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행운권이 숨어 있는 음료수 한 상자가 선물로 들어왔다. 행운권에 당첨되면 전자수첩, 그리고 1등은 외국여행권도 준다 하니 구미가 당겼다. 10병씩 10통이 담겨서 100병이나 되는데, 음료를 놓고 고민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우매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며 핀잔을 준다.

뚜껑을 따놓아 음료수까지 못 먹게 하지 말라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첫 번째 뚜껑을 땄다. 그러나 나를 향해 ‘씩’ 웃는 글자는 ‘꽝, 다음 기회에’라고 쓰여 있었다. 설마 100 병중에 하나는 걸리겠지 싶어 아예 한통을 가져다가 차례대로 열었는데, 역시나 한결같이 ‘꽝, 다음 기회에’라는 글자뿐이다. 마지막 병을 따며 남편을 바라보니, 뉴스를 보고 있던 남편도 내심 기대를 했었던지, 내 표정을 살피며 어색하게 웃는다.

요즘 웬만한 제품은 행운권을 추첨하는 이벤트 행사를 한다. 물론 행운권에 눈이 멀어 충동적으로 구매할 것이라는 회사의 마케팅 수단이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사들인 제품의 이벤트에 당첨되는 일이 종종 있던 나로서는, 공짜로 생긴 음료수에 보너스까지 있으니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마감 일자를 기억하며 하루에 한 통씩 뚜껑을 열었지만, 결과는 ‘한 병 더’라는 행운만 세 통을 얻었다. 결국, 음료수만 다시 30병이 늘어난 셈이다.

살다 보면 꼭, 뚜껑을 열어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뚜껑을 열기 전에는 어떤 것이 들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설령 눈으로 보이는 유리병 속의 음료 색깔이나 농축의 정도로 어떤 맛일 것이라고 가늠할 순 있지만, 그렇게 짐작으로 샀다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라 낭패 보는 일도 있다.

뚜껑은 외부의 유해 물질로부터 내용물을 보호하지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맛을 보존하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들어도 마개를 잘 봉하지 않으면 제품이 변하거나 숙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안에 든 것을 확인하려면 뚜껑도 잘 열어야 한다. 자칫 잘못 열게 되면 내용물이 넘치거나 쏟아지고, 정해진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원하는 맛을 얻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모든 물건에 뚜껑은 사람의 입과 같다. 뚜껑을 여는 일은 물건의 입을 여는 일이다. 물건의 뚜껑처럼 사람의 입을 여닫을 때에도 늘 조심해야 한다. 뚜껑이 제품의 맛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면, 사람의 입은 자신의 품위와 인격을 높여준다.

입은 음식을 먹어 건강을 유지하게 하지만 내면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좋은 음식이 몸에도 좋듯이 좋은 말은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 가끔 솔직한 성격을 핑계 대며 말로 상처 주는 사람을 보는데, 그건 솔직한 성격이 이유가 아니라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들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하고 산다면 인간관계는 어떻게 될까.

제 몸에 꼭 맞는 뚜껑처럼 사람의 입도 좋은 말만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입으로 하는 칭찬은 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무엇보다도 귀는 조근조근 입이 해주는 칭찬을 제일 좋아한다. 입으로 산삼을 먹는 것보다, 귀로 먹는 보약과 같은 것이 입이 해주는 좋은 말이다.

거울을 보며 다물어져 있는 입술을 들여다본다. 이제껏 내 입은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아왔을까. 살면서 입으로 한 실수 때문에 뼈저리게 후회했던 일이 나에게도 있다. 간암으로 투병 중에 계시던 아버님께 서운한 말씀을 드린 것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한이 된다. 생각해보면 마땅히 드릴 말씀이었지만, 아버님이나 시누들이 받아들이기엔 많이 서운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아버님 입장에서 생각했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후회하며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한 실수 중에서 가장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생각 없이 하는 말이다. 입이 뱉어낸 가시 있는 말은 영원히 잊히지 않으니 말이다. 조심한다고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본의 아니게 내 입도 다른 입과 어울려 좋지 않은 일에 맞장구를 쳐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는 나쁜 습관 때문에 가끔은 내 입도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때로는 내가 던진 한마디에 잠 못 이루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더 많이 침묵하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늘 마음속으로 묵상한다.

나이가 들어도 뻔뻔해지지 않고, 거칠어지지 않는 입으로 살고 싶다. 숙성을 잘 시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주는 뚜껑처럼, 내 입도 마음을 잘 다스려 얼굴에 담긴 이미지와 조화를 잘 이루도록 살아야겠다.

제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수상작

 

 

자루

 

 

튼실한 콩을 배가 부르도록 먹고 배불뚝이가 되었던 자루에서 아침저녁으로 한 움큼씩 콩을 퍼내니 허리가 구부러진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묶었다 풀었다 했더니, 얼마 전부터는 살이 내렸다. 시름시름 기력을 잃더니 오늘은 아예 벌렁 드러누웠다.

지난겨울 올케네 친정에서 무공해로 농사지었다며 검정콩을 보내왔다. 어렸을 때나 보았던 헝겊 자루에 가득 담긴 콩은 알이 고르고 반들반들했다. 시장에서 사다 먹는 콩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구수하고 맛있었다.

갑자기 부자가 된 것처럼 베란다에 두고는 밥에 넣어 먹고 콩자반을 해먹었다. 또 지인을 만나게 되는 날이면 주고 싶어 퍼 나르다 보니, 어느새 자루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며칠을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애를 태우더니, 이젠 속까지 탈탈 비워내고 늙은이의 뱃가죽처럼 쭈글쭈글하게 접혔다. 자루도 사람처럼 배가 불러야만 허리를 펼 수 있다는 것을 빈 자루를 털어 접으며 알았다.

식탐이 많아 무엇이든 배불리 먹고 그 힘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자루를 보면, 중학교 동창 Y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름방학을 하던 날, 친구들과 같이 갔던 그녀의 집은 마을에서도 한참 걸어 들어가야 하는 깊은 산골에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그녀의 어린 동생들이 흙 묻은 발로 뛰어나왔다. 기억으로는 고만고만한 동생들이 대여섯 명은 되었던 것 같다.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배가 불룩했다.

그렇다고 몸에 살이 붙어 통통한 것이 아니라 몸은 야위었는데, 올챙이처럼 헛배만 나온 것이 꼭 걸어 다니는 자루 같았다. 그 시절엔 먹을 것도 흔치 않았다. 더구나 군것질거리라곤 옥수수나 고구마, 감자가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아침에 밭에 나가시면서 그녀의 어머니가 쪄 놓고 간 감자는 이미 빈 바가지가 되어 파리가 들끓었다. 손가락을 빨며 친구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어린 동생들의 모습에서 허기진 자루를 보았다.

늘 먹는 감자나 옥수수로는 아이들의 위장이 채워지지 않았다. 한창 뛰어놀 나이니 금방 먹고 돌아서도 배고파한다고 했다. 손가락을 빠는 동생들이 친구들 보기에 부끄러웠던지 그녀가 부엌으로 들어가 옥수수를 찌고,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어 보리밥을 한 양푼 비벼왔다. 반찬이라곤 푹 익은 열무김치와 고추장, 풋고추가 전부인데 동생들의 먹는 모습은 게걸스러웠다.

서로 부딪히며 밥을 뜨는 숟가락이 닭싸움하는 것처럼 날카롭게 엉키더니 순식간에 양푼이 바닥을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우리가 먹는 양푼 앞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그만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친구는 몰려온 동생들한테 소리 지르고 머리를 쥐어박으며 창피해 어쩔 줄 몰랐지만, 언니의 무서운 눈초리도 아랑곳없이 달려들었다. 허겁지겁 먹고도 양이 덜 찼는지 숟가락을 입에 물고 빈 양푼을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망울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아이들을 많이 낳았던지. 아이러니하게도 없는 집에 형제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대부분 육칠 남매 정도는 되었지만, 친구네 집은 여섯 명의 동생이 있고 위로 언니, 오빠가 셋이나 되었으니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어린 시절 친정집 윗방에도 서너 개의 곡식 자루가 있었다. 여덟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삼시 세 끼를 먹는 쌀이 한 달에 한 가마니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의 월급날이면 우리 집 윗방에서도 소리 없는 잔치가 벌어졌다. 자루마다 포식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끼니때마다 퍼내던 쌀자루가 야위어 갈수록 어린 자식들의 위는 늘어만 갔다. 자루가 바닥날까 걱정하시던 부모님의 허리는 자식들이 다 자라도록 펴지 못했던 것 같다.

자루마다 크기가 다르듯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위장의 크기도 모두 다르다고 한다. 위장은 다른 기관과는 달리 탄력이 있어 과식하면 그만큼 늘어난다. 그러고 보면 평생 채워지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루인 것 같다.

까다롭게 음식 투정하던 어린 시절엔, 나이 들면 밥 먹는 힘으로 살아간다고 하던 말이 무슨 말인가 했었다. 그런데 이제 나도 벌써 그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된 것 같다. 한 끼라도 지나치면 금방 배가 졸아붙고 허리가 구부러진다. 축 늘어진 자루처럼 힘이 없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고 현기증이 난다.

무엇이든 잔뜩 집어먹고 엉덩이가 무거워 바닥에 주저앉기를 좋아하는 자루처럼 사람의 몸도 나이를 먹을수록 두루뭉술해진다. 중년이 된 내 위장도 펑퍼짐해져 간다. 요즘은 식성이 변해 안 먹던 음식에도 곧잘 손이 간다. 덕분에 몸이 무거워지고 전형적인 중년 여인의 모습이 되어 가는 중이다.

속 좋은 자루가 위장을 다 내놓고 누워버린 것을 보며 새삼 내 허리를 만져본다. 그가 삼킨 콩이 모두 내 허리에 와서 붙은 느낌이다. 내일은 또 허기진 자루에 무엇을 채워줄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배가 부르다는 것은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가리개

 

갈색 바탕에 금색 실로 수를 놓고 끝부분을 매듭으로 처리한 것을 보니 욕심이 났다. 병풍처럼 길게 연결되지 않고 두 개씩 짝을 지어 놓아 어느 용도에든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어 실용성도 뛰어나 보였다. 더구나 손수 수를 놓은 아랫부분이 고급스러워 가리개로 쓰기엔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사이동이 있고 나니 회사 구내식당도 새롭게 단장했다. 대부분 본부에서 내려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에 부임하는 지사장의 안목은 남달랐다. 부임인사를 마친 첫날부터 회사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열악한 환경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각 부서의 사무실은 물론이고 구내식당까지도 개혁의 바람이 일었다. 점심시간 때마다 팀별로 나가서 외식하던 것을 이젠 회사 구내식당을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가리개로 식당의 칸을 분리해 팀별 외식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였다.

인터넷과 가구점을 다니면서 며칠을 고민했는데, 한 가구점에 눈에 띄는 가리개가 있었다. 포도주 빛깔의 식탁하고도 잘 어울리는 은은한 갈색의 고풍스러운 가리개였다. 구내식당이 지하라 어두침침한 분위기였는데, 가리개를 들여놓으니 식당이 다 환해진 느낌이다. 가리개 하나로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니, 보는 사람마다 식당이 깨끗해졌다고 한마디씩 했다.

마흔을 넘기니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 것 같다. 결혼 20주년이니, 30주년이니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어떻게 그렇게 오래도록 같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결혼 20년 차가 되었다. 20주년이라고 해도 늘 지나온 기념일처럼 꽃바구니나 하나 보내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날도 더우니 밖에 나가 메밀국수나 먹자고 했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조금 일찍 퇴근한 남편이 딸아이를 데리고 나와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하고 나서 “선물 뭐 사줄까, 구두 사줄까?”라고 묻는 남편 말에 “됐어, 신발 많아!”라고 하며 일어서는데, 남편은 다른 일이 생겨 먼저 가겠다고 한다. 나도 일이 있어 딸아이를 데리고 잠시 시내에 들렀다가 집 주차장에 도착하니, 늦어진다던 남편 차가 먼저 와 있었다. 약속 있다더니 일찍 왔나 싶어 현관문을 여니 남편은 깜짝 놀라며 “아니 왜 벌써 와? 볼일 보고 천천히 오라고 했더니.”라고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은 나를 따돌리고 혼자 집에서 결혼 20주년 이벤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을 열면서 나를 따라 들어온 바람 때문에 온 집안에 풍선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큰 거실 가득 알록달록한 풍선으로 가득하고, 거실 중앙에는 하트 모양의 예쁜 풍선과 결혼 20주년을 축하한다는 플래카드도 붙어 있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얼떨떨해 있는데 텔레비전 화면에 낯익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남편이었다. 남편은 자작 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이젠 웃어요」를 낭송하고 가수 김종환 님의 「100년의 약속」을 부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엉거주춤하게 서서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딸아이가 춤을 추며 「샤방샤방」이란 노래를 부른다. 감쪽같이 나만 모르게 남편과 딸아이 둘이서 계획한 20주년 기념 이벤트였던 것이다. 남편한테 무슨 말인가 해야겠는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야속하게 자꾸 눈물만 흘렀다.

가끔 영화에서나 봤던 멋진 결혼기념일 선물을 받고 나니 입이 얼어붙어 바보가 되었다. 무슨 말이든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겠는데 엉뚱하게 내 입에선 “뭐야,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다 녹겠네!”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 말에 딸아이는 “아, 우리 엄마 정말 애교 없다. 이럴 때 다른 엄마들 같으면 감동해서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텐데.”라고 한다. 딸아이 말을 들은 남편도 기분이 언짢은지 “그러게 말이다. 너희 엄마는 글밖에 없다. 생전 말로는 표현 못 하고 글로만 쓸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하며 언짢은 마음을 서둘러 덮었다.

그랬다. 20년을 사는 동안 무뚝뚝한 성격 탓에 남편한테 애정표현 한 번 못하고 살았다. 남편도 그런 내가 늘 불만스럽다고 했지만, 타고난 성격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결혼기념일 준비를 하면서 남편도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얽혔던 모양이다. 왜 아니겠는가, 말이 20년이지 강산을 두 번 돌아온 시간을 지내면서 얼마나 많은 편린들이 박혔을까.

부부는 서로의 눈빛만 봐도 속을 안다더니 내 눈물바람에 남편의 눈가도 덩달아 발그레해지는 것을 보니 며칠 전 사들인 가리개 생각이 났다. 20년을 살았지만, 남편이 없었더라면 내 존재감은 없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남남이 만나 아등바등 얽혀 사는 동안 딸애도 고등학생이 되었고, 반평생을 산 남편의 머리에는 듬성듬성 흰 눈이 내렸다. 다른 것은 다 잘하는데 애교가 없어 여자로서는 매력 없다고 불평하던 남편도 요즘은 ‘저 여자는 원래 저런 여자지’ 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고맙다. 그런 남편의 그늘을 한없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남편은 알기나 하려는지.

말없이 뚝뚝하고 잔정 없는 내 허물을 덮어주고 가려주는 남편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아무것도 아니었으리라. 작은 며느리가 최고라고 늘 부추겨 세우는 어머님이나 시누들, 시댁의 다른 어른들한테 인정을 받는 것도 모두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남편이 옆에서 버팀목처럼 자리하고 있음으로써 내가 빛이 났다는 것을 20년을 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가리개는 물건을 가리거나 칸을 막는 역할을 하지만 혼자서는 절대로 빛나지 않는다. 놓일 자리에 맞게 놓일 때에야 비로소 빛이 난다. 가리개 하나로 회사 구내식당이 고급 레스토랑처럼 우아하게 바뀌었듯이, 내 옆에 있는 보석 같은 가리개인 남편 때문에 나는 늘 빛이 난다. 그런 멋진 가리개가 쓰러지지 않도록 나도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야겠다.

시흥전국문학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