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여기 낯선 벌레의 자국이 있다

삶이 아프게

외롭게 고달프게

기어간 흔적이 기록되었다

나비를 꿈꾼 벌레

더딘 산책은 벌레가 선택한 본연의 탐색이었으리라

 

 

 

약력

권순자

경북 경주 출생. 2003년 《심상》신인상. 시집『바다로 간 사내』『우목횟집』『검은 늪』『Mother's Dawn』등이 있음. 시인통신 동인.

 

 

 

<해설>

 

낭만적 사랑에 깃든 속사랑을 발견하다

 

김선주 / 시인, 문학평론가

 

 

1.

 

권순자 시인은 지난날 가장 순수했던 언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된 만큼 이제는 지난 시어가 되어 이 같은 시 쓰기를 고수하는 것이 때론 모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 울타리를 떠나지 않고 묵묵히 주변을 가꾸어 왔다. 그 나대지에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자신의 청춘을 쏟아 부었다. 다시 말하면 이번 시집의 주제는 ‘낭만적 사랑으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의 ‘너와 나’라는 공동체적 의식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반증하는 시편의 출현을 알린다. 독자들은 시를 감상할 때 이 두 가지 ‘낭만적 사랑으로의 회귀’와 ‘너와 나’라는 공동체적 정신을 발견하는 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남녀관계에 깃든 사랑의 방식이 생각나다가, 유치환과 이영도가 주고받았던 서간문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가 떠오르기도 한다. 더불어 아가페와 에로스도 연상된다. 이렇듯 시인의 작품 중심을 관통해보면 ‘낭만적 사랑으로의 회귀성’과 더불어 마르틴 부버의 사상과 맥락을 같이하는 “나와 너”의 공동체적 삶이 서로 각을 이루어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새로운 대안을 찾게 하고 있다. 즉 상대의 영혼을 무시하고 타락시켜 변질된 사랑 속에서 다시 거듭나려는 무기와 방법론을 제시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려고 한다. 그 중심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바로 권 시인의 시들인 것이다.

 

2.

 

권순자 시인의 시편 중 제 1부에서는 가슴 속 절절히 흐르는 사랑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이 시들은 에로스의 옷을 입은 것 같으면서도 아가페의 묵직한 갑옷을 입고, 누군가 공격을 해와도 끄덕하지 않을 비장미가 내재해 있다. 그냥 단순히 시의 겉모양만 놓고 보면 에로스적 갈망이 스며있는 슬픈 사랑의 시로 읽히지만, 이것은 시 작품 겉모양에만 취한 사람의 소치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시적 형태와 시를 쓰기 위한 시인의 가슴속 울림이 전해져 온다. 시적 화자인 내가 있고, 나의 사랑하는 마음을 이끌고 전진할 의지를 지닌 당신, 즉 너와 나의 합일이 힘을 더해 무언가 의미 있는 의식이 진행되는 것이다.

 

심장을 뛰게 하려고 당신이 왔네

차가운 심연에서 부는 바람을 재우려

당신이 노래를 부르며 왔네

 

어지러운 이승에

애달픈 사랑 심으러 왔네

얼어붙은 심장을 뛰게 하려고

궁벽한 목숨 한끝으로

밀애를 한 떨기 피우러

붉은 문 열고

당신이 왔네

 

훈훈한 입김에

사무치는 찬기는 서서히 멀어져 갔네

영롱한 빛이 사방에 번지고

막힌 숨구멍 열리며 붉은 꽃들이 피어났네

 

-「심장을 뛰게 하려고」전문

 

에리히 프롬은 다음과 같은 의문과 보편적인 현대인들의 사랑법을 제시하면서 《사랑의 기술》이란 글쓰기를 유지하고 있다. 즉 “사랑은 기술인가?” 만약 사랑이 기술이라면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경험되는, 또 행운만 있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위의 시 1연만을 놓고 볼 때 충분히 에로스적이며, 보편적 사랑의 형태인 즐거운 감정의 발현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랑 방식에서는 기술이나 지식 및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대 혹은 당신이 내게 오는 것만으로, 내 앞에 실존하여 미소를 주거나 꽃 한 송이 건네주는 것만으로도, 온통 나의 온 몸을 전율케 하는 그런 사랑을 읽어 낼 수 있다. 그러나 2연에서 시어들이 사랑의 화법을 어떻게 이끄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곧 시적 화자가 말하고 싶은 사랑의 도입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위의 시 「심장을 뛰게 하려고」라고 할 수 있다. 2연의 두 행 “어지러운 이승에”와 “애달픈 사랑 심으러 왔네”에 그 사랑의 행위가, 행위자로서 당신이 임하여 내 가슴의 모든 동·정맥을 전율케 하고 있다.

분명 시대는 혼란스럽고, 영적 사기(詐欺)로 순수한 영역을 허물어 뜨려도 세상은 눈 깜짝하지 않는다. 성적 폭력이 난무하고, 정신적으로 암울한 시대에 피해자가 되어 방황하여도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는 이들이 없다. 그런 아픔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사이 이 땅에 애달픈 사랑 하나 심으러 온 그 사람을 시인은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아니 이미 시적 화자는 그를 만나 일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일,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서 시인은 “밀애를 한 떨기 피우러” 이내 “붉은 문 열고” 기어코 “당신이 왔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 결과는 곧 나타난다. 이윽고 “훈훈한 입김에 사무치는 찬기는 서서히 멀어져”가고 “영롱한 빛이 사방에 번지고” 기적처럼 “막힌 숨구멍 열리며 붉은 꽃들이 피어나는” 위대한 사랑이 탄생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당신의 힘은 이렇듯 위대한 생의 결과를 가져온다.

 

당신의 그늘이 너무 깊군요

뭉게구름이 눈부시게 몸집을 부풀려 가는데

저는 당신 주변만 맴도는 혹성이네요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에 꽃을 심어요

내 눈물도 함께 심지요

 

햇살이 서성거리면 바람은 안절부절

당신을 맴돌고

 

아침마다 증발하는 꿈

새들이 포르르 날아가 당신 창가에서 지저귀는데

 

당신은 너무 멀리 있고

당신은 내게로 불지 않는 낯선 바람

 

빗방울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

그립고 아픈 꽃들이 고개 떨구는 소리

 

당신은 너무 멀리 있고

나는 당신을 향해서 부는 붉은 바람

-「아날로그 사랑」전문

 

위의 작품에서는 말 그대로 시인이 아날로그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 단순하게 그리움의 덫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덫에 치여서 심신이 극심한 동요를 일으키고 있다. 시적 화자의 대상이 멀리 떠난 듯 보이는 시구들, 이를테면 “당신의 그늘”과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한편에서 저 멀리에 “햇살이 서성거리면” 이내 눈물 흘리며 “아침마다 증발하는 꿈”을 급하게 따라가지만 “당신은 너무 멀리 있고” 이처럼 시의 행간이 전달해주는 불안 요소는 그 어떤 사랑의 깊이보다 크게 다가온다.

현대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 기계화되고 있다. 인간적인 교류나 관계를 비롯하여 우정과 사랑을 나눔에 있어서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순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극한다. 시대에 맞춰서 시도 그 물결에 휩쓸려 의미 없는 기호를 조립한 것과 같다. 또한 언어유희를 뛰어넘어 퍼즐처럼 언어를 조합하여 거리에 세워놓은 시적 조형물과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문화의 틀을 허물어뜨린 후 다시 서로 대립된 현상의 것들을 끌어와 붙인 듯 시적 형태를 세워 놓고 나름대로 디지털방식의 의미를 생성하고 가치를 높인다고 믿고 있다. 사랑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뿌리를 내리고 껍질만 장식하려고 애쓰며 버둥거리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기계적인 사랑, 계산된 인간관계가 아닌 가슴 설레게 하는 추억 속의 애틋한 사랑을 찾아가고 있다. 디지털 방식의 사랑이 아닌 아날로그 사랑, 즉 순수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잔잔하게 혹은 거칠게 밀어 올리는 그런 감정에 싸여 전달되어져 오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시행이 시인의 마음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저는 당신 주변만 맴도는 혹성이네요” 언제나 푸르게 “내 눈물도 함께 심지요”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나는 당신을 향해서 부는 붉은 바람”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시인이 꿈꾸고 기다리고 경험했던 그 순수한 아날로그의 사랑, 자연스럽게 느끼고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속을 태우는 그런 사랑이 지배적이어야 이 사회가 참된 인간성 회복의 길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사랑이야 말로 죽음에 이를지라도 영원히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남은 일생을 거뜬하게 지지해줄 동력이자 삶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시대의 뒤안길에서 자신의 생애를 비껴갔을지 모를 그 위치에서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를 아날로그 사랑을 가슴 저리는 심정으로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욱신거리는 온몸을 질질 끌고

내 영혼은 한 점 섬으로 떠도네

 

슬프고 다정한 눈동자를 보라

추락하지 않는 노래는 귀전에 출렁거리고

내 신음은 중얼거리며 날아오르네

 

울렁거리는 울음을 물고

밤새 뒤척이는 눈동자를 보라

허공에 바람을 물고

질척이는 섬을 보라

 

-「섬」 부분

 

시적 화자는 그가 누구든 상관없이 이미 극심한 외로움과 아픔에 시달려 멀리 떠내려간 한 개의 섬으로 객체화 되었다. 그리고 그 섬을 중심으로 끝내 하나의 섬이 되기까지의 상황을 시 정신으로 그려낸다. 이 땅에 시가 한창 도입되고 시적 부흥을 알려온 시대, 시와 더불어 삶의 가치와 진정한 멋을 논하던 시기에는 시인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이별과 해후를 향한 아픔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도 한없이 행복하다고 고백했던 그 아픔으로 인해 존재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던 시절이었다. 시인은 그 날을 회상하면서 꾸준히 시를 엮어나가고 있다.

마치 위의 시는 그 옛날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여 불렀던 솔로몬의 노래에 흐르는 분위기라고 할까. 그 시절의 정서가 고스란히 살아남아 시적 화자가 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음을 목격한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결코 모방할 수 없는, 간절한 사랑을 이유로 도진 상사병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애절한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시인은 한 개의 섬이 되어버린 고독한 주인공을 불러와 비록 지독한 상사병을 앓을지라도 다시 한 번 열애를 경험하고픈 마음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한 개의 섬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섬이란 무엇인가. 사랑에 취해서, 사랑에 떠밀려오는 섬을 멀리서 가까이서 바라보다가 밀애의 숨은 마음 들키지 않고 따라가다가 드디어 그 사랑을 발견하고 질척이는 한 개의 섬, 그 섬이 되어 영원히 사랑을 보듬고 살고픈 열망이 내재된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실종된 사랑을 찾아서 떠나고 있다.

 

시인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잃어버린 사랑이 아닌, 실종된 의미의 사랑을 찾아서 거침없이 향하고 있다. 시인은「실종된 사랑」에서 근원적 사랑을 찾아 나서며 보편적인 범위를 넘어선 특별한 마음을 고백조의 시편에 담아내고 있다.

섬광처럼 “온통 비늘이 물기에 젖어 빛나고” 온 몸이 오한으로 파르르 떨고 있을 때 “슬픔을 삼킨 입술이 붉게 떨리는 오후”에 사막의 신기루처럼 “파도소리는 너무 멀리에 있다” 적막한 공간 속에서 “물방울이 아름답고 쓸쓸하게 번지”고 있는 사이에 “당신의 목소리는 파묻혀 낮은 지붕아래서 울음을 켜”고 있다. 난데없이 “실종된 사랑은 어디서 봉두난발한 채 헤매고 있는가.” 시인이 그토록 가슴에 품고 싶었던 사랑이 실종되었다. 어디로, 무엇 때문에 그의 관심의 영역에 그림자만 남기고 실체가 사라진 것일까. 곁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사랑, 언제라도 내 숨소리처럼 함께하던 그 사랑이 자취도 모를 머나먼 곳으로 떠났다.

이 시는 역사적 작품들인 〈황조가〉,〈가시리〉,〈사모곡〉을 이어 현대에 와서는 김소월의 〈산유화〉,〈진달래〉, 한용운의 〈님의 침묵〉등 이별의 아픔을 잇는 시편이기도 하다. 실종된 사랑 앞에 선 시적 화자는 “어떤 유혹에도 휩쓸리지 않으려고” 단단히 자신을 무장하고 숱하게 “스러지고 떠밀려가면서도 지느러미 펄떡이며” 기어코 “바다의 시간을” 꿋꿋이 견뎌낸다. 그 이후 숙성된 사랑을 시 「연가」에 담아서 한동안 가슴 아프던 과정을 모두 마치고 다음과 같이 노래하는 것이다.

 

수많은 눈들 중에

당신의 눈에 빠져버렸어요

그 깊게 젖은 눈에는

여름 꽃들이 피었고

벌레들 윙윙거리며 길을 안내했지요

 

수많은 손들 중에

당신의 손을 잡게 되었네요

가리키는 손끝에는 노을이 붉게

지상에 내리고

긴 바람 불더니 별이 뜨네요

 

- 「연가」부분

 

그토록 찾아 나섰던 사랑은 훔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린 화자는 “단단한 그리움으로 남을 거예요”라며 거룩한 체념을 하고 돌아서서 마음속에 다시 지지 않을 그 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다.

 

 

3.

 

권순자 시인은 제 1부의 시편에서 독자들과 함께 깊은 사랑의 열병을 충분히 경험했으며, 그리움으로 남겠다면서 자신을 추스르고 있다. 그것도 요즘 시대와 같이 쉽게 만나고 잊히는 관계선상에서의 만남이나 그리움이 아니고 “그대 곁에 버티어 / 단단한 그리움으로 남을 거예요”라며 다짐을 하고 돌아앉아 희망찬 내일을 기약하고 힘을 얻는다. 아래의 시편과 같이 “샤워기”를 통해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해 본다.

 

조절기만 누르면

나의 소망을 들어주었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피로를 씻고

삐져나오는 짜증을 미레질했다

순순히 나는 세례를 받았고

온몸 독 오른 분노와 치욕도

스르르 제 몸 말아 숨었다

 

어느 날

빠득대는 아픔을 눈치 채지 못한 나의

한 순간 완력으로

그만 목이 툭 부러졌다

 

네 아픔보다는 내 불편함이 커서

네 눈물을 보지 못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너를 다시 보게 되었다

 

-「샤워기」부분

 

이 시에서는 1부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한 시어들을 만나게 된다. 열거하면 “소망”과 “피로를 씻고”나서 모처럼 “짜증을 미레질했다” 그리고 “세례”나 “이제야 비로소 너를 다시 보게 되었다” 등의 시어와 시구들이다. 그 만큼 시인은 순수한 사랑으로 인해, 사랑 앞에서 심적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그 아픔 덕분에 한층 성숙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는 샤워기를 들고 자신의 지난 불행과 “피로”와 “짜증”과 “분노”와 “치욕”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비로소 너의 “네 아픔”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를 챙기게 된다. 그것도 나에게 잠시 찾아온 불편한 상황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네 아픔을 몰라주고 네 눈물을 보지 못했던 자신을 세례행위로 용서받고, 비로소 너를 면밀히 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여기 이곳에서 시를 통해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와 너”를 통한 공동체 의식이다. 이는 나 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닌 너와 내가 한 울타리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가치와 의미와 행복을 찾고 나가야 하는 것에 복선을 제시하고 있다. 시인은 이 같은 테마이자 윤활 작용으로 바로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며, 그를 통해 충분히 아픈 인생을 지나고 시(詩)적인 사건으로 다루어왔다.

권 시인의 작품을 감상해보면 단순한 공동체의 삶이 아니라, 대화를 통하여 공동체적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점에서 마르틴 부버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다름 아닌 현대사회가 잊고 생활하는 소통의 부재를 꼬집는 것이다. 시인은 이처럼 사랑이란 굴레의 훈련을 톡톡히 받고서야 새롭게 탄생한 시 「코카콜라」에서 시적 대상을 사물로 향하여 그의 시적 의식과 눈을 전환시켜 변화를 주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내면, 그의 가슴 속 혹은 그의 정신세계가 추구하는 심미적 대상을 향한 사랑과 애무와 빼앗김의 관계선상에서 탈출하여 이제는 한 개 사물과의 관계를 통하여 사랑을 체득할 수 있는 폭 넓은 시도의 단계에 들어섰다. 이것이 바로 시의 힘이자 시인의 동적, 정적 에너지인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모든 예술장르를 불문하고 유일하게 사물과 사람과 육체와 영혼을 넘나들면서 한 개의 혹은 수 천, 수 만개의 지적 소산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문명적 물질에서 더 한층 진보하여 자연현상이 빚어낸 사물과 밀착되어 좀 더 포괄적인 사랑으로 이동하게 된다.

 

노란 속에는

천년을 앓아 산꽃이 된 여인의 눈물이 들었다

모가지 긴 신음소리도 박혔다

하얀 속살

세월의 떫은맛 우려내면

 

깊고도 단 여인의 젖은 목소리 살아난다

천둥소리도 비켜가는 숲 향내 살아난다

 

언제나 바람은 흠집을 남기는 법

뒤돌아 앉은 것들의 뒤통수에는

무방비의 고단한 일상들이

온몸 드러내고 있어

 

가볍지 않은 묵은 먼지를

깊은 향이 묵묵히 적셔낸다

 

열망의 숨결 걸러낸

무심히 세상을 비끼는 눈빛이 달다

 

-「모과 2」전문

 

시인은 노란 모과에서 여인의 눈물과 신음소리를 삭이고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단 맛이 아닌 떫은맛을 음미한다. 모과를 숙성시켜 생의 모순과 역기능적인 모습을 인지하고 난 그 이후의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미리 예견하고 있는 듯 시적 뉘앙스가 1연과 2연에 차분하게 드러나고 있다.

숙성된 모과에서 여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살아난다. 이윽고 “천둥소리도 비껴가는 숲 향내”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이 바람이 낸 “흠집”과 “뒤통수”에 압력을 가하는 “고단한 일상”과 “묵은 먼지를” 깊게 우려낸 모과 향이 한바탕 채로 걸러내듯 정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하려는 “열망의 숨결”속에서 찾아낸 “눈빛이 달다”는 표현으로 의지를 표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과 고난을 두려워서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소원이 뜻대로 실현된다면 그 얼마나 좋은가. 시인은 세상살이의 방법론적인 면을 그의 시적인 테마로 삼아, 자신의 남은 인생에 찾아올 또 다른 영혼의 굴레를 초월한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모과2」는 자신의 경험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 충분히 스며있는 시로 볼 수 있다.

 

 

4.

 

인생은 참으로 고단한 여정임에 틀림없다. 제 3부로 넘어 오면서 삶을 향한 시인의 경지는 힘을 받는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읽어내고자 하는 정신의 엔진이 힘차게 가동되고 있다. 이는 그가 시에서 읊어대는 시적 소재가 인생을 관조하며 체득한 것이기에 가능하다.

 

당신 가슴에 잠시 머물게요

새벽달 깜박이는 어둠을 헤치고

아련하게 당신 망막에 잠시 스칠게요

허공에 떠돌아다니는 제 목소리는 잊어주세요

짧은 봄밤 더듬이 허우적거릴 적마다

꽃잎이 멍들어가요

푸르게 눈부신 은행나무 그늘에

천천히 곤두박질하는 거미의 꿈

집착은 결핍의 응고물이죠

 

-「체류자」부분

 

위의 시에서 시적 화자는 삶의 중심을 잡아 줄 단초를 발견한다. 연신 “푸르게 눈부신 은행나무 그늘에 / 천천히 곤두박질하는 거미의 꿈”과 끝없는 “집착은 결핍의 응고물이죠”와 같은 시구에서 그는 중요한 생각거리 하나를 제공받는다. 인간은 예외 없이 누구나 한 번은 이 세상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들이 모두 이 땅의 체류자임을 분명히 인식시키고 있다. 아무리 푸르게 눈부신 은행나무라도 그 숨은 그늘을 보면 수많은 사물과 사람이 서로 교차되어 고난을 겪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집착은 금물이다. 무모한 집착은 또 다른 결핍으로부터 오는 부산물이다. 단순한 결핍이 아닌, 무수히 많은 세월과 만남과 탐욕으로부터 저질러진 죄의 결과가 빚어낸 응고 덩어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덩어리를 도려내지 않고, 계속해서 집착한다면 그 때는 예견치 못한 일들로 인하여 인간 스스로가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다행히도 2연에서 “야윈 달이 지고” 있지만 연신 “꿈틀대는 어둠의 저항”이 있기에 미래는 반드시 빛난다는 것을 예고한다. 연이어 3연의 “이제 떠날게요”라는 장면은 “당신이 흘러내리는 어디서든 / 닿을 수 있을 테니까요”라는 믿음 하에 잠시 머무르다가 떠난 세상 그 후에, 다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본향으로의 진입을 꿈꾸게 한다.

 

바람을 타고 건너오는 불안한 어둠이

사방을 둘러치며 암울한 그림자를 먼저 던질 때도 있었지

소멸되지 않는 당신의 사랑은

스러지지 않는 별처럼 내 가슴에 박혀 허둥거리는 순간을 비추었지

 

축축한 불빛은 어디에나 있어

우리는 불의 나라에 살고 있어

젖으면 말리고 막히면 뚫는 믿음이 있어

부러뜨리지 말고 잊지 말고

눈이 붓고 이마에 열이 오르더라도

힘들어 기침이 벚꽃처럼 번질지라도

 

처음 던졌던 눈빛과

뜨거운 열망으로 덫을 빠져나가리

뻔뻔한 망각을 깨뜨리고

웅크리지 않는 붉은 마음 하나 있으면 돼

 

그대의 눈물을 털어먹고 오늘 단 꿈 꾸네

 

-「그대의 흐르는 눈물」부분

 

이 시에서는 불안과 평안이 공존하고 있다, 처음과 나중, 생성과 소멸 그리고 영원의 공존이 그것이다. 세상에는 이처럼 음과 양, 선과 악의 현상들이 공존이란 큰 틀 안에서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기도 하면서 인생의 굴레를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결과론적인 면에서 볼 때, 시인은 어떤 경우에도 소멸되지 않는 당신의 사랑을 열망한다. 여기서 ‘당신’은 읽은 이의 심상이 만들어낸 사랑의 대상일 수도 있고, 절대자 혹은 숭고한 사상으로 읽힐 수 있는데, 단지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건 시적 화자가 “그대”에게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여러 편의 시를 읽는 동안 시인은 시적 화자의 위치를 자신의 슬픔과 아픔에서 사물로 옮겨 또 다른 당신인 “그대”에게로 이동시켜 놓고 그 꿈을 함께 이루길 원한다. 이것이 바로 멀고도 험한 인생길을 지나오면서 그것을 극복한 자들만이 부를 수 있는 진정한 노래인 것이다.

 

 

5.

 

제 4부에서, 시인은 어느덧 사계절을 초월하여 봄(「꽃의 상처」)과 겨울(「겨울 강」) 그리고 영원한 사랑(「멈출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심상을 지닐 만큼 삶의 관조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는 비로소 “꽃의 상처”를 보고, 모진 바람 불어 지치는 “겨울 강”을 바라보며, 이어서 “멈출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기에 이르렀다. 시인이 여기에 오기까지 참으로 고단한 삶의 과정을 숱하게 거쳤다. 이와 같이 시는 인생과 사랑과 그 안에 담겨진 한 사람의 철학이란 렌즈를 통해 충분히 관찰된 삶의 내면과 이면의 현상을 생명나무를 거쳐서 산출해낸 열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를 읽는 이들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는 것이다.

 

꽃들이 손톱을 세운다

향기 일렁이는 나라에 방패는 가시 뿐

소리 없는 도둑의 손을

찌르고 할퀸다

 

허황한 꿈을 꾸고

미친바람을 사랑하는 유령의 땅에서

흔적마저 구름 따라 지워지는 날

 

그늘이 깊어지고 차가워져

꽃을 꿈꾸지 않는다

가시만 우거지는 그늘의 나라

 

-「꽃의 상처」부분

 

무엇을 알고 싶은가? 이 세상은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이 통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될 수 없는 항변의 시가 숨 쉬고 있다. 비록 꽃들이 손톱을 세워 방어를 시도하지만, 향기가 일렁이는 나라에 방패는 그 어느 것도 아닌 “가시”뿐이듯 “소리 없는 도둑의 손을 찌르고 할퀴”는 이 세상은 결국 고만고만한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악(惡)이 점차 소멸되는 권선징악의 원리를 가져온다. 이 시에서 우리는 서로 상반된 존재를 발견할 수 있다. 허황된 행복과 가치의 지향점을 잃고 집착하는 결핍된 영혼들의 몸짓은 결코 꽃을 피울 수 없다. 결국 생명이 공존하지 못하는 지옥과도 같은 공간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의 시 「겨울 강」에서도 “끝끝내 제 사랑 안에 갇힌 겨울 강”을 제시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너와 나”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삶을 기원하고 있다.

권순자 시인은 시「멈출 수 없는 사랑」에서 그녀의 독자들을 위하여, 끝 연에서 제시하듯 “그대의 사랑과 전설은 내 가슴에 남아 / 내가 읽는 경전이 될 거야”라는 시구로 그들의 마음을 흠뻑 젖게 한다. 시인이 걸어온 삶의 길, 경험했던 사랑의 온갖 편린들을 통해서 현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가 도중에 생의 레일에서 탈락하는 가여운 영혼들에게 시적 메시지를 화두삼아 던지고 있다. 기계적 문명을 이데올로기로 섬겨 그 독안에서 투쟁하지 말고 때로는 자신을 버리기도 하고, 혹은 멀리 떠나서 내 안의 참된 자아를 일깨워 삶의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제시한 『낭만적인 악수』에 응하여 마음으로 소통하는 지혜를 배워야겠다. 그 악수에 우리들의 손이 사뿐히 얹히기를 소망하며, 인간성 상실의 벽 앞에서 고뇌하는 모든 이들에게 값진 용기와 따듯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