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밥벌이 때문에 칠년동안 머무는 필리핀에서

내 피부는 검어지고 체질도 많이 바뀌었다

고국에서 오십년을 지내면서 만들어진

몸의 체질은 점차 열대지방화 되었다

식사는 한국 식단으로 했으나 간식과 과일은

열대지방의 것으로 먹고 마셨다

 

고국과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은 너무 달랐다

필리핀에선 일년에 두세 차례 벼농사를 짓고

많은 과일나무 덕분에 굶는 이가 거의 없다

일년내내 더운 날씨라 두꺼운 옷이 필요 없어

옷값이 적게 들고 얼어 죽는 이 없다

 

먹고사는 걱정이 적어 아이를 많이 낳았으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지 않았고

심하게 경쟁도 하지 않으며 과외 활동을 많이 했다

많은 사람들은 기능직이나 서비스 분야에서 일해

소득이 적었으나 소수의 자본가들은 재산이 많다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와 정부 정책의 부실로

사회보장제도가 적어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지냈다

건강보험제도가 부실해 사람들의 병원비 부담이 커

평균 수명이 한국보다 십년 정도 짧았다

 

몸 한쪽은 한국인, 다른 한쪽은 필리핀인인 내가

필리핀인과 부대끼며 한 시대를 살았다

 

*.약력 : 충남 서천 출생,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내 몸

        속의 지구』『세온도를 그리다』『번함공원에서 점을 보다』가

        있다.




 ■ 작품 해설


 


 

 

 

 

 

 

필리핀의 시학

 

 

 

 

 

 

맹문재

 

 

 

1.

 

 정선호는 한국 시문학사에서 필리핀을 선구적으로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될 것이다. 시인은 필리핀의 역사와 현재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단순히 작품의 제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통해 면면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필리핀의 전반을 폭넓고도 깊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이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의 동북단에 있으며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들은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하기 때문에 지진과 화산이 자주 발생하는데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많다. 기후는 열대성이며 몬순과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계절은 우기와 건기로 나뉘며 태풍은 7월에서 10월까지의 시기에 내습한다. 종교는 85%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신봉하고 군도의 남쪽에 거주하는 모로족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도이프가오족 등은 정령을 숭배한다.

복잡한 민족만큼이나 70종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공용어는 타갈로그어와 영어이다. 필리핀 국민은 말레이족을 근간으로 하여 중국인, 미국인, 스페인인, 아랍 혈통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다. 20005월 기준으로 필리핀의 인구수는 7,650만 명이다. 서구 국가의 오랜 식민 통치 역사와 무역 상인들의 혈통이 섞여 외모와 문화가 동양과 서양이 혼합되어 있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필리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 말 혁명이 일어나고 짧은 기간 동안 필리핀 제1공화국이 세워졌지만, 뒤를 이어 미국과 스페인 간 전쟁과 필리핀과 미국 간 전쟁을 겪으며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일본군이 점령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필리핀이 독립할 때까지 미국이 주권을 가지고 있었다.

 

  필리핀은 1949년 한국과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국민들에 의한 직접 선거로 선출된 6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서 행정권을 행사한다. 필리핀은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70년대 초까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부유한 국가였지만 장기간의 무역 적자, 인프라 부족, 정치 부패 등으로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1980년 이후 한국과는 교역 관계의 강화를 통해 한국의 건설, 전자제품, 자동차 부품 등의 기업이 필리핀에 진출해 있고, 필리핀에서도 결혼 이주 여성과 이주 노동자 등이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민주 공화국 정부를 세웠고, 민선에 의해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을 선출한 정치사까지 가지고 있는 필리핀을 노래한 정선호 시인의 작품들은 주목된다.

 

 

 

2.

 

내가 살고 있는 필리핀의 사람들 얼굴은 여러 종류이다

원주민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온 말레이족, 그들과

스페인, 미국인, 인도인, 중국인, 일본인과의 혼혈인이

필리핀 사회를 이루고 있다

집안의 형제끼리도 피부색과 얼굴이 다른 경우도 많지만

필리핀인은 그걸 따지거나 화젯거리도 만들지 않았다

 

―「얼굴을 만지다」 부분

 

  위의 작품의 화자가 “내가 살고 있는 필리핀의 사람들 얼굴은 여러 종류”라고 밝히고 있듯이 필리핀은 혼혈 민족이다. “원주민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온 말레이족, 그들과/스페인, 미국인, 인도인, 중국인, 일본인과의 혼혈인이/필리핀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안의 형제끼리도 피부색과 얼굴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필리핀인은 그걸 따지거나 화젯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피부가 하얀 서양인과 황색인 동양인, 검은 피부의 사람들과/그 혼혈인들이 섞여 트랙 위를 달”(「올랑가포 운동장 트랙을 달리다」)릴 정도로 세계의 민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의 개방 정책은 전 지구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외문화에 대한 수용의 수준은 한국에 비해 필리핀에서 훨씬 높게 나타난다. 이 점은 스페인, 미국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 시대의 서구 식민지 경험이 미국과 유럽 문화 수용에 보다 개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2이다. 필리핀 경제의 특징은 상위 50개 회사의 21개 민간 기업 중에서 스페인계가 7개사, 화교·화인계가 7개사, 미국계가 1개사로 중국계가 필리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또한 경제적 엘리트에 대한 활동의 규제도 제한 없이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그들의 틀 속으로 내재화하고 있다.

 

  어느덧 자본주의는 활동 무대를 넓혀 국가 간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와 의존성이 국경을 넘고 있다. 국가보다 다국적 기업이 활동의 중심이 되고 다양한 인적 교류가 활발해져 사람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의 진출로 인해 약소국가의 기업들과 노동자들이 불리해지고 있는 것도 그 한 면이다.

 

 

수비크시 아이얀몰 안의 다국적 커피전문점에 갔다

휴일 그곳은 어린 학생들부터 노인들까지,

여러 나라 사람들로 북적였다

필리핀 회사원들의 하루치 임금이 오천 원 정도지만

그곳 커피 한잔 값이 사천 원 정도여서

부유층이나 외국인들이 주로 출입을 했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엄청난 자본을 발판으로

세계의 곳곳에 공장과 상점을 운영했다

그 공장과 상점은 제 나라의 자영업자를 퇴출했고

많은 이들을 다국적 기업의 노동자로 만들었으며

가격을 올려 사람들 사이에 위화감을 만들었다

 

수비크시도 다국적 기업이 많은 자유무역 도시라서

외국 기업의 현지인 노동자와 외국인이 많이 살았다

그곳에서 젊은 현지인 여자와 외국 중년 남자가 만나고

상점 밖의 택시들은 계속 그들을 태우고 가곤 했다

몇몇의 은퇴한 외국 노인들도 젊은 여자와 대화 후

자가용을 타고 어디론가 향하곤 했다

 

아이얀몰 밖의 나무엔 낙엽 떨어지고 새순 돋고

화단엔 연신 꽃 피고 지고

해는 그것을 눈치챘는지 귀가를 서둘렀다

 

―「다국적 커피점이 있는 휴일의 저녁」 전문

 

  필리핀은 제조업이 취약한 반면 3차 산업인 서비스업이 국내총생산(GDP)50%를 넘는다. 아울러 콜센터 등 아웃소싱(BPO) 산업 여건이 양호한 지역으로 인식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의 진출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필리핀의 제조업은외국인이 투자한 다국적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반도체 등 전자산업 및 의류산업 등 재수출용 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위의 작품의 화자는 필리핀 “수비크시 아이얀몰 안에” 있는 “다국적 커피전문점에 갔다”가 자본주의를 실감한다. 대형 쇼핑 센터 안에 있는 “그곳은 어린 학생들부터 노인들까지,/여러 나라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그곳 커피 한잔 값이 사천 원 정도”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필리핀 회사원들의 하루치 임금이 오천 원 정도”이기에 매우 비싼 것이다. 그리하여 필리핀 사람들보다는 “부유층이나 외국인들이 주로 출입을” 하고 있다. 그들만을 고객으로 들여도 상점 운영에 어려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고급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기에 오히려 영업 전략으로 삼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엄청난 자본을 발판으로/세계의 곳곳에 공장과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에 따라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공장과 상점은 제 나라의 자영업자를 퇴출”하고 “많은 이들을 다국적 기업의 노동자로 만들”며, “가격을 올려 사람들 사이에 위화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화자가 살아가고 있는 “수비크시” 역시 “다국적 기업이 많은 자유무역 도시라서/외국 기업의 현지인 노동자와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젊은 현지인 여자와 외국 중년 남자가 만나고/상점 밖의 택시들은 계속 그들을 태우고 가곤” 한다. “몇몇의 은퇴한 외국 노인들도 젊은 여자와 대화 후/자가용을 타고 어디론가 향하곤” 한다. 자본의 위력으로 필리핀의 “젊은 여자”들을 농락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의 화자는 “해는 그것을 눈치챘는지 귀가를 서둘렀다”라며 타락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유월에 시작된 비는 사 개월째 거의 매일 내렸다

조선소 현지 인부들의 출근율은 계속 떨어졌다

배 만드는 공정에 차질이 생기자 회사는

연장 근무를 지시했고 작업자를 다그쳤다

사람들 옷은 항상 젖어 있고 우산을 휴대해야 했다

 

적도 지방에서 우기를 지낸다는 것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항상 젖어 있다

마음속엔 빗물 가득해 거기서 허우적대기도 했고

야자수 한 그루 옮겨와 키웠다

나무는 자라 내 정수리에 뿌리를 내렸으며

열매 맺자 빗물을 정제해 열매에 넣어주었다

 

적도 지방에서 우기를 지낸다는 것은

원시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창조자는 적도 부근엔 사계절을 허락하지 않고

우기와 건기만 허락하였다

자연은 충실하게 그것을 따르기만 할 뿐이었다

 

자연은 충실하게 따르기만 할 뿐이었다

 

―「우기를 지내는 일」 전문

 

  필리핀의 기후는 열대성으로 1년 내내 기온이 높고 내습하는 태풍과 몬순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또한 6월에 시작되어 11월까지 계속되는 우기와 그 외의 기간에 진행되는 건기로 계절이 나뉜다. 그리하여 “유월에 시작된 비는 사 개월째 거의 매일 내”리고 그에 따라 “조선소 현지 인부들의 출근율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자본가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익을 포기하지 않기에 “우기”와 같은 자연 환경에 굴복하지 않는다. “배 만드는 공정에 차질이 생기자 회사는/연장 근무를 지시”하고 “작업자를 다그”치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 옷은 항상 젖어 있고 우산을 휴대해야”만 되었다.

  자본주의의 강압에 “적도 지방에서 우기를 지낸다는 것은/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항상 젖어 있”을 수밖에 없다. “마음속엔 빗물 가득해 거기서 허우적대”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세계화의 심화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다.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이 증대되지만 자본의 이동이 용이한 데다가 위력이 강해 경쟁력이 약한 산업은 지배받는다. 따라서 그 산업에 몸담고 있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노동을 강요받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마저 불안한 상황에 놓인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한데, 작품의 화자가 “야자수 한 그루 옮겨와 키”우는 것이 그 모습이다.

자본주의가 연장 근무를 지시하고 작업량을 채우기를 요구하는 행동에 비해 화자가 야자수를 키우는 것은 주체적인 행동이다. 단기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화자는 궁극적으로 “나무는 자라 내 정수리에 뿌리를 내”릴 것을 믿는다. 그리하여 “열매 맺자 빗물을 정제해 열매에 넣어”준다. 결국 “적도 지방에서 우기를 지”내기 위해 “원시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창조자는 적도 부근엔 사계절을 주지 않고/우기와 건기만 허락하였”기 때문에 “바람과 구름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듯이 화자 역시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다.

  화자의 이와 같은 행동은 단순히 자연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야자수 한 그루 옮겨와 키”우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행동을 상징한다. 자본주의의 강요에 의해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주체성을 되살리려는 것이다. 결국 “한 치의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는 창조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3.

 

  필리핀 하늘은 위도상 한국의 하늘보다 낮게 보였다 건기라 비는 내리지 않고 햇볕만 내리쬐는 이국에서 나는 태양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태양은 무자비하게 빛의 알갱이들을 뿌렸고 나는 그것을 받아 몸에 문신을 새겼으며 태양신에게 매일 제단에서 절했다 태양은 나를 검게 태웠으며 나는 태양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필리핀들은 오 개월 동안 지속되는 건기에는 담담하게 생활했다 물이 없어 벼농사를 지을 수 없으며 물이 적어 애를 태웠지만 우기 때와 같이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빨래는 널자마자 금방 말랐으며 들판의 풀과 곡식은 잘도 자랐다 해변의 모래는 기름에 튀겨지듯 뜨거웠고 바닷물 수온도 올랐다

 

  내가 일하는 조선소에서는 현지인 작업자에게 우기철의 작업 손실을 만회하려 많은 야근과 특근을 시켰다 밤에는 기온이 낮아져 일하기가 수월해 야간조의 작업 효율은 매우 높았다 세계에서 배 만드는 일을 주간과 야간으로 나누어 하는 곳은 내가 일하는 회사가 유일했다

 

적도 지방의 건기엔 모든 것이 원시로 돌아갔다

 

―「건기(乾期)를 말하다」 전문

 

 

 

  우기 때를 제외하고 “필리핀 하늘은 위도상 한국의 하늘보다 낮게 보”인다. “건기라 비는 내리지 않고 햇볕만 내리쬐”기 때문이다. 작품의 화자가 “태양은 무자비하게 빛의 알갱이들을 뿌렸고 나는 그것을 받아 몸에 문신을 새겼으며 태양신에게 매일 제단에서 절했다”라든가, “태양은 나를 검게 태웠으며 나는 태양 속을 들어갔다”라고 토로한 것이 그 상황이다.

그렇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오 개월 동안 지속되는 건기에”도 “담담하게 생활”한다. “물이 없어 벼농사를 지을 수 없으며 물이 적어 애를 태웠지만

고 살아간다. “해변의 모래는 기름에 튀겨지듯 뜨거”워지고 “바닷물 수온도 올”라가지만 “빨래는 널자마자 금방 말랐으며 들판의 풀과 곡식은 잘도 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건기” 상황에서도 자본주의는 가만 있지 않는다. 작품의 화자가 “일하는 조선소에서는 현지인 작업자에게 우기철의 작업 손실을 만회하려 많은 야근과 특근을 시”키는 것이다. “밤에는 기온이 낮아져 일하기가 수월해 야간조의 작업 효율은 매우 높”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밀어붙인다. “세계에서 배 만드는 일을 주간과 야간으로 나누어 하는 곳은 내가 일하는 회사가 유일했”을 정도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연과 자본의 대립 결과 자본이 지배할 것이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이란 자본이 자연을 개발하고 개척해서, 다시 말해 자연을 파괴해서 이루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환경 오염, 물질주의, 인간 소외 등을 가져왔지만 대규모의 생산과 소비로 인한 경제적 풍요를 통해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등을 부추겼다. 그 결과 자연의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 가치가 무시당하고 억압받는데도 불구하고 문명의 발전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렇지만 작품의 화자는 “적도 지방의 건기엔 모든 것이 원시로 돌아”간다고 노래한다. 자연이 자본에 결코 종속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결국 작품의 화자는 자연을 따르는 필리핀 사람들의 세계관을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인식한 것이다.

 


  필리핀의 루손섬 어느 밀림에 타잔이 왔다 자본가들은 돈벌이를 위해 무자비하게 밀림 안의 나무를 베고 짐승들을 몰아냈다 아프리카의 밀림을 나와 제인과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타잔은 밀림의 파괴를 막으려고 왔다 루손섬 밀림 안에도 타잔의 친구인 치타도 있고 악어며 긴 방울뱀들이 모여 살았다 타잔은 밀림의 모든 동물을 모아 자본가들의 건설 장비를 밀어냈으나, 자본가들은 총을 쏘며 격렬히 저항했다 타잔은 아프리카에서 사자와 표범을 불러 자본가에 대항하여 싸워 마침내 몰아냈다

 

  필리핀의 많은 사람들은 울창한 숲과 목숨을 해칠 수도 있는 사나운 짐승 때문에 밀림 안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날 타잔이 밀림의 평화를 지켜낸 후 밀림은 날로 울창해져갔고 짐승들은 새끼들을 많이 낳아 길렀다 우기엔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가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렸다 타잔은 그것에 상관없이 짐승들을 데리고 다니며 밀림을 지켰다

 

 

  나는 어느 날 밤 무슨 일로 밀림 안을 헤매 다녔는데 긴 방울뱀이 미끄러지며 내게 다가왔으며 악어도 나를 삼키려 왔다 내가 급하게 타잔을 불러내자 그들은 되돌아갔으며 나는 그들과 사귀어 친구가 되었다 내 마음속에는 어렸을 적 영화에서 봤던 밀림과 타잔이 또렷이 살아 있다

 

―「타잔은 살아 있다」 전문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자본가들”과 자연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타잔”의 대립에서 예상을 뒤엎고 “타잔”이 승리한다. “자본가들”이 “돈벌이를 위해 무자비하게 밀림 안의 나무를 베고 짐승들을 몰아”내자 “아프리카의 밀림을 나와 제인과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타잔은 밀림의 파괴를 막으려고” 나선다. “루손섬 밀림 안에도 타잔의 친구인 치타도 있고 악어며 긴 방울뱀들이 모여 살”고 있어 “타잔은 밀림의 모든 동물을 모아 자본가들의 건설 장비를 밀어”낸 것이다. 그러자 “자본가들은 총을 쏘며 격렬히 저항했”는데, 이에 “타잔은 아프리카에서 사자와 표범을 불러 자본가에 대항하여 싸워 마침내 몰아”내었다. “타잔이 밀림의 평화를 지켜낸 후 밀림은 날로 울창해져갔고 짐승들은 새끼들을 많이 낳아 길렀”으며, “우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렸”지만 “타잔은 그것에 상관없이 짐승들을 데리고 다니며 밀림을 지”켜나갔다.

 

  작품의 화자는 “어느 날 밤 무슨 일로 밀림 안을 헤매다녔는데 긴 방울뱀이 미끄러지며 내게 다가왔으며 악어도 나를 삼키려”고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리하여 “급하게 타잔을 불러내자 그들은 되돌아갔”다. 오히려 “그들과 사귀어 친구가 되었다”. “타잔”과 함께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밀림의 생물들은 화자를 배척하지 않고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이처럼 밀림의 생물들은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는 “자본가들” 같은 존재를 제외하고는 기꺼이 함께한다. 필리핀 사람들의 개방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세계관과 유사한 것이다.

 

4.

 

그곳엔 피부색과 국적이 다른 사람들 수만큼

음식 종류도 다양했는데 쌀밥 종류가 많았다

쌀은 일 년에 두세 번 수확해 풍족한 편이었으며

산과 들에는 바나나나 망고 같은 과일도 풍성해

굶는 사람이 적어서인지 사람들은 표정이 밝고

사람들 사이에 경쟁이 적고 배려심이 많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시를 쓰다」 부분

 

  필리핀은 “피부색과 국적이 다른 사람들 수만큼”이나 “음식 종류도 다양”한데, 특히 “쌀밥 종류가 많”다. “쌀은 일 년에 두세 번 수확해 풍족한 편이”고 “산과 들에는 바나나나 망고 같은 과일도 풍성”한 편이다. 실제로 필리핀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전 노동 인구의 반 이상 종사하는 농업이다. 농업은 국민들의 식량을 공급하는 동시에 수출품이기도 하다. 쌀이나 옥수수가 주식용 작물이고, 설탕이나 코코넛이나 담배 등이 수출용 작물이다. 그리하여 낮은 생산성과 토지 소유 관계가 불평등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굶는 사람이 적어서인지 사람들은 표정이 밝고/사람들 사이에 경쟁이 적고 배려심이 많”은 편이다.

 

 

1

 

올랑가포시 입구의 다리에서 늙고 몸이 불편한 가수가

성탄절 전날부터 노래를 계속 불렀네

성탄절이어서인지 갖다 놓은 녹슨 철제 모금함은

동전과 지폐들로 가득 채워졌네

 

 

 

2

 

성탄절에 시내의 모든 노래방엔 사람들이 가득했네

어느 노래방에서 미국인과 필리핀의 혼혈인 중년 여자가

오래된 팝송을 연달아 불러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네

그녀의 지인은 미군이 수비크시에 주둔했을 때

미군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본토로 근무지를 옮긴 후 소식을 끊었다 했네

 

필리핀에 사는 남성 외국인이 많이 늘어감에 따라

혼혈인의 숫자도 늘어났네

많은 혼혈인들의 아버지는 필리핀을 떠난 후엔

가족을 부양하지 않았으며

남은 가족은 어렵게 가계를 꾸려갔네

 

 

3

 

두 사람의 노래는 하늘에 올라 신에게 전해졌네

 

―「노래하는 두 성자에 대한 경의」 전문

 

  필리핀은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가톨릭이 우세한 기독교 국가이다. 그리하여 토테미즘과 융합된 형태를 보이기도 하지만 로마 가톨릭의 전통이 사람들의 생활 관습에 배어 있다. 도시마다 화려하고 큰 교회가 있고, 성탄절 같은 행사가 중요하게 여겨지며, 믿음과 선행의신앙 가치가 사회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것이다.

“올랑가포시 입구의 다리에서 늙고 몸이 불편한 가수가/성탄절 전날부터 노래를” 부르자 “갖다 놓은 녹슨 철제 모금함은/동전과 지폐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 그 모습이다. 또한 “성탄절에 시내의 모든 노래방엔 사람들이 가득” 차는데, “어느 노래방에서 미국인과 필리핀의 혼혈인 중년 여자가/오래된 팝송을 연달아 불러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모습도 그러하다.

그 “중년 여자”는 “미군이 수비크시에 주둔했을 때/미군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아버지가 본토로 근무지를 옮긴 후 소식을 끊”은 아픔을 안고 있다. 실제로 “필리핀에 사는 남성 외국인이 많이 늘어감에 따라/혼혈인의 숫자도 늘어”난다. 그렇지만 “많은 혼혈인들의 아버지는 필리핀을 떠난 후엔/가족을 부양하지 않”아 “남은 가족은 어렵게 가계를 꾸려”가야만 한다.

  이렇듯 필리핀 사람들은 식민지 지배의 아픔을 안고 있는데 “미국”의 지배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필리핀의 궁극적인 자치와 독립을 위해 식민지 국민을 훈련시킨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패권주의를 합리화했다.   이와 같은 면은 미국의 한국 지배 정책의 본보기가 되기도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미국 대통령은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반도에 다국적 탁치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후진국의 자치 능력이 없는 인민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정치적 훈정(=탁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훈정의 모범적인 예로서 미국이 40여 년간 지배하고 있었던 필리핀의 예를 떠올렸던 루스벨트는 한반도의 경우도 자치 능력이 부족함으로 신탁통치를 통하여 필리핀의 예처럼 선진국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1896년 국제정치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필리핀은 혁명과 식민 종주국의 교체를 거쳐 1946년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부여받았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필리핀을 점령했으며 초기(1898~1912)에는 유럽 식민 제국의 식민지 경략 방법과 큰 차이가 없는 방식을 채택했다. 후기(1913~1946)에 들어와서 필리핀인들의 자치를 허용하였으며 결국 독립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미비전쟁(美比戰爭)과 식민 체제의 구축이라는 초기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미국의 필리핀 지배는 수탈을 위한 식민 통치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후기에는 필리핀 민족주의에 밀려 ‘자치를 위한 훈정’으로 수정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국민들의 부단한 저항에 의해 필리핀은 조국의 독립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한국 진주시의 남강 유등 축제가 끝날 무렵

필리핀 수비크시는 성탄절에 예수를 맞으려

거리 이곳저곳에 등을 걸어놓았다

가을이 없어 떨어지는 낙엽도 거의 없고

겨울도 없어 눈도 내리지 않은 거리에

고대부터의 사람들의 염원이 걸렸다

따로 등을 주제로 한 축제는 없지만

다가오는 성탄절을 기다리며 거리를 지나다

저마다의 소원을 등에 매달아놓았다

 

수비크시 거리엔 예수가 태어나면서 등이 걸렸다

그래서 고대에 원주민 몇 명만 살았던 밀림에

예수가 몇 번 다녀갔다고 전해져왔으며

올 때마다 등을 걸어 맞았다고 전해져왔다

중세에 스페인 군대에 함락당해 식민지가 되었고

원주민은 스페인인과 피를 섞어 낳은 제 아이에게도

잊지 않고 등을 유산으로 물려줬다

 

후손들은 스페인로부터 해방을 위해 싸우는 중에도

 

미국의 점령과 간섭을 받으면서도

다시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해방을 위해 싸우는 중에도

등을 잃지 않고 간직해 거리에 걸어놓았다

 

―「등()을 걸어 놓다」 전문

 

 1571년 군대를 파견하여 필리핀을 정복한 스페인은 당시 국왕이던 펠리페 2(Felipe )의 이름을 따서 나라의 이름을 필리핀으로 정했다. 그리고 총독을 두고 327년간 식민지 통치를 했다. 전통사회의 붕괴와 궁핍해지는 필리핀 국민들에게 안식처가 된 것은 신앙이었는데, 스페인에서 보내온 교구 주임 사제들에 의해 배제되고 차별받는 원주민 재속(在俗) 사제들이 항의 운동을 펼쳤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대대적인 탄압을 가해 재속 사제들을 교수형에 처했는데, 필리핀 국민들은 그들을 순교자로 여기고 지도적 위치에 있던 고메스(Gomez), 부르고스(Burgos), 사모라(Zamora)의 이니셜을 따서 곰부르사(Gomburza) 사건으로 기렸다. 이 사건은 필리핀 국민들의 민족의식 형성과 저항운동의 도화선이 되어 언론 활동을 통해 식민지 체제에 대한 개혁을 요구한 프로파간다 운동 및 스페인과 가톨릭 수도회의 압정과 부패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편소설 『내게 손대지 말라』 등을 출간하고 ‘필리핀 민족동맹’을 설립해 처형당한 호세 리잘(Jose Rizal)로 이어졌다. 또한 리잘의 뜻을 이어받은 무장혁명의 비밀결사 조직인 까티뿌난(Katipunan)도 결성되어 독립전쟁을 벌였다.

 그와 같은 모습은 “중세에 스페인 군대에 함락당해 식민지가 되었고/원주민은 스페인인과 피를 섞어 낳은 제 아이에게도/잊지 않고 등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행동으로 계승되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은 “스페인로부터 해방을 위해 싸우는 중에도/미국의 점령과 간섭을 받으면서도/다시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해방을 위해 싸우는 중에도/등을 잃지 않고 간직해 거리에 걸어놓았다”. “성탄절에 예수를 맞으려/거리 이곳저곳에 등을 걸어놓”은 이유는, “가을이 없어 떨어지는 낙엽도 거의 없고/겨울도 없어 눈도 내리지 않은 거리에/고대부터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등에 매달아놓”은 이유는, 개인적이면서도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필리핀의 국민들에게 민족 해방은 간절한 소망이었던 것이다.

 정선호 시인은 “2차 대전 때 일본군과 미군이/교전 중에 방어벽으로도 사용했으며/지금은 술 취한 남자들의 방뇨막이 되기도” 하는 “바탄시의 골목들”을 걸으며 필리핀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자본주의가 횡행하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국의 낯선 골목을 서성이며 나는/세계의 모든 골목은 안녕한지 문득 궁금”(「낯선 골목을 서성이다」)해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적도 지방엔 12월에도 햇볕이 강렬했지만/거리엔 성탄절 트리가 세워지고 전등에 점등되고/성탄절 노래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한다. “눈 내리는 성탄절을 상상하며/집집마다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파티를”(「적도에서의 성탄절 축제」) 열며 함께 노래하는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면서도 주체성을 추구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개방적인 태도를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주목하는 것이다.

 

 필리핀은 민중들의 항쟁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두 엘리트 정치의 한계, 군부의 갈등, 빈곤, 종교적 대립 등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필리핀은 1907년에 근대식 선거를 실시한 정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민주화된 정권이 분열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고한 통합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필리핀들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세계화가 국가를 퇴조시키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국민밖에 없음을 오랜 역사를 통해 자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점점 심화되는 세계 자본주의 시대에 맞서 개방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孟文在 | 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