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보면 나무들은 모두 기형이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의 나무 같아도 가까이 가서 보면 두 그루의 나무이다. 서로를 향해서는 여린 가지들이 뻗어 있고, 다른 방향으로는 굵고 강한 가지들이 뻗어 있다. 참으로 사이좋게 커가고 있다.

뒤틀리고 비비꼬인 모습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들이다. 그래서 멋지다. 꾸불꾸불 길을 가다 훤한 허공을 만나 환희에 찬 모습들도 보인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치열한 삶이 일궈 낸 숲의 아름다움. 햇살을 받기 위한 뜨거운 열정들이 보기에 좋은 모습을 만들었다.

땅 속에서도 땅 위와 같은 모습들을 연출할 것이다. 물을 향한 간절한 소망들이 얽히고설켜 있을 것이다. 서로 배려하며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다. 그래서 도를 찾는 사람들은 숲을 찾나 보다.

사람들도 모두 기형이다. 절뚝절뚝 걸어가는 저 사람은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발걸음이다. 그래서 눈부시다. 복잡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면,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 어색한 몸짓들을 하며 각자의 길을 간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세상엔 가끔 슬픈 모습들이 보인다. 며칠 전에 우연히 카페에 들렀다가 여자를 마구 때리는 남자를 보았다. 저렇게 부딪치는 나무들은 없을 것이다. 왜 사람은 저래야 할까? 상처들을 가득 안고 함께 어깨 걸고 가는 저 남녀, 꼭 저렇게 부딪쳐야만 함께 길을 갈 수 있을까.

왁자지껄한 시장에는 이따금 가슴에 부딪쳐 오는 마찰음들이 있다. 서로를 마구 할퀴고 제 길을 가는 사람들, 제 길을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걸까. 다들 흥건한 눈물 자국들이 가슴에 있다. 그래도 서로를 위안하려 사람들은 깔깔거린다. 웃음 회오리들이 여기저기 인다.

사람들은 서로 부딪쳐 죽고 죽이는 경우도 있다. 자신도 망가지는 그 길을 왜 사람은 가는 걸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물론 나무들도 가끔 서로를 죽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제 길을 가다 그렇게 된 것이지 다른 나무를 죽여서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멀쩡한 자기 길을 두고 제 길을 가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이기도 한다.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생명체의 이변을 낳게 하는 걸까. 나무들도 다 아는 길을 왜 사람은 모르는 걸까.

TV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보았다. 배울 만큼 배우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사람들이 한 어릿광대에게 속아 전 재산을 갖다 바치고 패가망신하는 것을. 그들도 나무처럼 햇살을 찾아 갔으리라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햇살이 아니었다. 자신의 눈이 멀어 빛과 어둠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나무들은 정확히 빛을 찾아 간다. 빛이 안보이면 한없이 기다린다. 그러다 조그만 빛에도 손을 내민다. 한겨울 바싹 마른 나뭇가지들이 봄이 되면 싱싱하게 물이 오른다. 불꽃 모양의 새순들이 돋는다.

사람들은 이런 기다림을 잃어버린 듯하다. 빛이 보이지 않으면 견디질 못한다. 마구 아우성치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다 빛이 나타나도 제 길을 갈 줄 모른다. 이따금 조용한 정적을 깨고 아파트 전체를 뒤흔드는 파열음. 빛이 없어 빛이...... 그는 청맹과니이다. 온 집안에 불을 환하게 켜 놓고도 빛이 없다며 아내를 마구 다그친다. 빛 좀 내 놔. 빛 좀...... 어디서 빛 좀 빌려 와.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해야 하는 존재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를 보지 못한다. 지나간 과거나 미래에 눈이 가 있어 현재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인도의 사원 벽에는 뱀 조각들이 있다. 사람도 뱀처럼 계속 허물을 벗어야 하는 존재란다. 자신이 자신을 낳아야 하는 존재. 그렇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 수가 없다.

나무를 보면 명상하는 수도자 같다. 혹은 빼어난 무사 같다. 팽팽하다. 서늘하게 깨어있다. 빛과 어둠 그 사이에 그는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사람은 흐트러져 있다. 마음속의 어지러운 생각이 그의 행동을 어지럽게 할 것이다.

사람은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를 쉽게 잊지 못한다. 자라에게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도 쉽게 놀란다. 나무는 어릴 적부터 홀로 길을 가지만 사람은 어릴 적에는 부모에게 의존한다. 모든 삶을 의존하여 생각도 의존하게 된다.

의존된 생각은 홀로 길을 가는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무수한 대리 부모들에게 의존한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고, 강자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스스로 갈 수 있는 길도 누군가에게 의지하려 한다. 다 큰 어른이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부모님을 아기 마냥 원망하고 있다. 그의 앞에 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 쬐고 있는데, 그의 몸은 불꽃 마냥 피어나려 하고 있는데, 마음이 강하게 막고 있다. 그의 마음은 꽁꽁 얼어 있다. 엷게 퍼져 투명하게 비쳐야 하는데.

숲을 거닐며 마음 푸는 연습을 한다. 갓 돋아나는 꽃망울들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나무줄기들을 쓰다듬어 본다. 나도 숲의 일원이 된다. 내가 마음을 풀 때 숲은 나를 받아준다. 긴장하던 풀, 나무들도 한가롭게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나를 지켜보던 작은 짐승들도 비로소 제 길을 간다. 나는 다만 내 길을 가면 된다. 마음을 바람처럼 가볍게 바람이 가듯이. 그러면 내 발에 밟힌 풀들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무심코 스친 내 팔에 다친 꽃들도 참는다. 미안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무심하게 내 길을 갈 것. 숲은 나를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사람들은 다 올바른 길을 가고 싶어 한다. 조그만 죄에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게 사람이다. 하지만 그 죄의식이 오히려 제 길을 가지 못하게 한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밉지 않으므로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갈 것. 죄를 물로 씻고 가벼운 몸으로 걸어 갈 것. 죄의식을 나뭇잎처럼 훌훌 털고 나부낄 것. 마냥 웃을 것.

숲을 빠져 나온다. 뚜벅 뚜벅 걷는 나무 한 그루가 되어. 사람 세상에 돌아가면 다시 사람이 되어 힘들어 하리라. 하지만 내 안에 숲이 있어, 나는 본래 나무 한 그루였으니. 나를 보듬어주고 잘 가꾸어 가면 나는 나무처럼 살 수 있으리라. 나무처럼 활짝 웃으며 사람 속으로 섞여든다.

 

 

설거지

 

아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설거지하기를 귀찮아한다. 그럼, 내가 해 줄게. 나는 고등학교 때 자취하던 실력으로 설거지를 해주었다. 뭐, 재미있는데. 그런데 설거지를 자꾸 하다 보니 기묘하게 귀찮아진다. 내 몸이 설거지를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럴까? 아내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설거지는 정말 싫단다.

누구나 요리할 때는 묘한 흥분을 느끼는 것 같다. 라면을 끓여먹는 막내둥이 녀석도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을 때는 사냥꾼의 얼굴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되어 있다. 그런데 그 사냥꾼도 배불리 먹고 나면 몸이 축 늘어져 쉬고 싶을 것이다. 옆에 초식동물들이 지나가도 한가하게 쉬고 있는 사자의 느긋한 얼굴. 그 얼굴로 설거지를 해야 한다면 얼마나 고역일까. 설거지를 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먹는 것에 탐닉하다 보니 요리가 복잡하게 되고 그래서 뒤처리가 복잡하게 된 것 같다. 자승자박이다.

내가 자란 고향 마을 앞에는 제법 큰 시내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천렵을 하며 놀았다. 그러다 고등학생쯤 되면서부터는 물고기들을 잡아 매운탕을 끓여 막걸리와 함께 먹었다. 고추장을 듬뿍 넣고, 풋고추 몇 개를 뚝뚝 부러뜨려 넣고, 깻잎을 한 줌 넣고 끓이는 매운탕 맛은 일품이었다. 우리는 요리를 하며 물고기를 잡을 때 이상으로 흥분을 느꼈다. 맛있게 먹고 나선 그 당시 유행하던 나훈아 노래를 부르며 포만감을 한껏 즐겼다. 그런데 다 먹고 난 냄비를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냇물에 대충 씻고 가져갔는지 아니면 그냥 집으로 가져갔는지 모르겠다.

산길을 가다 산딸기 같은 나무 열매들을 따 먹을 때는 참으로 기분이 좋다. 산딸기들이 탐스럽게 달려 있는 풀숲더미를 헤쳐 혹여 뱀이라도 있나 조심조심하며 산딸기를 손으로 따 입에 넣고 씹어 먹는 맛이란 그 어떤 진수성찬에도 비교 할 수 없다. 단지 신선해서일까. 아니 인간 본능에 맞는 식사법이라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세상천지가 식탁이 아닌가. 그 넓은 식탁에서 식사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식사일 것이다. 좀 맛있게 먹겠다고 좁디좁은 방안에 갇혀 지지고 볶고 갖은 양념을 넣어 먹고 그러고 나선 또 복잡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식사법은 너무나 반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설거지를 할 때는 묘한 거부감이 드는 것 같다. 기나긴 인간 습성에 맞지 않는 특별한 식사법. 그래서 식당에서 설거지 하는 일이 가장 하찮은 직업이 된 듯하다. 당당한 얼굴의 요리사와 설거지하는 아줌마의 얼굴을 비교해보면 그 간격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단지 고된 일의 차이가 아닐 것이다. 요리사의 작업 과정을 보면 얼마나 고되어 보이는가.

시골에 살 때, 일을 하러 갈 때는 반드시 막걸리 두어 병과 쌈장을 가지고 갔다. 힘껏 땀 흘려 삽질을 하고 나선 밭둑에 앉아 막걸리 한잔을 쭉 들이키고는 싱싱한 고추를 따 쌈장에 푹 찍어 먹는 그 맛이란! 설거지가 필요 없는 가장 깔끔한 식사다.

나이가 들어가는 아내를 위해 즐거운 척 하는 설거지. 내 몸의 거부감을 이겨내며 해야 하는 설거지는 나만이 아닌 이 시대 모든 인류의 고민일 것이다. 다양한 입맛에 길들여진 현대인. 그 입맛을 위해선 복잡하고 귀찮은 설거지는 필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그 설거지를 해야 하고. 이런 식사법은 인간도 결국 언젠가는 누군가의 식탁에 올려져야 한다는 생명의 대 법칙을 망각하게 만든다. 자신은 남의 식탁에 올려지지 않겠다고 비단 수의를 입고, 대리석 관에 들어가고, 묘소를 정원처럼 꾸민다. 하지만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산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쯤 그는 결국 누군가의 즐거운 식탁에 올려지게 되는 것을.

나는 누군가의 식탁에 깔끔하게 올려지길 바란다. 내가 먹는 것들은 내 식탁에 올려지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가꿔왔는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깔끔한 식사가 되기를.

 

 

위층 사람들

 

작년 이맘때쯤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산 아래에 위치해 있어 조용하고 공기가 맑고 향기로웠다. 이름도 그에 걸맞게 그린 타운, 3개 동에 24가구가 사는 아담한 빌라였다. 이 아래에 있는 아파트에 살 때는 이 빌라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아내와 나는 이 빌라를 거쳐 약수터에 오르며 이 집들을 힐금힐금 쳐다보곤 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우리가 살던 집을 내 놓을 때쯤에 이 집이 났다. 좀처럼 빈집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 빌라였다. 우리는 신나게 이사 준비를 했다. “자기야, 거기 이사 가면 보는 사람들 마다 인사해. 몇 가구 안 돼 아마 서로 친하게 지낼 거야.” “응.” 나는 아내의 당부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이사를 와 보니 서로 인사도 잘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처음 이사를 오던 날은 우리는 신참답게 보이는 사람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아이들에게도 반갑게 농담 한마디씩 건네곤 했는데, 우리가 너무 튄다는 느낌이 들었다. 옆집과는 친하게 지내 여기 분위기를 물어보니 서로 별로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우리는 이곳의 관습법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층에 손님이 왔나 보다. 아이 한 명이 수시로 쿵쾅거리며 이리저리 내달리고 있었다. “여기 오니까 이런 문제가 있네.” “그러게 말이야.” 우리 집은 1층이라 오고가는 사람들이 다 보였다. 통유리로 된 창으로 내다보니 그 녀석인가 보다 이제 가려는지 연신 한 지프차에 오르내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저 녀석 개구쟁이 구만.’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주말마다 왔다. 아마 위층 집 남자의 조카 같았다. 그때마다 탱크 굴러가는 소리를 냈다. “에구,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난감해졌다. 이웃과 한 번도 싸워보지 못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게 가장 현명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위층으로 올라가 살짝 벨을 누르고 주인이 나오면 흠흠 목을 가다듬고 ‘죄송합니다만, 여차여차 해서...... .’ 하고 말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위층 사람들을 어떻게 보나. 그래도 그 아이 버릇이 고쳐지지 않으면 더 낭패가 아닌가. 그래도 꾹 참고 지낸다면 우리가 우습게 되는 거고, 강도를 높여 싸우자니 다음 수순의 전략이 없다. 우리는 가상 전쟁 이야기를 주고받다 항상 ‘일단 두고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의 뜀박질만이 아니었다. 가끔 통유리 위에서 이불이 큰 깃발처럼 펄럭였다. 위층에서 햇볕에 말리기 위해 밖에 내다 건 이불이었다. 그런데 그냥 내다 건 것만이 아니라 탁탁 먼지를 털어댔다. 그때마다 먼지가 폴폴폴 우리 집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아악!” 우리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소리가 위층에 들릴 리는 만무했다. ‘오! 어떡해야 하나?’ 우리는 속으로 끙끙 앓았다.

그런데 위층 사람들의 횡포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따금 통유리 청소를 했다. 그 땟국물이 우리 집 통유리로 줄줄 흘러 내렸다. 우리는 그것을 참담하게 쳐다보았다. 이렇게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던 어느 날, 우연히 신영복 선생의 산문을 읽게 되었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 나왔다. 위층 아이가 수시로 ‘달리기 연습’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훌륭한 분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까가 늘 궁금했었는데, 나는 속으로 키득키득 웃으며 한 줄 한 줄 읽어 나갔다. ‘아, 역시 허명이 아니었구나.’ 나는 신영복 선생의 지혜에 속으로 탄복을 금치 못했다.

탁견이란 ‘알고 지내기’였다. 선생은 어느 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어느 학교 다니느냐’ ‘뭘 좋아하느냐’ 등등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그 아이와 아는 사이가 되었단다. 그러고 나니 그 아이가 ‘달리기 연습’할 때마다 견디기가 훨씬 편하더라는 것이었다.

‘맞아, 아는 사람은 이해가 되니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 지혜도 우리에겐 별무소용일 것 같았다. 다들 친하게 지내지 않는 분위기에서 갑자기 위층 사람들과 ‘술 한 잔 하자.’고 하기도 그렇고, ‘우리 집에 차 한 잔 하러 오세요.’하기도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고 나서는 훨씬 견디기가 쉬워졌다. 한 날은 팔락팔락 날리던 이불이 탁탁탁 먼지를 피울 때는 쾅! 소리를 내며 유리창을 닫기는 했어도(그때 아내는 내게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행동 지침을 주었다), 전에 보다는 덜 마음이 상했다. 차츰 내 몸이 상황에 적응해 갔다.

생각해 보면 위층 사람들의 ‘청결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좀 유난한 것 같기는 해도, 어쨌건 개인 취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이불과 통유리를 깨끗하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매번 이불을 들고 나와 마당에 널기도 그렇고, 통유리를 청소할 때마다 아래층에 내려와 보고하기도 그렇겠고. 사실 이불을 털 때 먼지가 들어오긴 해도 그 먼지야 길에서 마시는 차의 매연보다는 훨씬 덜 해로울 것이다. 우리는 위층 사람들 얘기를 주고받다가 항상 결말은 ‘그냥 참자’였다. 저강도 정책이 우리에게 맞지 고강도 정책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 자존심이 좀 상하긴 하지만 고강도 정책의 후유증보다는 나을 것이다. 싸움을 할 줄 모르는 우리가 이웃과 싸우고 나서 그 해일처럼 밀려올 마음고생을 무슨 수로 헤쳐 나간단 말인가?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사람살이가 다 정겨워진다. 그래, 참길 잘했다. 이런 상황이 천년만년 갈 것도 아니고, 지금 내 방으로 흘러드는 향긋한 공기만으로도 웬만한 건 다 참아 낼 수 있지 않는가?

방범창틀 사이로 끼어들어오는 저 푸른 나뭇잎들을 보며, 길에서 들려오는 약수터 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즐겁게 듣는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신경림)

 

                       

 청량리에 사시는 사촌 형님의 첫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친척들과 악수를 나눴다.

 

 악수를 오래 하다 보니 손을 잡아보면 손의 주인공의 삶이 느껴진다. 현재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돈

 

을 얼마나 벌었는지, 손에서 손으로 느낌이 전해져 온다.

 

 마냥 반가워 꽉 잡고 마구 흔드는 손들은 못난(?) 손들이다. 사회의 인정을 받는 손들은 힘이 없다. 너무나 많

 

은 사람들과 악수를 해서 악수하는데 지친 건지, 손을 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건지, 손을 앞으로 내밀고

 

얼굴은 웃는 형상을 한다. 순간이지만 이런 손을 잡고 나면 기분이 떨뜨름해진다.

 

 누가 결혼하는 즐거운 날, 마냥 흥겨워하는 손들은 얼마나 좋은가. 잘난 놈, 못난 놈들을 훑어보다가 신경림

 

시인의 시 ‘파장’이 생각났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충격적인 시구절로 시작하는 명시!   

 

 시골 살 때 닭 농장을 하는 집에 세 들어 산 적이 있다. 주인이 나보다 두 살이 더 많아 나는 형이라고 불렀다.

 

농장의 주인은 장마다 돌아다니며 닭을 팔았다. 나도 가끔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장에 따라갔다.

 

 왁자한 시장은 언제나 사람 향기가 가득하다. 사람 꽃밭만큼 아름다운 게 있으랴? 꽃밭 사이를 거닐며 사람

 

꽃들을 구경하다 보면 그 향기에 취한다. 그 향기가 견딜 수 없어 찾아가는 선술집, 시장 한 귀퉁이에는 반드

 

시 선술집들이 있다. 돼지 머리고기, 술국과 함께 기울이는 막걸리잔, 온 몸에 쏴 퍼지는 살아 있음의 환희! 이

 

순간이 더없이 좋다. 그때는 곁에 누가 있건 다 좋다. 이야기꽃이 함빡 피어난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이런

 

술집들의 분위기를 유리창으로 기웃거려 보며 어른이 되면 술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는 꿈(?)이었다.

 

 시장 한켠에는 가축을 파는 장터가 따로 있다. 그곳에서 나는 농장 주인이 닭 파는 것을 도와주었다. 주인 내

 

외가 소리치며 호객을 하고 나는 그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흥정이 이루어지면 나는 재빨리 닭

 

들을 잡아 종이박스에 넣고 테이프로 묶었다. 그러면서 나는 시장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보

 

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들의 얼굴엔 가식이 없다. 아는 얼굴을 만났을 때 환하게 피어나는 얼굴은 이 세상의 어느 보석보다도 눈부

 

시게 빛난다. 신경림 시인은 오랫동안 그들과 어울려 살며 이런 얼굴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못난 놈들

 

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한국 시사에서 가장 위대한 구절이 태어난 것이다.

 

 이 시구절을 바꿔보면 어떤가? ‘잘난 놈들은 얼굴을 봐도 흥겹지 않다’는 끔찍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가? 얼

 

마나 무서운 현실인가?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지만, 분위기는 피어나지 않는다. 잘난 놈들이 간간이

 

끼어있어서 그렇다. 웃음의 물결이 출렁이며 가다 그들을 만나면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암초를 만난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표정, 거만하게 앉아 있는 모습.

 

 그렇게 헛웃음을 흘리다. 헤어진다. 헤어질 때도 그 놈들의 손들은 또 힘이 없다. 그러다 못난 놈들 손을 잡으

 

면 삶의 기쁨이 회오리친다. 웃음과 울음의 얼굴을 하고 나오는 예식장, 느닷없이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고해

 

는 점점 깊어진다.

 

 

 

너 자신을 발명하라(니체)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라는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학생이 쓴 대자보를 읽으며 내 몸은 전율했다.

성경에 나온다. 생명의 길은 좁디좁다고. 그럼 넓은 길은? 당연히 죽음의 길이다. 우리 대다수가 가는 길은 죽음의 길이다. 이 넓은 길을 오래 걸은 우리 대다수는 이미 죽은 자다. 아니라고? 그건 생명의 길을 몰라서 그렇다. 생명의 샘물 맛을 몰라서 그렇다. 오랫동안 죽음의 음침한 길만 걸어 죽음의 맛에 깊이 취해 버려서 그렇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적이 있었다. 국립 실업계 학교라 졸업하면 의무적으로 기능직 공무원이 되어야 했기에 내 앞 길은 뻔해 보였다. 기능직 공무원으로 일생을 살아야 하나? 청춘의 내 몸에겐 뭔가 피가 끓는 일이 필요했다.

혼신의 힘을 다할 수 있는 일, 그게 내게 필요했다. 그땐 앞이 그냥 막막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게 필요했던 것이다. 부모님께 학교를 자퇴하고 육군사관학교에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께서는 극구 반대하셨다. 군대는 위험하다는 거였다. 나는 돈이 들지 않는 육사를 가고 싶었지 군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기능직 공무원으로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부모님 반대로 자퇴를 하지 못하고 꿈도 없이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취직이 보장되었기에 공부는 할 필요가 없는 학교생활은 참으로 나른했다. 친구들과 등산 가고, 낚시하러 가고, 혼자 있을 땐 만화 가게에서 무협지를 빌려다 봤다. 상상의 공간에서 나는 무림 고수가 되어 강호를 휘젓고 다녔다. 항상 내 곁엔 미녀들이 있었고.

학교를 그만두는(거부하는) 김예슬 학생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 숨 가쁘게 달려온 지금까지의 삶, 앞으로도 헐레벌떡 달려야만 하는 삶, 그런 삶을 보며 ‘삶은 이게 아닌데...... .’하는 의심을 품게 되었을 것 같다. 대자보를 보면 인문학에 대한 독서도 꽤 한 것 같다. 그 인문학의 힘으로 이런 성찰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들처럼 열심히 스펙 쌓아 경영학과를 졸업하면 무엇이 될까? 명문대라 안정된 직장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삶에 불꽃은 피어오르지 않을 것이다. 이 거대한 공장 같은 세상의 톱니바퀴 하나가 되어 숨 가쁘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세월은 흐르고 자식 낳아 또 그 자식을 톱니바퀴로 만들어 가며 허덕허덕 살아갈 것이다. 항상 돈돈돈 주문만 외우다 어느새 머리칼은 새하얗게 되고 ‘이게 사는 건가?’하고 할머니가 되어버린 쭈글쭈글한 몸을 짓무른 눈으로 내려다볼 것이다. 과연 이게 인생일까?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 대학에 갔다. 여기서도 국립사대라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졸업 후 다 교사로 취직이 되니까. 돈 없는 나는 항상 이런 국립학교만 찾아다녔다. 그냥 먹고 살면 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내게 무슨 꿈이 있나? ‘교사 정도면 그냥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꿈 없는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는 꿈 있는 삶을 살아봐야 알 수 있다.

내게 꿈이 온 건 1987년 6월 어느 날의 도시 거리에서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역사의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고 있었다. 멀찍이서 지켜보는 나는 전율했다. ‘아, 세상은 이런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가는구나!’ 나는 그때까지 영웅사관에 젖어 있었다. 교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 대학 교수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상 사회 이론을 정립할 거야. 내 이론대로만 하면 이 세상이 지상낙원이 되는 그런 이론을 만들어 낼 거야.’

지금 생각하면 황당무계한 생각이지만 그때는 아주 진지했다. 만일 6월 항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어디서 지금쯤 교수를 하고 있을까? 그런 영웅사관을 갖고 학자가 되었으니 학문의 성과는 뻔할 것이다. 학문의 성취는 별로 이루지 못하고 그냥 사자 직업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6월 항쟁의 충격으로 나는 여기저기 공부하러 다녔다.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의 강의를 들으며 내 머리는 빠개졌다. 내 머릿속에 든 것들은 다 엉터리였다. 전교조 활동을 하며 내 삶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자기 대면’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의 존재로서의 나’를 본 그때의 체험은 내 생애 최대의 경이로움이었다. ‘나로 살아보자!’ 나는 교직을 그만두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인문학과 문학 공부를 하러 다녔다. 뒤풀이 시간엔 그렇게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계 톱니바퀴로 만들어진 나에 대한 애도’였다. 길게 길게 울며 말갛게 씻겨져 가는 나를 보았다. 그 뒤 나는 시골에 가서 농사도 지어보고, 지역신문사에도 근무해보고, 문화센터도 운영해 보고, 글쓰기 강의도 해 보았다. 내 마음이 물 흐르듯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데드 마스크 같던 내 표정은 부드럽게 풀려갔다.

이렇게 내 삶의 물결은 흐르다가 지금은 글 쓰고 글쓰기 강의 하는 곳으로 흐르고 있다. 이젠 시골에 정착해 농사에 전념하고 싶다. 자연의 품에 푹 안겨 살아보고 싶다. 나는 내 인생에 후회가 없다. 삶은 내게 기쁨 그 자체다.

김예슬 학생은 이제 진정한 삶의 길로 들어섰다. 앞으로의 삶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삶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준 넓은 길을 가는 것은 삶이 아니다. 자신의 좁디좁은 길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삶의 길이다.

누가 내게 이 학생이 당신의 자식이라도 이렇게 박수를 칠 수 있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나는 이미 우리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그렇게 키워왔다’고. 나는 스스로의 삶을 발명해가는 삶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는 뼈아픈 경험들을 통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나며 내 생각이 옳음을 확인했다.

삶은 눈부시게 타오르는 것. 하나의 불꽃같은 것이다. 이 세상이 그런 불꽃을 마구 꺼버려 우리는 모두 재가 되어버렸지만 우리들 깊은 곳에는 불꽃이 남아 있다. 조금만 바람을 불어넣어주면 금방 화르르 타오른다. 삶의 길로 들어선 김예슬 학생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