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

 

 

담배를 피우다가 담뱃재가 뚝 떨어졌다

찰나가 사라지는 그 순간을 놓칠세라

손끝에 침을 발라서 습관처럼 잡았다

 

남에게 흉만 보고 코딱지나 파던 손끝,

찰나를 잡아 놓고 손가락질은 여전하다

힘으로 살 수 없음을 그 찰나에 가르친다

 

구린내 나는 밑을 가장 먼저 닦다 보니

이 세상 더러움에 손가락이 가는 것은

손끝만 깨달음 얻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足文

-구룡포에서

 

족문으로 써 내려간 갈매기의 생각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뒤를 향한 화살표다

 

제 몸이 뒤에 있다는 눈속임의 글 한줄

 

 

적벽에 그려 놓은 반가사유 미소처럼

 

알아도 모르는 척 그 글의 끝을 보니

 

날아가 쓰지 못한 글 모래알보다 더 많다

 

 

 

 

초승달을 보며

 

괄호도 아니고 반 괄호로 달이 떠서

어떤 말의 의미들을 풀어줘야 할 것인데

앞 문장 깊은 여백에 품은 글이 사라졌다.

 

내 나이 다섯 살에 죽었다는 아버지는

콩깍지 속 콩들처럼 칠남매를 남겼지만

어머닌 육십 평생을 반 괄호로 살았다.

 

괄호()로 묶어내도 쭉정이가 많을 건 데

어떻게 칠남매를 혼자서 키웠는지

반 괄호 달빛을 보니 그 의문이 풀린다.

 

둥그런 달빛 속을 파고 든 저 그림자

제 몸을 다 내주고 그림자로 채운 마음

서로가 품고 품어서 반 괄호가 되어 있다.

 

불혹의 내 나이도 반 괄호가 되었지만

자식의 숨소리에 쫑긋 세운 내 두 귀는

언제나 초승달처럼 앞 괄호를 열어둔다.

 

 

 

작두를 보며

 

 

제 몸을 공양하고 가겠다는 그 믿음이

뼈 없이 묶여서는 작두에 목을 내민다.

한때의 푸른 꿈들을 공손하게 내려놓고,

 

작두의 입 모양이 들락 달락 할 때마다

더 많은 되새김의 말(言)이라 생각하니

무엇을 썰어내는 게 왜 힘이 드는지 알겠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각을 세운 내 삶에서

얼마나 많은 말이 작두에 썰렸을까

되새겨 살이 되었던 그 말(言)들이 안 보인다.

 

나도 이젠 내 마음에 작두 하나 만들어서

그대가 먹음직한 내 마음을 썰어놓고

언제나 되새김하는 공양 밥이 되고 싶다.

 

 

 

無言

-故노무현 대통령이 뛰어내린 부엉이 바위에서

 

민들레가 피는 것도 제 영혼의 말일 건 데

유언 한 줄 써 두고서 뛰어내린 이 바위는

얼마나 많은 말들을 가슴 속에 새겼을까

 

부엉이 울음들이 잠시 멈춘 그 틈에서

허공에 써 내려간 한 획의 뚫을 곤(|)자

無言의 획으로 남아 무슨 글을 완성할까

 

참매미 나무 등에 혹처럼 매달려서

소리로 완성하는 글들을 남기는데

내 몸의 척추 뼈 같은 그 無言은 무엇일까

 

산다는 게 죄가 되면 절벽이 되는 건가

아무리 둘러봐도 바람 같은 말 뿐인데

이 세상 두고 가는 말, 無言 말고 뭐 없을까

 

 

꽃집 순례

 

꽃잎 속 꿀맛 같은 경전이 어디 있나

꽃집을 순례하며 도량을 닦던 벌이

엉덩이 가득히 묻힌 꽃가루가 수상하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살아가는 놈이라면

독을 품은 엉덩이가 성할 일이 없을 거라

눈부처 마음에 담듯 내 의심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벌들이 안 오니까

애호박이 안 달려서 한해 농사 망쳤다고

씨받이 벌 구하려고 수소문이 분주하다.

 

꽃집을 순례하며 씨받이를 하던 벌이

피 한 방울 섞지 않고 법문을 퍼트려서

그 법문 듣지 않고는 열매들이 안 열린다.

 

 

 

낙타는 왜 등이 굽었을까

 

세상에 등이 굽은 건 다 늙어서 굽었는데

낙타는 자궁 속에서 등이 굽어 태여 난다

뜨거운 모래 바람이 휠 수 없는 자세로,

 

예수나 석가처럼 낙타의 쌍봉에는

감춰도 드러나는 미움의 혹, 사랑의 혹

아무리 힘이 들어도 내려 노칠 않는다.

 

수 만년 달구어진 모래사막 모래알이

세월의 경전처럼 발목을 붙잡아도

낙타의 모세혈관은 멈춰 서지 않는다.

 

인생이 짧다거나 길다고 느낀다면

그대 몸이 낙타되어 사막을 걸어보라

네 몸이 얼마나 넓은 사막인지 보일 거다.

 

 

 

어둠 속에서

 

어둠은 눈이 없어 소리로만 앞을 본다

아무리 먼 불빛도 어둠의 두 귀에는

소망을 빌고 있다는 소리로만 들린다.

 

어둠의 문 앞에서 돌아서는 그대여,

그대가 불빛처럼 어둠 속에 몸을 묻고

스스로 몸을 녹여서 불꽃처럼 말해보라.

 

어둠은 그대 몸이 불빛으로 타오를 때

그대가 가야 할 길, 그 길만 내어주고

나머지 길들은 항상 어둠 속에 묻어둔다.

 

그대여, 외롭고 서럽다고 울지 마라.

어둠 속의 불빛들은 어둠의 장식일 뿐,

그대가 불이 아니면 읽지 못할 글들이다.

 

 

도독

 

손가락 열중에서

가장 나쁜 손가락을

뚝 끊고 살겠다고

결심을 해 놓고서

칼날을 내리치는데

마음이 싹 바뀐다.

 

내밀은 손가락이

칼날보다 더 빠르게

생각을 바꿔 놓고

허공만 내리치니

쿵! 하고 무너진 마음

통째로 다 빼앗겼다.

 

어떻게 일 초 사이

결심이 다 사라질까

아무리 생각해도

큰 도독이 들은 거다

그 도독 잡기 위해서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우포늪

 

우포늪 공부방엔

낙제생이 너무 많다

 

쇠물닭 가시연꽃

바람 책을 펴 놓고서

 

때늦은 공부 하느라

밤과 낮이 따로 없다

 

 

우포늪 보물지도

그 한 장 그리는데

 

종이도 붓도 없이

1억 년이 걸렸으니

 

해와 달 번갈아 가며

낙관처럼 찍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