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랑술랑 혹은 술렁술렁 물처럼 흘러가는 시(詩)

-임술랑 시집『상 지키기』(모아드림,2006)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03년『불교문예』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한 임술랑 시인의 첫 시집『상 지키기』가 도서출판 모아드림에서 나왔다. 경북 상주 출신인 임술랑 시인은 현재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 들문학회,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에서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고 있다.


당신 몸 위에 나는 한 마리 작은 벌레 같아서

그대의 손목

핏줄 위를 기어갈 때는 팔딱팔딱 고동치는 것만 같아서

(한 생각으론 전체를 알 수 없으니)

그러다 당신이 근지러워

몸 흔들면 떨어져

그대를 쫓아오는 어떤 발걸음에 밟히고,

툭 터진 그 짠한 핏빛을 어디 칠하리

노을 같이 부푼 내 燈

-「노을」전문.


  시집『상 지키기』맨 첫머리에 놓여진「노을」은 임술랑 시인의 시작(詩作)에 있어서 ‘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보인다. ‘당신’ 혹은 ‘그대’로 비유되고 있는 시의 중심 제재(題材)인 ‘노을’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당신 몸 위에 나는 한 마리 작은 벌레”이고,  “한 생각으론 전체를 알 수 없”다는 시적 언술로 봐서 그것을 나는 우주적 세계 혹은 생명(삶)의 전체를 상징하는 그 무엇으로 읽는다. 시적 화자는 이 노을을 보면서 “노을 같이 부푼 내 燈”불인 “그 짠한 핏빛을” 어디에 칠해야만 하는가를 묻고 있다. 그러니까 시「노을」은 시인이 이 세상과 부대끼면서 제 몸뚱이 안에 차오르는 뜨거움(불)을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쏟아내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는 임술랑 시인의 시론(詩論)을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다.


  임술랑의 첫 시집『상 지키기』를 읽으면서 나는 노자『도덕경』의 한 핵심적 내용인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떠올렸다. 시집 속의 그 시편들은 마치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다.



  “입이 비뚤어지고//코가 슬쩍 비껴//못생겼어도//비켜라//소주 한 잔//살아서 이렇게 왔느니”(-「소주 한 잔」전문.)


  “정 못살면 정선 가 살지/정선 가 뭐하노/아우라지강 강피리 잡으며 살지/뭉게구름 떠 머무는/加里旺山//그대 정 살기 어렵거든/아우라지 강피리/유난히 순한 물맛에/한 生/아까운 한 생//살아보지 그래”(-「아우라지강」전문.)


  “줄 끊어버리고/꼬리 흔들며/날아가는 가오리연처럼//올챙이 아랫도리-//저 후회없이 울어대는/깨고륵 개골”(-「올챙이」전문.)


  소주 한 잔 걸치고 베잠방이 차림으로 정선 아우라지강 강피리 잡으러 가는 자유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길을 걸어가는 자유(自游)의 모습은 바로 물이 흘러가는 그 모습이기도 한 것. 나는 임술랑의 시집을 펼쳐 읽으면서 이런 물이 흘러가는 모습, 자유(自游)의 모습을 엿보기도 했다.


  그의 첫 시집 속의 시편들은 내용이 너무 심각하거나 난해함이 없어 좋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난해하고 요설(饒舌)로 가득한 시편들을 읽노라면 어질어질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다. 독자와의 소통 불가능한 시편들이 ‘자유로운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횡행(橫行)하는 작금의 문단에임술랑 시집『상 지키기』는 소중하다. 그의 이름처럼 술랑술랑 잘 읽힌다. 술렁술렁 물 흐르듯, 바람 흐르듯 편안한 그의 시가 좋다. 내가 알고 있는 임술랑 시인의 품새 그대로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경북지역에서 시작 활동을 같이 하는 문학의 한 동료로서 나는 그의 첫 시집 발간에 다음과 같은 <표4>의 말씀을 드리면서 축하의 기쁨을 함께 나눈 적이 있다.


  “임술랑 형이 주저주저하는 그 특유의 모습으로 내게 ‘평평한 床’, 시(詩)의 밥상을 슬쩍 내민다. 맛 한 번 보라고. 평평한 무논에서 뙤약볕을 쬐며 댕글댕글 영근 벼 같은 말(言語)의 열매가 그 상 위에 소복하다. 그의 첫 시집『상 지키기』에는 기찻길 자갈밭에 싹을 틔우는 참외를 보며 생명의 경외감을, 사무실에 찾아온 쑥떡 할머니로부터 ‘얻음과 내놓음’이라는 삶의 진리를, 지나가던 길가 주인도 모르는 무덤에서 무한한 사랑을, 심지어 삶의 본질을 꿰뚫는 ‘無의 모습’들까지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이러한 임술랑 시의 보폭은 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닮았다. 이런 물의 몸짓으로 노래하고 있는 명편(名篇)「아우라지강」은 그가 처음 펼쳐 놓은 상(床)에서 슬쩍 훔쳐내어 가지고 싶을 만큼 빼어나다.”


  시집 제목인 ‘상 지키기’의 말처럼, 그 상이 우리들의 밥상(床)이든 보통의 일상의 삶(常)이든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고 실현되는 삶이 우리 모두의 꿈이다. 북핵문제와 미국FTA 등 우리 사회의 힘겨운 문제가 잘 해결되어 “평평한 무논에서 자란 벼의 꿈”이 제대로 열려지기를 바란다. 누렇게 익은 벼가 내게 눈웃음 짓던 황금물결의 상주 사벌로 다시 달려가고 싶다. (이종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