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모래알처럼 많은 시인과 시들

그 속에 내 시는 보이지도 않고 사람들이 알아 주지도 않지만

그래도 나는 내 시가 좋다

시를 쓸때 만큼은 살아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소외된다

오일장 뻥튀기 아저씨의 호각 소리를 들으며

대중도 없고 독자도 없고 환호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시를 쓰고 시를 읽는 변방의 독자가 된다

 

약력:경북 포항출생

      2007년 시와상상으로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산맥<영남동인>회원

 

 

 

 

시와 현실 사이의 균열 혹은 담론의 실체 

 

                                                      김석준 평론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비밀 "대포폰에 비친 풍경"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송은영시인의 금번 상재한 '별것 아니었다'는 시의 마음과 현실 사이에 놓인 불협화음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현상시키면서 지배이데올로기의 허구성에 비판의 칼날을 드리우고 있다.물론 모든 시인에게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고난이 가득 찬 절망의 시대라고 명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송은영시인의 그것은 '무정부주의 구름꽃'(구름꽃중)을 피워 가난의 수렁과 장안의 권력가(주류와 비주류 중)사이에 존재하는 균열들을 돋을새김 한 것이라 하겠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더 이상 꿈과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현실은 척박하고 평등으로 위장된 불평등은 공공연한 비밀이다.'평범한 이웃(경찰서가 망했다중)이 하우스푸어로 몰락하여 중산층에 이탈하여 점점 노숙자(겨울 과메기중)가 되어가고 있다. '별것 아니었디'는 진짜 별것이 아닌것들을 시말 속에 응고시킨 것이 아니라, 점점 분열로 치달아가는 이 시대의 자화상을 내밀하게 들여다본 작품집이라 하겠다.때론 "못다한 꿈"(변방 오일맨중)이 사라진 일반 서민의 삶-시간-세계를 선명하게 부조시키면서 때론"특별한 사람(신의 직장중)이라고 여겨지는 이 사회의 고위층의 의식세계에 비판의 칼을 벼리면서,시인 송은영은 담론 체계 내부에 잔존해 있는 기만적 현실성을 폭로 고발하고 있다

 

경찰서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미치고 팔짝 뛰지 않았다

                 -경찰서가 망했다 일부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 않는 주인양반 -뻥튀기의 대한 생각 일부

 

학연, 지연, 내편, 니편

변절자, 배신자, 빨갱이, 수구꼴통

주류, 비주류만 있고 서민은 없다

               -이데올로기 일부

 

암탉들이 모이를 쪼다가 진주를 발견했다

이 진주를 이떻게 할까

머뭇머뭇 거리다 수탉에게 보여주었디

수탉은 낼름 삼켜 버렸다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간다

별것 아니었다

 

       별것 아니었다 -전문

 

이세계가 점점 거칠어지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한 것은 법적인 장치가 너무 번다해졌기 때문이다. 사회는 올바르게 다스려지지 않고 법망을 피해 탈법과 위법이 난무하고 있다.모든것은 전도되고 인륜적인 삶은 점점 황폐화되어 인간적인 열망이 존중되지 않는다.물론 송은영 시인이 '경찰서가 망했다'고 한 언명은 일종의 아이러니이자 역설인데 그것은 "게으름뱅이" "사기 전과자"가 넘쳐나는 이 사회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알레고리에 다름이 아니다.어찌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경찰"들이 "사표"를 낼 수 있겠는가? 어쩌면 시인의 그것은 가장 역설적인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기만적인 현실성을 고발한 것인지도 모른다.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미치고 팔짝 뛸" 일들로만 가득 찬 추악한 세상이기 때문이다."아프리카 기근 같은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자본의 막강한 힘은 권력과 결탁하여 더 많은 부를 창출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무엇이든 마다 않는"천민자본주의가 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이자 삶의 실체이다.리좀처럼 화려하게 증식하는 화려한 이미지에 현혹되어 소비의 욕망이 부추겨지고 '알맹이 빠진 껍데게" "훌륭한 뻥튀기"로 과장된다.역시 "글로벌 시대"의 최대 이념은 소비이고,자본의 생산력이다.가진자 더 많이 갖고 가난한 자는 굶어죽는다."권력 오남용"(디오게네스 햇살중)못지않게 더욱더 심각한 것은 자본이 가하는 무자비한 폭력인데 그것이 바로 자본의 환상적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이 시대의 기만적 현실이다.부자는 부러움의 대상이지 존경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진짜 무서운 것은 이 시대의 재벌들이 가진 착취가 아니라 그들을 전혀 존경하지 않는 사실이다.온갖 탈법과 위법으로 부가 세습되는 한 그것은 반드시 몰락해야할 자본의 현실이다.

정경유착으로 자본과 권력이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시대에 이데올로기는 허구이고 기만이다. 차라리 "서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의 현실이다."허방에 포박된 약자"(춤추는 거미중)로 표상되는 서민의 삶은 "두부처럼 단숨에 으깨"졌을 뿐만 아니라 같과 속이 모순(클라인甁중) 된 담론의 기획 조중술에 포획된 채 옴짝달싹하지 못한다.특히 송은영시인의 '별것 아니었다'는 자본과 권력 사이에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의 현실을 담론적 사유로 언표한 것인데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철밥통의 "자본주의 대장(내장 도서관중)을 수탉 알레고리로 표현한 것이라 히겠다.세상에 별 것이 아닌 것은 없다.

 

혹자는 법의 거울에

제 자신의 행실을 비춰보며 두려워하고

도덕의 거울에 비친 마음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하라지만

저는 그리 팔자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대로 거울 일부

 

민생은 뒷전이고 허구한 날

싸움박질 하는 난장판 국회에서

불법과 탈선으로

제 배 불리기 바쁜 졸부까지

 

          -미치도록 텔레비전 일부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절망도 저절로 외워진다네

 

          -외우는 일 일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웅장한 서사시"(정몽주로 산 580번지중)가 꿈꾸어지지 않는다."후회"나 반성의 거울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고 늘 이 세계는 "방종의 뜰"(11월중)에 선 채 향락만을 일삼는다.''이 만연해 있다.부끄러움도 모른다.""은 강자 편이고 "도덕"은 타락의 길을 걷은다."피도 눈물도 없는""잘난 제 얼굴"만 쳐다보는 거울만이 이 세계를 비춘다.송은영시인에게 어쩌면 이 세계는 욕망하는 주체들로만 짜여진 그야말로 야박한 세상인지 모른다."남보다 더 빨리 더 크게/더 높이 날기를 꿈꾸는"무한경쟁만 부추기는 사회가 이 시대의 현실인 한 그것은 건강한 것이 되지 못한다.썩어 문드러져 병든다.네크로필리아로 병들고 편집증에 의해 분열의 극한에 이른다.

"모리배"들이 판친다.이 강산을 유유자적하게 유영하던 '수달'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돌팔이 의사'들만 "난장판 국회" "졸부"들과 더불어 유명인사임내하고 "텔레비전'을 화려하게 장식한다.미쳐 날뛴다.돈 따라 세상이 날뛰고 "쁘띠 성형"도 날뛴다."민생은 뒷전"인 채 모든 것이 미쳐 날뛰는 이 세상에 무기력하게 소외된 일반대중은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를 찾지 못한다.그냥 미쳐 날뛰는 세상의 논리를 막무가내로 외운다.물론 시인에게 '외우는 일"은 진정한 이해의 심급에 이르는 태도이지만 21세기의 자본적인 현실은 이해가 불가능한 모순의 현실이다."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의/절망"이 보인다.모든것이 불법과 탈선으로 일탈해 가지만 시인은 그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언명하고 있다.때론 '' "방전"되고 사랑이 '부식'(손톱위에 봉숭아 무덤중)되는 세상의 아픈 현실을 외우면서 때론 "모두를 뛰어 넘을 시"(내 나이에 그들은중)를 열망도 하면서 진정한 이해만이 자본적 현실을 길항시킬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나는 당신에 의해 철저하개 옷 입혀지고

표정 지어진 채 살아갑니다

나는 내 취향과 맞지 않는 옷을 거부할 수 없고

나 자신의 실제 감정과 전혀 다른 표정도 익숙하게 지어냅니다

                                     -아바타일부

 

주어진 모든 사실을 의심하면서

안전함의 오류와 오차를 인정하는 것

그것만이 새로운 길찾기의

두려움을 없애는 좋은 방법이죠

                     

                        -거짓말 내비게이션 일부

 

표면적으로 볼때 자본의 현실이 환상적인 이유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무능을 유능으로 변이시키는 궁극적인 힘의 표상인 까닭에 그러하다.이 세계는 자본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된다.마치 '아바타' '거대 통제 프로그램'의 생성물이듯 우리는 자본의 구조 내부에서 기획되고 조종된다.물론 송은영의 그것이 사이버스패이스 상에 존재하는 아바타 이미지를 시말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세계는 아바타처럼 이미지가 실체를 대리표상하는 익명의 사회인 동시에 스스로가 아바타가 되어 자본의 노예로 전도된 세계이다.온전한 자신을 찾을 수 없고 찾아지지도 않는다.'취향' '감정'도 이미지로 위장되고 타자에 의해 인형처럼 조종된다.

그렇다면 권력 담론에 의해 배제되고 자본에 의해 조정되는 이 세계를 어떻게 일신시킬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의심"이다.마치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해서 진리의 가능조건들 전체를 점검했듯이 송은영시인은 "매뉴얼대로 사는 익숙한 삶"을 거부하고 "주어진 모든 사실을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인식의  "길찾기"를 감행하고 있다.이미 길들여진 "안전함의 오류와 오차"를 기꺼이 인정하면서 스스로 탐험이라는"불안"에 위치시키기에 이른다.왜냐하면 불안은 인식론적 전회가 가능할뿐 아니라 새로운 인간학적인 길을 여기는 기제이기 때문이다

 

당신과 싸울 때 말을 색깔별로 구분합니다

<당신은 패배자야>노란색

<더는 못참아>오렌지색

<당장 꺼져 버려>흰색

 

''''''''(중략)'''

 

당신과 싸울때 말모양을 만들어 봅니다

흰개미 모양의 말

거미 모양의 말

전갈 모양의 말

 

'''''''(중략'''''

 

사랑은 적도 미움이 많은

불한당 같은 말들이 역병처럼 퍼집니다

상대방을 향해 퍼부은 저주와 욕설이

이제는 대놓고 각개전투와 화생방훈련까지 할때

                       -말다툼 일부

 

시인에게 자본의 구조 속에서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 (마흔 증후군중)은 환멸이 가득 찬 절망의 나날들에 다름이 아니다.가슴의 "안쪽까지 시퍼렇게 멍든 그리움"(그럴까봐중)이 침전된다."말 풍선 비행기"중의 청명한 몽상을 떠올리면서 힘든 삶으로 점철된 "등이 키워낸 가풍"(등가족중)을 반조하고 있다. 아빠의 부재가 그리움의 무게(낚시중)로 전이되고 자본주의 세상이 만든 충혈과 통증(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봄중)위에 따스한 엄마의 손길(엄마를 사 먹는다중)이 닿는다.'턱까지 차오른 생'(순위중) 의 고비가 가라앉고 위무된다.송은영시인에게 시말은 자본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실현할수 있는 매체이자 이 세계를 언표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특히 시 '말다툼'은 말과 세계 사이의 색채와 '말모양'을 그려 내면서 파열하는 세계의 표정을 읽어낸 작품인데 그것은 바로 송은영이 전개한 일련의 시말운동의 정체라 하겠다.때론 랭보의 모음이 가져다준 순수한 문자의 상상력을 매개시키면서 때론 '발이 달린 말'(말의 감옥중)에 날개를 달아주면서 시인은 '진리조차 벗어난 무애의 자유'(구루가면중)를 추구하고 있다.물론 이 세계는 "저주와 욕설"이 난무하는 전쟁터 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겠지만 "말은 영혼의 씨앗"(말의 감옥중)이고 시말이 발아하는 존재의 집이라 하겠다.말하자면 끊임없이 파열하고 분쟁이 일어나는 세계를 색채와 말-무늬로 승화시킨 '말싸움'은 말과 세계를 교묘하게 이접시켜 치유 불가능한 균열을 봉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왜냐하면 색채와 말모양 미틍로 분열된 세계상이 침전시켜 이 세계의 분열과 고통으로 유미적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불한당 같은 말들이 역병"처럼 난무하게 이 세계를 색깔의 순수한 이미지로 변현시키면서 송은영시인은 말의 순수한 표상작용이 시말이 육화되는 지점임을 깨달아 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시인에게 시말을 찾아 떠나는 도정은 지난하고 힘든 것이기는 하지만 미지의 시--길을 찾아 떠나는 시인의 운명은 행복하지 아니한가? "익숙한 것과 낯선 것"사이에서 방황하면서 아직 발화되지 않는 말 내부에 심혼을 기투하는 시인의 삶은 기쁘지 아니한가?오늘도 "헛개비"같은 "헛것의 시"들만 떠오른다.시는 올 듯 오지 않고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다.시의 포로가 되어 하루를 완전히 허비하면서 뮤즈의 전당에서 말과 씨름하고 있을 따름이다.물론 금번 상재한 '별것 아니었다'가 담론의 체계와 자본주의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어떤 말의 무늬와 결을 육화시켜 변신을 도모해갈지 궁금한 것 또한 사실이다.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말의 숭고한 위의를 찾아갈지 아니면 현실 내부에 침전된 말의 극한 값을 도출해낼지 그 정확한 지점은 알 길이 전무하지만 다음 작품집이 어떤 페르조나로 변주될지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

얇아질대로 얇아진 나는

싱그럽게 이글거리는

헛개비의 노리개가 되어 초점을 잃는다

아무리 채워도 허해지는

이 요망한 시때문에

 

  -  헛것의 시 일부

 

시는 언제 올지

오지 않을지

나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