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霧笛

 

 

쉿!

 

종일

실눈을 꿈적거리던 대보* 앞 바다안개가

삽짝 너머 넓적바위를 늘름 삼키고

완두콩 몽우리 진 남새밭 모롱이를 돌아

순비기나무 울타리를 지울라치면

 

아가야, 순비기꽃같은 니 민낯 보조개 속 애벌레가 곰질곰질

내 앞섶을 비집고 들어와

그네를 타곤 했었잖니

 

포항시 호미곶면 대보리

 

 

 

 

 

 

바람과 똥

 

죽도시장 복개된 칠성천 배수갑문에는

쇠말뚝 여남은 개가 도열해 있고

쇠말뚝 하나에 한 마리 씩 갈매기

앉아, 똥을 눈다

솟대 끝 나무오리보다 오래 곰삭은 자세

바람이 불면 풍향계처럼 일제히

바람 부는 쪽을 본다

어차피 막을 수 없는 바람

똑바로 쳐다보기나 하겠다는 걸까

 

천만의 말씀

뒷바람에 화라락

깃털 날려 똥칠하면 흉하잖아요

우리네 새대가리 깜냥으로도 낯 뜨거운

세상, 여기 앉아 조감하면 빤히 들여다보이지요

어제는 가랑잎만 바스락거려도 풍비박산

오늘은 또 무슨 바람 불어 한통속에서 끙끙

호호호, 먼산바라기 솟대 끝 나무오리도

콧방귀 뀝디다

 

 

 

 

 

 

포항중성리신라비浦項中城里新羅碑

 

낮비 종일 온 날

한잠 잘 주무시고 눈 부비니

된장잠자리 하늘 가득 날고

서산에 기운 햇무리 곱구나

 

내일 하루쯤은 톡탁거리던 봉토문젤랑 접어두고

천렵이나 하다가 비학산 위로 날아올라

성법령省法*까지 내달았으면……

 

달빛 같은 여인의 발꿈치에 채여 짤랑이는 구슬은

모단벌牟旦伐의 것

 

황토 반죽 범벅인 채로

촌집 화분받침이나 되었더라면 뱃속 편했을 걸

허벅지께에 채송화 분꽃을 기르면서

어쩌다 궁금한 물거울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가끔은 철딱서니 없는 것들을 향해

눈이나 살짝 찌푸리면 족할 것을

 

쇠손톱에 쥐어뜯긴 가슴언저리 부여안고

낮비 종일 오는 하늘 밑

그리워

 

임자 있는 것은 임자에게 되돌려주라는 말씀만

얼른 전하고는 도로 눈감아버리는

 

포항시 북구에 있는 고개, 해발 650m

 

 

 

 

 

 

삼월三月

 

어래산魚來山 북사면을 오른다

숨은 턱턱

산은 물고기처럼 가파른 등지느러미를 흔들어

제 등에 업힌 나를 내팽개치려고 안달인데

 

노루귀

 

너는 내 엄지발톱이 자지러지거나 말거나

저만치 앞에서 하얀 귀를 쫑긋거려

 

널 만나기 위해

죽자하고 발짝을 내딛는

활공滑空

 

하늘 가득 붐비는

부레, 혹은

지느러미

 

 

 

 

 

 

 

 

따개비

 

내가 살고 있는 바다는

워낙 해안선이 단조롭고

간만의 차가 눈곱싸라기만큼 적어서

말뚝을 박아 표시해놓기 전에는

물때 식별 어림도 없어

 

설령

물 나드는 어귀에 말뚝

파수막을 둘러친다 해도

납작 엎드려 들여다보기 전에는

감감해

 

밤하늘 가득 오톨도톨

산딸기처럼 돋는 별을 핥으며

간조선 위에 납닥납닥 붙어

휘파람 불고 있지

 

겉파도를 일구며 달려온 바람이

마구 손수건을 흔들어쌓고

벼랑 위 동을배곶 목장성 목책 너머

말갈기 푸룩푸룩 나부껴도

그저 휘파람만 불고 있는 거야

 

 

 

 

 

 

학달비재를 넘으며

 

바람의 옆구리를 가로질러

모감주꽃 피었다

 

나는 곧추서는 산허리를 휘어 꺾으며

급정거를 하기도 하고

아예 길섶에 주저앉기도 하였다

 

하늘은 고개턱을 모로 베고 눕고

바다는 기척조차 없는데

속눈썹 짙은 그늘이 슬퍼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랑

                          나비

                                       나비

                          나비

        나비 떼

 

바람이 허리를 낮게 구부려도

허리 곧게 펴고 달린다

황금비 노랑노랑 내리는 대동배까지

 

포항시 동해면 발산리와 호미곶면 대동배리를 잇는 고개,

‘한달비문재’라고도 함

 

 

 

 

 

 

고석사 석감미륵불의좌상古石寺 石龕彌勒佛倚坐像

 

하늘에는 구름이 누비이불처럼 깔리고

해는 해대로 뒹굴거리니

빗방울 떨어질지

볕 날지

 

오늘 같은 날에는 고석사*에나 갈까

세계에서 제일 어여쁜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우리나라에서 코스모스 꽃이 제일 깨끗하게 팔랑거리는 개울 건너

사철나무 바지랑대가 떠받친 구름차일 속으로 스며들어

도둑질이나 할까

 

신라 때 세 줄기 빛으로 와서

여태까지 줄곧 앉아 계시는 이

더러는 부끄러운 바깥세상 내다보이지 않게

회반죽 낮도깨비 분칠로 앞을 가리기도 했던 세월

그렇다고 쿨쿨 주무시기만 하셨을라구

설마하니 홱 돌아앉기만 하셨을라구

 

꿈속에선 듯 생시인 듯

버선발로 나서는 발뒤꿈치

저 산날망 따라 짚으면

그리운 불국佛國에 닿을 수 있을까

 

숨어 바라다보는 것도 너끈한 도둑질이어서

한 고개 넘으니 비 톡톡

두 물 건너니 해 쨍쨍

 

포항시 장기면 방산2리 망해산에 자리한 사찰

 

 

 

 

 

 

오리온 목장에 가다

 

너무 넓어 캄캄한 하늘 한복판에

형틀처럼 비끌어 맨

별자리

 

멀리서 깜박이는 수리부엉이 눈빛 더듬어

찾아낸 길에는 한 움큼씩

설앵초

각시붓꽃

노랑무늬붓꽃들

 

고비마다

고비도 고부라진 허리 두드리고

 

눈깔사탕 우물우물 볼 부풀리다가

꿀꺽 삼켜 시야가 확 트일 때

울먹이는

삼태성

 

별의 눈물은 얼마나 짭조롬한가

하늘 휘휘 저어

손간을 본다

 

 

 

 

 

 

통점재를 다시 넘다

 

죽장 상옥에서 청송 부남으로 넘는 고개

십여 년 전 하정*선생과 둘이 넘을 때

뗏장이 엉금엉금 길 가운데 까지 기어 나오기도 하고

아카시나무가 가풀막진 길 복판에 쭈뼛쭈뼛 서있기도 했지

68번 지방도로라는 이름이 무색하던

돌투성이길

 

새참하게 단장된 오늘을 나 홀로 넘는다

저 갈나무 황금물결 속 어디쯤 자드락길 있어

선생은 휘적휘적 가고 있을까

투명한 손 내밀어 내 어깨를 툭툭

― 어이, 퍼뜩 마시고 깨거든 가자

― 예

대답부터 하고 하늘을 본다

 

붉다, 산자락을 우려낸

진국

 

통점재,

통점痛點이란 아픔을 느끼는 감각점

도나캐나 아픔 감지하며 넘어야 제격이지

 

엄연히 다른 글자를 두고 어깃장부리며

부남 쪽에서 상옥으로 되넘으니

나른한 포장도로가 찰찰

차바퀴도 소주를 홀짝홀짝 마시더군

 

아동문학가 손춘익(1940~2000) 선생의 아호

 

 

 

 

 

 

하옥에서 달산까지

 

초행初行의 자갈길 긴 꼬랑지

떨림, 가파름, 가로 막힘

그러다가 어느 묵정밭 칡 구렁에서 까투리 한 마리쯤

날아오를 것 같은

 

내 가슴 속 어디쯤 요렇게 구불구불한 길이 있어

마치로 두들겨 펴며 달려야하는 길이 있어

흙먼지 함빡 뒤집어쓰고 내달려야하는 길이 있어

 

물 건너고 또 물 건너 자꾸 물 건너니

기어이 한 폭 나온다

액자틀 속에 그대가 쏘옥

팔각산이랑 팔짱끼고 들어앉은

 

병풍屛風

 

 

 

 

 

 

만행卍行

 

생선가시가 목에 걸렸다

목젖 뒤에서

가치작가치작

 

똥끝 타는 노루새끼

한나절

동당거렸다

 

크악

,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졌다

 

미늘 없는 직침直針으로

더 큰 고기 낚겠다고

너른 세상으로 튕겨나간 것일까

 

귓구멍도 없는 그 바늘

너불너불 해어진 내 속 찍어매려고

더 깊은 곳으로 몸피 가라앉혔는지도

모르지

 

 

 

 

 

 

 

중복中伏

 

1

 

산길을 간다

떨기나무뿐이어서

싸도토리로 쏟아지는

뙤약볕

 

맞기는 장배기가 맞는데

뻑적지근한 건 엉치라서

황토배기 산등성에서 엉덩이를

깐다

 

애― 앵

똥덩어리 떨쳐지기도 전에 왈기는

UFO

 

이노옴, 어디서 잠복하고 있다가

출수와 동시에 요격하는 것이냐

 

뭉글뭉글 뭉게구름 속에서

 

ㅎㅎㅎ 배꼽 잡는 보랏빛

칡꽃

 

 

2

 

날것

 

세상살이 갑갑궁금하여

날아 나온

 

천축국 미타산 해우암 금승공金蠅孔

금파리보살

 

 

 

 

 

퇴근

 

길 언덕에서 인부들이 청룡언월도 방천화극

장팔사모를 휘두르고 있다

망초 달맞이꽃대 토끼풀이며 억새 강아지풀까지

끽소리도 못하고

풀풀

 

짙은

초록 피 냄새

 

불현듯 튕겨 오른다, 어릴 적 훔쳐본

도살장 도부의 가슴장화에

선지

 

면도날 같은

예초기 날을 상상했던 나의 기대는

야들야들한 끈 앞에 여지없이 잘려나갔다

 

한 두름으로 말려

내장된 혀

 

시시덕거리며 참을 먹는 그들의 발치에

내가 온종일 내뱉은 말들이 댕강댕강

모가지 잘린 졸개처럼 널브러져 있다

 

 

 

 

 

얼음낚시

 

구멍을 뚫는다 꼭두새벽부터 시방서대로 칠공七空을 다 뚫고 나니 팔목이 시큰시큰 허리가 욱신욱신, 미끄덩거리는 빙판 위에서 거뭇거뭇한 물밑바닥을 들여다본다 검정말 나사말 붕어말…… 들입다 얽히고설켜 벌쭉한 동굴 입구를 가린 거섶처럼 너불거린다 도통 입질이 없다

 

또 구멍을 뚫는다 일곱 구멍을 또 뚫고 덤으로 두 개를 더 뚫었다 흘러가는 구름이 후줄근한 아랫도리를 흘깃흘깃, 오늘은 월요일, 월요일은 어디가나 휴관임을 새삼 상기시켜주려는 듯 여전히 찌는 말뚝이다

 

다시 만곡진 사타구니께로 구멍을 옮겼다 버캐처럼 낀 살얼음 걷어내고 꾸물거리는 바늘을 쑤셔 넣는다 퐁퐁 구멍 뚫린 하늘이 내뿜는 콧김, 바싹 말랐어도 흐느낄 줄 아는 갈대는 잘도 나부낀다

 

 

 

 

 

에러

 

다이아플렉스 29가 운다

웅웅 발밑을 파고드는 품이 여간내기 아니다

조심해야겠다

 

에러!

 

왜 이 놈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일까

곧 무슨 실수라도 저지를 걸 예견함인지

생뚱맞게 느물거리는 말의 비늘

심마니들은 물고기를 에러라고 부른단다

산중을 헤집고 다니는 이들이 물고기를 하필

에러라고 이름 지었을까

 

야구에서는 에러를 실책으로 순화했다니

그럼 나는 물고기보고 실책이라고 불러야 하나?

캔옥수수알처럼 흩뿌려진 별들이 물 밑바닥에서 깜빡거리고

이번에는 오래 손때 묻은 50대 찌불이 은하를 가른다

 

실책씨, 말 좀 물어봅시다

이번에도 내가 알을 까고

묵은 조상이 만세를 부르게 될는지

 

 

 

 

용사동락락龍蛇同樂樂

 

문경 가은에 가면 연개소문 세트장이 있고

삼족오三足烏 날개 펄럭이는

고구려적 안시성도 있어

 

성안 옥사獄舍에 걸린

주련柱聯

 

용사동락락龍蛇同樂樂

 

까놓고 뒹굴면

왕후장상이나 백정고리짝이나

매일반이라는

말씀

 

이거

요새도 유효한

쿠폰일까

 

 

 

 

능소화凌霄花

 

한여름 뙤약볕을 똑똑 분지르며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통곡하는

 

허리 능청능청 저승까지 잡아늘이고 천수천안千手千眼의 혓바닥 내밀어 푸른 별의 피를 핥으며 대낮에도 불꽃놀이를 한다 먼발치에서 되돌아보아도 문득 평지가 깎아지른 벼랑으로 일어설 만큼 환한 눈자위, 너를 처음 만난 날부터 눈먼 나를 짓누르고 있는 가위를 불러내어 혼꾸멍내다오

 

참, 너의 또 다른 이름은 금등화金藤花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