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석(任永錫)/약력

 

1961년 충남 금산 출생

1985년 계간 『현대시조』 봄호에 2회 천료 시조 등단

1987년 사단법인 담수회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1989년 계간 『시조문학』 봄호에 2회 천료

 

시집

1987년 시집   『이중 창문을 굳게 닫고』

1990년 시집   『사랑엽서』

1992년 시집   『나는 빈 항아리를 보면 소금을 담아놓고 싶다』

2006년 시집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

2008년 시조집 『배경』

2009년 시집   『고래 발자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2012년 시조집 『초승달을 보며』 시조세계문학상 수상시조집 및 강원문화재단 창작기    수혜

2016년 시론집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

2016년 시집   『받아쓰기』 강원문화재단 전문가지원 창작기금 수혜

 

문단활동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계간 『스토리문학』 부주간

 이메일:imim0123@naver.com



<시인의 말>

                          꿈의 부피

 

 

 

꿈의 부피는 풍선을 불어야 하는 심정 같다

풍선이 터지지 않게 힘 조절을 잘해야 한다

너무 크게 불면 터지고

너무 작게 불면 둥둥 떠가지 않는다

시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인은 돌을 갈아서 나를 바라보는 일이라 했다

물렁한 돌을 갈아서는 나를 비출 수 없다

30년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 시집도 그 길을 찾아가기 위한 이정표에 불과하다

 

2016년 초가을

 

 

치악산 밑에서    



<해설>

인내, 그 견딤의 미학

 

 

김순진(시인 · 문학평론가)

 

 흔히 ‘세상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임영석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그에 대한 믿음은 확고해진다. 임영석 시인은 필자가 발행하고 있는 계간 〈스토리문학〉의 부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간이신 지성찬 시인과의 인연으로 지난 2007년부터 필자를 도와주기 시작해서 이젠 스토리문학을 통해 전국에서 그를 모르는 시인이 없을 정도로 시단에서는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월간으로 발행하던 스토리문학에서 계간이 된 이후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스토리문학에 ‘임영석 시인의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이란 코너를 맡아 시평을 연재해왔다. 그리고 지난 6월에 연재했던 원고들을 모아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 이란 시 해설서를 출판했는데 그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다. 그 시해설서에는 우리나라에서 시 좀 쓴다는 분들의 시를 해설해놓았는데, 고려대평생교육원 시창작과정에서 강의하고 있는 필자는 이 책을 가지고 오는  20162학기 9월 개강 때부터 교재로 사용하여 강의할 예정이다.

 임영석 시인과 나는 닮은 곳이 많다. 갑장인데다가 둘 다 젊은 시절부터 노동을 해왔다. 그는 스물일곱 살에 산업현장에 들어가 지금까지 근무해왔고, 나는 열일곱 살부터 들어가 건설현장을 드나들며 살아온 바 있다. 게다가 나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고 임영석 시인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그리고 서른 살쯤 돼서 어머니마저 여읜 그였다. 그렇지만 시를 쓸 수 없는 환경에도 시를 지켜내며 시를 써낸 것이 중요한 이야기다. 자동차 조향부품을 주력상품으로 만드는 회사의 기능직 사원이 바쁜 회사생활을 하면서 계속해서 시를 써왔다는 것은 가히 기적에 가깝다.

 그리하여 그는 2009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기금을 받고 시집을 냈고, 2013년에는 강원문화재단 창작기금 시조부분의 수혜를 받고 시조집을 발간했다. 그리고 금년도인 2016년에도 강원문화재단으로부터 전문가지원 창작지원금 시부분의 수혜를 받아 이 시집 『받아쓰기』를 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강원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이 어떤 돈인가? 정부의 돈은 실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날고 기는 사람들도 고배를 마시는 그런 제도가 아닌가? 대단한 실력이 아니면 넘볼 수도 없는 지원금을 턱턱 받아내는 임영석 시인이 정말 높이 보인다.

 그럼 시를 그렇게 높이 보이게끔 한 그의 시야는 어떻게 뜨게 된 것일까? 그는 고된 산업현장에서 보낸 지난 30년간의 인생역정을 시를 통해 위안을 받았고, 시를 통해 용기를 얻었으며, 시를 통해 스스로를 지켜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시에는 은근과 끈기가 들어 있다. 그의 시를 생각하면 척박한 환경을 정화해내며 꽃을 피우는 연꽃이 생각난다. 불교적 색채를 띠는 그의 시에는 딱따구리 소릭 kx은 절제미가 들어있다. 딱따구리 소리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들려오지만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딱따구리 소리에는 너무 가까이 가지 않고 덤벙대지 않아야 들을 수 있는 절제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1985, 25세의 젊은 나이에 〈현대시조〉에 등단한 임영석 시인은 그 후 2년 귀에 만도기계에 입사해 자동차부품회사에 취업하게 된다. 그리고 야근과 직장 상사들의 눈치보기가 반복되는 환경 속에서도 부단 없이 시를 써온 결과 그는  8권이라는 시집과 1권의 시해설서를 펴낸다. 실로 대단한 위업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그의 시에는 ‘인내, 그 견딤의 미학’이 들어있다.

 

 그의 시는 목적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의미보다 현상을 중시한다. 따라서 임영석의 시에서 일어난 현상들은 어떤 것을 정의하지 않고 어떤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생산하여 독자에게 영상처럼 보여주고 만다. 그러면 독자들은 그 영상을 자기고 또 다른 영상으로 호환한다. 그것이 임영석 시인이 리듬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까닭이다. 일찍이 옥타비오 파스는 그의 저서 『활과 리라』에서 “이미지는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이다’라는 모순의 원리에 도전함으로써 물의를 일으킨다. 대립되는 것들의 동질성을 말하는 것은 우리의 사유토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가 보여주는 시적 현실은 옳고 그름을 지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임영석의 시는 이 시적이론, 즉 이미지에 충실한다. 말하자면 그의 시는 ‘새가 운다’라는 이유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새는 지붕을 덮지 않는다’라는 새로운 사유를 지향한다. 그리하여 그가 가보지 못한 세계는 모두 그의 소유가 되며 그가 생산한 모든 언어는 스스로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그의 시 몇 편을 읽어보면서 그가 어떤 정신으로 세상을 헤쳐 나왔고, 명예퇴직 후 어떤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윤택하게 살아갈 것인가? 또 우리 시단에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마음의 부를 이루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앞길이 잘 보이지 않고 침체된 시단에 대낮같이 환한 조명탄을 쏘아 올릴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내가 아무리 받아쓰기를 잘 해도

그것은 상식의 선을 넘지 않는다

백일홍을 받아쓴다고

백일홍 꽃을 다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받아쓴다고

사랑을 모두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받아쓴다는 것은

말을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일 뿐,

나는 말의 참뜻을 받아쓰지 못 한다

나무며 풀, 꽃들이 받아쓰는 햇빛의 말

각각 다르게 받아써도

 

저마다 똑 같은 말만 받아쓰고 있다

만일, 선생님이 똑같은 말을 불러주고

아이들이 각각 다른 말을 받아쓴다면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햇빛의 참말을 받아쓰는 나무며 풀, 꽃들을 보며

나이 오십에 나도 받아쓰기 공부를 다시 한다

환히 들여다보이는 말 말고

받침 하나 넣고 빼는 말 말고

모과나무가 받아 쓴 모과 향처럼

살구나무가 받아 쓴 살구 맛처럼

그런 말을 배워 받아쓰고 싶다 

 

         -「받아쓰기」 전문

 

 시인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시를 못 쓰는 시인들은 베껴 쓰고, 시를 잘 스는 사람들은 받아쓴다.”는 말이 그 말이다. 그렇다면 일단 임영석 시인의 시는 잘 T는 시다. 시 한 편을 받아쓴 것이 아니라 시집 제목에서부터 『받아쓰기』를 하고 있느니 말이다. 그러면 나는 임영석 시인을 왜 잘 쓰는 시인이라고 말할까? 잘 쓴 흔적이 너무나 많은 곳에서, 다시 말해 구석구석 요소요소에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아무리 받아쓰기를 잘 해도 /  그것은 상식의 선을 넘지 않는다 / 백일홍을 받아쓴다고 / 백일홍 꽃을 다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 사랑을 받아쓴다고 / 사랑을 모두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 받아쓴다는 것은 / 말을 그대로 따라 쓴 ㄴ것일 뿐, / 나는 말의 참뜻을 받아쓰지 못한다”라고 겸손의 미덕을 보인다. 그렇지만 시인이 “나무며 풀, 꽃들이 받아쓰는 햇빛의 말‘을 받아쓰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내공이 필요한 말인가? 그걸 깨닫고 시인 자신은 ”모과나무가 받아 쓴 모과 향처럼 / 살구나무가 받아 쓴 살구 맛처럼 / 그런 말을 배워 받아쓰고 싶다“고 자신의 시적 소망을 이야기 한다. 그가 문단에 나와 글을 쓰기 시작한지 벌써 32년째다. 그러니 그는 충분히 자연의 말, 사물의 말을 받아쓸 능력이 있다. ’베껴 쓰는 말‘은 ’바람이 분다‘에 준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받아쓰는 말‘은 ”바람이 담장의 어깨를 짚고 마당을 기웃거린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백일홍을 받아쓴다고 / 백일홍 꽃을 다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시에서 백일홍 꽃을 다 받아쓸 필요는 없다. 그것은 선생님께서 받아쓰기를 불러주실 때 ”여러분, 준비 다 됐죠. 아빠, 구름, 바람“이라고 말한다면 그걸 다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아빠, 그름, 바람“만 받아쓰는 것이 맞게 쓰는 것이다. 이를 테면 백일홍 꽃이 시들고 있다면 시든 rhcdp 대한 환경과 사연에 대하여 받아쓰면 되는 것이다. 결코 백일홍이 자라난 환경과 성장과정, 꽃의 숫자, 잎사귀의 숫자 등에 대하여 받아쓸 필요는 없다. 그러니 그렇게 받아쓰기를 잘하고 있는 임영석 시인의 시에서는 ’모과향‘도 나고 ’살구맛‘도 나는 것이다. 따라서 임영석 시인이 이 시집의 제목을 『받아쓰기』 라 채택해준 것은 초심자들에게 매우 큰 메시지를 던져준다.

 

 

 

네 애인의 첫사랑 같은 거 너무 캐묻지 마라

꽃들이 제 향기의 무덤을 생각하고 피는 것은 아니다

누구 좋으라고 피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어쩌다 술 취해 하룻밤 잤다고 애인이라면

장미 여관에서 서너 명씩 손님을 받는 그 여자

하룻밤 남자들 줄 세우면 숲을 이루고 남을 것이다

엉덩이가 좀 처져 있으면 어떠냐

쌍꺼풀 수술로 눈이 짝짝이면 어떠냐

오늘도 키스 방 알바를 하며 혀를 내주던 여자도

제가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는

키스를 할 줄 모르는 여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돌을 감싸고 자라는 나무가 돌의 나무가 아니듯

물속에 뿌리내려 자라는 나무가 물의 나무가 아니듯

먹구름 속에 감추어진 빗방울처럼

비밀은 항상 네 몸 밖에 있다 물고기가

물 밖에서 살지 못하는 것처럼

네 애인의 비밀을 아는 순간 너의 애인이 아니다

물 밖의 세상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네 애인을 물 밖으로 꺼내지 마라

비밀이란 물밖에 나와 썩어 가는 물고기들의

살 냄새에 불과하다

 

              -「비밀에 대하여」 전문

 

 일단 나는 이 시를 읽고 깜짝 놀랐다. 그 순하고 여린 봄바람 같은 임 시인이 이렇게도 선정적이고 도전적이며 도발적인 시를 써낸 것에 대하여 충격적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사람은 순하되 문학은 문학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임영석의 시를 더욱 깊은 창작능력으로 풀이 할 t 있겠다. 봄바람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상당히 관능적이고 선정적이다. 봄바람은 나무를 꿰어 섹스를 한다.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나무를 애무해서 그 나무를 잉태시킨다. 그리고 결국 바람의 아이를 낳는다. 바람의 아이는 또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 자기 가문의 뿌리를 내리고 바람을 맞이한다. 남의 비밀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마라. 임시인의 말처럼 그 비밀이 탄로나는 순간 너의 행복은 깨지게 된다. 임 시인의 말처럼 “장미 여관에서 서너 명씩 손님을 받은 그 여자 /  하룻밤 남자들 줄 세우면 숲을 이루고 남”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엉덩이가 처진 것에 대하여, 눈이 짝짝이인 것에 대하여, 뚱뚱한 것에 대하여, 깡마른 것에 대하여, 한쪽 다리가 짧은 것에 대하여, 대머리인 것에 대하여, 두꺼운 안경을 쓴 것에 대하여, 손가락 하나가 없는 것에 대하여 알려 하지 마라’고 일침을 놓는다. 지금껏 나는 키스 방 알바에 대하여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이 시를 읽으며 돈을 받고 ‘혀를 내주는 여자’의 존재에 대하여 깨닫고 깜짝 놀란다. , 내가 형광등 같이 살았구나 싶다. 지금도 있는지, 가보고도 싶다. 임 시인이 직접 가보았는지, 아니면 추측만으로 썼는지에 대하여 알 필요는 없다. 다만 현대사회가 그런 비밀을 조장하는 것, 즉 노래방 알바 아줌마들이 모두 내 부인들이거나 여동생들임에도 남자들이 그녀들을 불러 몸을 더듬도록 조장하는 사회에 대하여 임 시인은 일침을 놓는다. 그래서 시인은 ‘비밀은 항상 네 몸 밖에 있다 물고기가 / 물 밖에서 살지 못하는 것처럼 / 네 애인의 비밀을 아는 순간 너의 애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물고기가 / 물 밖에서 살지 못하는 것처럼”이란 비유가 ’혀를 내주고라도 살아야만 하는 키스방 도우미‘와 ’몸의 밀착을 허락하며 살아야하는 노래방 도우미‘의 현실을 눈감고 세상은 굴러간다. 아프고 아리고 약 오르는 세상이다. 차라리 매춘을 허락하지, 왜 우리의 아내와 여동생들을 이렇게까지 추하게 만드는지 정부가 밉다. 중소도시의 2층과 지하실에는 모두 공장들이 포진하고 있어 아낙들이 쉴 새 없이 부업꺼리를 핸드카로 실어 나르는 풍경은 어디로 사라지고, 몰래 아리를 재워놓고 나와 노래방 도우미로 살아가야 하는 여인들의 아이러니한 현실이 못마땅하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바라본다

곳곳이 위조할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해와 달이 하나뿐이라는 일월오봉도,

반으로 접어보니 해와 달이 한곳에 겹쳐진다

음과 양의 기가 한 곳에 만나 통하는 세상

얼마나 많은 문양을 완성해야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또한 보는 각과 빛에 따라 나타나는 홀로그램은

그 이치가 사람의 마음처럼 보인다​

이 만 원의 돈이면 한 달 치 소식을 전하는 월간 잡지를 사볼 수가 있고

​어리광 부리는 조카딸의 입을 봉할 수도 있고

시인의 고단한 눈빛이 묻어 있는 시집 한 권을 사 볼 수 있는데

이 만 원이 ​내 삶의 표현을 갉아 먹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이 세상의 말을 압축해 놓았으면

돈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할까?

 

 

 

                 -「만 원을 바라보며」 전문

 

 지난 2009623일에 5만 원권 새 지폐가 발행되었다. 5만 원권 지폐가 시중에 나오면서 1만 원권 지폐는 점점 기운을 잃어간다. 외부에서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5만 원짜리 한 장은 부숴야 대접이 된다. 시중의 밥이 6,7천원으로 오르면서 만 원짜리 한 장으로 둘이 밥을 사먹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보통 2,3망원씩 하던 결혼식, 장례식 부조금도 최하 5만원으로 오르고, 조금 친하면 10만원을 내야 한다. 5만 원권의 등장으로 서민들의 봉급은 오르지 않고 씀씀이만 두 배로 오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 달 동안 땀 흘려 일한 보답으로 일정한 월급을 받아서 생활해왔던 월급쟁이 임영석 시인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은 더없이 귀한 돈이었을 것 같다. 임 시인의 말처럼 만 원짜리 한 장은 “한 달 치 소식을 전하는 월간 잡지를 사볼 수가 있고 /  어리광 부리는 조카딸의 입을 봉할 수도 있고 / 시인의 고단한 눈빛이 묻어 있는 시집 한 권을 사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아직까지 만 원짜리 한 장은 대단한 힘을 가졌다. 시인처럼 나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가만히 들여다본다. 가로 148mm. 세로 68mm. 처음 나롤 때는 너무 작아서 천 원짜리 같다느니, 돈 같지 않다느니 하는 말을 했었다. 위조할 수 없도록 홀로그램과 몇 번씩 겹친 문양은 첨단기법이 사용되었지만 서민들의 생활은 첨예하게 팍팍해져갔다. 그 후 10원짜리 동전이 과거의 1월짜리 동전처럼 작아졌다. 세상이 돈짝만 하다더니 정말 돈이 우습게 됐다. 임영석 시인의 말처럼 만 원짜리가 서민들 “삶의 표현을 갉아 먹고 있다. / 얼마나 많은 이 세상의 말을 압축해 놓았으면 /  돈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할까?” 허리띠를 졸라매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딱히, 무엇을 말하기가 좀 그렇지만

책에서 읽지 못하는 글을 읽으러

산속 딱따구리 집 근처 밭으로 나는

주말마다 뜬금없이 찾아 간다

 

일 년 넘게 딱따구리 소리를 들어 왔건만

얼굴은커녕 눈인사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도 제 삶에 열중하느라 바쁘겠지만

곁눈으로라도 나를 훔쳐봤을 것이다

 

그의 사생활에 내가 방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필요 이상의 경계가 더 궁금증을 갖게 한다.

하여, 살금살금 그의 집 근처까지 찾아가 몇 번을 보려 해도

딱따구리는 내 수고를 뒤로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항상 일정한 거리에서만 들어야 하는 딱따구리 소리,

그 거리를 나는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딱따구리의 귀는 혜안(慧眼)으로 가득하여

내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몸을 숨긴다

 

                 -「딱따구리」 전문

 

 임영석 시인은 “책에서 읽지 못하는 글을 읽으러” 자주 산속 딱따구리 집 근처를 찾는다. 그런데 그의 말처럼 그는 일 년 넘게 딱따구리 소리를 들어왔지만 딱따구리를 만날 수 없었다. 딱따구리는 아무리 살금살금 기어가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때문에 딱따구리 소리는 “항상 일정한 거리에서만 들어야”한다. 세상에는 딱따구리처럼 만나지 못하는 게 많다. 아니 딱따구리 소리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만 들리는 소리들이 많다. 임영석 시인은 “시의 소리가 그런 소리다.”라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시는 직설화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물음 자체를 직설화법으로 늘어놓으며 그에 대한 답을 또한 무슨 명제를 던지듯 확고한 대답을 써놓으며 시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식이다. 그것은 격언이다. 시는 격언이나 명언을 말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살아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시가 딱따구리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듣기 싫은데 자구 해대는 잔소리 같은 말이 아니라, 듣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가야 들을 수 있는 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시는 독자에게 스스로 다가가지 않는다. 독자가 시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내 발로 찾아가 듣고 싶은 언어를 말해야 한다. ‘부모에게 효도해라. 나라에 충성해라. 서로 사랑해라’ 같은 냄새나는 언어가 아니라 미소가 지어지는 언어, 일부러 찾아가 듣고 싶은 언어, 책방에 가서 고르는 언어다. 시는 인간의 상상력을 키우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시 「딱따구리」 에서처럼 상상할 수 있는 폭이 증폭된 시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임영석 시인의 매우 큰 자산이다. 베르니스(Jenne Benis)는 그의 저서 『상상력 서설』에서 ‘시를 창조하는 정신적 재생물과 환상적 상상력을 정의’하고, 그 결과를  ‘감각적 재생물과 환상적 창조물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는데,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시인은 이미지를 통해 가정과 사고를 키운다”고 했던 바, 딱따구리 소리와 작가의 거리 사이에 끼어있는 이미지는 희망. 소망, 고향, 이데아, 미래, 사랑, 만남 같은 꿈의 이미지들이 임영석 시인이 지각하는 감각적 환상물, 즉 딱따구리 소리를 통하여 환상적 창조물로, 꿈의 언어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1.

커다란 냉장고에 옥수수를 쪄서

 

한 겨울 먹겠다고 보관해 두었다

여름이 냉동되어 있다

그것도 한 겨울에 냉동된 여름을 풀어

맛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름의 맛은 쉽게 오지 않는다.

뜨거운 불에 제 몸을 녹여야 온다.

 

2.

친구 여식() 결혼식장에서

30년 만에 초등학교 여자 친구를 만났다

앉자마자 술부터 권하는 친구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만 기억이 없다

내 기억이 해동되지 않아 따라주는 술만 마셨다

술로 내 기억을 해동시켜주는 친구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그 기억으로 무슨 시를 쓰냐고 한다.

널 기억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돌아오며 생각하건데, 30년 동안 얼려놓은 기억

술 몇 잔에 해동되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해동(解凍)」 전문

 

 

  우리는 방금 ‘옥수수’와 ‘기억’을 잘 대비해서 ‘해동’의 이미지를 완성시킨 시 한 편을 읽었다. 참으로 잘 비교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한 겨울에 물고기를 잡으러 간 적이 있다. 동구 밖 큰 개울까지 가서 물고기를 잡았다. 반두로 물고기를 잡아 허리에 차고 다니는 종댕이(싸릿가지를 펴서 만듦)에 넣으면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 물고기는 바로 얼어붙었고, 집에 돌아와 두레박 우물에서 물을 퍼 물고기를 담가 놓으면 신기하게도 얼었던 물고기들은 모두 되살아났다. 말하자면 해동이 된 것이다. 급류를 오르던 지느러미도 물속에서 눈을 뜨는 물고기 눈도 모두 해동되어 개울에 도로 놔주면 기억까지 해동되어 다시 유유히 헤엄쳐가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임영석 시인의 말처럼 옥수수는 겨울에 냉동보관을 했다가 녹일 지라도 옥수수 고유의 맛이 나지 않는다. 솥에 넣고 팔팔 끓여 한 번 다시 삶아내야 옥수수 특유의 맛이 살아난다. 그것은 비록 냉장고 안에서 겨울을 난 옥수수지만 뜨거운 여름의 기운을 쏘여주지 않고는 옥수수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 곡식이 있는 농지에는 가로등을 꺼주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밤새 가로등을 켜놓는다면 참깨와 콩이 죽정이가 되고 만다. 잠을 재우면 씨알이 드는 곡식, 잠을 안 재우면 하루에 두 개의 알을 낳는 암탉, 해동시켜도 한 번 뜨겁게 삶아내야 참맛이 나는 옥수수를 가만히 살펴보면 자연이 가지는 기억력은 실제로 위대한 것이다. 하물며 자연도 기억력을 해동시켜줘야 하는데 30년이 지난 여자동창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며 따라주는 소주 몇 잔으로 기억력을 해동시킬 수 있을까? 미국의 심경심리학자 브라이앤 배처는 “뇌는 기억력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연결패턴을 계속해서 만드는 신경가소성 현상을 일으킨다.”면서 “기억력을 개선하는데 늦은 나이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시인이 자살한 경우는 가끔 보지만 시인이 치매를 앓았다는 조사는 없다. 그만큼 시쓰기 작업은 뇌를 발달시키기 기억력을 증가시킨다. 30년 만에 만난 옆에 앉은 여자 친구가 기억나지 않는 것은 학교에 다닐 때 친구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서 그렇다. 같은 동네에 살지도, 같은 반을 하지도, 같은 반이라도 서로 멀리 떨어져 앉고 짝꿍을 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는 것인데, 그 기억을 소주 몇 잔으로 해동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저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추리해낼 도구도 추억도 없기 때문에 그 친구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추억은 모두 대동소이하기에 어디 어디 살았고, 누구랑 다녔다는 기억의 도구를 사용하면 금방 친구사이는 복원된다.

 

 

구족(具足)으로 글을 읽고 쓰던 어머니는

"염치가 없습니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칠남매의 심성(心性)을 가르쳤는데

그 염치를 나는 잘못 배웠는지

부주깽이 매만 아프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스물 다섯 번 째 되는 어머니 기일(忌日),

음복 술 한 잔 마시고 나서

우리 형제 자매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어머니가

"염치가 없다" 는 말,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아시느냐 말하니

형들도 염치가 없는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염치(廉恥)가 없다」 부문

 

 

 

아버지는 빈 소라껍질,

나는 그 소라껍질 속의 게,

 

일 년에 한 번 고봉밥 차려 놓고

세상 어디를 다니시는

아버지를 모실 때면

손자가 낳은 증손자까지 절해도

맹물에 밥 한술 말아놓고 그만 가신다.

증손자는 언제 왔다 갔냐고 묻지만,

 

                    -「아버지」 부문

 

 

 

나는 제비 새끼처럼 병원을 들락거리며

형의 눈빛을 가슴에 담기 위해 애썼다

65년이라는 생이 무너지던 날

콧구멍은 바람을 더 밀어 넣지 못 했다

눈은 앞을 더 바라보지 못 했다

가슴에 쿵쿵거리던 심장이 돌처럼 굳어갔다

화장을 해서 유골함을 받아들고

고향땅에 묻기까지 형은

세상의 삶을 한 마디로 정리해 주었다

 

      -의 일기·1 - 형이 죽다」 부문

 

임영석 시인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말은 일찍이 글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형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자랐다는 말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25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은 지금 이 시를 읽으며 처음 듣는다. 게다가 어머니는 손을 쓰지 못하시고 발로 글을 쓰고 읽으셨다니 가슴이 시리다. 그런 어머니께서 늘 자식들에게 염치가 없다고 하셨다니 그런 훌륭한 어머니한테서 임영석 같은 훌륭한 심성을 지닌 시인이 태어난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나니 가정의 대소사는 모두 형이 챙겼고, 형은 임영석 시인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에게 아버지는 빈 소라껍질 같은 존재였다. 소라의 맛을 모르고, 아버지의 맛을 모르고 자란 빈 소라껍질 속의 게, 그게 임영석 시인이다. 아버지의 제사를 지낼 때면 큰형이 낳은 조카자식의 아이, 즉 증손자가 ‘할아버지가 언제 왔다 갔느냐’ 물어도 아버지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를 형이 채워주었다. 얼마 전, 나는 임영석 시인의 형께서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임영석 시인의 고향인 충남 금산으로 달려갔다 온 적이 있다.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나는 어린 동생에게 울타리가 되어준 형이 너무나 고마워서 나는 임영석 시인 대신 내 친구 영석이를 보살펴주셔서 고맙다고 진심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런 형이 병석에 누웠으니 임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도록 아팠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의좋은 형제’라는 형제 이야기를 배운 적이 있다. 밤이면 서로의 논에다 볏짐을 져다 놓는 형제는 결국 볏짐을 지고 형은 아우의 논으로, 동생은 형의 논으로 가다가 만난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아마도 임영석 시인 형제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보통의 설화들은 형이 못된 성품을 지녔고 아우는 착하고 순해서 아우가 당하는 일이 많다. 서양에서는 카인과 아벨이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는 흥부와 놀부가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임 시인의 형제들처럼 아름다운 형제가 있다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야기다. 얼마 전 우연히 그의 가족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몇 남매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십여 명의 가족들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은 장면을 보고 부러워서 나도 돌아와 아버지를 모시고 형제들과 함께 가족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때 가족사진을 찍은 일은 정말 잘 한 일 같다.

 

 

1987년 입사해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는 먹고살기 위해 일을 했다

내 또래의 친구나 동료들은 진급을 해서

계장도 되고 직장도 되고 기장이 되었다

그런데 기능직들의 진급이라는 게

누가 더 충성심 강하고 복종을 잘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일을 열심히 잘 했다고 공로상도 몇 번 받았지만

나는 애초에 진급의 대상자가 아니다

복종심 없고 정직함 하나만 내세우는 나보다는

허수아비 노릇 잘 하는 친구들이 제격이었다

어떻게 보면 영화 시나리오 같은 일들이

나의 직장생활에서도 수 없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술 친구를 끊었다

내 직장 생활의 점수는 0점이다

노조 위원장 했던 친구들도 내 친구가 아니다

진급을 해서 직장 기장이 된 친구도 내 친구가 아니다

나는 항상 현장에서 형으로 통했다

그냥 형이라 부르라고만 했다

소금처럼 짜다는 말만 듣고 살았다

말이 안 통한다는 말만 듣고 살았다

전태일은 나 같은 사람 수백 명 가슴에 담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전태일이 못된 나는 2016516일부로 노동을 멈추었다

 

 

 

          -의 일기·2 - 직장생활」 전문 

 

영석 시인은 지난 516일 명예퇴직을 했다. 1987년 입사해서 만 30년 동안 근무했다. 그는 진급하지 못해 평생 평사원으로 근무했나 보다. 직책도 없이 그냥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니 그런 어려움을 딛고 견뎌준 인내가 눈물겹다. 같이 입사한 친구들과 나중에 들어온 후배들은 진급을 해서 상관 행세를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가정을 위해 참고 견뎌준 세월이 참으로 고맙다. “소금처럼 짜다는 말만 듣고 살았다”하니 얼마나 아끼고 근면하게 살아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말이 안 통한다는 말만 듣고 살았다”고 하니 자신의 일에 대하여 얼마나 고집스럽게 지켜내며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가늠이 된다. 노동자 시인이 어떻게 이렇게 좋은 시를 쓸 수 있었을까? 그는 월급의 일정부분을 떼어내 정기적으로 시집을 산다. 그리하여 시에 몰두할 수 없는 열악하고 힘든 환경을 스스로 개선하며 최고의 시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2012년 쯤 스토리문학 식구들이 영월에서 영월사람들과 문학의 밤을 열 때, 그는 스토리문학 발전을 위해 ‘11계좌 1만원 운동’을 발의하며 스토리문학 출신들이 스토리문학을 사랑하지 않으면 스토리문학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펴주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계좌를 터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 그 어렵고 힘든 시기에 스토리문학은 임영석 시인이 발의한 ‘11계좌 1만원 운동’에 힘을 얻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으니, 그에게 백번 고맙다며 술을 사도 좋겠다.

이상에서처럼 임영석 시인의 시 몇 편을 읽어보며 그의 시세계와 30년의 직장생활을 살펴보았다. 나는 그를 의지의 한국인이라 말하고 싶다. 그는 교수, 교사, 공무원 등의 화이트칼라가 아닌 노동자 계급의 블루칼라이면서도 정신만은 화이트칼라를 고집했던 시인이다. 그는 뚜렷한 호칭이 없이 형으로만 불리면서도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정신적 리더 역할을 해온 시인이다. 대기업 제품만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그의 고집스런 30년 장인정신이 그가 몸담았던 회사에게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자동차 조향부품을 생산하는 만도’라는 최고의 호칭을 붙여준 시인이다.

고졸출신으로 대학 문턱에 발을 들여놓은 바 없는 그는 박봉을 털어 한 달에 수십만 원어치의 시집을 사며 노력해왔다. 그런 노력으로 그는 계명대학교 교양학교재 ‘현대시 새겨 읽기에 「받아쓰기」가 수록되기도 했다. 세상은 노력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이 임영석 시인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이 이제 확실해졌다. 그는 아직 젊다. 지금의 지속성과 성실함으로 노력해나간다면 그는 분명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시인이 될 것이다. 여덟 번째 시집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