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시집 읽기-분석〉


運行으로서의 시 

-이종암 시집《몸꽃》읽기


김상환(시인․문학평론가) 


1. 시와 운행


   동서 비교문화학자인 프랑스와 쥴리앙François Jullien은《운행과 창조》(Procès ou Créat

ion, 유병태 역, 케이시 아카데미, 2003)에서 동서 시학의 두 가지 존재 방식 내지 특이점으로〈운행〉과〈창조〉를 들고 있다. 전자가 보편성/원리를 강조한 말이라면, 후자는 개별성/방법에 상대적으로 치중한 말이 된다. 그런 만큼, 서구의 경우‘제작(창작)’의 개념이 앞서는 데 반해, 비서구 특히, 중국 전통시의 개념은‘도래到來’의 의미에 방점이 놓인다. 이 경우 도래나 왕래는 흐름, 조수, 작용, 쉬지 않음不息, 변화, 대체에 의한 생성 등의 개념과 통하며, 인위적이지 않고 절로 일어나는 변이의 연쇄가 특징적이다. 뿐 아니라, 시는 이러한 운행을 따를 때만이 그 진정성을 얻게 된다. 이종암의 이번 시집 또한 그런 점에서 (운)행의 의미가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 행(또는 운행, 이행, 과정)이란 실상 그 외연이 매우 넓다. 사물이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한시의 한 형식(두보의「兵車行」, 정약용의「打麥行」, 이규보의「折花行」등)으로, 사방이 열려 있는 네 거리로, 인․가․곡과 함께 노래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행은 본래 일진일퇴一進一退, 일왕일래一往一來 등 음양의 이치와 그 맥이 닿아 있다.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는, 또는 가고 오는 사이에 경험하게 되는 보다 역동적인 사건과 에너지, 그리고 예지를 말한다. 한자어의 풀이에서 보면, 자축거리며 걸을‘척(彳)’과 앙감질‘촉(亍)’의 합자이다. 다리를 절며 외발 걸음을 해서라도 가야만 하는 길이 곧 우리의 삶의 길이자, 운행으로서 시의 길이다. 그렇다.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면 어디든 생의 고통과 환희, 숨은 실재實在의 깊이가 내재해 있기 마련이다. 이종암의 이번 시집에선 그런 행의 반려伴侶로서 꽃과 달, 허공, 길과 소리(노래)의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2. 꽃/허공/달


매화 피고 나니

산수유 피고

또 벚꽃이 피려고

꽃맹아리 저리 빨갛다


화개花開 지나는 중


꽃 피고 지는 사이

내 일생의

웃음도 눈물도


,


다 저기에 있다


                                                                          -「봄날, 하동」전문


   봄날, 길을 간다. 꽃 핀(花開) 마을이다. 이 경우,‘(매화)꽃이 핀다’함은? 라이얼 왓슨은 이와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해가 뜬다. 이 짧은 어구가 묘사하고 있는 하나의 사실 가운데에는 실로 생물학, 물리학, 철학 등의 모든 학문 체계를 동원하여 아무리 오랫동안 연구를 계속한다 하더라도 채 알아낼 수 없는 무한한 정보가 숨어 있다.”, 라이얼 왓슨/박용길 역,《생명조류》, 고려원미디어, 1992, 21쪽). 해가 뜨고 지는 일만에랴. 일상의 꽃이 피고 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여 꽃이 피고 지고, 다시 다른 꽃들(산수유, 벚꽃)이 피고 지는 현상에 대해 시인은 깊은 관심을 표명한다. 시의 전언은 바로 그러한 꽃(이) 피고 지는 사이로서의 행과 행의 의미에 주어져 있다. 무릇 하나의 꽃이 피고 지는 데는 그만한 고통(“꽃맹아리 저리 빨갛다”)과 희열이 따르게 마련이다. 시인은 그 현상과 본질의 내적 관계를 읽기에 부심한다. 봄날 하동에서의 일이다. 다음으로 주목할 사실은 대상에의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 있는 관조觀照의 태도이다. 관조란 단순히 눈을 감고 몰입하는 자세가 아니라 시각적 이행을 말한다. 관조하는 자는 유동적인 양상들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자로, 시인은 그런 관조와 이행의 주체에 속한다.

   이종암 시인에게 꽃은 특정한 장소에 국한하지 않으며(“삶의 어느 곳에서든 꽃은 핀다”,「감은사지」), 그 의미 또한 다양하다. 사랑의 고통(“사랑은 극한의 벼랑에서 피는 꽃이다”,「동피랑과 나타샤」)이거나, 고귀한 인간의 영혼(“저 작은 꽃송이들/ 저마다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걸 본다 ... 사람이 우주의 한 송이 꽃이다”,「삼인당」), 또는 인간의 신체(“세상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몸꽃”,「몸꽃-차근우」)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꽃=삶/사랑/영혼/신체}의 등식이 가능하게 된다. 이 가운데서도 아래 시편의 경우는 그 울림의 진폭이 크고, 일견 위트wit 마저 느껴진다.    


여름이 다 가는데 나비야

어쩌나, 가야할 지평선 너머는

저리도 먼데

가을 수풀에 꽃 찾아 날아와

바람에 실려 나는 애물결나비


애, 애는

애처롭다는 것, 작다는 것


그러나 가을이 깊어 가는데 어쩌나

나비 간다 겨우 간다

애가 탄다

꽃의 마지막 숨결 먹고

곧 스러지고 말 나비야

네가 가고 갈꽃도 가면


한참 동안

허공, 저 혼자 심심하겠다


                                                                   -「애물결나비와 허공」전문


  〈애물결나비와 허공〉은 기본적으로 행의 시에 속한다.<가는데>,<가야할>,<간다>,<가고>,<가면>등의 서술어의 빈도가 이를 잘 말해 준다. 여름이 가고 시나브로 가을은 깊어가는데, “가야할 지평선 너머는/ 저리도 먼데”, 바람에 실려 힘겹게 날아가는 애물결나비는 저리도 애처롭다. 하지만, 더욱 애가 타는 것은 나비의 꿈인 “꽃의 마지막 숨결을 먹고(는 이내) 스러”진다는 사실이다. 소멸과 부재는 인간이나 자연 모두 하늘이 정한 이치인 법.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관심과 연민은 (서정) 시인의 중요한 심성으로 볼 수 있다. 서정시의 정서와 미학은〈애물결나비와 허공〉에서 처럼, 크고 풍요로운 것에 주어져 있지 않다. 작고 애처로운, 애가 타는, 그리고 안타까이 사라져 가는 하강적 이미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발현된다. 우주적 연민cosmic pity이랄까, 문학적 삶의 진실과 아름다움은 거기, 그렇게 편승해 있다. 여하간에 시제로 내건 {애/물결/나비}의 아이콘은 문학과 인생의 단면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상한다. 문제는 꽃이 나비의 변용이자 영혼의 눈이라면, 애물결나비는 비록 스러질 운명일지라도 고통을 마다 않고 꽃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면서도, 이 시에서 흥감을 더하고 있는 장면은 마지막 대목이다. 나비도 사라지고 (갈)꽃도 지고 나면,“한참 동안/ 허공, 저 혼자 심심하겠다.”는 기지機智의 발언이 그것이다. 이는 시적 긴장감을 순간 무화無化시키며, 새로운 전환을 가져온다.〈전전긍긍〉의 시편 또한 이와 유사한 지점에 놓인다.


삼월 하순 창밖

젊은 모과나무 한 그루

애가 탄다


키 작은 매화나무는 벌써

꽃잎 휘날리며 한바탕 춤을 추는데

목련도 꽃망울 허공에 내다 걸며

탕탕 봄볕과 벌 나비 불러들여

봄날의 풍류 저리 펼쳐드는데


이제야 여린 싹을 내미는

모과나무

봄날의 햇볕 꼬드겨

제 몸의

, 뜯어내는 저 아픔의


                                                                            -「전전긍긍」전문


   과 한의 대비적 국면을 매우 다이내믹하게(“탕탕 봄볕과 벌 나비 불러들여”) 묘파해 내고 있는 이 시에서 매화와 목련은 봄을 맞이해 개화의 기쁨과 환희를 흥에 겨워 한다. 이에 반해,“이제 (막) 여린 싹을 내미는/ 모과나무”는 그렇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애가 타 있다. 하여“봄날의 햇볕(을) 꼬드”기거나,“제 몸의/ 율(을) 뜯어내”어서라도 기어이 꽃을 피워 봄날의 풍류를 즐기고자 한다. 이 경우 율은 생성에 따른 내면의 도도한 흐름이자 아픔이다. 그리고 꽃은 “소리로 세상을 건너려”(「신태하」)는 시인에게 행의 의미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는 미적 환기의 대상, 내지는 혼돈과 미완의 인간이 보다 완전한 집(우주)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신체의 다른 명명으로 볼 수 있다(“시꺼먼 가슴 뜯어 길을 만들었다/ 부족한 몸뚱어리 빚고 또 빚어/ 제 집 한 채 거뜬히 세운/ 세상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몸꽃”,「몸꽃-차근우」). 한편,      

  

① 별들, 허공을 사이에 두고/ 세상에 없는 말 주고 받는데(「검은 목어새」)

② 마음과 몸뚱어리/ 모래 먼지 뒤덮인 허공만 같아(「홍매도 부처 연두도 부처」)

③ 하얀 목련 꽃망울 터져 낚싯대 주변이/ 다 환하다 허공이 꽉 찬다(「木蓮을 빌리다」)

④ 대낮에 허공을 파고 있던 창백한 낮달(「지도」)

⑤ 허공 뻗어나가는 가지 밑자리(「門」)

⑥ 파도소리 따라 허공에서 꽃이 핀다(「동피랑과 나타샤」)

⑦ 거기에 허공이 또 밑그림을 그린다(「은행나무가 사람에게 말을 건다」)


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허공의 이미지 또한 그의 시적 관심의 대상에 속한다. 허공은 천체와 천체 사이의 대화와 소통의 가능태(①), 세속의 공간(②), 텅 빈 충만(③), 또는 하늘의 커다란 구멍(④), 식물의 영혼(⑤)이나 생명(⑥), 존재의 근거나 바탕(⑦) 등 다양하게 기능하고 있다.  "무를 자신의 본질로서 갖고 있는 유는 그 무에 의해 무한히 분할될 수 있다(이영호,《반유半有와 시간時間》, 아카넷, 2004, 60쪽)". 이렇게 분할된 허공의 양상(과 의미)는 이종암 시가 새롭게 조성해 낸 운행의 질서와 체계 속에 편입되어 있다. 하여 무와 부재의 세계로 보이는 허공은 이와 달리 다양한 존재 양태와 생성의 유의미한 공간으로 충만해 있다. 이어 다음 시편을 보기로 하자. 


배반 들판 무인지경 어둠 속 진평왕릉/ 고요하고 아늑해 차라리 쓸쓸하다/ 네 커다란 가슴같이 봉긋한 봉분/ 둘레 몇 그루의 솔, 버들, 느티/ 띄엄띄엄 신장神將처럼 서 있는데/ 하늘젖 흘러나왔는지 희뿌연 허공/ 검푸른 가지 날개처럼 펼치고 섰는/ 키 큰 소나무를 바라보며 너는/ 저 풍광, 그림 같다 했는가/ 검푸른 솔가지 위로 건너온 보름달/ 하늘 꿰매고 있는 황금단추라 했는가/ 솔 그림에 새겨진 황금낙관 같은데/ 저 보름달 환한 네 얼굴만 같은데/ 어저께 끝내 찍고 만 도장이라며/ 흐느끼는 네게 나는 구름 몇 장 빌려/ 커다란 보름달 조금씩 지우기만 했다/ 테두리 없는 그림이었다


                                                           -「달을 지우다」전문


   이처럼 유-무의 문제는 달의 시편(초생달/해월/레가토, 초생달/달을 지우다 등)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달을 지우다〉의 경우 음영陰影(“하늘젖 흘러나왔는지 희뿌연 허공”)의 시간이 특징적이다. 경주 낭산 서쪽에 위치한 어둠 속의 (진평)왕릉은 인적이 끊이고 들판에 홀로 우뚝하여 고요하고 아늑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하다. 유현한 시간을 배경으로 서 있는 무덤과 나무, 그 위로 떠오른 달(“검푸른 솔가지 위로 건너온 보름달”)은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 이는 시인에게 일말의 두려움이나 떨림으로 다가오지 않고“하늘(을) 꿰매고 있는 황금 단추”로, 아니면 숫제“솔 그림에 새겨진 황금낙관”으로 각인되어 있다. 무에서 유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아니, 유-무의 차원이 아니라 (프랑스와 쥴리앙의 말처럼)〈잠재〉와〈드러남〉의 대립 국면이다. 그런가하면, 그의 시에 나타난 왕릉의 공간은 “테두리 없는 그림”처럼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으며, 정태적이지가 않다. 도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며 움직이고 있는(“저기 왕릉이 무연無緣 흘러가고 있네”,「굴러가는 진평왕릉」)‘달’은 ‘꽃’과 더불어 변화와 생성의 장면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주는 행의 반려가 아닐 수 없다.  

   자연과 풍경의 미묘한 변화에 반응하는 시인의 언어는 결코 인위적이지 않으며 절로 활기를 띠고 있다.(“의식이 감흥을 좇아 실재를 표현할 수 있다면, 풍경과 접하여 자신의 내면을 움직일 수 있다면, 스스로 사물의 비가시적 차원에 다가가 동화될 수 있다면, 말은 절로 활기를 띠어 미묘한 자연의 변화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왕부지王夫之,「강재시화薑齋詩話」) 그 결과 대상과의 합일 또한 가능한 법인데〈무논의 책〉이 이에 해당한다. “모내기 전의 무논은 밀서密書다/ 하늘과 땅이 마주보는 밀서 속으로/ 바람이 오고 구름이 일어나고/ 꽃향기 새소리도 피어나는 무논의 책 ... 무논의 책이 나를 키웠다”(「무논의 책」)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시는 상상력은 물론,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유별하다. 그런 점에서 무/논과 책은 등가어(무=논=책)에 속하며, 존재와 무의 관계 또한 새롭게 받아들여진다. 자연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한 권의 비밀한 책이며, 빛과 색과 소리와 향기를 지닌 역동적인 유기체이다. 그런 무논(자연)이 나(인간)을 키웠다는 고백은 단순한 수사일까?    

 

가랑이를 물 속 깊숙이 담그고 있는 수십 그루의 왕버/ 들 가시내들. 사월 초순 저 가시내들 몸이 달아오른다. 누/ 가 저 머리에 초록 족두리를 올렸는가? 뾰족뾰족, 하늘 오/ 르는 초록에게 짓궂은 바람은 자꾸 머리끄덩이를 잡아당/ 긴다. 휘청대는 왕버들, 봄날의 허공 빗자루로 쓸어내리/ 듯 초록 글자 휙- 휙 써 갈긴다.


                                                                         -「사월 주산지」부분


   봄날, 주산지라는 못을 배경으로 한 이 시는 수심에 박혀 있는 “수십 그루의 왕버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열정과 내면 심리를 고전적인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어 이채를 띤다. 머리에 초록 족두리를 얹고 있는 가시내들(왕버들)은 수작을 거는 짓궂은 바람(남자) 탓인지 “가랑이를 물 속 깊숙이 담”근 채(온) “몸이 (후끈) 달아”올라 있다. 이러한 행위와 호흡과 내면의 떨림에 대해 단순한 섹슈얼리티sexuality로서가 아니라, 대상의 경쾌하고 자유로운 응락應絡과 율려律呂의 차원에서 행의 시적 수용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는 한 평자의 시각과 해석(정진규, 이종암 시집 표발標跋)은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본고를 작성하는데 시사한 바 크며, 차제 보다 본격적인 논의의 확산을 요한다. 그리고 아마 양의 동서와 시대 사회를 초월해 사랑의 아름다움과 심리 만큼 매혹적인 건 없을 것이다. 계절적으로 봄이 지니고 있는 생성과 상승의 에너지는 이를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사월의 주산지는 정태적인 외양과 달리, 인용시에서 보듯 그 내부엔 매우 다채롭고 역동적인 세계가 펼쳐져 있다. 드러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이자, 무한의 잠재태며, 혼돈의 국면이다. 예의 에너지에 질서와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다름아닌 상상glory이자 시가 아니던가.     

 

3. 자아와 본래本來로서의 길


   한편, 이종암의 이번 시집에서는 유독 길의 시편이 눈에 띤다. 그것은 절집이거나, 연못이거나, 무논이거나, 왕릉이다. 그는“헛헛한 세상의 길(「브로치」)”에서 늘상 또다른 길을 찾아 나서며 길에 목말라 있다. 그 길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시인은 삶과 죽음, 생명과 사랑, 존재의 질문을 일삼는다. 그것은 결국 가고 오는 것, 즉 운행에 대한 의미로 귀결되며, 자아 탐색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여름 깊으면 원적原籍 찾아 기어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떼 본다

(......) 

번득이며 강을 거슬러 오르는 그렇게

한사코 길 가는 은어 떼의 몸짓들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또 다른 나를

부려놓고 온전히 바닥으로 가는

본래, 그 무서운 길


                                                                                -「本來」부분


아빠, 저 새들은 어디서 왔어

또 어디로 가? 아들의 물음에

답을 구하려 아내와 머릴 맞대고

오고 가는 것, 그 너머를 찾아

오랜 궁리도 해야겠네


                                                                           -「철원 문답」부분

 

   인간의 운명과 현실은 길 위에서 비롯된다. 그런 여행자/유랑자Homo viator로서의 시인은“오고 가는 일의 속내”(「꽃잎의 문장」)를 알고 싶어한다.〈本來〉는 은어의 생태와 그에 따른 원적原籍의 의미와 성찰을 말하고 있다. 은어의 마지막 삶이 목숨을 걸고 지켜 낸 ‘알’에 있다면, 생명은 죽음과 동궤의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종암 시에 나타난 연속성/관계성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緣〉(“그냥 저냥이 아니라 필연으로/ 종암鍾巖 승엽承燁 있다”),〈接〉(“생의 명 지켜내는 것 신격보다 더 소중한 인격의 본 모습이다”),〈門〉(“끝내 돌아가야 할 문이다”),〈끈〉(“끝내 우리 가야 하는/ 붉은 끈, 저기에 있다”) 등의 시편이 그러하다. 인용시〈本來〉에서 우리가“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의 길)은 생각만큼 평온치가 않으며, 생의 바닥을 기는 일이자 무서운 길이다. 문제는 그런 생의 고통과 죽음을 담보하면서까지 근원을 모색하는 이면에는 시인 나름의 힘겨운 삶과 정신적 상처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서는 길(의 의미)는〈철원 문답〉의 경우에서처럼 부자간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 있다. 그것은 가고 오는 것 즉, 왕래와 도래, 운행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 질문의 장소 또한 인적이 붐비는 도시가 아니라 강원도 산간 마을인 철원이다.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그곳에서 이루어진 질문이란 어린 아들의 경우 자연과 세계의 피지컬physical한 차원에 해당한다. 시인인 아버지는 이에 대해 보다 궁극적인 관심으로서의 메타 피지컬metaphysical한 답을 마련하기에 부심한다. 정말이지, 여기엔 이렇다할 답이 없다. 다만 “오고 가는 것. 그 너머를 찾아/ 오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할 따름이다. 대자연의 운행과 자아에 대한 깨달음의 길을 찾아 나서는 그에게 (노래/소리는 남다른 의미를 지니며),“길은 끝 없다/ 그래서 길이다// 길은 늘 목마르다/ 당신은 언제나 길 건너에 서 있다”(「길은 목마르다」) 〈끝〉 



김상환 

• 영남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 1981년《월간문학》신인작품상 시 부문 당선

• 주요 평론「한 내면주의자에 대한 비망록적 글쓰기-이가림론」,「감각과 사유, 그리고 신체의 존재    방식」,「집과 길, 혹은 자의식의 행방」등

• 한국화이트헤드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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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글은 현대시학 2010년 10월호에 실린 글을 작가가 보내온 글입니다... -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