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칠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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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만 사천 원 일인당 일만 칠천 원

오십대 남자 한사람 새벽에 몸이 아파 119불러 병원 행

그러나 밀린 치료비 일만 칠천 원 내지 않으면

접수를 받지 않겠다하여 다섯 시간 미적거리다 쓰러져

급성 복막염 판정 사흘 뒤 죽었다.

일만 칠천 원

수없이 많은 일만 칠천 원

누군가 즐기고 뱃속을 채우는 사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은 일만 칠천 원

먹고 즐기는 것도 부끄러워야 해야 하는 세상

사는 것이 죄가 되는 이런 세상

먹은 것 다 토하고 싶은

이런 이런 세상.

 

 

 

 

바람만이 아는 대답

-Blowing In The Wind-

 

 

서걱대고 먼지 날리는 돌자갈 초원길

어쩌다 만난 사각진 깊은 우물

가던 길 멈추고 물을 길어

긴 홈통에 부으면

낙타, 말, 양떼들이 몰려와 물을 마신다

낙타가 먼저 마시고

말은 저만치 밀려나 있고

양들은 말할 것도 없다

낙타는  큰 덩치만큼 마실 만큼 마신 뒤

천천히 뒤로 물러나 먼 하늘 보고

어슬렁거리던 말이 다가와 물을 마신다

먹을 만치만 먹으니 너도 나도 먹는구나

시커먼 뱃속 우리는

누군가 한없이 배를 채우려

비켜 설 생각이 없으니

누군가는 배를 주려야 한다

발에 채여 들이 댈 틈도 없이

먼발치서 기웃거려야 한다

어울려 함께 무리진 낙타와 말과 양을 보면서

서로 밀치며 물을 마시다

물끄러미 하늘을 보거나

먼 곳을 향하는 낙타의 눈과

긴 목을 보면서

나의 뱃고래는 얼마나 큰지

흠칫 정신 차리고 비켜서기나 하는지

문득문득 하늘을 바라보기나 하는지

산다는 것이 물음으로 가득해지고

바람은 쉴 새 없이 불어간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인가.

 

 

 

 

고비에서

 

 

비오고

일시에 피어난 들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힘겹게 몸 일으켜

이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듯

그래도 이 향기와 씨앗을 퍼뜨리는 게

어디냐고 고개를 끄덕이는 듯

꽃들이 흔들린다

때로 밀어내며

때로 끌어안으며

나는 무엇으로 흔들리나

잠시 한철 미친듯이 피어

어느 순간 사라지더라도

흔들리면서 흔들리면서

바람에도 스며들고

바람보다 더 먼 너에게 닿으려

흔들리면서 흔들리면서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몸 일으켜

다시 일으켜

깊은 뿌리로 눕는다.

 

 

 

나는 평화

 

 

지평선 바라보며 아침 산책하고

늦은 아침밥 먹고

커피 마시고

침대에 뒹굴며 누군가의 시를 읽고

나의 시를 쓰고

부시시 일어나 옆집 게르 두드려 들어가

이야기하며 놀고 있자니

점심 먹으러 오라한다

점심 먹고 앉은 자리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밖으로 나와

예쁜 몽골아이 사진 찍고

하얀 햇살 속에 그림도 그리고

따가운 빛 피해 게르에 들어가

읽던 시 계속 읽고

문득 생각난 듯 짐 챙겨놓고

침대에 드러누워

천창으로 구름 보고

지나는 바람 소리 듣고

종일 놀아보는 이런

일이 언제 있었나

자르거나 잘리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고 느낄 때

단절인 듯 다 가졌다고 느낄 때

비로소 나는 평화이다

혼자 누워 외로워도

사람이 그립지 않을 때

오직 나만을 슬퍼할 수 있을 때

그때 나는 평화이다.

누운 몸 위로 바람과 별빛

이불처럼 포근할 때

바라는 것이 없을 때

그때 진정 평화이다.

 

 

 

 

자동이체

 

한동안 잊겠다는 것

그래도 마음은 주고 있다는 것

잊어도 잊은 줄 모르며

지내기도 한다는 것

문득 생각나 다시

이어가려 한다는 것

마음은 변하기도 변하지 않기도

떠나기도 돌아오기도

영원이라기보다

잡은 손 놓지 않는다는 것

사랑이라는 것.

 

 

 

 

서해에서

 

그대는 내 속 깊이 잠겼다 떠났나보다

넓은 공허

무수히 박힌 조가비처럼

추억 혹은 상처

어디에 그대 흔적 있을까

종종종 갈매기 발자국 따라

물결자국 따라

걷다걷다 아득한 만큼

선명하게 다가드는 빈자리

그대는 내 깊은 마음 속 울타리

남김없이 쓸어갔나 보다

시간에 등 떠밀려 솟아오른 바위

휑하니 드러나는 멍든 아랫도리

굴딱지 같은 기억들

묻어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났다 잠길 뿐

그대는 떠나며

버리라버리라 했는데

나는 얄팍한 무엇 하나

그래도 붙들고 있었나보다

바람이 불고

바다가 운다

큰 소리 지르며 물러났다

물거품으로 돌아와 흩어지는

나를 운다.

 

 

 

 

 

벽지를 새로 바른다고

한 냄비 풀을 끓이다

나무 막대기로 풀을 젓다가

어릴 적 풀 끓이던 생각이 나다

뭉근한 불에 풀을 젓는 것이

참 지루하여

“아버지 풀이 끓어요..” 하면

“복판까지 부글부글 끓어야 된다”

“아버지 복판에서도 뽀글뽀글 해요” 하면

“ 아따 자슥 조금만 더 저으라”

한평생 집안을 위해 뭐 하나 한 것 없이 죽었다고

푸념을 하시는 엄마 말만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문풍지도 발라주셨고

벽에 도배도 해 주셨다

얼굴도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는데

가신 뒤 가슴을 치며 울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해드린 것이 없어 부끄럽기만 했던 기억 때문에

항상 현재의 사랑을 지키려했다

사람은 그냥 가고

남는 것이 회한이라

부디 보내기 전 손 잡아볼 일이다

가슴이 따뜻할 때 안아 볼 일이다

풀을 젓다가

기억을 젓다가

가슴 한 켠에서

뽀글뽀글 소리가 나고

풀처럼 뻑뻑해진 가슴에

아버지 생각 한 조각 붙이다

 

 

 

와온 바다

 

 

해지는 와온 바다 본다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차를 달려

와온 바다에 왔다

먼 수평선 위

해는 구름에 감싸인 채 잦아들고

해보다 더 빛나는 바다의 검은 속살을

만났다

짱뚱어 숨구멍

바람에 떠밀린 물결의 흔적

먹이를 찾는 물새떼

그림 속 강줄기같은 물길과

그 속에 숨은 하늘노을

보이지 않아 더 깊은 이야기들 잠겨있는

와온의 방파제에 걸터 앉아

소주 한잔 기울이니

해 지고 달 뜨는 천상의 일보다

바람이 들려주는

팍팍한 삶의 무늬

헤어날 수 없이 아득한

비린 살 냄새

너의 몸 깊은 곳

요동치는 삶의 몸짓들

그것이 나를 살게 할 수 있을까

때로

산다는 것이

허망한 몸짓이기도 하여

칠흑 어둠 같은 너의 몸

생명이 들끓는 도가니 같은 너의 몸

소주보다 더 투명한

너의 몸을 보며

몸 떨며 우는

나를 달래 보아도 될까

와온 바다

바다 아니어도 좋은

바다에 왔다.

 

 

 

 

 

불망

 

 

너를 잊었다 생각했다찻집에서나 바다를 볼 때나지하철에서나 밥을 먹을 때나생각 속에 없으니 너는 없다고 생각했다나의 팽팽한 의식의 긴장이터질듯 너의 기억을 옥죄고 있는 줄도 모르고애써 숨죽인 추억의 뒤 안에네가 몸 낮추고 앉아 흘러가는 미망의 물결을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나는 네가 없다고 생각했다나는 내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신열 속에서 기침을 할 때 가슴 속에서 툭 튀쳐 나오는 줄 모르고무심코 돌아본 봄 산한줄기 아련한 산벚꽃인 줄 모르고.

 

 

 

 

 

 

 

 

믿기로 했다

 

 

힘겹게 오르는 산도

한정없이 굴러 떨어지는 수렁도

잡을 것 없기는 마찬가지

끝까지 가 보는 거지

누구에 대한 기대나 원망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거지

자신에게서 가장 가까운

것이 자기일 수 있게

그렇게 믿어 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