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언제부터

시의 몸을 빌려 시를 쓰게 되었는지

까마득하지만 항상 부끄러웠다

사람 세상에 나고 가는 짧은 시간에

얼마큼 자유로울 수 있는지 늘 궁금했다

아마도 세상 저무는 날까지 그럴 거다

말 걸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사람과

술 한잔 치고 싶다

2012년 7월 주문진에서

 

 

 

“돼지를 위하여‘ <해설>

 

서사와 전통적 가락의 힘

 

살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글 쓰는 일에 바쳤지만 이 글은 쉽게 시작할 수도 없었고 또 시작해도 온전한 문장이 쓰여 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소인의 시에 어떤 언급을 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평소 소인의 시를 대하면서 그의 시에 담긴 진정성이 강렬하고 치열하다고 생각했기에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를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들이 나의 어눌함의 연유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이 아무리 창조의 영역에 든다고 할지라도 시대의 흐름과 무관할 수 없다. 이즈음 우리 문학의 흐름은 독자와 점점 멀어져 가는 길을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디지털 시대의 감성과 복잡하고 난해한 현대사회의 사유를 담아내야 하기에 낯선 언어와 낯선 사유의 깊이로 흘러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우리문학의 흐름과는 구별되는 작품 세계를 고집하는 시인이 나타났다. 나타났다기보다 김소인은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자기만의 세계를 일구어왔다. 이런 시인의 글쓰기 전략은 그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젊은 시절부터 글쓰기를 해왔음에도 누구나 거치는 등단이라는 관문을 기웃거리지 않았으며 늦은 나이에 첫 시집을 내는 것도 자기만의 세계를 지키려는 염결성과도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연유로 그의 시는 독특하다. 김소인의 첫 시집 『돼지를 위하여』를 관통하는 시적 전략은 일관되게 서사구조에 기대고 있다.

 

 

    대관령 너머 임도(林道) 사방공사 오 일치 일당 나왔다고 산골 찬바람 빨갛게 터진 손등 문지르며 나타난 강씨 짜장면 산단다   아닌 밤중 웬 짜장면이냐고 따라 나선 팔십 넘은 앞집 할매 강씨 기마이로 한턱 쏘는 탕수육 먹으며 내 평생 말로만 들었던 탕수육을 오늘에야 먹어본다고 강씨 얼굴만한 접시 바닥 긁고 또 긁는다

                                                                                                                                             - [인력공사 강씨] 전문

 

 

앞집 할매와 강씨의 이야기다. 강씨는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날품팔이 노동자다. 모처럼 일당을 받아 기분이 좋은 상태다. 그 기분을 혼자 누리고 싶지 않아 역시 자본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앞집 할매를 생각하고 외롭게 혼자 사시는 앞집 할매에게 귀한 음식인 탕수육을 대접한다. 평생 말로만 듣던 탕수육을 처음 먹어본다던 할매에게 강씨가 쏜 탕수육은 무엇보다 귀한 선물이다. 인정을 함께 나누는 우리의 전통인 두레 공동체의 휴머니즘이 그의 시를 통해 복원되고 있다.

 

서사는 인물, 사건, 배경이 구체적이기 때문에 이미지 중심의 시나 관념적인 시와는 다르게 독자를 향한 접근성이 높다. 그런 맥락에서 독자로부터 멀어지는 난해한 시들과 구별된다. 사람은 원초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도 강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 가령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신라의 모자 만드는 사람은 임금이 아무리 말하지 못하게 강제하지만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한다. 그에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정보는 그만이 알고 있는 정보이기에 그의 말하고 싶은 욕구는 죽음보다 강렬했다. 소인이 택한 서사의 전략은 말하지 않으면 병이 될 것 같은 혹은 죽을 것 같은 절실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때로 과격하고 격렬하다.

 

 

    돌담길 은행나무 아래 아까 희롱하던 가시내들 여전히 키들거리며 왜각대각 모여 있었다 한눈에도 쌍되어 보이는 계집애들이었다 뭐야 너희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중 똥폼깨나 잡음직한 가시센 계집애 턱 치켜들고 얄망궂게 나선다 아찌는 뭔데 뒤에 선 계집애들 흰자위 데룩거리며 실실 쪼갠다 지나가는 사람을 놀리면 쓰나 짐짓 점잖은 말투 그래서 가던 길 멈추고 다시 오셨남 맹맹한 콧소리 섞어 아래위 훑어본다 이 씨발년들이 시거에 불 번쩍 싸대기 올려붙였다 느닷없이 제대로 맞은 계집애 판탈롱청바지 거꾸로 나풀대더니 머리부터 땅바닥 처박는다

                                                                          

                                                                                                                                          - [덕수궁 돌담길] 중에서

 

 

남학생을 희롱하던 불량소녀들을 혼내주는 이야기다. 이 서사의 등장인물은 나와 소심한 나의 친구, 그리고 불량소녀들이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범법이라 할 수 있는, 화자의 폭력의 추억을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하는 것은 이 서사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자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다음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 화자만큼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어떻게 보면 소녀들의 치기어린 행동이라고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소녀들의 행동이 공동체적인 삶에 대한 심각한 파괴행위라고 생각한다. 화자는 옳지 못한 일에 눈감아 버리는 일이 오히려 더 부도덕한 일이라고 인식했을 것이다. 폭력의 대상은 개념 없는 아이들일 수도 있고 개념 없는 통치자일 수도 있다. 이때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혁명의 개념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응하는 시인의 치열한 정신은 시집 『돼지를 위하여』 전편에 서사의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 힘의 원동력은 정의로움을 향한 화자의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평소 문학에 대한 담론의 장에서 고백했듯이 그는 인간과 삶에 대한 깊고 따뜻한 성찰을 통해 진정한 예술혼에 이르려 한다.

 

 

    달구리 무렵 물옴 트는 하늘 물러터질라 보도블럭 틈새 강아지풀 반기는 새벽길 가물가물 졸음 흩어진다 인력공사 처마 아래 늘어선 하루살이 인생 담배연기 폴폴 어제 같은 한숨 날리는데 피도 눈물도 없는 한가윗날 아침상 무엇으로 채우나 눈물 날만큼 살만한 세상 오던 길 돌아가는 빈 걸음 빗물 고여 메마른 심사 축축하게 젖는데 유년의 소풍처럼 가슴 설레며 숨은그림찾기 보일 듯 말 듯 꼭꼭 숨어버린 나의 꿈 너의 꿈 우리들의 희망

 

                                                                                                                                             - [숨은 그림 찾기] 전문

 

 

인력공사에서 일자리를 찾는 일용직 노동자의 이야기다. 한가위 무렵 차례 상도 차려야 하고 가족과 같이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야 하는데 형편이 여의치 못한 노동자는 인력공사에 일자리를 찾는다. 그러나 일자리마저 구하지 못하고 되돌아와야 하는 처지다. 그가 간절하게 찾는 그림은 그저 최소한의 생존임에도 그 그림은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시에는 인력공사 처마 아래 서 있는 한 사내를 통하여 그가 걸어온 길,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는 서사로 시의 뒤편에 내재되어 있다. 굳이 시인이 서사의 전략을 택한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시적 관심이 현실 문제와 깊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가 현실의 문제를 떠나서는 그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의도를 그는 현실 인식의 시로 답해주고 있는 것이다.

 

소인의 시가 단순히 서사구조에만 의존한다면 기존의 서사시와 다를 바가 없겠지만 그는 서사구조에 우리의 전통 문학인 판소리의 운율을 도입함으로써 그만의 독특한 시적 언어를 구축하고 있다. 판소리는 창작 주체가 피지배계층이며 판소리의 사설과 운율은 피지배계층의 정서를 드러내는데 가장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 소인의 시의 시적 화자의 시선은 이 시대 노동자의 삶을 향하고 있다. 이 시대의 노동자의 서사를 피지배계층의 언어인 판소리의 어법으로 구사한다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홉 물 열 물 동지나 막창 해구 갈치 아구 고등어 갑오징어 삼치 데룩거리는 수조기 와르륵 쏟아진다 화태도 곰보선장 벌어진 입 턱 빠진다 음력 삼월 봄바다 함박눈 퍼붓는데 눈물 콧물 시린 입김 마구 비벼져 출렁인다 에헤라, 한 그물에 출어 밑천 뽑아내고 두 그물 세 그물에 모작패 호주머니 풍선 마냥 부풀어간다 화장(火長) 이마 땀 솟는다 살 튀는 병어 접시 소주잔 알싸하게 돌아가는데 갓 잡은 고등어 뒤끓는 무 간장 속 숨넘어간다 찌리링 찌리링 닻을 올려라 내일은 욘 단 록 단 참조기 덮칠거라 갑판장 얼음 삽질 신명나게 돌아가고 동지나해 푸른 갈매기 한 그물 대목 꿈에 힘줄 돋는다

 

                                                                                                                                                        - [출어] 중에서

 

 

그의 시선은 항상 땀 흘려 일하는 노동 현장에 닿아 있고 그의 가슴에는 판소리의 가락이 내장되어 있다. 고전 판소리가 조선후기의 피지배계층의 삶을 노래했다면 소인의 시는 자본주의에 침탈당하는 노동자의 삶을 대상으로 한다. 그가 선택한 판소리 어법의 시는 우리가 처한 삶의 모습을 보다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다. 위의 시는 열거, 대구, 대조, 해학적 표현, 4음보의 운율, 비속어 사용, 등 판소리의 어법을 대부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소인의 시 전편을 관통하는 시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가 비극적 상황을 희극적으로 표현하여 민중의 애환과 비극적 삶을 무화하려는 문학이라면 소인의 시는 자본에 억압된 민중의 삶을 판소리 어법으로 극복하려는 건강함이 드러난다. 「출어」에 나타난 어부들은 고된 노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에는 여느 현대시의 노동자들의 모습과는 달리 신명이 있고 건강함이 있다. 눈 내리는 갑판에서 땀 흘려 일하다가 싱싱한 고등어찌개에 소주 한 잔 마시고 다시 신명나게 일하는 어부의 모습이 활기차지 않는가? 이러한 활기찬 이미지는 노동의 건강함 뒤에 숨은 자본의 나약함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여기에서 자본은 노동에 패배하는 효과로 실현된다. 힘겹고 고통스럽게 살지만 그 속에 내재된 건강함을 시인은 교묘하게 끄집어내고 있다.

 

 

    엄청 잘 나가는 밥집이 있었다 산수유 흐드러진 봄날 새초롬한 입맛 궁금해 물어물어 그 집을 찾았다 왁자한 손님 사이 비집고 들어간 벽에는 메뉴 하나 달랑 붙었는데 ‘그 나물에 그 밥’ 죽 떠먹은 자리 없이 씹한 흔적 없이 싹싹 양푼나물밥 비벼 먹고 왔다 이듬해 선거바람 미친년 속곳 날리던 어느 날 다시 그 밥집 찾았다 여전히 성업 중이었는데 점심때라 비뚜름한 출입문 앞에 사람들 줄지어 서 있었다 한참 만에 밥집 들어서자 바꿔 단 메뉴판 눈에 보인다 거기엔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써 있었다 

 

                                                                                                                                                           - [밥집] 전문

 

 

비빔밥을 비벼서 먹는 장면의 묘사도 활기차고 신선한 민중의 언어로 사설을 풀어내듯 신명을 돋운다. 그냥 밥을 비벼서 맛있게 먹었다고 간략하게 압축해서 표현하지 않고 ‘죽 떠먹은 자리 없이 씹한 흔적 없이 싹싹 양푼나물밥 비벼 먹고 왔다’고 사설을 풀 듯 걸쭉하게 표현한다. 이런 관능적 표현을 즐겨 쓰는 것도 시의 건강성과 연결되겠는데 이는 성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삶의 조건이 억압될수록 리비도가 강하게 작동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소인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시어의 선택이다. 소인 시어의 특징은 첫째 관념어가 배제된 구체적 어휘, 둘째 홍명희의 임꺽정을 떠올리는 우리말 어휘, 셋째 활기찬 서술어, 넷째, 비속어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네 가지의 특성이 담긴 시구와 어휘들을 무작위로 뽑아 보았다.

 

 

    복사꽃 흐르는 물길 따라 소 몰고 밭갈이로 저무는 고향, 갓 잡은 고등어 뒤끓는 무 간장 속 숨 넘어간다, 갑판장 얼음 삽질 신명나게 돌아가고, 좆 빠지게 벌어다가 허벌나게 맥여 조지면 줄줄이 거지신세 면하것지, 대폿집에 냉막걸리 넘쳐나고 하숙집 골목 바지락 껍데기 산처럼 쌓인다. 복어잡이 만선이라고 걱실한 목소리 생생한데, 화끈한 첫날밤처럼 서방 고추 얼얼하게 다듬어 줄까나, 저것들 꼿꼿하게 냉갈령부리며, 산새 눈 쌓인 가지 뛰어다니며 시드럽게 울지만, 질끈 동여맨 살림살이 와랑와랑 몸싸움하는, 평생 노햇사람으로 인생 데삶으면서, 노루꼬리 만한 햇살 머물 무렵 세상 희읍스름한 회오의 덩어리, 낫으로 좆 가리는 놈이나 또아리로 보지 가리는 년이나, 한겨레 노느매기 세상, 워녀리 미치고 환장하지 않은 담에야, 그놈의 개다리 쇠좆매로, 떼꾼한 양기 돋궈주고, 양코배기 행짜놀음 쪽바리들 쏘개질도, 우리네 한뉘 길다 해도 억실억실하던 젊은 시절도 가고, 가도 가도 너테 깔린 얼음길이, 햇덩이 사부랑삽작 넘어가고,

 

 

가히 우리말의 다양한 어휘가 비빔밥 재료와 같이 풍성하다. 구체적 어휘가 지배적이라는 것은 그의 시가 서사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유기적 관련을 맺는다. 우리말 어휘가 지배적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정서, 우리민족의 보편적 정서와 관련을 맺는다. 활기찬 서술어의 구사는 민중의 건강한 삶과 관련을 맺는다. 비속어의 빈번한 삶 역시 노동 현장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서 그의 시가 노동자의 생각과 정서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과 관련을 맺는다. 이렇듯 소인의 시는 앞에서 살펴본 몇 가지의 시적 장치가 시의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이 의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그의 시적 장치는 오로지 민중의 삶에 대한 이해와 깊은 성찰을 향해 죽음만큼 치열하게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정물 먹고살았다고 다 더러운 건 아니야 내 평생 각다귀 파리 떼 시달리고 먹을 것만 탐하는 사나운 팔자 타고났지만 세상 마감하는 날 모든 것 버리고 훌훌 혼백만 떠나는 걸 나보다 못한 인간들 수두룩해 죽기까지 버리지 못하는 질긴 욕심 고래 등 같은 무덤 치장 똥 빛으로 눈부신 송덕비 우글거려 살아생전 갖은 허욕 그대로 베껴다 논 걸 난 그래도 족이든 발이든 마지막 솟구치는 뜨거운 피 한 대접까지 아낌없이 베풀고 가는 걸 오히려 무욕한 뱃속 뒤집어 삶은 내장 그대 소주보다 쓰다는 고역스런 세상살이 훌륭한 위로 되는 걸 게다가 보살 같은 미소 끝까지 흔들리지 않아 날랜 동작으로 귀때기 살 베어 가는 너희들 보고도

 

                                                                                                                                             - [돼지를 위하여] 전문

 

 

위의 시 『돼지를 위하여』는 역설적이다. 흔히 돼지는 탐욕의 상징으로 쓰이는 말이지만 이 시에서 돼지는 자기희생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성스런 보살의 모습이다. 비판의 대상인 돼지가 예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텍스트 속의 돼지는 탐욕과 보시의 이중적 의미구조로 나타난다. 먹기만 하는 돼지와 자기를 희생하는 돼지가 그것이다. 전자가 자본의 축에 있다면 후지는 노동의 축에 있다 할 것이다. 이득이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돼지는 비판의 대상이고 온몸을 바치고 마지막 미소까지 바치는 돼지는 화자가 추구하는 자기희생적 삶의 전형이다. 이 시의 제목의 ‘-위하여’는 이 양자를 아울러 예찬한다는 의미다. 시인은 탐욕스런 자본까지도 예찬함으로써 반어적 의미도 함께 부여하고 있다.

 

시집 『돼지를 위하여』에 담긴 소인의 시는 우리 문학의 전통이라는 바탕 위에 그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해 내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시의 구조 속에 담아내려는 메시지는 강렬하고도 절실하다. 그것은 온몸을 다 바쳐 일해도 남는 게 없는 우리 시대의 노동을 위한 헌사, 혹은 자기희생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돼지를 위한 헌사라 해도 좋을 것이다.

 

 

권석창(시인,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