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해설일부

(김열규의 해설 ‘이 지독한 바다멀미, 그리고 시멀미’ 중에서)

3, 모순(矛盾)의 항로(航路).

그건 너무나 오랜 귀향일까?

인간의 시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바다를 어머니로 노래하고 또 죽음의 심연으로 노래하는 것에 길들여져 왔다. 어머니와 죽음 그것은 서로 어울리지 못할 맞수끼리일 법도 하다. 하지만 바다는 천연스럽도록, 아니면 능청맞도록 맞수 아닌 배우자로 그 둘은 더불고 있다.

권천학 씨의 바다의 비유법은 단순히 바다가 생의 거울 그리고 육상적인 것의 거울이기만 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바다에 비친 삶의 그림자 따위와는 무관하다. 바람 거친 날의 별의별 파도의 조형과도 같은 것이 이 시인의 삶의 해일처럼 또 노을처럼 아니면 안개처럼 던져진 것이다.

이 시집에서 말투, 말버릇, 말솜씨 등은 종잡기 쉽지 않다.

바다와 시인의 자아와 그리고 그 자아가 겪어온 생과 그 역정이 더불어서 더러는 지적인 더러는 정감적인 또 더러는 포악스런 또 달리 더러는 내숭스런 동휴(同携), 반역(反逆), 친화(親和), 탈주(脫走) 등을 일삼고 있다. 동시(동화), 아포리즘, 풍경의 점묘, 고백, 잔인한 비수(比首), 유혹 등등 이 시집의 담화는 다변적이고 수다스럽고 몸부림스럽다. 갖지 못한 것에 부치는 그리움, 대상 없을 피안에의 향수, 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한 응시, 상실한 적이 없는 것에 대한 추적, 새로운 개벽의 예비, 상처의 거듭된 확인, 회의(懷疑)가 가꿀 사랑, 실족이 일굴 연모(戀慕), 도주가 가져다줄지도 모를 성취·············주제별로 이미지의 목록을 만들어보자면 이토록 어지럽다.

“지옥이면 어떻고 천국이면 어떠냐, 뛰어들자, 심연의 바닥에,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미지의 것의 근저에 "뽀드렐은 그의 ‘항해’에서 이같이 노래했지만 바다는 굳이 심연만이 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이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은 보여준다.

바다에서 권 시인은 낯선 것, 없을 것, 아직도 없었을 수수께끼 등을 챙겨서 찾아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가 이미 정해진 그래서 기왕에 아주 굳어진 것으로만 회고하려 든다. 그게 얼마나 치졸한 일인가를 이 시집은 일깨워주고 있다. 과거는 오직 미지의 보고로, 광맥으로 생생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바다며 그 물살, 그 비바람, 그 비안개, 그 모래바닥, 뻘 바닥 그리고 파도에 슬리고 있는 섬 등과 함께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이 자서전적이라고 해도 과거라는 광맥의 막장에서 캐 내어오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바다란 그 파도, 그 바람, 그 구름의 그림자,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따라서 순간순간 변화할 물빛까지 모두 또 다른 광맥으로써 이 시집에서는 작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은 그 바다의 비유법으로 끊임없이 바다와의 동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 동화는 이화작용을 내몰지는 않는다.

바다에서는 세계에서는 다들 어느 것이나 다 죄, 서로 이화작용 함으로써 공존한다는 것을 이 시인은 바다와 동화함으로써 가까스로 득음(得音)하듯 득시(得詩)한 것이다.

이 경우 득음(得音)이란 이를테면 악성(樂聖)의 탄생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하여 시인은 ‘모순의 항해’를 계속한다. 아니 그것에 탐닉한다. 하나의 시는 그 물 메아리로써 전혀 반대의 소리를 되 올리는 것을 굳이 피하려하지 않는다. 삶의 궤적이, 시가 또한 그렇다는 것을 권 시인은 독배(毒杯)를 기꺼이 들이키는 사람처럼 받아들인다.

“나는 바다 위에 안식의 십자가가 서는 것을 보았다. 나는 무지개다리에 의해서 지옥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행복’은 내 운명, 내 뉘우침, 내 몸통 속의 기생충이었다.”

이것은 렝보가 그 ‘말의 연금술’에서 뇌까린 말이다. 이 경우 그가 ‘술주정뱅이’의 시인이란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내까림에서 아니면 되 뇌임에서 질서나 조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 모순과 더불어서 요동치는 것이 ‘행복’, 시 읽는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권천학 씨의 ‘바다의 시’를 읽을 때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하나의 소리가 그것과 어긋나고 그것과 뒤틀리고 그것과 어기적대는 메아리를 일으키는 그 만큼 시가 풍요하다는 사실을 즐기면 그걸로 족하다. 그 ‘모순의 항해’에서 우리들은 다만 취해 떨어지듯 뱃멀미를 앓는 것으로 시 읽기를 대신하면 된다. 그것은 필경 바다멀미이자 「초록 비타민의 서러움, 혹은」이란 시집이 일깨워 준 ‘시멀미’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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