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트럭에서 고래가 내려온다

남태평양을 향해 울었는지

눈 밑에 마스카라가 번져

새끼들이 떠난 자궁까지 검붉다

몸 전체를 꽁꽁 묶은 바코드 자국

사람들이 몰려오고 새벽 종소리가 들린다

심해로 줄줄 흐르던 혈관이

한 순간 파편처럼 튀어 분수가 된다

어판장 위로 햇빛이 쏟아져

고래의 양 지느러미가

곱게 돋아난 무지개 빛 날개처럼 보인다

잠시 눈물 속을 유영하는 추억이라도 떠올렸던가

고래의 몸이 환하게 열리고 캄캄한 바닷물이

천둥 소리를 내며 비루한 잠을 깨운다

죽음을 지나친 시간이 수초처럼 흔들린다

껍질 까진 상처는 좋아라 뛰어다니고

번식이 끝난 고래는

몇 안 남은 공기를 정성껏 마시며

짧은 제 생을 묵념하고 있다  

 

 

 

 

 

 

춤추는 거미

 

녀석의 덩치는 생각보다 컸다

불가항력적인 길고 검은 다리를 어슬렁거리며

독설을 퍼붓는데

능수능란한 늪이었다

 

정 중앙에 소실점을 찍고

걸리면 절 때 빠져 나갈 수 없게

자신의 영역을 철저히

위장하며 울타리를 만든다

 

허방에 포박된 약자들이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친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듯

녀석 특유의 앙팡지고

끈적한 당당함에 사람들은 제물이 된다

 

호기심을 무기 삼아  

사시 사철 참을 수 없는 순간을 급습하는

초 강력 거미줄은

신선한 사냥감을 향해 미친 듯이 발사된다

.

 

 

 

 

 

 

 

 

 

 

 

 

 

서기 2000년 선녀

 

아이 두 명 키울 때까지 날개 옷 입지 않겠다는

나무꾼과의 약속을 뼈저리게 되새기며

푸른 정기를 몰래 받아 비상을 꿈꾼다

나는 선녀였을까? 제법 실한 생활의 잔뿌리

해가 거듭될수록 모양새가 갖추어진다

나무꾼의 외마디에 마주 소리 지르고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시간을 때운다

눈 밑에 기미를 분첩으로 치며 

또래 아줌마들 모임에 나가

한나절 허영을 떨기도 한다 그사이

보일러는 자동으로 데워져 후끈거린다

중독처럼 인터넷을 켜고 날개 옷을 뒤진다

형편에 맞춰 배달된 옷

각종 카드 명세서에 김치 국물이 떨어지고

마이너스 통장이 마중 나와  

배달된 옷이 문득 초라해 보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나무꾼의 불호령을

이 날개 옷과 맞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밀린 세금 고지서가 눈처럼 쌓여 입구를 가린다

알고 보니 나의 높으신 하느님 아버지가

나를 신용 불량자로 마냥 돌려 막은 것이었다 

 

 

 

 

 

 

경찰서가 망했다   

 

사람들이 쓸 만큼 돈을 벌어

놀고먹는 게으름뱅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부모도 자식을 버리지 않았고

자식도 부모를 버리지 않아 행복하단다

어제까지 사기 전과자였던 사람들이

피 보일 상대가 없어지자

평범한 이웃이 되었다

교회당 십자가 밑에는

안식하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그리하여 우리 동네는

이날 이후로 사건 사고가 사라졌다

출근해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경찰들이

눈치 밥을 먹다가 하나 둘 사표를 냈고

급기야 세계 동 네거리

노른자 땅에 점포 세를 붙였다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납작 엎드린 경찰들은

전성기의 이름값을 분칠하다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지

자신을 여러 번 개종했다

경찰서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미치고 팔짝 뛰지 않았다

 

 

 

 

 

 

 

 

 

 

 

대포폰에 비친 풍경

 

대포폰은 남의 서식지를 훔치는

불륜으로 만들어져 있네

정직한 땀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네

밀실에서는 매일 무서운 비밀이 발생하고

범법자가 금품을 챙기는 곳

깨진 사랑으로 금 긋기 좋은 곳

기지국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터지네

대포폰으로 전화를 걸면

그것은 꼬불꼬불 엉뚱한 내장은 나와도

몸통은 보이지 않네

그들의 번호는 오리무중

사람들이 간절한 통화를 원할 때

정체불명의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그들은

무엇이든 감추기 바쁘네

알리바바와 40명의 도적 그리고

안개 가득한 살풍경까지

 

 

 

 

 

 

 

 

 

 

 

 

 

 

 

 

 

뻥튀기에 대한 생각

 

1톤 트럭에 뻥과자 틀은 똑같은데 주인만 바뀌었다

생선가시같이 삐죽한 사람이 주인이란다

첫날은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는데

가면 갈수록 뻥튀기의 크기가 줄고

금방 튀겨낸 따끈한 새맛도 덜하더니

요모조모 손장난을 익혔는지

뻥튀기의 넉넉한 봉지까지 홀쭉하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 않는 주인 양반

수입쌀도 국산쌀로 2.5초만에 곧잘 튀겨내

생과자처럼 바삭하게 만들어 팔기도 하고

글로벌 시대에 발 맞춰

뻥튀기의 질보다 양에 더욱 신경 쓴다

작은 것은 더 크게 큰 것은 더 크게

주머니가 더 빨리 부풀어 오르게

뻥튀기 기계를 돌린다

자동차 주식 부동산 채권

자신의 숨소리 빼고 다 튀겨낸다

뻥이요!

일년 내내 허기가 가시지 않는

아프리카 기근 같은 소리

알맹이 빠진 껍데기도 훌륭한 뻥이 된다

 

 

 

 

 

 

 

 

 

 

 

 

주류와 비주류

 

울타리 밖 다른 부류

나는 집에 있으면서 집 밖에 있고

누구도 나를 기억해 주길 원하지도 않는다

등골이 휘어지도록 일하면서도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숨막힘을 보고 자란 나는 

누가 뭐래도 한번 올라가면

끝까지 내려오지 않는

장안의 권세가인 당신이 부러울 따름이다

오늘도 당신이 전하는 말은

대서특필되고 시시콜콜 해석된다

당신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항상 최상의 힘을 누리며

다른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밀어 부치면

언제나 위기라고 말하는 당신

소파 뒤 오래된 쿠션처럼

곰비임비 닳고 닳아

모두의 루머가 되어간다 

 

 

 

 

 

 

 

 

 

 

 

 

 

 

 

 

 외우는 일

 

매일 당신 얼굴을 봐야 하는 나는

언젠가부터 당신을 외우기 시작했다네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불같이 화내는

당신 성격도 외우고

품을 줄이지 못하는 내 욕심도 외우고

앞차를 추월할 때 긴장하는 당신 표정도 외우고

저 사람은 원래 저렇게 사는 사람이야’

주변 사람들과 회사 동료들이

당신에게 자주 하는 말도 외우고

당신이 그들에게 했던 말도 외운다네

자꾸 외우다 보니 정월 찬바람에 

된신음하는 어미의 몸사정도 외워지고

잎이 먼저 피고 꽃이 뒤를 따르는

후박나무의 넓이도 외워지고

겨우내 언 땅에서 씨눈을 갈무리하는

새싹의 몸부림도 외워지고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절망도 저절로 외워진다네

구구단 외우듯 어려운 문법 외우듯

달달 외우다 보니 이젠 이해 못할 일도 없다네

 

 

 

 

 

 

 

 

 

 

 

 

 

 

헛것의 시

 

밤하늘에 떠 있는 것이

보름달인가 싶다가

한참 걷다 다시 보면 반달이고

그냥 가다 보면 또 보름달이니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게 틀림없다

변치 않는 마음과 변하는 마음

어떤 마음이 진짜 내 마음인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설레임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안녕의 무게에 당신과 입맞춤 하며

립스틱을 새로 바르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

얇아 질대로 얇아진 나는

싱그럽게 이글거리는

헛개비의 노리개가 되어 초점을 잃는다

아무리 채워도 허해지는

이 요망한 시 때문에

 

 

 

 

 

 

 

 

 

 

 

 

 

 

 

 

 

등 가족

 

얇아진 아버지의 등과

한쪽으로 기우뚱하는 어머니 등이 저녁을 먹는다

집안 대소사를 짊어진 오빠의 등이

아버지 어머니 등을 보고 별일 없냐고 묻는다

사춘기 조카의 여드름 송송 박힌 등이

학원가야 된다고 보챈다

큰 올케 등은 아가씨처럼 바깥에서 기다린다

아버지 어머니 등이 오빠 등에게

밥 먹었냐고 묻는다

오빠 등은 약속 있다고 말한다

등들은 바쁜데 얼른 가라고 떠민다

아버지 등이 남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동생이 아버지 쪽으로 등을 돌리며

오늘은 장사가 안 된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동생은 서로의 등을 토닥거린다

혈액순환이 안 되는 어머니의 등이 자주 끙끙 앓아도

아버지 등은 눈치를 못 챈다

아버지를 유독 닮은 나는

어머니 등이 부를 때마다 

불편하고 차가운 어머니 등을 보고 오기 일쑤다

철이 들고 지금까지 등 돌리는게 편한 나는

등이 키워낸 가풍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