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어느 꿈속에서처럼, 선암매가 피어오를 것이다.

낮은 소리로 소곤거리는 빗소리. 아직은 추운 바람도 함께.

이렇게 추워도 육백 년이나 피고 또 졌다는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기는 어김없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육백 년 피운 꽃의 향기는 일상일까 기적일까. 어쩌면 모든 일상은 그렇게 기적처럼 와서 가는 것인지 모른다.

내 생도 그 기적과 한몸이 아니라고 말할 이유가 있을까.

십여 년 전에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끝, 낭떠러지의 어느 시점이었다 분명.

그렇게 끝은 시작이 되었고, 오늘처럼 선암매를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끝이거나 시작이 아니라 그냥 오늘이다.

그 오늘이 좋다. 오늘을 웃는다. 시와 함께 웃을 수 있어서 더 좋다.

내 삶의 중심에서 보듬고 뒹굴었지만 누추한 언어들이 나를 보고 웃는다, 그럴 수 있을 뿐.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는 시집이 되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 또한 그냥 내려놓는다.

시와 함께 위로 받았던 나를 생각하며, 몸 아파 서러운 목숨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2015년 봄이 오는 오늘에 이민숙.

 

 해설


토렴의 시학

이민호(시인, 문학평론가)


1. 시의 풍골(風骨)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하는 조리법을‘토렴’이라 한다. 토렴질한 밥은 뜨거워 입
천장을 데지도 않을 거며 싸늘히 식어 입맛을 달아나게 하
지도 않는다. 이민숙이 차려 낸 시의 온기도 딱 그만큼이
다. 불같이 뜨거워 마음을 상하지 않으며 밋밋한 시법에 지
루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민숙은‘뚝배기’에 시심을 담아 내 놓았다. 뚝배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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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서 우리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 대표적인 식기’
라 하는데, 그만큼 이민숙의 시 형식은 우리의 정서를 과
도하게 왜곡시키지 않고 투박하지만 있는 그대로 담는 그
릇 모양을 하고 있다. 신석기 사람들이 만들어 쓰던 즐문토
기(櫛文土器)에서 청동기시대 무문토기(無文土器)로 이어
져 지금도 같은 솜씨로 뚝배기를 만들고 있다 하니 그의 시
에서도 옛 정취가 은근히 배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그
의 시 형식은 정서를 일정한 온기로 유지하여 전달하고 있
으면서도 뜨거운 것을 품고 있는 표층은 그다지 달아올라
있지 않다. 그래서 맨손 받들어 온전히 내용 전달하기에 적
절하다.
이 뚝배기 조룡(調龍: 형식)에 담긴 문심(文心: 내용)은
시「뚝배기, 詩」에서 보면 귀와 혀와 등과 같은 몸의 기호
와 질투와 불우로 채색된 시간의 기호, 배반과 이별이 만
든 운명과 부조리의 기호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죽음
의 기호로 가득하다. 유협(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