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으로 가위질했다.

 

저 혼자 볼썽사납게 튀어나온 나뭇가지

꽃도 없이 옆으로만 뻗어나가는 나뭇가지

작심하고 전지가위 들었는데

허공으로 가위질하고 말았다.

 

밤새워 글을 쓰면서

가위질하고 델 키를 눌러댔다.

유기체의 완성을 위해서

버려야 할 것들 많았다.

무수한 손들이 잘려 나가고

인쇄지에서 피비린내 풍겼다.

 

글의 행간을 읽어가다 보면

나뭇가지마다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주제에서 벗어났다고

실제 의미가 불거졌다고

잘려나간 문장, 어휘들이

상처처럼 글씨를 흐리게 했다.

 

구조조정 시피유(CPU)는

식구(食口)를 줄여야 한다고

유연한 노동 속으로 사냥개를 풀었다.

벼랑 끝에서 나뭇가지들이

전기 톱날을 거부하고 있었다.

생존의 목줄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었다.

 

저 혼자 볼썽사납게 튀어나온 나뭇가지

꽃도 잎도 없이 옆으로만 뻗어나가는 나뭇가지

작심하고 전지가위 들었는데

관상수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나뭇가지들의 치열함이여.

허공으로 가위질하고 말았다.

 

 

다시 전사

 

이제 더 이상 전사가 필요 없는 시대라고 한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법질서가 지켜지면서

화염병이나 최루탄은 사라졌다고 한다.

 

이제 피비린내 풍기는 전사들은

개혁의 대상일 뿐이라고 한다.

독재타도를 외치던 날선 함성도

저자거리를 누비던 발 빠른 전술도

바리게이트를 무너뜨리던 용맹도

이젠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라고 한다.

 

혹자는 투쟁이니 농성이니 파업이니

이런 용어들이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집시법, 도로교통법이 애용되면서

갑오년의 죽창들이 광으로 들어갔다.

기미년의 흰 저고리도, 4월의 깃발도

오월의 혁명도, 유월 항쟁도 흑백사진이 되었다.

 

이젠 민주화된 법치주의 세상이라며

더 이상 전사는 필요 없다고 한다.

거리마다 차벽이 세워지고

강이 막히고 밥줄이 위태로워도

어제는 오랜 과거의 과거일 뿐이고

오늘은 법과 도덕이 지켜지는 완벽한 세상이라고 한다.

 

어제의 전사들이

팔뚝의 문신을 지우고

괭이 들고 망치 들고 서툰 밥벌이에 나섰다.

 

 

불씨

 

소녀가

화로에서 꺼낸 불씨로

새복밥을 짓는다.

부채질해서 살려낸 불씨가

아궁이 벌겋게 달군다.

가마가 소리를 내고

구들장이 들썩거린다.

본래 불씨의 본성은 악한 것이다.

집을 태우고 산불을 내고 들불이 되기도 하니

그런데 소녀에게 불씨는

한없이 따뜻하고 고분고분하기만 했다.

가끔 가다가 아궁이 밖으로 얼굴을 디밀기도 했지만

부지깽이로 밀어 넣으면 되었다.

어쩌다 부지깽이에 불이라도 붙으면

부엌 턱에 턱턱 두드리면 되었다.

소녀의 눈 속으로 불똥이 튀었다.

 

염병허네

 

그가 입에 달고 댕기던 말

'염병허네'

가래침처럼 끈적거리고

눈 흘기며 비비꼬인 말

'염병허네'

눈에 드는 말을 혀도 '염병허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혀도 '염병허네'

허풍서니 금전판에서도 '염병허네'

시장바닥 염전판에서도 '염병허네'

유행병이 창궐해서 그가

배곯아서 햇도가 돌아서 툭 던지던 말

'염병허네'

밤하늘 가르는 별똥별이 되어서

지구에 굴러 떨어져 타다 남은

뼈만 앙상한 4음절어

'염병허네'가

막힌 하수도 뚫어대고

골병 든 몸뚱이 통증도 풀어주는

'염병허네'

그가 입에 붙이고 댕기던 이 말이

이젠 손가락 하나만 까딱혀도 '염병허네'

눈 한번 깜짝거려도 '염병허네'

오욕칠정 어디든지 염병꽃이 피어나니

이것도 진화허는 갑시로

나랏일 제대로 못 헌다고

퉁퉁 불은 그 입으로 허는 말이

'염병 딴스허네'

 

 

희망버스를 타고서

 

85호 크레인 김진숙 만나러

부산역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쉬쉬'하며

깔깔이도 날날이도 살살이도 우르르

올라타서 쇼바가 내려앉아도

버스가 좋아라고 한다.

이렇게 든든하게 달려본 지 너무

오랜만이라고 신이 나서

쌩쌩 잘도 달린다.

길 가던 사람들도 신기한 듯 바라보고

가로수도 네온사인도 상가들도 웃음꽃이다.

운전기사도 어깨에 춤이 가득

가속기를 붕붕 밟아댄다.

맞불집회하는 롯데백화점 지나서

돼지국밥 오천 원이라는 갈매기집 지나서

공권력이 진을 친 영도대교를 건너서

경계의 경찰차벽을 끼고서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 만나러 간다.

모두들 엉치뼈에 불빛 하나씩 달고서

달밤 없는 세상 만든다고 달려간다.

 

 

구럼비, 죄짐 받은

 

아! 구럼비가 터지는 날

바리세인들 1.5톤 폭탄으로

구럼비를 산산조각 내는 날

성경을 읽는다.

마태복음 2장 18절

베들레헴의 어린 예수들이 에돔의 헤롯왕에게 학살당하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아! 구럼비가 털썩 주저앉은 날에

제주도가 슬퍼하며 통곡하고 있으니

강정의 깃발들이 구럼비를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예수님처럼 가시관을 쓰신 듯이

구럼비, 죄짐 받고 있는가?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을 기어오르듯이

구럼비여! 피 흘리고 계시는가?

 

아! 내 몸이 성전이 되는 날에

40만년을 살아온

구럼비가 못 박힌 날에

말똥게도 맹꽁이도 방풍초도 층층고랭이도

평화의 재물이 되는 것인가?

아무리 죽여도 되살아나는 목숨으로

꽃 피고 새 우는 날 기다리고 있는가?

비를 몰아오는 먹구름처럼

무겁고 깜깜한 구럼비여!

검은 연기 피워 올리며

이 땅을 굳게 다지고 계시는가?

 

이남쌀

 

남조선에서 보내온 이남쌀이

꽃소식을 전했나

아바이, 어마이들 쌀자루 받아들고

복사꽃 활짝 피워낸다.

어서 가서 개쑥, 솔잎 섞어서 이밥 지어 먹겠다고

이고지고 달음박질하니

아생이들도 뒤따르며 개나리꽃 활짝 피운다.

 

이것, 몇 알이나 될까

고저 십만 알은 되겠다고

툇마루에 조르르 쏟아놓고

오마니도 얼라들도 100알 씩 세어내어

이거면 1년은 거뜬히 먹겠다고

이렇게 쌀도령이 강림했으니

이제 농사도 잘되고 살길도 열렸다고

이남쌀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환대한다.

 

밥이란 게 목숨이어서

밥이 웃음이고 행복이고 온돌이어서

집집이 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고

이남에서 들려오는 밥 끓는 소리에

이남에서 풍겨오는 이팝 내음새에

북한 동포들 귀 세우고 코 세우고

이리 보고 저리 보며 밥 때를 기다린다.

 

 

나쁜 사과

 

사과는

받지도 말고 먹지도 마라

아담이 받은 사과

낙원에서 쫓겨나게 했다.

백설공주가 먹은 사과

독이 있어서 죽을 뻔했다.

친구에게 꼼수로 얻은 사과

속이 빠알가서 버렸다.

 

그런데 받아만 내는 사과도 있다.

그 나쁜 사과 때문에

사과들이 아우성이다.

 

 

귀 ․ 4

 

임금님은 고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고뿔들이 사사건건 임금의 이명을 도지게 한다며 기침소리 규제법을 공포했다. 기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법치주의였다. 그러나 고뿔들도 이에 맞서서 신종 기침소리를 만들어냈다. 법망에 걸리지 않는 기침소리였다. 그리고 더 요란하게 궐문에 대고 기침을 해댔다. 임금은 이것을 난동이라고 했다. 두려운 반역으로 몰아서 잡아들였다. 옥사에는 난쟁이 떼잡이 철거민만 넘쳐났다. 그래도 고뿔은 끝나지 않았다. 사는 집을 잃고 생업을 잃고 이제 남은 것은 고뿔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뿔들은 망루에 올라서 대궐에 대고 구애의 기침을 마구 해댔다. 임금은 귀가 아프다 못해 부어올랐다. 저런 고뿔들은 초장에 뽑아버려야 한다며 용역을 부르고 병력을 동원해서 망루를 공격했다. 불을 놓고 물대포를 쏘아대고 인명도 돌보지 않는 진압작전이 벌어졌다.

 

고뿔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질긴 고뿔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야 했다. 하늘에서는 기침소리만 요란했다.

 

 

귀 ․ 5

 

대궐로 가는 행길이 막혔다. 임금님의 홍색증 이명을 고친다고 마파람 막아대는 인의장막이 쳐졌다. 문지기가 겹으로 음원을 차단했고 고관대작들이 사인교로 산성을 쌓아대니까 2중 3중으로 행렬만 길어질 뿐이었다. 육조대로(六朝大路), 사대문이 막히면서 청계천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서 궐밖으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궐내 광통교, 수표교가 잠기면서 백성들이 피난길에 나섰다. 인재였다. 관이 막아서 생긴 홍수였다. 운종가 시전 거리도 넘치고 거리거리마다 고기들이 뛰었다.

 

전문가들은 재앙을 막으려면 임금의 예장용 관모를 벗겨야 한다고 했다. 턱밑까지 눌러 씌운 임금의 관모가 궐문을 막고 행길을 막아서 세상의 소리란 소리들이 병목한다고 했다. 소리보가 되어서 한꺼번에 빗발치고 있다고 했다. 대궐에서 마포나루까지 이어진 행렬의 아픈 소리들이 송곳이 되어서 계란이 되어서 임금의 관모를 벗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