에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설렌다.

세상은 기대에 차 있다. 온전히 푸름으로 덮였을 때보다 서서히 물들어가는 기쁨이 있다. 무엇이든 서서히 채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급하던 마음에 평온이 밀려든다.

차창 밖은 머지않아 초록빛 물결로 뒤덮일 것이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굳건하게 버틴 나무는 저마다 활짝 핀 잎사귀를 일렁일 것이다. 심하게 앓고 났을 때의 나처럼 한 뼘은 더 자란 자신을 신통스럽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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