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술랑시집







상 지키기












2006 [모아드림]














 




自序



詩는 수시로 내게 와서, 연방 주절거렸는데


나는 어찌 잘 받아 적지도 못했고,


잊어버리기까지 했는가


그런 불성실을 자책하며


2006년 가을


尙州 北川에서   임술랑



 




 



 


 

 

 

 




 



노을 


 

당신의 몸 위에 나는 한 마리 작은 벌레 같아서

그대의 손목

핏줄 위를 기어갈 때는 팔딱팔딱 고동치는 것만 같아서

(한 생각으론 전체를 알 수 없으니)

그러다 당신이 근지러워

몸 흔들면 떨어져

그대를 쫓아오는 어떤 발걸음에 밟히고,

툭 터진 그 짠한 핏빛을 어디 칠하리

노을 같이 부푼 내 燈






























까만 창자


 

볼펜 껍질을 열어 보면

까만 강물이 갇혀있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설레지도 않는

정갈한 어둠 한 자락

버들치 속 창자처럼

날 바라보고

날 사랑하던

또렷한 움직임이여

님에게 드릴 말씀

내 속에도 가득 찼는데

오징어 먹물처럼

射精하지 못한 그리움

아! 그 아련함 짜서

네 이름字 찍는다
























合葬


 

시멘트로 발라버린 벽 속이면 좋겠네

그 폐쇄된 공간에서도 가위눌리지 않겠네

혼자 아닌 당신 속에 들어 간

나와 당신은 혼자

돌아가고 돌아와서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다시 하나되어

그 두려움들 없겠네

처음으로 다시

원래대로 원래대로

저 시멘트로 발라버린 벽 속이면 좋겠네


 


























고갱이



배추 고갱이 한 입에 씹어 삼키는 일 두렵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어떤 세상

송두리째 부서지는 것 같습니다

고소한 세상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벗기면 나타나는 작은 세상

그의 소중한 얼입니다

 

배추 고갱이를 한 입에 우겨 넣기는 참말 두렵습니다
































 

명아주 길을 간다

쑥부쟁이 길을 간다

내가 팔 흔들며

옷깃 날리며 갈 때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온 풀들

나와 같이 길을 간다

머리 위에는 또

길가는 달

둥글게

잘도 굴러가는데

구르다 빙글 번쩍

먼 빛을 쏘는데

명아주 길을 간다

쑥부쟁이 길을 간다

그 길로 달도 가고

나도 간다























무논의 꿈



무논은 평평하다

삶아 놓은 무논은 마당이다

운동장이다

거기 한 그루 두 그루

잘 자라는 벼여!

뜨거운 태양

따끈한 물

개구리밥 잎줄기 깔리고

올미, 고랭이, 너도방동사니, 나도방동사니 어울려 자라고

논둑이 있는 저만치까지

물은 기울지 않고 찰랑인다

그 벼는 그렇게 사이좋게 자라서

평평한 床을 차리는 것인데

찬밥, 더운밥, 진밥, 식은밥, 마른밥, 고두밥

차별이란 무언가

따끈한 물

평평한 무논에서 자란 벼의 꿈

이 가없는 세상에

우리들 밥상처럼

평등한 꿈이여



















존재의 불을 켜고



마당에서 모이를 쪼던 닭은

내가 가까이 서니

모가지를 쳐들고 눈알만 굴리고 있다

동그란 그 눈에 뱅글뱅글 도는 太極

눈을 꿈적거리다가

발을 몇 발짝 디뎌보다가

꾸꾸꾸꾸 소리내기도 한다

잿텀을 파는 닭은 무심한 그림이거니

아무 생각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 동그란 눈 속에 재빠른 생각이

많이 들었음을 본다

그가 그를 밝히는 걸 본다



























낙타 


 

낙타는 등에 달린 큼직한 혹부리에

물을 저장하고 긴 사막을 건넌다는데

사람은 뾰족한 엉덩이에 살을 담고

인생의 먼 여로를 가는가보다


옛날, 산소에 벌초하러 가시던 아버지

뒤춤 허리끈에 조선낫 비껴 차시고

든든히 산길을 걸어가시던 모습

두툼한 엉덩이 눈에 선한데

지금에 와서야 없어진 엉덩이살

쑥 들어간 바지춤


그 영양분 많던 살들을 다 소모하고

그 희부연 살점들 다 닳아

낙타가 여행을 마치는 것처럼

님도 목적지가 가까운 모양이다























오이


 

오이 여린 덩굴 손

가늘게

울타리를 기어가서

나뭇가지를 잡을 때

그 기다란 실 손을

여러 번 감는다

감은 손을 만져 보니

단단하다

다신 놓지 않겠다는 듯 꼭 잡은

한 길

다시 풀 수 없는 그 길로

오이는 자라고 크고

살고 있구나


























상 지키기



맷방석 위에 올려놓은 밥상을 생각한다

짚북데기 털고 들어와 맞이하는 밥상

우리는 그렇게 살았느니

아무런 허물없이 시장기를 덜어주던 꿀맛 세상


그 상(常) 지키기


술이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본 사람은 알지

밥상 뒤엎어 본 사람은 알지

정말로 가뜬한 그 상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메리야스를 갈아입으며


 

메리야스를 벗으며

그 綿에서 풍기는 나의 香을

맡는다

내 몸과 가족을 위해서

흘린 땀 냄새를 맡는다

다시

새 메리야스를 꺼내 입으며

깨끗하게 세상에 나가서

일을 할 생각이

잠시 솟는다

그 綿의 香에서

목화송이처럼 따뜻하게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


























丹靑 

 


언제인가 이 산기슭까지 밀물이 밀려 왔는지 모른다

우리들 단단하지 못한 뜨락에

쇠락한 기왓골 물 마르고

당신의 치맛자락 자주 마당을 쓸고 쓸던 때를

추억하며

추녀 밑 서까래에 덧칠해 깎아 놓은

물 무늬여

옛날 이 처마 끝까지 가득하던 푸른 푸른 물

밀고 쓸리던 풍만한 당신이여






























龍遊石



무슨 말이 나올까

바위에

물을 주듯

목구멍에

소주를 퍼부었다


억수로 소낙비 내리고

너는 아직 움찔 않는다

용유

널펀한 바위가

잠긴다

 

 

 

 

 

 

 

 

 

 

 

 

 

 

 

 

 

 

 

 

 

 

 

 

 

 

천봉산

 

    천봉산은 해발 435미터이다. 문경 쪽에서 상주시내

로 들어오다가 보면 꼭 머리통이 달아난 사람의 목, 어
깨 모양을 하고 있다. 어느 저녁 둥근 달이 그 머리가 되

어 하늘을 빙빙 돌때면, 모가지만 남은 몸은 달빛 그림

자에 검은 가슴을 드러내고 쎄세 솔바람, 오리나무 바람

소리를 낸다. 달이 조각이 되어 삐죽하게 산 위로 걸리

는 날이면, 생각이 없는 그도 모난 속가슴에 毒이 들어

괴괴괴괴 산벌레 울음을 쏟는다

 

 

 

 

 

 

 


 



















여쭤봅니다


 

햇볕 잘 드는 창입니다

거기 우리를 먹이는 양식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촌두부

꿀밤묵

손칼국수

그 집에 들어 와 앉으니

그 글씨들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 와

상위에 그대로 써집니다

하느님이 쓰신 글씨

산이 내려 온 이 마을에

님께서 메뉴판을 보여 주시니

감사히 골라 먹어도 되나요

여쭤봅니다

























짝눈

 


똑바로 네 얼굴 바라볼라치면

한 눈은 치켜들었고

한 눈은 내려 깐 것 같아

어느 것이 너인지

잘 안 보인다

분명 너는 거기 있을 건데


한 눈은 빛이고

한 눈은 어둠이다

빛과 어둠이 깜박거리며

입술에 가득한 미소를 따라

돌고 있다

























 


세탁기 뚜껑을 열다

 

  

구석에서 저 홀로 돌리고 돌리던

땟물 섞이는 소리

구석에서 저 홀로 울리고 울리던

허울 벗기는 소리


절간 그 깊숙한 畵房에서

파랑새가 붓을 물고 掛佛을 그릴 때

문 열어 보지 말라고 하였는데


나는 그 뚜껑을 열어 본다

외롭게 혼자 돌아가는

세탁기

구석에 앉은

나의 카타르시스


 























맛있는 무와 맛없는 무



배가 고파

혼자 쓸쓸한 식사를 한다

밥 한 그릇

깍두기 한 통

이 깍두기

착한 무인가

밥 한 술에 깍두기 한 입

씹으면 씹을수록 사각사각 맛있는 무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 뚝딱

쓸쓸한 식사가 일찍 끝난다


마음 아파

혼자 탁주 한 사발 한다

탁주 한 통에

깍두기 한 접시

이 깍두기

나쁜 무인가

씹어도 씹어도 이 맛도 저 맛도 없다

고춧가루 범벅에

마늘 생강 젓갈 다 들어갔어도

도통 물내만 난다

쓸쓸한 저녁이여

탁배기 한 통만 다 비운다















처서

 


타다가 식어지는 눈길인줄을

뜨거운 볕 한 마당에서 느껴라


조금은 서운한 듯 낌새가 들키고

열열한 듯 하면서도 돌아서는 님


안타까운 가슴 하나 뚝 따는 줄

모른다, 한 곁 서늘한 뒤통수


빠알간 고추를 태우는 볕이여!

간지럽게 다가서던 바람이여!


드디어 님은 돌아서고 말았다

 




 





















무언가 하나 더 부족 합니다



물고기는 발이 없어 물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소, 돼지는 손이 없어 아픔보다 더 가려운 곳을

긁지 못합니다

내 몸뚱이에 달린 발과 손으로

이 블랙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분명

무언가 하나 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勿閑溪谷

 


물한계곡 들어서며

저 먼 珉周之山이며, 三道峯을 바라보니

내 속에 든 온갖 마구니들이

가위에 눌려

서늘한 물소리로 쭉 뻗는구나


이렇게 같잖은 근심들 데리고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다가

이제 와 들어선 겐가

자네!

정신차리게




























눈밭

 

 

고스란히 내려앉은

산밭 저 희고 부드러운 눈 가슴에

모락모락 나무들의 내음 묻어

파란 하늘이 깔렸는데

막막한 바람이 다 녹아들 때까지

발자국 하나 얻지 못하고

봄이 오려나 보다

투둑 투둑 눈물이 흐른다































시계



사는 동안 매인 手匣

이 예물 은색 시계


죽어 누워 멈추려나

하염없이 가고 있네


흠집이 긋고 그여도

바꿀 마음 없어라































땅재를 넘으며

 

 

세상에 무슨 무슨

확실한 게 있어서

무겁게 고민하고 거기 푹 빠졌나

이리저리 돌고 도는 산길

솔 그늘 짙고

오리나무 잎은 넓은데

가다가보니

구미-군위

경계선을 넘네

땅재를 넘네




























 

까마귀

 


그래 원도 한도 없는 기라

한 세상 살았으면

그만인 기라

그리고 잊혀버리는 기라

잊어버리려 하지 않아도

자연 잊히는 기라


그래그래 한 세상

까악 까악 ~ ~






























아우라지강

 


정 못살면 정선 가 살지

정선 가 뭐하노

아우라지강 강피리 잡으며 살지

뭉게구름 떠 머무는

加里旺山


그대 정 살기 어렵거든

아우라지강 강피리

유난히 순한 물맛에

한 生

아까운 한 생

살아보지 그래



























三角山

 

 

산이 흰 허벅지를 내놓다

하늘의 뿌리를 볼까

절벽 밑으로

밑으로 다가서면

아스라한 뽀얀 살 속에

蘭이 자란다

































나를 만진다

 

  

눈을 감고 방안에 홀로 누워서

내가 몸을 더듬어 나를 만진다

나는 여기 있는가

숨쉬는 건가


눈을 뜨고 일어나 홀로 앉아서

저 혼자 애 타는 알전등 본다

내가 나를 본다

나를 만진다


 




























古家



바람 끝에 솟을대문

고즈넉이 세웠구나

방패鳶 깃 추스르다

벌러덩 미끄러지는구나

사무쳐 그대 가까이

간 것인가 아닌가


그 집 안 허리께

가마솥 걸어두고

바람 탄 흰 물을

슬슬슬 끓였구나

머리맡 괴인 베개로

한 세월을 받친 虛魄


























 동백꽃 지는 뒤뜰

 


한 점

그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끝까지 들어가 길어 올린 꽃송이

붉은 저 입술

바라만 보고 있다가

홀로

홀로

조용히 떨어뜨린 꽃잎들

고요히 떨어뜨린 꽃잎들


다가가 옷깃이라도 스치면

와르르 쏟아지는




























 

봄물 가둬

논 삶고

모를 옮겨 심었네요

바람도 어지러이 불었고

비도 참 많이 왔는데

시퍼렇게 커 가는 벼

김을 메고

거름을 얹히고

먼 산을 보네요

땀흘려 가꾼 들판

그래도 당신은 돌아오지 않는데

뜨거운 햇살에

벼가 익네요

누렇게 익네요

























蘭盆을 깨다



무심코 돌아서다

난분을 깨뜨리다


너는 거기 있었는가

돌아보지 않았는데


적막한 내 가슴팍을

내리치는 사금파리































벌레 죽인 밤

 

  

낮에 방에 들어 와

책 속에 가구 밑에 숨죽이다가

밤에 어지러이 날뛰던 바퀴여


밤에 방에 들어 와

이불 위에 송장헤엄 치던 내가

너희들이 돌리던 그 世界가 낯설어

붙잡아 죽인 밤이여


낮과 밤의 共生


돌아가던 바퀴 멈추고

밤을 잡아 죽인 나는 뜬눈으로

온 밤을 밝힌다

























광장 



하늘은 푸르고

광장은 넓다

저 긴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당신

내가 말을 건넬 때

그 말들은 흩어져 버린다


하늘은 푸르고

광장은 넓다

그게 내가 한 말인가

당신이 한 말인가

사방으로 부서져서

숨 밖으로 나오면서부터

사라진다


아! 하늘은 푸르고

광장은 넓다

마치 까마득한 옛날처럼

옛날처럼 

스쳐 지나가는 당신과 나



















 철강공단에서

 

  

산맥을 파 헤쳐 걷어 낸

四骨 고우는 연기

가마솥 부엌 뒤 안에 가득한

철강공단을 걸어가노라면

그 길 멀기도 하다

신경쇠약에 걸린

가슴에

가득 들어 온

쇳가루가

으랏차차

힘을 쓰는 오후


저 먼 공단로, 나는 뛴다


























回龍浦

 

 

회룡포 이 낮은 산

부서지는 햇살인데


乃城川 저 물길

얼마나 그림 지쳐


기다란 세월 구부려

산을 꼬옥 안았나































참외


이 놈은 아무 입에서나 다 달다

꿀물이 줄줄 흐른다

싫다는 게 있나

거부하는 게 없다

情操란 무언가

무조건

무조건 공짜다

게걸스레 먹다가 체해도

시원한 설사 한줄기면 그만이다

부담 없는 너는 참 쉽다

그래도 달지 않은 적 있던가

아무 곳에서나

그 댓가를 덤으로 돌려주지 않았나

퉁겨져 나간 씨들은

쇳바퀴 쿵덕쿵덕

기찻길 자갈밭에도 싹을 틔우는

즐거운 삶이여

물리쳐도 싫은 기색이 없으니

달다 달다

아주 달다





















개구리 울음

 


말라 비틀어져

개구리

땅바닥에 누워 있다

또 개구리가 우는 철이 되면

다른 개구리는 그 개구리를 알 수가 있나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손에

햇살이 부서진다


길을 잘못 가리켜 그 길대로 따라 가면

얼마나 많이 울어야 하나

그런 악머구리 무논에서 또 저리 운다


결국 이르지 못할 곳으로

방향을 튼 키

욕심 대단하다

 























쑥떡을 먹으며

                

쑥떡 할머니가 사무실에 오셔서

쑥떡을 놓고 가셨습니다

노란 콩고물이 가득 묻은 넓적한 쑥떡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데,

입 주위에 노란 고물이 다 묻었습니다

나는 잠시 내 입 주위에 호랑이 수염이

돋은 줄 생각했고요

내 항문 주위에 묻은

노란 똥쯤으로 또 그렸습니다

그 생각들이 뒤집어지며 엉켰는데

나는 갑자기 편안함 속에 놓인 듯 했습니다

입과 항문이 하나가 된 듯 하였지요

그래 얻음과 내놓음이

한 방에 밝아지게 된 겁니다

내게 들어옴과 나감이

그 다툼을 잃고 사이가 좋아진 거지요

그래서 그 할머니가 들어왔다가

돌아가신 문 쪽을 바라보았는데요

갑자기 그 할머니가 三神할매처럼

느껴졌습니다 



















송진



부러진 소나무

그 정갈한 가지를 만지면

그리워

손바닥에 묻어

날 붙드는 진이여

이미 부러져

점점 말라만 가는데

더 붙잡을 수 없는데

돌 틈으로 소리내며

떨어지는 물소리

개미와 벌레가 다니는 길에 앉아

날 붙잡은 그대를

그립니다


























刑 


내가 당신을 쳐다보니

당신은 刑法冊을 펴놓고 있네요

다시 쳐다보니

累犯篇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가까이 가려면

쇠창살 같은 刑을 지나야 되나요

미쁜 당신과 나는

이 쪽과 저 쪽을

넌지시 건너다 볼 뿐입니다


 





























산복숭 세 자매



꾀꼴새 우는 산골이다

도랑물소리 곁에서

꾀꼴새 연방 울어대는 산골이다

봄이다 

연한 봄

모두 신록이다

그 산그늘에 쉬고 있는데

산복숭 세 자매가 내 앞에 있다

막내는 두 뼘이요

둘째는 다섯 뼘이요

큰언니는 내 키만 하다

붉은 복숭 꽃 진 망아리가

여린 가지에 아직 붙어 있는

언니나무 

初經의 흔적

나는 첨에 둘째 복숭이 너무 귀여워

올타꾸나! 저 놈 캐어 내 집 뜨락에

심을란다 싶었는데

그 자리에 앉아보니 아니더라

산복숭 어린 세 자매

부모 없이 자란 유년시절

열한 살에 어머니 잃고

다섯 살 동생을 키운 여인

산나물 뜯으러 같이 온 그 여인이

산 저쪽 모퉁이에서

워꾹 워꾹 우리를 부른다



 










참나무


 

참나무는 단단합니다

차고 질깁니다

만지면 돌처럼 아픕니다

우리가 바라는 참됨도 그러한지요

나를

곧고 큰 키로 자라게 할

어떤 길은

이 참나무 숲에 있나요

쳐다보면 그 끝에는 모두 하늘입니다

이 길은 멀고 험합니다


 



























白華山 아래 빈 집

 



白華山 

그 서늘한 능선 따라

흰 눈이 성기더군요

그 아래로 난 길

저녁의 반대방향으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닿은 집

아무도 없었지요

기다림이 없다는 건

어떤 건가요

그대로 무너져

빈 속 채운 蒸溜酒

벌겋게 뜬 달입니다


























無의 모습

 


여섯 발 달린 까만 벌레가 방구석에

앞 뒷다리를 쳐들고 말라있다

환한 아침이 왔다가고 또 왔다갔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無로 들어가는 門앞에서는 누구나

발버둥 쳐야하나

그 몸부림이 하늘 쪽으로 굳어 있다


아!  無가 거기 다녀갔구나






























올챙이



줄 끊어 버리고

꼬리 흔들며

날아가는 가오리연처럼


올챙이 아랫도리 ~


저 후회 없이 울어대는

깨꼬륵 개골































서슴없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젊은 새댁이 아이를 얼러고 있었습니다.

벌써 다 먹은 하드 막대기

아이가 쥐고 빨다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주워 다시 아이 손에 쥐어주며 "떨어졌네 요게 떨어졌네. 헤헤~" 하였습니다.

아이는 그게 재미있는지 다시 떨어뜨리고 다시 떨어뜨렸습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떨어졌네 요게 떨어졌네. 헤헤~" 하면서

다시 주워서 아이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주위는 아랑곳없었고요.

연신 아이와 맞춘 눈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아이 앞에서 떠는 아양이 보는 사람까지 즐겁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 시멘 바닥은 그리 더럽지는 않았습니다.

촌 동네였지만 흙이 묻은 것도 아니고요.

맨들맨들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가는 대합실 바닥이 그녀에게는 하나도 더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서슴없이 거기 떨어뜨린 막대기를 주워서 아이 입에 물리곤 했으니까요.


찬란한 빛살이 대합실 먼지 묻은 창을 뚫고 들어 올 때였습니다.


 
















서지월 시<뜯지 않은 임영조 시집>




시인은 이미 그 모습을 보여주었으므로


굳이 다시 새로 쓴 시집을 뜯어 무엇에 쓰리


시인은 이미 내 맘에 다가와 있었으므로


굳이 다시 새로 탐색하여 무엇에 쓰리


(인생이 이처럼 덧없으니)


시인은  이미 "누런 황토 산기슭"으로 납시었으므로


저문 늦게 누런 봉투 알맹이를


"책꽂이에 꼿꼿이" 벌 세울 일이 무엇이며


그러므로 님이여


"뜯지 않은 임영조 시집“이라 했습니다. 그려



















질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돌아보고 돌아봐도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빠른 속도로 세상을 간다

간다

길은 똑 바른 길

님 향하여

벌을 달릴 때


콩나무 그늘에 숨어

찰칵

나를 찍는 단속카메라
























소주 한 잔




입이 비뚤어지고


코가 슬쩍 비껴


못생겼어도


비켜라


소주 한 잔


살아서 이렇게 왔느니



 
























허문 집


 

부서진 집 곁을 지난다


훌주뿌게 놓은 집

서까래, 기둥, 벽돌이 한목에 엉겼다


지붕 위 하늘도

무너앉았다


그 보도블록 옆길을

소녀가 간다

새벽바람에 헝크러진 머리칼

따닥따닥 간다


허문 집 공터에는

커다란 포크레인

머리를 떨구고 자고 있다


 





















주목나무 곁에 앉다



주목나무 곁에 앉아서

보도를 걸어가는 사람들 본다

사람이 개미나 벌레를 보듯이

그렇게 본다

사람보다 한계가 더 많은 벌레를

그래서 측은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사람을 불쌍하게 바라본다

저 개미, 벌레가

미물의 허울을 쓰고 태어나서

기어다니는 것처럼

저도 사람으로 태어났구나 하고


그래도 세상에

쫑긋쫑긋한 잎이여

이렇듯 기품 있는 주목나무

그 곁에 앉아

생각에 젖을 수 있어

행복한가



* 어제오늘 서울특별시 蠶室에서 露宿을 했습니다. 옳게 씻지도 못하고 이렇게 앉아있는 그늘이 朱木나무 밑이더군요. 맹자는 惻隱之心은 仁에서 나온다고 했는데요. 인간이고 벌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왜 이렇게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던 지요. 그래도 기품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자라는 주목나무를 보니 내 맘이 환해지더군요.



 











伐草



맑은 술 한 종지 붓고

엎드린다

날 세운 풀들이

코를 찌른다

죽지 않는 풋풋한

객기여

무성하구나

조선 낫으로 쓱쓱

무찌르면

풀 비린내 가득하고

땡삐에 들켜

뛰내빼다가

땀 닦으며 돌아와

갈쿠리로 슬슬 할머니 등을

긁어준다
























만고 땡



매번 고기를 잡아 주어도 좋지만

고기 잡는 법 가르쳐 주면

아이는 춤추리


저기 경운기 뒷자리에 드러누워

태평가 부르는 젊은 가족

고기를 잡을 줄 아는가


허름한 옷차림

뒹구는 막걸리 병 두드리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으니


만고 땡 , 상팔자로구나

세상에 나와

땡 잡았구나
























두 손을 내어 받쳐주신 하느님



이삿짐을 옮긴다

냉장고를 들고 보니

삼층 시멘 계단

힘들고

무표정한 角度다

멈칫멈칫 발 옮김

들어 올리지 못할 것 같았지만

낑낑대며 계단 모서리를 돌 때

이 쪽 귀퉁이에서 조용히

두 손을 내어 받쳐주신 하느님

이사를 마치고

햇볕에 나와

쪼그리고 앉아서 쉴 때

나는 맘속으로 말한다

도와주신 당신

감사합니다























孺人慶州金氏之墓

 



마른 잔디 위를 꼬부리고 올라 와

할미꽃 한 송이 폈구나

나는 작아진 이 墓를 지나며

흙 속에 누운 사람을 생각했느니

다시 뻐꾸기 돌아 온 봄날

그 사람은 그렇게 땅에서 솟아 나와

볕을 쬐고 있으니

빗돌에 새겨진

子와 孫이 어디에서 살던

지금은 당신 곁을 지나는 이 몸이

그대의 子와 孫만 같구려


 

























나를 칭찬해 주는 거울




어떤 거울을 보면 내가 괜찮아 보이고

어떤 거울을 보면 내가 아주 곱잖아 보인다

정갈하게 차려 입고

말끔하게 길을 나서서

가볍게 네 앞에 서면

나를 괜찮게 보아주며

나를 칭찬해 주는 거울이여


늘 당신 앞에선 괜찮고자 하는데

햇볕이 엇비스듬히 비치는

이 쪽 복도에 걸린 긴 거울 앞에 서면

내가 곱잖다

얼굴 속속들이 모두 파헤치어

엉크렇게 보인다

나를 쓰러뜨리는 거울이여

나는 네 앞

이 쪽 발길은 자꾸 돌린다





















맨살

   


당신이 맨발로 주방에서 도마질합니다

나는 거실에서 컴퓨터 앞에 있고요

그 깨끗한 부엌 장판 위 맨발이 어떻게 보였냐구요

치맛자락 살랑거리는 무릎 밑에

그 발

이제 보니 나도 맨발이네요

그러고 보면 우리 집은

정말 깨끗한가봐요

당신도 나도 맨발이니까요

그 붉은 맨살이 우리 집 방바닥을

슬슬 문대고 다니니까요

우리 집은 벌거벗고 지내도 되는가봐요

당신과 나

우리는

아무 거리낌없이 맨몸을

닿으면서 사는가봐요

이 有限한 세상

창밖에는 거친 흙바람

그러나 당신과 나

겁도 없이 맨살이네요


 

















竹嶺터널



저 긴 터널

죽령

나는 자동차로 그 길을

막 지난다

캄캄한 블랙홀 같은

어지러움이 잠시 왔다갔다

이~ 슬픈

내 잘못들은

이걸로 마지막이다

洗禮者 요한이 퍼붓는

정한수처럼

맑고 찬 빛이 확

긴 굴을 뚫고

머리빡에 닿는다

























숙맥

 


콩인지 보리인지 분간할 줄 모르는

저런 "숭막같은 놈"도

있었다는데


콩밭을 맨다

땀이 흐르고

골이 훤하다

이렇게 보니 콩은 풀보다 훨씬 크구나

쪼그리고 앉아

그 밭매기에 열중하면

다른 생각들 다 달아난다


세상일들에 신통찮은 나는

열심히 밭이나 매야겠다

밭을 맬 때마다, 나는

숭막이 아니다


 





















뾰루지



몸 속에 근심이 쌓이면

핼쓱해진 얼굴

살 속에서 아픔이 분화구를 만든다

우리하게 만져지는 뾰루지

거울을 보면 볼수록 커진다

내일 가서 해야할 일들

그 걱정처럼

활화산 화끈거린다

손톱으로 찌르면

더 성질이 난 뾰루지

(어떻게 할까)

자꾸 만져서 괴로우면

내 근심도

툭 터질까

























메뚜기 잡기

  

지구의 공전 속도는 초속 29.76 키로미터랍니다. 그 무서움 속에서도 손을 놓치지 않고 잘도 잡고 가는 우리 할망과 저는 어제 그제 이틀동안 안계 들에 가서 메뚜기를 잡고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 넓은 들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제 손에 잡힌 메뚜기는 정말 운이 없었습니다. 패트병에 잡혀 있다가 집에 오자마자 끓는 물에 즉사했으니까요. 그 넓은 들에서 달빛을 보며, 이 세상을 돌리는 무서운 공전의 속도이며, 이 작은 메뚜기들의 운명이란 걸 생각했습니다.


























千 번째로 온 손님
                

이미 빗방울은 수만 번
그 문을 두드렸으나
탑 자물쇠 열리지 않았다
쾌청한 하늘
호호(皓皓)로운 가을
천년 전에 앉았던 잠자리 한 마리
그 자손인 새끼 하나가
나래 접다 날아 간
탑 난간에
내 엉덩이를 붙인다
開心寺址五層石塔
1층 몸돌 아래 面
뜬 틈새론
건너편 들의 누른 벼들이
또약을 쬐고 있다
그 틈으로 건너다 보고 있자니
탑 윗 부분이
하늘로 둥둥 떠간다


* 이 탑은 보물 제53호로 예천읍 한내 가까이에 있다. 1010년에 건립한 탑이니 2010년 우리시대에는 천년을 맞는 셈이 된다. 오늘 그 탑에 기대어서 천 번을 오고 간 잠자리 한 마리를 만났는데, 그와 길 가는 나그네의 아린 정을 이야기 했다.




















휴지통

 


어지러움이 거기 고여 있다

들여다보면

이 방안 것 모두 쓸어

그 속에서 밸밸 돈다

우물 깊은 곳을

들여다본다

거기 달도 떠 있다

언젠가는 우리가

그 곳을 통하여

가야할 길도 뵌다

그렇게 들여다보니

내 머리칼 산발이다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