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서사(敍事)와 성찰(省察)의 깊은 울림

- 김은령의 시, 다시 읽기

 

배창환(시인)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좀 솔직하게 말해서 재미가 별로 없거나 내가 이해하기 힘든 시를 읽는 일에 인내심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시집을 읽을 때도 일단 몇 편 읽어보고 무슨 말인지 내 능력으로 알아내기 어려울 때는 참고 끈질기게 그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그만 접어두고 마는 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지금 시를 읽는 것인지 무슨 암호문을 받아 해독하는 것인지 모를 참 묘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시가 가끔씩 눈에 띈다면 모르겠지만, 너무 많아서 이해가 되는 시가 오히려 드물다는 것이 더 문제다. 나는 중고등학교에서 청소년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그것도 시 교육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고 책으로도 묶어내기도 하는데, 아이들에게‘일단 이해가 되고 가슴에 무엇인가 울림(감동)이 남는 시가 좋은 시’라고 원론에 충실하여 가르치면서 실제로 좋은 시들을 많이 뽑아서 읽히고 쓰게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시 수업을 함께 한 아이들은 시가 참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장차 예비 독자로 커간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도 특히 재능 있는 아이들이 대학의 문창과에 진학하면 곧장‘벽’을 만나게 되는데, 문학 동아리에 들어서는 (전공 수업 시간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고약한 환경에 배겨내지 못하고 금방 나와 버리고 혼자 시 공부를 하기 일쑤다. 이런 현상을 두고 대도시와 농어촌의 환경이 빚어낸 ‘문명의 충돌’이라 하면 과연 맞는 말이 될까?

한술 더 떠서 시가 쉽게 이해되면 일단 낮추어보는 것이 요즘의 추세인 듯한데, 그 또한 나로서는 여간 불만이 아니다. 글은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것이다. 읽기 쉽고 마음에 남을 메시지나 혜안을 갖추고 있으면서 시적인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지난날 정치적 암흑기에 리얼리즘 시들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독자의 변화, 독자와 함께 가려는 데 집착해왔다면, 지금은 너도나도 독자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마치 목표라도 되는 듯 경쟁적으로 요설을 써대는 세태가 참으로 어리둥절할 정도다.

독자들은 자신의 심금을 울려줄 어떤 메시지나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 그리고 정서의 감응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들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시가 보여주는 길을 따라가 보지만 결국 그 길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면 자리를 툴툴 털고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내가 김은령의 시를 신뢰하는 것은 그가 이런 집단 유행병 같은 말장난에서 벗어나 있으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자기(自己) 서사(敍事)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이야기가 없는 관념적인 언어유희의 시는 뿌리 없는 풀과 같아서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의 시는 철저히 자신에게서 출발하여 자신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정진(精進) 중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시의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그 먹감나무 탁자가 검고 깊은 무늬로

내 시선을 탁, 한 번 후려친 후

나는 자꾸 내 발걸음의 분주함이나

시선의 두리번거림이 슬금슬금 무서워졌다

먹감나무가 저렇듯 떡 하니 제 속의 명암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건

땅 속 깊은 곳까지 헤집던 뿌리를 뽑아버리고

수수만 개의 잎을 입처럼 내어 밀어

햇빛과 바람과 빗줄기를 빨아들이던

가지들을 몽땅 자르고, 무엇보다

먹감나무였던 외피를 낱낱이 벗기어 낸 다음

제 몸통을 수직으로 가르고 난 후의 일일 것

먹먹한 빛깔인

저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후의 일일 것

- 「그게, 그렇더라고」(일부)

 

그러니까 김은령은 먹감나무 탁자의 ‘검고 깊은 무늬’를 보면서, 자기 자신도 ‘찐한 무늬 하나쯤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일은 이미 ‘아버지의 대추나무’(첫 시집,『통조림』)에서, 그러니까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다. ‘아버지의 뜰에 뿌리 내린 굴곡 많던 대추나무는/ 삶의 끝에서 인장(印章)의 재료로 생을 바꾸었’는데, ‘그저 무심하게 피우는 그 꽃은 드물게 순하고 깨끗하여/꽃 진 자리마다 남김없이 땡글땡글한 열매를 달아내’기에, 아버지는 ‘굵고 큰 열매를 바라는 마음에/ 긴 작대기로 때려서 서둘러 열매들을 털어내었지만/ 묵묵히 자신의 소신대로 자잘한 열매만 달’았을 뿐, 아버지가 ‘대추알들을 작대기로 후둘겨 패서 거두어 들’일 때마다 ‘나무는 조용히 자신의 나이테를 조이며/ 제 살을 단단히 다지더’란 것이다. 그것이 결국 ‘그 누군가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인장의 재료로 입관’되어 ‘어느 가계(家系)의 명징한 인장(印章)으로 남’는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화려하고 찬란한 큰 꽃 하나 피워보겠다’던 그의 생각을 수정한 것이다.

나는 시인이 끈질기게 자신 또는 자신의 삶을 대상으로 성찰하고 겸허하게 자신의 ‘무늬’를 만들어 나가는 진지한 자세야말로 참으로 귀하고 드문 것이라 생각한다. 김은령의 첫 시집과 이번에 묶어내는 시들을 읽어보면 이런 일관된 흐름을 읽을 수 있어서 일단 믿음이 간다.

그 중에도 나는 선명하게 자기 서사를 담은 시들을 좋아할 뿐 아니라 높이 평가하는데, 가령, 첫 시집 『통조림』에서 보이는「송약국에 가고 싶다」,「김무희의 아내」라든가,「그 여름의 삽화」,「노을2」,「하령고개」같은 시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시들이다. 이 시들은 분단, 기다림, 가난, 사랑과 죽음 등의 사연을 담고 있는데, 시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가 헤쳐 나왔던 질곡의 시대에 겪은 이야기이면서 시인의 어린 시절 가족사가 따뜻하고 슬픈 언어로 그려져 있다. 시인이 ‘사라져 간 것은 아름답다’(「노을2」)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기억들이 사라진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가슴에 살아남아서 시인을 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은령의 시들에 대해서 김용락은“개인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뿐 아니라 그를 에워싸고 있는 사회적 환경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대응하고”(첫 시집 발문,‘따뜻한 윤리주의자의 진정성’)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평가하면서,“산업화, 근대화로 파편화되고 단자화 되기 이전의 삶에 대한 희구”가 들어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제2시집에서는 시인의 고단한 삶의 현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세상을 보고 사물을 접하는 눈이 훨씬 깊어지고 섬세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좀 더 철저히 자신을 들여다보려는 의식적인 노력과, 때를 같이 하여 악화된 생활경제의 여건이 한몫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시인은 어떤 순간에도 자기 분열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에, 자신을 깨트리고 껍질을 벗겨내는 일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철저하여 마침내 어떤 깨달음에 도달하고야 만다.

 

치자꽃나무가 죽었다

내가 약간의 풍요와 약간의 오만과

약간의 관계들로 이루어진 숲에서

간벌 되어

단칸방으로 밀려날 때

얼렁뚱땅 화분으로 옮겨져

따라온 치자꽃나무

죽었다!

저 나무 화분 속 팽팽하게 뿌리 뻗어

눈 오는 날에도

빳빳하게 푸른 잎 세우고선

살아있다고 대들던 놈이었는데

나 또한 저 놈의 눈치 보느라

살아있음에서 부동의 자세로 견디어야 했는데

이젠 저도 인정한 거다

뿌리의 집이었던 화분이 실은

뿌리의 감옥이었다는 거,

깨트릴 수 없다면, 벗어날 수 없다면

결코 대지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 「법칙」(전문)

 

시인이 지난 날 ‘약간의 풍요와 약간의 오만과/ 약간의 관계들로’부터 ‘단칸방으로 밀려날 때/ 얼렁뚱땅 화분으로 옮겨져/ 따라 온 치자꽃나무’가 죽었다. 다른 나무들은 다 놔두고 치지꽃나무만은 두고 올 수 없어서 가져왔는데, 그래도 한때는 ‘황토 도기 큰 몸피를 영차, 들이밀고/ 빳빳하게 푸른 잎 세우고 있’(「훈육당하다」)던 그 치자꽃나무가 결국은 죽어버리자 시인은 실의에 빠지고 마는데, 곧 ‘뿌리의 집이었던 화분이 실은/ 뿌리의 감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자신이 몸담았던 ‘약간의 풍요와 약간의 오만과 약간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현실 역시 존재의 감옥이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닫는다. 마침내 시인은 ‘깨트릴 수 없다면, 벗어날 수 없다면/ 결코 대지에 가 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치자꽃나무가 화분(감옥)을 깨트리지 못했기에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듯이, 시인이 말한 ‘약간의 풍요와 약간의 오만과 약간의 관계’, 즉 그것들이 존재의 감옥으로 삶을 규정하면서 옥죄어 오고 있었던 것을 시인이 깨달은 것은 아닐까?

1부와 2부의 많은 시들이 그런 시인의 인식을 구체화한 시들로 구성되어 있는 듯하다.

 

아이는 자라서 철이 들어갔는데

후회막급인 결혼, 기념하라고

정례인 양 받던 꽃바구니 대신

백세주 두 병과 쇠고기 한 덩이

택배로 왔다

원수끼리 마주 앉아

짠-, 술잔 부딪치고

고기 한 점 입안으로 서로 넣어 주는데

꽃보다 먹이!

게걸스레 열리는 목구멍

- 「축생일기」(일부)

 

 

그는 나에게

빵과 장미에 대해서 강설했다

빵으로 배가 부른 자들의

장미에 대해서

배고픈 자들의 장미와 빵에 대해서

나는

아침 T.V뉴스에서 본

신품종 장미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한 송이를 이룬 겹겹의 꽃잎파리마다

색깔이 다른 장미

생장기간 동안 줄기에 주입되어 지는 색소와

똑같은 색깔이 되어야만 상품이 되는

무지개 장미꽃에 대해서

애써, 심드렁한 척 이야기했다

그에게 있어

언제나 허기진 간격에서만 존재하는 빵

그 빵보다 더 절실하다 믿는 붉은 장미는

이 시대에선 한물간 상품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 「오류」(전문)

 

 

긴 세월 동안 내 안으로 흘러들어 온

쓴 연애, 쓴 약속, 쓴 기억, 쓴 꿈

총체적인 쓴 삶이 담긴 낭囊, 을 버리기로 한다

품위란 말, 이젠 사치다

영혼이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 「쓸개를 버리다」(일부)

 

 

이 시들이 말하는 것이 인간에게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먼저이며, 가장 절실한 문제라는 사실인데, ‘꽃보다 먹이’라는 말이나 ‘빵과 장미’라는 표현을 통해서 구체화되고 있는, 어찌 보면 ‘생존’(먹이, 빵)이 먼저냐 ‘존재 혹은 정신적 가치’(꽃, 장미)가 먼저냐 하는 논쟁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듯싶은데, ‘꽃보다 먹이’라는 말 속에 시인의 답은 이미 나와 있다.‘배고픈 자’에게 장미가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빵으로 배부른 자의 장미’조차도 이미 하나의 장식품이 되고 유행에 지배되는 상품(무지개 장미꽃)이 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빵과 꽃’모두 물신화의 소용돌이 속에 함께 매몰되어 버리는 공허한 이 시대에 대한 풍자적 우화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 시대에 우리가 습득해 온 모든 것,곧‘긴 세월 동안 내(시인의) 안으로 흘러들어 온/ 쓴 연애, 쓴 약속, 쓴 기억, 쓴 꿈/ 총체적인 쓴 삶이 담긴 낭囊, 을’ ‘버리기로’ 하고, ‘품위란 말’, ‘영혼이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사치’라고 말한다. 빵이 없는 사람에게는 품위가 주어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의 표현 아니면 강렬한 반어로 비판한 것일 터인데, 시인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마침내는 ‘땅과 바다의 경계’에서 ‘허공으로 한 뼘만 솟구치면 되리라’ 생각하면서 ‘토말(土末)’에 서지만, 달빛 가득한 바다 앞에서 결국 현실 세계로 다시 돌아오는 극단적인 경험을 한다. (「월인(月印)」

이런 일련의 지독한 진통을 거치면서 시인은 현실의 삶의 구조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고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가난을 한동안 잊고 살다가 마침내 다시 그 가난에 이르게 되면서 ‘깡’이란 말뜻을 절실하게 이해하게 된다.

 

꼴깍, 침을 삼키는 우리 자매의 땟자국 손을 건너

다음 아이에게로 넘겨지던 시루떡 조각

하늘이 노랗고 아롱진 건

배고픔보다도 눈물보다도 쪽팔림이었는데

미끄러지며 엎어지며 내려오던 울음소리는

건너 산기슭 밭두렁에까지 닿아

호미를 팽개치고 달려 온 엄마,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임시방편으로 따 먹여 주던 버들강아지

- 「눈총」(일부)

 

 

반편인 내가 살아 보겠다고

파르르 떨 때마다 저 까마득한 곳에서

깡, 깡, 깡 우는 엄마처럼

살아오는 동안 무엇을 위해, 무엇에 의해

목울대가 눌리어 파랗게 질릴 때

내가 내미는 히든카드는 깡,

울어서, 울어서 눈물이 말라버린

내 뿌리의 마른 울음인 그 깡,이다

-「깡,」(일부)

 

 

시인의 인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명징한 사회의식으로 구체화된다. 곧 ‘패배란 죽음보다 지독한 두려움’(「투견」)이라 생각하면서 ‘그들의 명령에 따라’ ‘서로가 서로의 목덜미를 노리며’ 죽기 살기로 싸워온(경쟁해 온) 우리는 결국 ‘그들’에 의해 조종당해 온 ‘투견’일 뿐이었다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거기에는 자본과 권력의 하수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비극적인 깨달음과, 그러는 사이에 빈부 차이의 극대화와 더불어 서로가 별종(別種)으로 진화되어 가는, 건널 수 없는 강처럼 이분화 되어 온 사회에 대한 발견(「사바에서 밥을 먹다」), 그리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라고/ 가로막는 호랭이 앞에서/ 흥, 택도 없는 소리. 일갈하며/ 떡판으로 내리치고, 이판사판 죽을 각오로/ 그 호랭이 이빨 하나라도 부러뜨렸’거나, ‘할퀴던, 꼬집던, 물어뜯던, 눈 알 하나라도/ 핏발 튀게 후려쳐 주춤하게’ (「전래동화」)하지 못한 인간의 역사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관념이 아니라 자신의 절실한 경험과 명상을 통해 도출된 것이란 점이 주목할 만하다.

 

김은령은 불자(佛子)다. 오래도록 불교문예 관련 활동을 해 왔고, 지역의 진보적인 문학운동에 성실히 참여해 온 시인으로도 널리 인정받고 있는데, 이는 그 자신의 세계관, 곧 철학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고 생명에 대한 긍정과 견딤 혹은 해학의 미학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 온 것도 그의 이런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근본적으로 깨어 있고 또 깨어 있고자 노력하면서 겸허함을 깊이 체득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목청이 확 트여서 민중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는데, 그것이 시를 더욱 생동하고 높은 감염력을 갖게 한다.

 

온 몸의 숨구멍이 전부 꽃 피는 자리인

저 매화나무의 말인즉슨

상처도 고요를 지녀야 꽃이 된다는 것인데

빼앗긴 자리와 찢겨진 통증 위에

여전히 광풍이 몰아치는 여기는

아직도 고요의 바깥입니다

- 「매화나무 바깥에 서다」(일부)

 

 

아 글쎄, 그 순간 방안 가득 뻗쳐있던

그 수만 가지 알력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꼭 목련꽃 피는 소리로 들려

사람들 뱃속에 찰랑찰랑 꽃 피고, 마당 가득 꽃 피고

물결, 꽃물결 골목 밖으로 찰랑찰랑 넘쳐서는

세상도 덩달아 봄이 됩디다

피어남도 좋지만 순절도 참 괜찮다 싶데요

- 「글쎄, 목련꽃 한 송이가」(일부)

 

 

매화를 통하여 ‘상처도 고요를 지녀야 꽃이’ 됨을 보고, 목련꽃 한 송이가 스스로를 버려 차(茶)로 다시 태어나는 걸 보면서 ‘피어남도 좋지만 순절도 참 괜찮다’ 고 노래하는 지고(至高)한 몸 보시(布施), 곧 자기희생의 정신세계가 구어체 언어의 자연스런 리듬에 실려 형상화 되면서 범상치 않은 내공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오늘의 신고(辛苦)한 일상 삶을 웃음으로 넘어서는 아래 시는, 지난 날 오랜 고통의 세월을 풍자로 받아치고 해학으로 넘기는 전통 민중(民衆) 서사(敍事)의 골계미(滑稽美)가 되살아나 한껏 빛을 뿜고 있다. 좀 길지만 인용해 보자.

 

태양아, 똑바로 앉아 봐라

오늘은 나하고 철학을 한번 논해보자

야, 임마 피자만 날름날름 받아 묵지 말고

내말 잘 들어 보거래이

플라톤이 이렇게 말했다

건강한 국가를 위해서 ‘시인’은 추방되어야 한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뭐 국가까지 갈 것도 없다.

건강한 가정을 위해서 시인은 추방되어야 한다.

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아, 그리고 니체라는 양반이 말했다. 신은 죽었다!

동감한다. 아니 입증한다

여기 봐라, 니 보이나? 밑바닥이 다 닳아빠진 이것,

니가 보기에도 신은 분명히 죽었제?

그런데, 태양아 죽은 신을 부활시킬 전지전능한 자!

지금 우리 곁에 있데이, 니도 잘 알제?

 

해 종일 아지랑이 아롱거려

밥하기도 싫고, 멍 하고 싶은 날

햇살 좋다. 마당에라도 나와 봐라

빛바랜 파라솔 아래

피자 한 판 시켜 놓고는

둘이 우째 다 먹노, 식으면 맛없다며

나보다 더 반기는 견공을 앉혀 놓고

너스레를 떠는 저 화상의 낡은 슬리퍼

내일은 꼭 새것으로 사다 놓아야겠다, 생각하는

봄날 저녁

- 「그래, 그래」

 

‘신(神)’과 ‘신(履)’의 언어유희가 문맥 속에서 빚어내는 절묘함이 돋보이는 시다. 저쯤 되면 그 누구도 ‘저 화상(畵像)’의 새 슬리퍼를 사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삶과 밀착하여 대결하듯이 자신을 성찰하면서 자기 세계를 구축해 온 김은령 시의 진면목을 여기서 보는 듯하다.

 

김은령은 첫 시집 『통조림』을 내면서 주목받아 왔으며, 이번에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다. 그 동안 그는 제재의 외연적 확장 대신에 주로 자신의 삶을 대상으로 삼아 마치 대결이라도 하는 듯이, 스스로에게 ‘입혀진’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고 깨나가는 가운데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을 더욱 깊고 넓게 단련시켜왔다. 물론 쓸데없는 엄살이나 너스레를 떨지도 않았고, 자기 분열을 약간의 시적 수사로 분장하는 시들과는 분명히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이번 시집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작은 것에 들어있는 삶과 죽음의 명암을 읽어내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어 어루만지며 그 자리에 함께 설 줄 아는 생명철학이 깔려 있어서 무엇보다 든든하다.

다만 이제는 자신에게서 맞추었던 눈을 좀 더 넓고 멀리 들어서, 자신을 포함한 우리 시대의 삶의 뿌리와 원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보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질곡으로 들어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그 단초가 이미 이 시집에서 시작되고 있고, 그가 앞으로 이루어가야 할 시적인 성취는 물론 전적으로 그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그가 시인으로서 나(우리)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은 아래 시와 같은 절창(絶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불호청 꿰맬 때나 쓰는/ 굵은 흰 무명실로 꽁꽁 꿰맨 고무신 한 켤레’에다 ‘나도 모르게 두 손 가슴에 모우고/ 모니터를 향해 꾸벅 절’할 줄 아는 시인, 이런 진정성을 가진 시인이라면 우리가 믿고 기대해도 좋지 않겠는가.

어줍잖은 글, 아래 시를 함께 읽는 것으로 마무리하면서, 김은령 시인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서울 사는 오 모 시인이

부처님 오신 날 즈음해서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라는

문구가 들어 있는 안부를 전자 우편으로 보내 왔다

아내와 함께 도봉산 산행 길에 들렀던

관음암에서 찍었다는 사진 한 장도 따라왔다

현판도 주련도 보이지 않는 당우

햇살이 사선으로 비켜 가는 섬돌 위에

나란히 계신 흰 고무신 한 켤레

닳고, 닳아서 찢어진 뒤꿈치를

이제는 사라진 일거리인, 이불호청 꿰맬 때나 쓰는

굵은 흰 무명실로 꽁꽁 꿰맨 고무신 한 켤레

나도 모르게 두 손 가슴에 모우고

모니터를 향해 꾸벅 절했다

- 「접견하다」(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