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셈법


 

 

 장가못간 후진 씨가 도지를 짓는 단호박들이 우리 집 경계를 넘어와 암은행나무를 자꾸 건드린다

 

 건너 밭의 고구마줄기도 비탈면을 내려와 순실이네 땅에 순을 뻗는다 지난 봄 순실이 아버지가 지게로 져 나른 거름을 먹어치운 잎들은 등등하다

 

 적동댁 문패 앞에 붙은 호두나무는 언순네로, 언순네 포도는 적동댁 수돗가로 넘어가서 소유권이 불분명하다

 

 넘어온 고구마 순을 쳐내는 순실이 아버지의 입이 부어 있다

 

 낫을 들어 담장으로 넘어온 호박순을 치려다 그만 둔다

 

 머위나 돌나물 미역취에서 방풍까지 푸른 것들은 자기 땅이 없다

 

 뿌리나 가지를 뻗은 곳이 그들의 필지다 열매나 꽃을 피우는 모든 곳이 그들의 소유다

 

 경계면을 녹녹綠으로 훑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는 어린 돼지감자 떼의 종종걸음

 

 

 

 

살아 있는 구간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릴 때 진짜 버리는 거다.

길은 끝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끝날 때 비로소 끝난다.

그 살아 있는 한 구간만을 우리는 뛸 뿐이다.

저의 몸이 연필심처럼 다 닳을 때까지 어떤 흔적을 써보는 것인데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부여받고 평생,

눈밭에서 제 냄새를 찾는 산개처럼 끙끙거리다가

자기차선과 남의차선을 넘나들며 가는 것이다.

다음주자에게 바통을 넘기기 전까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차올라오는 파도처럼

자기를 뒤집기 위해 자기 목을 조우지만,  

눈밭에 새긴 수많은 필체 중 성한 문장은 없고

잘못 들어선 차선에서 핏덩어리로 뭉개지고 있는 몸.

쏟아 붓는 백매白梅는 얼굴에 닿자마자 피투성이 홍매紅梅로 얼어붙는다.

자신의 영정影幀을 피하듯 모두들 눈길 옆으로 붙지만

이 신랄한 현장이 현실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릴 때까지

보석寶石이 아니라 보속補贖의 언덕에 닿기까지

남의 차선과 자기 차선을 혼동하며 가는 것이다.

유족도 없이 혼자 장지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루터기

 

 

 벼를 베어낸 논바닥이 누군가의 말년 같다

 

 어느 나라의 차 상위계층 안방 속 같다

 

 겨울 내내 그루터기가 물고 있는 것은 살얼음속의 푸르던 날

 

 이 세상 가장 아픈 급소는 자식새끼가 제 약점을 고스란히 빼다 박을 때

 

 그래서 봄이 오면 농부는 자기 생을 이식한 흉터를 무자비하게 갈아엎고 논바닥에 푸른색 도배를 하는 것이다

 

 등목을 하려고 수건으로 탁, 탁 등을 치는 순간 감쪽같이 그의 등판에 업혀 있는 그루터기들

 

 

 

슬픔을 말리다

 

 이 체제에서는 모두가 난민이다. 진도 수심에 거꾸로 박힌 무덤들을 보면 영해領조차 거대한 유골안치소 같다. 숲속에다가 슬픔을 말릴 1인용 건초창고라도 지어야한다. 갈참나무나 노간주 사이에 통성기도라도 할 나무예배당을 찾아봐야겠다. 마저도 무한기도는 허락하지만 인간에게 두 발만을 주셨다. 한발씩만 걸어오라고, 그렇게 천천히 걸어오는 동안 싸움을 말리듯 자신을 말리라고 눈물을 말리라고 두 걸음 이상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말리다”와 “말리다” 사이에서 혼자 울어도 외롭지 않을 방을 한 평쯤 넓혀야 한다. 은 질문만 허락하시고 끝내 답은 주지 않으신다. 대신에 풍경 하나만을 길 위에 펼쳐놓을 뿐이다.

 

 마을영감님이 한 짐 가득 생을 지고 팔에서 막 빠져나온 뼈 같은 지팡이를 짚고 비탈을 내려가신다. 지팡이가 배의 이물처럼 하늘위로 솟았다가 다시 땅으로 꺼지기를 반복하는 저 단선의 봉분. 짐만 몇 번씩 길 밖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길 안으로 돌아와서는 간신히 몸이 된다. 짐이 몸으로 발효하는 사이가 칠순이다. “말리다”에서 “말리다”까지 가는데 수없이 내다버린 필생의 가필加筆이 있었던 것이다.

 

 

 

 

안계들판

 

 

 벼들이 해가 지는 쪽으로 일제히 눈을 맞춘다          

 고개를 숙이고 숙여서 자신을 바닥의 눈금 쪽에다 눕힌다    

 수만 개의 삼베두건이 무한 경배로 일렁이는 시간

 

 살아 있는 몸들은 다 자란 후에는 어디로 가는가

 누군가를 베어 먹은 피 묻은 입조차 막판에는 또 어디로 가는가

 

 지나온 몸의 시간을 묵주처럼 한 알씩 복기하는 자

 혹은 최후를 수긍할 수 없어서 고개를 처든 자

 기어코 자신을 옭아맨 결가부좌를 끝까지 풀지 않는 저 한 톨의 외로움까지!

 

 벼들이 해가 뜨는 쪽으로 서서히 입을 맞춘다

 고개를 숙이고 숙여서 마지막 발바닥에도 조금씩 물기를 뺀다

 

 멀리서 전조등을 켠 콤바인이 어둠의 새벽을 꾹꾹 누르며 천천히 바퀴를 굴린다

 

 

 

 

 밭이 아프다

 

 

숨이 오르막에 닿을 듯

명아주 지팡이가 근들근들

해뜨기 전에 언덕을 올라와서

돌밭에 쪼그려 한나절을 나던 파란 함석집 할머니

 

병이 나서 옆집 창창한 이른 먹은 아재한테 땅을 부치라 했다 한다

다시는 밭에 오지 못할 거라고 마을사람들의 얼굴이 오동 그늘이다

 

사람이 맥을 놓으니 땅도 시름에 빠진다

채로 거른 듯 갈아 놓은 흙들이 버석버석 낯가림을 하고 있다

군데군데 심어 놓은 쪽파들이 허리가 돌아간 채 여름 해를 넘고 있다

 

밭이 누웠으니 할머니의 병세가 더 급해진다

 

 

 

 

 

 이칠곡 씨의 어버이날

 

 

 우리 마을 칠곡 씨 책걸상은 물론 백묵 냄새도 못 맡았지만 못자리 글씨만은 반듯반듯 봄바람에 흘림체로 단정하지

 

 이칠곡 씨 한 잔 술 걸치면 느린 말씨 더 느려져 그 옛날의 비둘기호로 가다 서다를 밤새도록 하지만, 새벽녘 고랑에 풀 베는 소리만은 사각사각 스-쓱 청산유수로 흐르지

 

 쉰이 넘어서도 장가 못간 칠곡 씨, 인사차 대처에서 온 자식들 손자들 마을회관에서 부어라마셔라 금영노래방이 후끈후끈 달아오를 때 논둑에 혼자 앉아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네

 

 오늘은 술 한 방울 적시지 않았는데도 찰랑찰랑한 논바닥에서 노을한 사발이 올라와 흰 수염 몇 가락에까지 홧, 홧 달아오르네

 

 

 

 

옛다, 물이나 먹어라

-서벽*

 

 서쪽의 벽지란 뜻이겠지

 

 옛날에 문둥병자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 깊은 산속까지 숨어들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물이 환부를 불러들인 것. 바위가 수만리를 내려가서 제 가슴으로 걸러낸 이 물맛은 무겁고 텁텁한 쇠 맛이 일품. 물은 헐어진 손끝이나 뭉개진 발가락에 붙은 농이나 균을 눈이 먼 승이 경을 읊듯 입속에 오래 물고 있었겠지. 그래도 불통不通이라 싶으면 몸속으로 불러들여 한바탕 소용돌이 물춤을 추기도 했겠지. 옛다, 물이나 먹어라! 눌러 붙은 입술이나 짝귀에게도 한 바가지씩 약물을 끼얹었겠지. 그런데 사실 이 말도 틀린 말! 백년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자네는 수만 년의 세월을 걸어서오는 물의 외로운 수압을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는가? 한 겨울을 만폭동처럼 얼어서 자기 상처를 자기가 긁을 수 없는 적막강산은 또 무어란 말인가? 그러니 오히려 물의 우울증의 치유사는 진물이나 대상포진이나 발열계통. 그러니 이 약물의 분자식은 농과 균의 결합. 나는 아직 물소리를 잘 헤아려 듣지 못해서 속병에도 좋다는 이 약을 마셔도 잘 낫지를 않네. 한 두어 시간 마셨더니 혓바닥이 까슬까슬 목에서 자꾸 묵은 녹물이 나올 듯하네.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있는 오지로 탄산약수가 유명하다

 

 

 

봉달이 아재의 가뭄

 

 

 유월 초사흘까지도 물 한 모금 변변히 삼킬 수 없던 어린모들이 바싹 마른 발가락을 오그려 더운 흙을 꾹 쥐고 서있다

 

 동란도 막바지 무렵, 애비 없이 이 세상을 나와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젖꼭지를 꼭꼭 물어뜯을 때, 아이구야!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그만 가슴이 호미 날 부러지듯 콕 부러지더라는 노모의 말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듣곤 했다

 

 그도 그거지만

 애비는 그래도 이리 메우고 저리 기워서 이날 이태까지 잘 살어왔다만

 월 25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공무원이 되겠다고

 밥값은 지가 알아서 할 터이니 걱정 말라고 한 지가 삼년

 요번 할아버지 제삿날에도 오지 않은 막내만 생각하면  

 

 마른 흙 위로 솔솔 기어 나오는 모 뿌리들을 보노라면

 아무리 삽자루를 뒤집어도 떠먹일 젖 한 방울 변통할 데가 없구나

 누런 난닝구 속에 들어붙은 젖꼭지가 오늘은 절로 뜨끔뜨끔하다

 

 

 

 

 

본의 아니게 씨

       - 한식날

 

 

닭이 목이 말라 죽어나자빠져도

물 한 모금 까딱하기가 귀찮은 박평판 씨는

결혼까지는 언감생심이었다.

다섯 살 윗길, 과부 엄 씨가

<새서울여인숙>에서 자신을 낚기 전까지는

 

결혼까지는 마지못해 했다손 치더라도

아이까지는 정말 아니었다.

수세미처럼 축 늘어진 자신의 영물이

올챙이 수영을 거 개다리, 송장영법을 거

그렇게 잽싸게 그 문턱에 터치, 하리라고는

본의 아니게 13녀씩이나

 

늘 누룩이 눈자위로 번져가는 박평판 씨는

늘그막에 관운이 온다는 소리에

한 귓구멍으로 듣고 두 콧구멍으로 흘린 바 있지만

마누라 엄 씨가 읍내에 낸 <진달래 소주방>

이태 건너 한 채씩 집을 지어 올리는 벽돌소리에

정말이지 본의 아니게 그 처녀보살의 말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관운이 재운으로 딱, 한 글자 틀렸음을

 

그가 죽던 날

평판 씨는 끝까지 이름 남기기를 사양했지만

부친이 이름을 지어준 관계로

박평판지묘朴平板之墓

마당가의 고욤나무처럼 쑥스럽게 제 이름을 펼쳐들고

본의 아니게 또 아들 딸 손자까지 불러서는 한 상 걸게 받아넘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