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임수의 시집 - 상처의 집(2005, 실천문학사) 

 

 

고난을 거쳐 도달한 삶에의 의지, 그 초월의 전경


시인은 "온갖 힘겨움을 거쳐 최종적인 순간에 도달한 뜨거운 삶과 그 삶의 초월적 능력, 그리고 그 초월을 받아 다른 삶으로 확장하는 존재의 경이로운 동일화"를(박수연:문학평론가) 끊임없이 노래한다. 시인 스스로 그런 모습과 기꺼이 함께하려는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데, 시집의 첫머리에 놓인 「물방울과 같이」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기를

넓은 잎새 위를 또르륵 굴러

수직으로 승천함이 얼마나 고귀한 것이냐

한 생 가득 담은 눈빛을 선뜻 버리고

저토록 투명하게

참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한바탕 몸을 날려 떠날 수 있음이

또 얼마나 가슴 시린 뜨거움이냐

하지만,


저 작은 물방울도 끝에 와서는

어찌 잠시의 망설임 없었겠느냐

어쩌면 손을 놓지 않기 위해

끝내 발버둥쳤을지도 모르고

움츠려 몸을 말아들인 채

부들부들 떨었을지도 모르는 것

그러니 또 다른 물방울로 한세상 흘러내리는

내 어찌 안쓰러운 눈빛 하나

가득 담아주지 못하겠느냐

(「물방울과 같이」 전문)


시인은 물방울 하나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끝내 발버둥쳤을지도 모르고/움츠려 몸을 말아들인 채/부들부들 떨었을지도 모르는" 다분히 민중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한다. 이러한 시선은 "아드득 아픈 그 세월에/내 눈빛 은근히 보태고 싶"(「신동재」)고, "따뜻한 시절 새로 돌아와/햇살 여무는 소리 눈에 어리면/그만 촉촉이 마음을 풀어/한바탕 몸을 날리어도 좋겠다"(「고드름」)는 소망에 이르러 한국 민중시에 깊이 각인된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상처의 집」) 오래된 끈기로 "상처의 집" 하나를 짓고 있다.


낮고 희미한 것들을 향해 열린 시인의 시선


바싹 마른 그 집

다 쓰러져가는 블록담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다

들어가서

세월에 덧나고 금간

상처와 상처가 서로 붙들고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그 오래된 끈기를 보고 싶다

가장 큰 슬픔으로 한 순간

쓸쓸히 무너져 내려도 아쉬움 없을

깊고 오래된 눈빛들의

상처의 집 하나를 짓고 싶다

(「상처의 집」 전문)


시인이 짓고 있는 "상처의 집"은 한 순간 쓸쓸히 무너져 내리는 집이 아니다. 그것은 "몇 번이나 떠나려다 뿌리내린/이미 거칠고 억세어진 우리/바다처럼 짭짤한 살림은 아니어도/노곤한 어깨 너머 달도 활짝 웃지 않더냐"(「몽대포구」)에서 보듯이 삶의 고난을 어깨 너머 활짝 웃는 달로 치환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은 "두고두고 허물어지지 않을 것은/이 땅의 낮은 것뿐/그 자리를 꼭꼭 지키라 하네"(「 더 낮은 모습으로」), "오, 속 깊고 따스한 낮은 힘이여/침몰하지 않는 눈빛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여울목」)는 진술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낮고 희미한 것들에 향하고 있는 시인의 눈은 그 스스로의 마음으로도 향하고 있다. "세상 때 가득 절어/벌써 뻣뻣해진 목덜미와 함께/쉽게 일그러지는 내 밤들도 둘둘 말아서 맡겨보고 싶다"(「여울목」 )라거나 "그 옛날 석공의 우직한 망치가/정수리를 내리쳐 그만/푸른 멍 하나 받고 깨어났으면 좋겠다/살아 있는 동안/끝내 지우지 않을 그 멍으로/세상 깊숙이 들어가서/오래오래 서 있고 싶다"(「탑리 오층석탑」)는 표현을 통해 어렵지 않게 시인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시인의 민중적 세계관은 「이원 사람들」 연작과 「철도 궤도공의 편지」 연작, 그리고 「늙은 과부의 술집」, 「다시 겨울에」 등의 시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철저한 경험을 통해서 구현되고 있다.


사량도 지리망산

시작은 있는데 철계단

아무리 목을 빼고 보아도

내리막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뻔한 길을 걸어온 자에게는

절대로 내어줄 수 없다는 듯

안으로 말아 튼 몸길 단호하다

단호한 것들 앞에서 늘 그랬듯이

망연히 돌아보는 먼 눈 속으로

천년을 헉헉거린 늙은 파도

이를 악물고 따라오고 있다


한 번도 오르지 못하고

습기만 가득한 몸부림

그렇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여기까지 너무 쉽게 온 것이다

(「사량도」 전문)


시인은 지리망산의 등산을 통해 자아를 만나게 된다. "내리막의 끝이 보이지 않는" 철계단을 앞에 두고 걸어온 길을 "망연히" 뒤돌아보다가 "이를 악물고 따라"온 "천년을 헉헉거린 늙은 파도"를 맞으며 너무 쉽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온전한 삶에 이르지 못하고 "습기만 가득한" 민중의 몸부림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후기를 통해 밝혔듯이 "넓고 깊어져서 그늘지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시를 향해 시인은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추스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