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력

 

1962년 전남 장성 출생

1998년 계간 시대문학 등단

현재, 글쓰기논술 강사

시집으로 "막막한 어둠을 버티는 일" "흑백영화 이야기"

*주소

* 메일:kyj-si@hanmail.net

 

 

 

 

*시집 해설

 

 

 

과거의 복원과 추억의 힘-조동범

 

김연자의 시는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이다. 시인의 시선은 흘러간 영화(「흑백영화 이야기」 연작) 속에 머물러 있기도 하고 시골 이발소의 풍경(「이발소 그림」 연작)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소환되는 기억은 단순히 개인적인 삶의 궤적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시 속의 세계는 과거에 기대어있지만 그것은 시인의 사적 기억에 대한 회고담이 아니다. 김연자 시인의 작품이 지니는 미덕은 바로 이와 같은 지점으로부터 비롯된다.

시인이 호명한 과거의 기억은 객관화된 대상을 통해 드러나며, 바로 이때 대상과의 거리가 발생하게 된다. 때문에 시인의 과거는 사적 영역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을 획득한다. 특히 「흑백영화 이야기」 연작의 경우는 영화를 감상한 순간의 시·공간과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화자가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영화의 이야기는 객관적인 의미를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시인은 영화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개인사를 철저하게 배제함으로써 삶의 보편적 진실이 주는 의미를 파헤치게 된다.

 

눈이 내렸다

서울 경기지방 대설주의보

힘 있는 권력의 혁명일수록 숨죽여 시작하고

신속하게 끝장을 본다

새벽부터 간이역에 집결한 폭력은

조용히 수많은 발들을 묶고 입을 틀어막았다

 

전차에 실린 라라가 떨고 있다

눈보다 먼저 역사에 도착한 사랑

사뿐 땅에 내린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하얀 발이 안개 같은 약속 두리번거린다

갈망은 어디로든 휘어지고 싶었을 것이다

슬픔 곁으로 젖어가는 오랜 기다림을

묵묵히 지켜내고 있는 저 눈사람

-「흑백영화 이야기 1-우랄산맥의 첫눈」 부분

 

영화 <닥터 지바고>의 이야기는 “서울 경기지방”에 내린 눈을 통해 시작된다. 이어서 시인이 호명한 것은 “힘 있는 권력의 혁명”과 “새벽부터 간이역에 집결한 폭력”이며, 그것이 묶고 틀어막은 ‘발’과 ‘입’의 이야기이다. 또한 시인의 시선은 현실이라는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적 발상인 <닥터 지바고>의 이야기를 통해 시인은 “우랄산맥의 혹한이 떨고 있”는 것과 같은 “쓸쓸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은 곧 영화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의 현실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며, 영화와도 같은 세상에 대한 시인의 발언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언급은 「흑백영화 이야기 4-모던 타임즈」에서도 나타난다.

 

검은 굴뚝 한 마리가 컨베이어 속도에 끼인 가쁜 숨을 빼내서 탈출을 합니다 지팡이를 들고 오리걸음 기우뚱대며 날아갑니다 그 곁에 날개가 찢긴 꼬마 흰점 팔랑나비가 팔랑팔랑 말없이 따라갑니다 주위를 돌아보던 팔랑나비가 길에 덜퍽 주저앉아 웁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돼요. 이젠 다 소용 없어요 끝은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아뇨 그렇지 않아요 힘내세요! 결코 죽는다는 말만 하지 말아요 우리가 찾아가는 달콤한 꽃밭을 믿어요 오래 기다렸잖아요 우린 해낼 수 있어요 길이 끝날 때까지 가보는 거에요 더 이상 슬픔을 욱신거리지 말아요 우린 너무 많은 것들을 조이기만 했어요 피 흘리는 기계도, 무례한 기계가 먹어버린 나비들도 이젠 잊어줘야 해요 우린 좀 더 정중하게 우리 스스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꿀을 따러 가야 해요 그리고 꿀을 따려면 해가 뜨는 꽃들에게 가야해요

 

해바라기가 노랗게 피어나는 신도시 여름밤

바로 옆 공단에선 검은 눈을 켠 다이옥신이

밤새 굴뚝을 탈출해서 꽃들에게 가고 있다

-「흑백영화 이야기 4-모던 타임즈」 전문

 

「흑백영화 이야기 4-모던 타임즈」를 통해 맞닥뜨리게 되는 장면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이다. 이때 등장하는 공장은 그러나 영화 속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형형인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독자는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며 시적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지만,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 세계와 만나게 된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행되며 반복되는 비극을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비극을 호명하는 방식은 언제나 과거와 현재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시의 제목이기도 한 “흑백영화”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모던 타임즈>의 경우는 실제로 흑백영화이지만 시인이 부여한 “흑백영화”라는 제목은 실제의 흑백영화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추억이자 애수의 정서이며, 지나간 과거에 대한 애정이자 동시에 현재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기도 하다. 현실은 흑백의 영상을 통해 재현되며 이때 드러난 현실의 모습은 비극의 세계를 환기한다. 아울러 이러한 흑백의 영상은 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리움은 바로 흑백의 영상을 통해 복원하고자 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모래톱에 쭈그리고 앉아

우산 밖에 웅성대는 빗방울을 듣는다

너무 가까이 서 있는 눈물의 기척

아직도 지난날들이

손가락 사이에서 손톱 밑에서

음지와 양지를 건너다니는 걸

오래 모르는 척 했다

몇 겹의 가슴이

빼곡한 상처 페이지를 해풍에 넘기며

짓무른 어둠을 털어내느라

아까부터 요란하게 옷자락을 뒤집는다

-「흑백영화 이야기 2-바다로 간 젤소미나」 부분

 

우리들의 시간도 흘러갈 거야

늙은 노먼의 낚싯줄에 드리워진 은빛 포물선이

허공에 그리고 가는 기억처럼 그렇게

가물가물하게

네가 열 두 살적 옥상에서 며칠을 퉁탕거리며

띄울 수 없는 큰 배를 꿈으로만 짓던

그 무모하고 지루한 희망의 기억들처럼

모두 그렇게

-「흑백영화 이야기 2-흐르는 강물처럼」 부분

 

흑백의 영상은 추억이라는 지점을 환기하고 복원함으로써 독자들의 감정에 호소력 있게 접근한다. 물론 이때 등장하는 감정은 자칫 감정적 측면이 부각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연자의 시는 처음부터 대상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객관화된 감정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시 속에 드러나는 감정은 절제된 느낌을 전달하게 된다. “빼곡한 상처”를 넘기는 “몇 겹의 가슴”은 시인의 내면이 영화의 장면과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감각을 환기하게 되며, “우리들의 시간”과 “낚싯줄에 드리워진 은빛 포물선” 역시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을 담담하게 전달한다. 독자들은 시와 분리된 영화의 장면을 통해 시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처럼 영화와 분리된 시를 통해 느껴지는 것은 시인의 감정과 분리된 화자의 객관화된 태도이다.

물론 시집 <흑백영화 이야기>에 시인의 삶의 흔적이 완전하게 배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발소 그림」 연작을 통해 나타나는 장면은 시인의 고향에 얽힌 이야기이거나 장면들이다. 그것은 시인의 직접적인 체험일 수도 있고, 간접적인 체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시인은 체험의 세계를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적 인식 위에 펼쳐놓음으로써 객관화된 장면을 제시하게 된다.

 

호박죽 기억들이 건너가는 유년의 강이 있다 할머니 집 겨울은 호박죽으로 시작해서 이듬해 봄 호박죽으로 끝이 났다 할아버지가 풍수에 맞춰 물길도 내고, 뒤란의 바람막이 대숲을 등에 지워 눌러 앉힌 집 겨울은 대파람소리 소란했던 집 동구 밖까지 길이 열리지 않아 산자락 아래 엎드려 늙는 집 외딴집은 거기 겨울 눈 속에 갇혀 있었다 사계절은 느리게 외딴집을 찾아오고 떠나가고, 풍경은 철마다 새 옷을 갈아입었다 봄이 환하게 열리는 울타리 양 옆으로, 복사꽃 살구꽃은 뛰어오르고, 집 한 채를 덩실 떠메고 있는 꽃그늘 아래, 마당귀 백합은 향기들을 봄밤 내내 개울로 풀어 보냈다 겹겹의 침묵을 껴입은 계절의 변방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익숙하게 노년 일기를 썼다

-「이발소 그림 5-고향」 부분

 

사람의 자취가 없다 허름한 시정하나 짊어진 채로, 더위에 기진한 팽나무, 목침도 없이 난간에 기대고 있는, 동네 어른들 코고는 소리 살갑다 또랑에 행궈 씻은 바람 한 줌씩, 겨드랑이 사타구니 밑에, 간간이 넣어주는 여름날, 나락들의 알종아리가 탄탄하게 굵어지는, 여름은 그렇게, 독이 올라간다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부흥리, 1969년 7월 2일 오후 2시의 풍경이다

-「이발소 그림 2-농촌 풍경화」 부분

 

「이발소 그림 5-고향」을 통해 나타나는 세계는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을 매개로 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꼭 개인사와 연계하여 독자들에게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발소 그림 5-고향」에 등장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 집”에서 경험하게 되는 유년의 추억은 시인의 개인적 체험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설득력과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발소 그림 5-고향」에 나오는 “대숲”이나 “복사꽃 살구꽃 뛰어오르”는 풍경은 우리 삶의 보편적 정서를 환기하는 일반적인 삶의 양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한 풍경을 대하는 독자들이 농촌의 체험을 지니고 있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은 특수한 장소가 지니는 개별적인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우리 삶의 보편적인 정서를 통해 정서적 동질감을 형성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발소 그림 2-농촌 풍경화」의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부흥리, 1969년 7월 2일 오후 2시의 풍경”은 시인의 지극히 사적인 시·공간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시·공간으로 전이되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김연자가 호명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농촌의 풍경이 아니다. “이발소 그림”을 통해 재현되는 김연자의 그림은 전설과도 같은 우리 삶의 질박한 서사를 통해 전통적인 정서와 감각을 재현한다.

 

남쪽 어디쯤 골 깊은 산자락이었을 거야 하늘을 뭉텅 끌어당긴 바위 아래 제비집처럼 깃든 암자가 있었지 그곳에서 서른 살 명자아줌마를 만났어 눈이 깊어 눈물샘도 깊던 여자 무(巫)병 들어 딸 하나 낳자마자 시집에서 쫓겨나, 실성실성 산으로 왔다는 소문만 분분하던 그녀는 잠시도 쉬지 않고 굴러가는 바위였어 …(중략)… 새벽 네 시면 도량석을 치는 스님 따라, 암자 뒤 높은 바위는 산이 흔들리도록 우렁우렁 울었어 동도 트기 전 벌써 산왕대신! 산왕대신! 포효하던 한 마리 짐승 그녀의 통성 기도가 날마다 달구어 놓은 노을은 먼 하늘 먼 산의 이마를 아침마다 붉혔지

-「이발소 그림 1-호랑이」

 

뚜깨는 언청이에 반벙어리였단다 나이 들어도 장가를 못 간 제 폭폭한 속 들키지 않으려 밤낮으로 소처럼 일만 해댔지 사람들은 뚜깨가 돈을 제법 모은 알자배기 부자라고, 은근짜 시샘 반 부러움 반의 입질들을 했어 …(중략)… 그날 밤은 달이 참 환했을 거야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급했고 무작정 마당을 질러 달렸지 담장 밖의 가죽나무들이 길게 늘어진 제 그림자를 우멍히 들여다보고 있었어 …(중략)… 그 다음날부터 동네에서 뚜깨도 그의 아내도 보이지 않았다는 거야 그가 살았던 오두막집 방문은 꼭 닫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지 동네에는 소문만 무성하게 유월에 실려 가고 보리알들이 툭툭 불거지기 시작했어

-「이발소 그림 3-이브의 보리밭」 부분

 

위에서 제시한 두 편의 시는 시인이 과거에 보거나 들었던 이야기의 한토막일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이야기는 호랑이의 포효와도 같은 서러움과, 고향으로부터 떠나간 뚜깨의 이야기를 통해 전설과도 같은 전통적 삶의 정서로 확대된다. 「이발소 그림 1-호랑이」는 “명자아줌마”의 삶을 담고 있는데, 이때의 명자아줌마의 애환은 호랑이의 울음으로 전이되면서 슬픔의 확대된 국면을 드러내게 된다. 이렇게 확대된 슬픔은 남성적 정서와 어조를 매개로 하여, 호랑이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서글픔의 처연함과 비장미를 환기하게 된다. 호랑이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비장미는, 명자아줌마의 삶의 비애를 공적인 영역의 비애로 확대 재편함으로써 시적 세계의 확장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발소 그림 3-이브의 보리밭」의 경우 역시 뚜깨의 이야기를 통해 전설과 같은 영역으로 이야기를 확대시킨다. 사라진 뚜깨의 가족과 남겨진 소문은 고단한 삶이라는 현실을 설화적 양상이 드러나는 전통적 이야기의 구조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처럼 김연자의 시는 개인적 체험의 서사를 보편적 체험의 서사로 이끌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럼으로써 시인의 사연은 사적 서사의 영역이 주는 개인적 감상에 머물지 않게 된다. 김연자의 시에 등장하는 사연은 시인을 둘러싼 것들이지만 그것은 결코 시인의 개인사는 아니다. 이곳으로부터 김연자의 시가 주는 매력이 발생한다. 김연자의 시는 사회적 호소력을 지니는 삶의 양상으로 치환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구체적 삶의 국면이 전달하는 보편적인 호소력을 획득하게 된다.

 

아침마다 푸르게 지저귀던

꽃이 졌다

어린 열대어 베타가

가을도 오기 전 벌써 꽃잎을 접어버리고

노래 전 집을 비운 아파트 허공에

둥둥 떠 있다

-「꽃, 그 이름으로 2-수레국화」 부분

 

불타버린 낙산사 폐사지

꽃등 환하다

-「꽃, 그 이름으로 3-배롱나무」 부분

 

환하게 눈을 열어 둔 채

가슴만 닫고 방바닥에 누운 사내

콘크리트 숲 속에 잠이 든

사내의 얼굴은 평온하다

검은 꽃잎들 소복이 내려앉은

발등 위로 손등 위로

벌써 숲이 들어서고 있다

-「꽃, 그 이름으로 3-홀아비꽃대」 부분

김연자가 주목한 또 다른 시적 대상은 바로 ‘꽃’이다. 물론 이때의 꽃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비애와 유사한 정서를 드러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흑백영화 이야기」 연작이나 「이발소 그림」 연작과는 달리 ‘꽃’의 목소리는 내부로 침잠하는 느낌을 준다. 「흑백영화 이야기」 연작과 「이발소 그림」 연작이 그것의 비애에도 불구하고 남성적 어조가 주는 비장함과 투박함을 보여줬다면, ‘꽃’은 소멸과도 같은 소극적 비애의 모습을 통해 재현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꽃’은 “아침마다 푸르게 지저귀던” 것이지만 지고 마는 것이며 “가을도 오기 전 벌써 꽃잎을 접어버리”는 존재인 것이다. 또한 환한 “꽃등”이 존재하는 곳은 다름 아닌 “불타버린 낙산사 폐사지”이며, “검은 꽃잎”과 “소복”을 소환하는 것이 바로 ‘꽃’이기도 하다. 시인은 꽃을 통해 비극성을 호명함으로써, 「흑백영화 이야기」 연작과 「이발소 그림」 연작이 보여주었던 비애의 극대화된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비애의 극대화된 지점은 꽃이라는 대상과 결합함으로써 더더욱 강한 비극적 정서를 나타내게 된다.

김연자의 시는 과거를 추억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것을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리고 추억을 사적 영역 안에서 외부의 영역으로 불러냄으로써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서사를 완성해낸다. 시인은 추억의 이름으로 우리 삶을 둘러싼 비애를 아스라이 펼쳐 보인다. 그리고 이때의 추억과 비애는 절제된 감정의 토대 위에 구축된다. 보편적으로 과거를 반추하는 추억의 양상은 시인과 대상과의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김연자의 시는 추억을 매개로 했기 때문에 오히려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즉 추억의 지점에 시인이 놓임으로써, 시인의 시선은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어 객관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지나온 현재의 지점에서 시적 대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시인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인의 감정과 시적 언술은 과거의 추억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마치 ‘흑백영화’와 ‘이발소 그림’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련한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시적 화자인 내가 발견하게 되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문학적 장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