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

 

 

 

네가 허기진 먹물이라면

나는 목 타는 한지

 

우리 서로 만나 하나로 어우러져  

샘물 솟아내야만

붓꽃 몇 송이 피어나리니

 

하늘 열쇠 간직한

꽃과 열매를 틔우고 맺으리니

 


수묵화 한 점 

 

 

 

꾹 꾸욱, 거칠게 누르다가    

살 사알, 간질이듯 힘을 뺀다

붓은 한지에 짙게,

때로는 옅게 먹물을 뱉어낸다    

 

삶기고 치대어진 닥나무의 한이

벼루에 갈린 먹물의 꿈을

걸신들린 듯이 빨아들인다

한과 꿈이 한 몸으로 어우러진 용트림,  

숨결이 뜨겁게 끓어오른다

 

서로의 아픔을 포용하는

붓과 한지의 포옹, 그리고 입맞춤

연기 한 점 없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환해지는 세상,

마침내 햇살 듬뿍 머금고

백련 한 송이 피어오른다

 

간절한 꿈은 아픔을 함께 나눠야만  

화엄향기 품은 연꽃으로 거듭난다는 걸

한지와 붓은 묵언으로 보여주는지,    

저 담백하고 우아한 수묵화 한 점

 

 

 

 

풋울음 잡다

 

 

딸아, 아무리 몸부림쳐도 꽃이 피지 않는다

봄날이 오지 않는다 투덜투덜

꽹과리 장구 깨지는 소리 따라다니지 말아라  

한 생이 자벌레 키 자가웃도 못되는데  

그렇게 헤프게 울거나 웃어 보내면 쓰겠느냐

 

놋쇠는 그런 풋울음 잡기 위해

불 속에서 수없이 담금질 당하고

수 천 번 두드려 맞는단다

주변의 쇠와 가죽 소리를 감싸 끌어안고  

재 넘어 홀로 핀 가시연의 그리움 달래주는

징이 되기 위해서

 

 그런 재울음은 삶의 고비 몇 고비 넘기면서 한을 삭히고 달래어 흐르는 물살처럼 부드러운 징채로 두드려야, 목으로 내지르는 쇳소리 아닌 이승과 저승의 경계 허무는 울림 징하게 터져 나오느니

 

 비로소 햇살이 그 소리 비집고 들어 네 둥근 항아리 속 그늘진 도화 꽃 몽우리를 햇살로 피워 올릴 수 있는, 시의 참다운 징수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

 

행복

 

 

온기 남아있는 가슴 언저리에

도톰한 내 입술 자국 꼬옥 부여잡고 있는

모닝커피 잔

 

방금 마신 그의 향을 음미하느라

초침을 부여잡고 가만히 떨고 있는

내 붉은 상처

 

 

 

 

시인의 날개

 

 

새벽 잔디밭에서 희색 빛 깃털 하나 주웠다. 9 센티 정도 가늘고 길쭉하다. 누가 떨어뜨린 것일까? 혹 보름 달밤에 만나자던 그, 혼자 서성이다 떠나느라 섭섭한 그리움의 표시일까? 어쩜 그의 겨드랑이에 꿈의 깃털이 나 있었는지도 모르지.

 

보들레르가 시인은 날개 길이 3,5미터나 되는 알바트로스 새라하지 않았는가? 날개 거대해서 하늘에선 왕자지만 지상으로 유배되면 거추장스런 날개 질질 끌고 다니느라 추해보이는 존재라 했는데 혹 내 어깨에도 날갯죽지가 있었던가?

 

아무리 추해보이더라도 그런 상상의 날개 자라나고 있어야 그럴듯한 명함 하나라도 만들 수 있을 텐데, 달무리 진 초승달 낯빛에 눈웃음 살짝 그려 넣어줄 수 있을 것인데, 삭막한 미루나무 가지에 달빛옷 한 벌 갈아입혀줄 수 있을 텐데

 

 

 

 

 

달과 늑대

 

은근한 사랑눈빛 그득 차오른

보름달이 뜨면 가슴이 뛴다

달은 늑대를 깨우고, 늑대는 징을 두드린다

어둠을 잠재우는 저 은근한 눈빛이

, 늑대의 야성을 깨우는가

, , 우 거친 숨소리가

내 몸속 신전에 횃불을 켠다

그 불빛 따라 찾아오는 발자국

세포 안 숨은 파도들이 갈기 세운다

이성의 손끝이 그리움을 굴리면서

뜨거운 바람을 불러

잠든 마음거울을 친다

처절하게 깨지면서 유리조각 흐트러진다

그 소리 파장 따라 모무[母舞]를 그린다

고깔과 옷자락에 숨긴 여자

벗는다

책갈피를 찢는다

점잖은 말씀으로 두드려 맞기만 하던

징은

징채가 되어 닥치는 대로 두드린다

징소리, 소란스런 벚꽃을 피우다가

점점 연꽃 향으로 스러져

다시 징이 된다

자신이 두드린 절규들 일어나

온 마음 두드린다

스스로 만든 철창에 자신을 가둔다

 

 

 

 

 

서포 어머니 윤씨의 베틀가

 

-애절양 1 [ " 이 어미는 비록 끼니가 없더라도 네 형제가 읽어야 할 책은 한 권도 놓치지 않을 테다. 그러므로 .....이 어미의 허리가 휘도록 '이 책을 보고 싶습니다.' , '저 책을 보고 싶습니다.' 하는 게 효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여라." ]

 

 

 1.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생일 때마다 형제가 색동옷 입고 춤추더니

유복자 내 아들

"아직껏 향내 나는 책과 구린내 나는 책을 구별하지 못한단 말이냐?"

물푸레회초리로 꾸짖던 그 시절

지아비 먼저 보내고 베 짜고 수놓는 것으로

빌린 책을 베껴서 가르쳤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서해 노도 사이에서

서로 위리안치당하는 일 없었을 텐데

 

아들 유배당한 죄인은

날짐승이 심장을 쪼아 먹는 유배지로 떠나야 하지

장하다! 내 아들

날 선 칼에 꺾이지 않는 성품 부끄러워 마시게

그댄 인생의 실패자가 아니니라

이제 생의 뒤안길에서 숨은 바람의 길 찾아보시게

 

2. 파도 속 굴곡진 어둠과 생을 씨줄 날줄로 촘촘히 베를 짜시게

꼿꼿한 뼈대씨줄에 천둥소리, 피눈물 날줄이

살결 촘촘한 천 한 필 남기리니

긴 한숨천 말코에 말면서

도투마리 돌려 깨진 거울 속 날실 한 고괭이 풀면서

온갖 잡념 실꾸리 든 북집과 바디집 바쁘다보면

뭔가 환한 소리길 나타나지 않겠는가?

 

적막이 짠 그리움 속 눈물구비

회심의 잿물에 헹궈 햇빛에 바짝 말려야 한다네

업장이 조금이라도 소멸되어 반짝 반짝 빛나는 천

수틀에 한 뜸 한 뜸 발효시킨 자수들

구름 이야기로 살아나리니

여낙낙한 지어미 얼굴도 아이 해맑은 웃음도

솔잎수 뜨기 하다보면

먹구름은 빠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라

 

 

3.저승도 모자간의 마음 오가는 길 막을 수 없을 터

자네 탄식과 의구심 다 씻은 옷감으로

수의 한 벌 손 박음질해 에미 무덤에 덮어 주시게

저승도 모자간의 마음 오가는 길 막을 수 없을 터

목 놓아 한 번 불러보노라

내 아들 선생(船生),

에헤요 베틀을 놓자 베틀을 놓자  *

베 짜는 어미의 사랑 노래에 근심만 지는구나.

 

*베틀가의 후렴

 

봄바람과 깔깔 춤 그 사이에서

-사력질 28

 

 

뻐덩뻐덩한 나무토막, 내 몸을 카바레

물 찬 제비는 모란 꽃봉오리 쓰다듬는 봄바람처럼

손가락 눈짓으로 제 숨결 가까이 당겼다가 놓는다

가슴과 가슴 사이 불꽃을 화르르 태우다가  

꺼질듯 길을 잃다가

하루살이 한 생을 잊어버리기 위해

지르박은 더 흐드러지게 피려 안간힘을 쓴다

실은 흐드러지면서 져야하는 시간

뽕짝리듬 사타구니 사이로 숨긴다

숨긴다고 그 한숨소리 들리지 않으랴만

못 듣는 척 웃는다 까르르, ,

바람손길은 웃음 속 공허를 눈치챘는지

내 몸을 숨차게 휘익 연달아 두 바퀴 돌린다

그 공회전 속 아흔 여덟의 한 생이 오버랩 된다

수면제 사 모으는 노모의 어둠 골짜기에 갇힌다

“딸아, 하루가 너무 길구나

민들레 차 한 모금 마시는 사이*

하루가

한 생이 간다고 아까워 마라”

 

* 정 숙의 유배시편에서

 

 

 

엄마 뱃사공

 

-사력질 25

 

 

노 젓는다

여린 숨 줄 고르느라 지친

날개의 뼛조각들 모아

 

미세기, 밀물 썰물이 닻줄 끊어버린

상처투성이 마음속

아무리 저어봤자 늘 그 자리

 

날은 저물어 가고

닻을 내리는 일

그 화려슬픈 절정은 가물가물 멀기만 하다

 

노를 놓쳐야 세상이 보인다지만*

다 가진 이의 노래일 뿐

다시 노 저어라!

 

물결 거스르는 연어처럼

온 몸, 마음 피투성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기여차!

 

 

 

 

 

 

 

 

닻줄은 왜 늘 흔들리는가

 

밤마다

무지갯빛으로 몸 색깔 바꾸느라

파르르 떨고 있는 불빛 아래서

길 잃은 저 향피리

육 박자 리듬에 갇혀 자신의 하얀 공허를 돌려 줄

바람을 찾고 있다

몸 빛깔 더 고와보이도록

식육점 더 붉은 조명을 찾아

흔들리는 거미줄 위에서 스텝을 밟는다

부드러운 봄바람의 손길이라면

오랜 닻줄이라도 끊어버리겠다고

밤새 쓴 단편소설 한 가닥 꼬옥 쥔 채

빈 배를 기다리는 여자

저 따스한 갯바람이

언제 살을 에는 바람으로 돌변할지

아는지 모르는지

 

 

육에 갇히다

 

뽕짝 박자 쿵 짝, 쿵 짝

어디서 총알이 몰리오나 콩죽이 넘치나나

소금 처묵은 미꾸라지들처럼 몸 비틀미

짝 지은 저 군상들 우째 그리 허겁지겁 헉,

하나 둘 셋 넷에 건너가고

다섯 여섯 지나 하나 둘에 돌고

셋 넷 다섯 여섯 발 모으고 제 자리 걷기

하이고 랄한다 또 잊어묵었네

내 팔짜야 와, 여섯까지만 시알리야 하노

몸은 자꾸 일곱 여덟로 돌아가는데 우야라꼬!

손 잡아주는 사나 눈치볼라네

무조건 무조건이야 에 휘말려 들어갈라네

지루박 물찬 제비선상님 눈길 피해

말 춤이나 에라 모르겠다 헉,

궁디이 막춤으로 또 숫자에서 벗어났다

남정네들이 여자들 지멋대로 통 속에 가두는 법

언제 맹글었노

시집살이는 춤을 잘 춰야 한다미

뺑빼이 돌리미 인내들 혼을 쏙 빼놓고

맨날 그카다가 귀한 한 평생이

니맛 내맛도 없이 삼류 물거품으로 사라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