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민박

 

 

 

물빛 자리가 고요하다

경계할 대상도 없고

밤사이 적막을 넘어 물소리만 들리는

시냇가에 밤이 오고, 물속에는

물속 세상의 사연만이 찰랑거린다

모두 가버린 빈자리에

별빛으로 채워진 물빛 마을

 

 


 

눈싸움

 

 

 

가로등 아래 꾹꾹 쌓이는 눈

휘적거리며 돌아오는 늦은 저녁

마중 나온 아내가 깔깔대며 눈덩이를 던진다

아스란 시절 그대가 던진 눈은 첫눈,

참 새큼하고 보드레했지

이제 불혹 넘어 그대가 던지는 눈덩이는

돌멩이처럼 아프기만 하다

하기야 거친 세월 군살 박힌 손아귀에

돌 잔뜩 쥐었겠지 죄 많은 내게 언젠가

던져야 할 주먹돌 가득가득 담았겠지

하얀 눈 차갑게 내려주신 분은

‘죄 없는 자여, 돌을 냅다 던지라’하시네

오늘이 그날, 그대여!

무거운 돌덩이 내게 힘껏 던지시게 그리하여

아련한 첫눈으로 새록새록 날아오시게

눈싸움도 깊어지면 빨갛게 달궈지는지

뜨거운 살덩이 그러안고 쓰러지는 밤

天地間 상처투성이 하얗게 덮으며

보스락보스락 눈이 내린다.


 

 

선착장

 

 

 

한여름 밤 아파트 입구 슈퍼 앞

 

노을 주점을 지나 고단한 항해를 끝내고 돌아온 배들이

 

후미진 벤치에, 더러는 흙바닥에 철퍼덕 닻을 내립니다.

 

막걸리 부어놓고 새롭게 떠나는 마지막 항해

 

이따금 타고 내리는 낯익은 승객들도 파도에 떠밀려옵니다.

 

누구나 방향키를 잡으면 선장이 되듯이

 

목적지는 그때마다 다르지요, 세계지도 펼쳐 들고

 

숨 쉬는 고래들이 수면 위로 나올 때쯤  

 

목울대 카랑카랑 아파트가 들썩입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은하 건너 아늑한 그 분의 집인데

 

술로 떠가는 배는 언제나 항로를 벗어나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흔들립니다.

 

 


 

드럼통

 

 

 

어둑새벽 인력시장에 서성이는 사람들

누군가 불씨 하나 들고 와서

우두커니 서있는 드럼통에 불을 사른다.

온갖 잡동사니 어둠을 쏘시개로

활활 타오르는 화통

사람들은 날아가는 불티를 보며

높이 올라갈수록 재수가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모닥불은 식어가며 말한다.

내 비록 재가 될지라도 불씨는 남겨야지

눈감고 하얀 재가 되기를 기도한다.

화독보다 더 뜨거운 불씨 하나

하루 일자리 찾아 떠나는 사람을 위해

얼른 자리를 떠야 할 사람을 위해

드럼통은 뜨거운 몸을 이끌고

슬금슬금 먼저 자리를 뜬다.

 

 


 

 

라면

 

 

 

검댕이 냄비 속을 휘휘 저으며 후루룩후루룩 먹는다. 남은 국물로 바닥이 보이는 젊은 시절 뜨겁게 앞날을 삼킨다.

 

대문 열고 뛰어 들어와 툇마루에 가방 던져 놓고, 자전거 타고 오신 아버지도, 밥그릇 탱탱 불은 검둥이도, 바구니 가득 나물 캐고 돌아온 누이도, 구둣방 털보 삼촌도, 홍옥 노점상 아제도, 약국집 고모도, 마늘 고추 무 파 놓고 푸성귀 파는 꼬부랑 할머니도 무릎 괴고 앉아 후루룩 후루룩 먹는다.

 

공원 한 구석 노숙하는 소주병과 학교 앞 자취방 친구와 날 밤 새며, 애인과 둘이 먹다 싸우고 헤어진 그 라면, 불광동 먹자골목 친구네 분식집에서 먹던 그 라면, 노크하고 들어온 내무반에서 북의 병사에게 끓여 준 그 라면을 먹다가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밥 먹으러 오라고 했다. 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저녁시간 전쟁이었다가 간식이었다가 주식이었다가 생명이었다가 죽음이었다가 사랑이었다가 바닥 얇은 노랑 냄비 남과 북을 휘휘 저으며 후루룩후루룩 평화를 먹는다.

 

 

 

 

 

 

 꿈길

 

     

 

 졸린 눈으로 낡은 옷 보따리 하나 들고 오후 지하철 안을 어슬렁거리는 굶주린 사자가 바로 옆자리에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있다.

 

  구멍 난 빨간 양말, 속살이 비치는 낡은 정글화를 신고 한 가닥 굵은 울음으로 포효하던 시절 꿈꾸는 듯

 

  살짝 어깨를 들먹이자 젊은 사내가 지하철 문밖으로 튕겨 나갔다.

  순간 검은 석고상이 털썩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빌딩 숲 밀림을 내달릴 때 늠름한 모습이었을 얼굴, 둥근 운전대 옷 보따리 두 손으로 그러안고 과거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목적지를 지나쳐 길을 잃고 말았다.

 

  미로의 길에 접어들어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다 한강 다리를 건너가는 숨 가쁜 포클레인

  거대한 상아를 이고 해체의 계곡을 찾아가는 늙은 코끼리의 신성한 귀향을 본다.

 

  누구나 되돌아가야하는 길을 잃고 우리는 날마다 흔들리고 있다.

 

  기억마저 가물거리는 고향 꿈길 안내하는 사자와 긴 강줄기를 따라 흘러가고 있다.

 

  다 비운 젖병처럼 이따금 바람 소리 들려오고

  요람에 누운 아기처럼 어머니 품속일까 흔들흔들 평온한 꿈길


 

 

말똥

 

 

 

한참을 찾아다녔다.

 

골동품이 되어버린 보기 드문 말똥

한적한

아스팔트 길 위에서

말라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걸 아버지께 드렸다

 

요강위에 앉아

하혈자리

말똥 연기를 쐬면 고통이 죄 사라진다며

어기적어기적 아기걸음 걸으셨다.

 

말똥말똥

훈제가 되신 아버지

푸른 연기 타고 날아가셨다.

 

 

 

 

 

 

 

 

 

도래미파 노래 파는 노점상 할머니가 소나무 등피 손마디로 사과궤짝 펼칠 때 두만강이 흐릅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이 파하고 달려드는 물결을 삼키자 달덩이 꼬투리에서 은실을 뽑아 파뿌리 하얀 머리를 쓰다듬어요.

 

할머니 콧물 섞인 울음은 할아버지 손끝에서 나왔다고, 파속을 들여다보며 첫날밤 하얀 끈적임을 훔치고는 입 안 가득 사랑한 할아버지를 떠올려요.

 

그날 따라가야 했는데, 정말 가야 했는데…

파뿌리는 검은 머리를 아쉬워해요.

 

할아버지 파란 웃옷이 누렇게 쭉정이가 된 일상을 가지런히 벗겨내고 콧물 훌쩍 훔치는 파뿌리 할머니

 

풋풋한 할아버지를 도래미파 좌판에 올려놓고 오늘도 파뿌리 하얀 두만강이 흘러갑니다.

 

 


 

 

밥상

 

 

 

오늘은 누가 죽어서 양식이 된 걸까

날마다 밥상머리에 앉아 드리는 제사

거룩한 밥상에는 파도치는 하루가 들어있다

농부의 소금창고가 들어있다

초록 숲에 뿌리내리는 무덤

날마다 죽는 사람들의 뼈와 살이 고봉으로 들어있다

정들어 되새김질하는 너와 나의 타액이 들어 있다

삶의 고비마다 넘기는 한 숨이 들어 있다

배가 불러 죽은 몸통에서

배고파 죽은 풀뿌리가 들어 있다

울다 웃다 죽은 하늘이 다 들어 있다

 

 

 

 

 

 

 

 

 

 

 

 

 

 

 

 

 

 

 

 

 

 

 

 

 

 

갈겨니*               

 

 

 

듬성듬성한 머리칼에 허리가 휜 그녀는

투명한 유리 병실 한가운데 서서 밥을 먹고 있다.

 

앉을 수 없어

, 앉을 수가 없어서

 

아이 다섯 낳고 고희 가까이

자갈밭 수심 얕은 담수에서 숨 쉬다 보니

허리디스크에 긴 링거 줄 너풀거린다.

이제야 겨우 새우잠 웅크린 당신

골수에 스미는 불빛이 따스하다.

 

당신은 말했지 눈뜨면 날마다 부활이라고

병동에 비친 햇살은 얼마 남지 않은 산소 알갱이

산란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손을 꼭 잡았다

조약돌 침상 곁에 나란히 서서

떠 밀려오는 상심傷心

하얀 물살 가르고 있다.

 

 

 

 

 

* 갈겨니 : 잉엇과의 민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