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노는 아이 1 9

오형근

 

 

혼자 노는 아이야

남들은 모두가

친구들끼리 어울려서 노는데

너는 혼자서도 잘 노는구나

남들은 서로가 서로의 장난감이 돼서도 잘 노는데

너는 네 스스로가 장난감이 돼서도 잘 노는구나

언제부터 혼자 노는 아이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가끔 그들 속에 끼어서

한번 신나게 놀아 보아라

혼자 노는 아이야

인생은 그렇게 살아가는 거란다

혼자만 깊어가는 아이야

 

  

 

 

거울의 꿈

 

 

 바람이 후회하고 있다. 스스로 물체에 부딪쳐 소리를 냄으로써 자기가 바람임을 깨달은 바람이 울고 있는 것이다. 이 바람의 울음을 창백한 거울이 귀기울이고 있다. 거울은, 거울 이외의 어느 것도 되지 못함으로써 끝까지 거울이지만, 얼굴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바람소리 요란한 밤마다 거울은 얼굴 갖은 꿈을 꾼다.  

 

 

 

 

고드름

-분노

 

 

고드름은 살아 있다

거꾸로 매달려,

 

분노의 창

끝을

하늘 향해

세우지 않은 채

 

햇볕,

어둠,

달빛,

바람 등으로

갈다 보면

 

안으로 단단해진

분노까지도

병 되기 전에

투명해져서

자란다

 

 반

 

 │

 

 짝

 

뒤늦게

눈물 떨구는

고드름은

 

땅 위에 떨어져서

남몰래

자신의 흔적을 지운다



손톱을 짧게 깎으며

 

 

늦은 밤 자다가 일어나

잘 모셔 놓은

손톱깎이를 찾아

짧게 손톱을 깎는다

세상을 나름대로 색칠하면서, 혹은

덧칠을 하면서부터

손톱을 짧게 깎기 시작하였다

사람을

미워하거나

경멸하면 그만큼

 

구두의 못이 솟아

제대로 걷지 못하듯

 

세상살이

먼저 불편하여 손톱

짧게 깎으며

마음까지 추슬러 온 터인데

세상살이가

철 지난 옷 입고 광장을 거닐 때처럼

거북살스럽기는 매한가지

마음 공부하듯

늦은 밤 자다가 일어나

짧게 손톱을 깎으며

마음의 각진 부분까지 그것도

짧게

둥글게 깎아 보지만

 

영혼의 살점까지 베어져서

아프다

 

 

 

 

궁지에 몰린 염소처럼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

 

1863

329, 전라도 화순군 동복면 귀암리에서 죽다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가 세상을 등진 그해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왔어야 했다

천둥소리는 산야를 부들부들 떨게

했어야 했다

 

분명, 그날 비가 왔었다

궁지에 몰린 염소처럼 세상 울타리를

들이받으면서*

김병연 씨의 깊게 팬 손금 모양의

물줄기는

금방 도랑이 되었다

 

김병연 씨의 시들은,

주인의 죽음을 어떻게 알고 달려왔는지

도랑 위에서

소리소리 지르면서

방울방울 물방울로 흐르다가

곧 터져 버리고 말았다

 

하늘이 있어서 더 부끄러웠고

이름이 있어서 더 치욕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하루도 낯선 땅을 밟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만나는 나무조차

돌멩이조차

먼저 알은체하였다

김삿갓이라고 불린 사내, 김병연 씨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까지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죽음조차 앗아가지 못한,

김병연 씨의

세상과 자신에게 치솟은 울분을

씻어 주기 위해서라도

그해 그날은, 정녕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왔어야 했다

 

 

 

 

 

*김병연의 시 「난고, 살아온 길을 돌아보다」에서 빌려옴.

 

 

 

 

환한 빈자리

 

 

 내린 눈이 며칠째 꽝꽝 녹지 않고 있는 날, 아파트 주차장 어느 나무 밑에 작년부터 고양이 밥을 사서 떨어뜨려 놓고 있는데, 오늘도 나무 밑에는 어떤 놈이 먹었는지 살아 있다는 표시로 환한 빈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개작을 위한 시

 

 

, 전철역에서 한 남자가 철로에 떨어져서

달려오는 전철에 치어 죽었다. 마지막까지

파르르, 르 떤 것은

잘려나간, 피가 방울져서 떨어지는 오른손 검지였다,

한다.

처음에는 죽은 남자가

버려진, 7명 중 1명이 빈곤층”이란 기사가 실린 며칠 전 신문*처럼

구겨졌겠구나, 했다. 나중에는

, 재수 없는 놈, 했다. 이 생각은 그 후에도 변함이 없었는데,

그 남자의 주머니란 주머니 속에서

서너 개씩의 지우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나의 관심이 온통 지우개들에게로 달려간 것이었다.

많은 지우개들 속에서,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은 몇 개밖에 없었다,

생김새가 똑같은 것은 한 개도 없었다,

한다.

 

분명하였다, 그 남자에게

지우개는 퍽 소중하였다는 것은−−−.

 

문제는 그 남자가 재수 없게

, 는 것이 아니라 그 많은

지우개들로 무엇을 지우려고 했었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자신의 업을 지우려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우려고?

    자신을 아예 세상에서 없애려고?

 

   ․ 그럼 자살?

 

……나의 주머니 속에서 지우개 한 개가 발견된 것은 두어 달 후의 일이었다.

 

 

 

 

 

*<조선일보>, 2005812일 금요일, A1

 

 

 

 

 

 

19

 

소에게서 떨어진 눈물은

전설傳說 속에서처럼 꽃이 되지 않는다네

 

 

 


 

무제無題 7

 

 

 오늘도,

 

​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내 긴긴 삶에서 까짓것, 액땜한 셈 치면 된다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불면의 밥

 

 

문득, 알아 버렸네

불면은

내 안에서 자란다는 것을

상처는 상처일 뿐

그냥 둬도

시간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서는

딱지로

따뜻하게 덮어 주거늘

내 것으로 억지로 소화시킨다고

안달을 부리고,

내 안에다

등불

제대로 켜 놓지 못했다고

자신을 꾸짖었으니

 

불면은

나를 먹고 자랐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