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8호...
   2020년 04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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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6 호환마마虎患媽媽 외1편/강규 file
편집자
58 2020-03-31
호환마마虎患媽媽 칠백리 밖 역병소식에 맘 졸이다가 지척의 역병에 갇혀본다 밥벌이를 하는 건물 높이는 4층이고 한 달에 보름이상은 1층에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한다 그저께는 구제역병 예방접종을 마무리하고 어저께는 신새벽에 암코양이 둘 수술을 하고 오늘에는 숫코양이를 했다 내일이면 울타리 병동에서 자연으로 간다 더 이상 번식을 못하는 생들이다, 이제 4층에 사는 건물주인이 내려온다 3층에 사는 부부의 딸이 만리나 떨어진 스페인 유학중에 열흘전 3층에 머물다 어저께 격리병동이 있는 도시로 갔다고 한다 젊은 날 전염병연구로 밥벌이를 했던 연유로 자발적 유폐를 결정했다 때맞추어 보건소장의 전화목소리를 듣는다 개울건너 보건소 마당에서 멀리서 듣던 역병검사를 했다 처지가 저 고양이 셋과 같다고 생각하다가 모처럼 느긋하게, 겨를없이 놓친 친구들이나 형님들이나 저만치 이국으로 가버렸을 숙, 희, 경 들도 떠올려본다, 호사스럽게 죄다 호환마마 덕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대견하다 근심도 역병인 모양이다 두려움조차 생존의 미덕일 것 같다 사월십오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일이기도 하고 올해는 대한민국도 그럴 것 같다 경증이든 중증이든 미쳐있는 시절인 것 같다 시의 첫 행이라든지 신문의 첫 제목들이 소문의 전파력과 같이 힘이 쌔다 십이척 위에 면식도 없는 신종 역병환자와 건물 위로 지척한 날들 오일 정도 되니, 그냥 첫 행이 된다 가축병원집 딸이 스페인을 다녀왔다… 건물 주인집 딸이 스페인을 다녀왔다… 송아지 설사약 처방을 받은 김씨도 걱정, 수술 실밥을 뽑으러 왔던 홍이네도, 신풍에서 소 여럿 먹이는 장씨도, 읍내 단골식당 경이네도, 점봉산 마을의 편사장댁도, 덕산 마을의 정사장댁도, 성산이 형님, 병헌이 형님도, 사월십오일이면 평온하리니, 아니, 당장 내일 오후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미리 평화와 고요를 다스릴지니, 근심을 애써 빗겨 서서 ‘지구에 호모 싸피엔스가 너무 많은가’ 생각하다가 시적시적 걱정을 대신하는 이웃들 보니 지금의 대한민국이 대견하다  
5 도시에 나타난 말 외1편/이원준 file
편집자
39 2020-03-31
도시에 나타난 말 잠든 도시의 등허리를 무람없이 지르밟고 말이 나타난 것은 막차가 막 차고로 들어간 후였다 잠자던 시민들은 폐경기로 돌아누운 어둠의 머리채를 뒤흔들어 깨웠고 서둘러 창마다 불 밝히고 뒤숭숭한 가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목장이나 경마장에 있어야 할 말이 보도블록을 턱하니 밟고 서 있는 사실을 두고 도시는 머리마다 요란스레 사이렌을 켜댔지만 말은 도무지 숨으려 하질 않았다 더 이상한 건 말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방법이었는데 모두들 한손을 망원경처럼 오므리고 그 안으로 들여다보는 거였다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마치 그 말이 희고 커다란 알이라도 낳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아이들은 물론 다 자란 어른들까지 한결같았다 그렇게 말은 꼼짝없이 손 안에 들어와 버렸고 한쪽 눈을 감고 있는 시민들은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그 밖의 빌딩들과 도로표지판 그리고 각종의 불빛들은 의식 속으로 숨어버렸고 한밤중 예고 없이 출현한 말만이 시민들의 떨리는 가슴을 지배하고 있었다 사이렌소리가 꼬리를 감출 무렵 말은 분명 자의에 의해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는데 시민들은 쉽게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새 새벽이 오고 있었는데도 창가에 모여 소문처럼 웅성거리며 오므린 한손을 오랫동안 바로 펴지 못하고 있었다 더더욱 이상한 건 아침이 되자 도시 한복판으로 말들이 이끄는 낯익은 꽃상여가 쉬지 않고 지나가고 있었는데 겨울동화 아직 추운 겨울이 좋아요 날 안아줄 수 있으니까요 이원준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 시인, 소설가. 저서 《김오랑》 《김구》 《이상》 《권정생》 《노먼 베순》 《넬슨 만델라》 《정약용의 편지》 《조선왕들의 속마음》 《누가 조선의 영의정인가》 《한국사 그 숨겨진 역사를 만나다》 외 jjun63@naver.com  
4 전지(剪枝) 외1편/유재호 file
편집자
45 2020-03-31
전지(剪枝) 바람이 차다 이월 바람 비탈길을 오르는 어떤 행렬처럼 감나무 잔가지들이 바람에 쿨럭이고 있다 이십 년 넘게 잎을 피워 올리고 열매를 매달았을 나무 큰 뼈대는 이루었지만 쓸데없는 잔가지는 무시로 자라난다 더 많이 피워 올리려는 허무의 언어들 햇살에 번쩍이는 전지가위로 잔가지를 추려낸다. 덤불 같은 수식어를 도려낸다 쓸쓸한 풀대 소롯길 다한 곳 흔들리는 풀잎 위로 여린 햇볕 내려앉고 바람 한 점 지나가고 자벌레, 굽은 등으로 아득한 세월 재고 있다 스러지는 가을빛 마당귀에 선 어머니 자꾸만 떨리는 다리 구순(九旬)의 버거운 생 오소소 낙엽 지는 담 밖 쓸쓸한 풀대 무너진다 유재호 상주 출생, 상주들문학회 및 대구경북작가회의 회원, 시집 <붉은 발자국>  
3 거리 두기 외1편/송은영 file
편집자
59 2020-03-31
거리 두기 매일 변하는 너는 날씨니?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주체를 못해 미쳐 날뛰는 세상 잘난 놈 못난 놈 모자란 놈 혐오에 길들여진 너의 민낯이 보여 남을 배려하라는 신의 회초리 시작과 끝을 분실한거니? ​ 애증이 없기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든 너와 나의 자폐적 고립 ​말을 잃어버리면 완고해진다 ​ 공허인지 공복인지 마음 마스크 한 장 없는 말은 부러 꺼내지 않았네 전염병 바이러스를 로그인시킨 사람들이 온천지를 돌아다니며 무차별 숙주로 거듭납니다 불안불안한 안전안내문자는 지난날 편리함과 풍요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가를 알려주고요 피리부는 사나이도 없는데 세상천지 삼라만상을 두루 살펴주는 관음보살도 없는데 이번에도 별탈없이 지나 날까요? 아무 병 없는 사람들끼리 한 식구처럼 사는 일이 오늘부터 가장 중요한 뉴스가 되었습니다 □ 프로필: 경북 포항출생 2007년 시와 상상으로 등단 □ 시집 : 별것 아니었다  
2 나를 심어 보는 봄날 외1편/신구자 file
편집자
38 2020-03-31
나를 심어 보는 봄날 눈부신 햇살 지천으로 찔러대는 봄날 솜사탕처럼 뭉개뭉개 피어 오르고 있는 저 붉은 철쭉들 속에 도둑처럼 슬쩍 숨어들어 나를 심어놓으면 나도 저렇게 피끓는 청춘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붉게붉게 그리움 토해내고 있는 저 속에 나를 심어보는 화창한 봄날 포기란 말 포기란 배추를 헤아릴 때만 쓰는 언어인 줄 알았다는, 먼저 출가한 선배 스님이 벽에 써놓은 포기란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수행을 하셨다는, 청암사 외국인 스님의 좌충우돌 신행담에 미소를 지운다 사람들은 자기의 교육과 생각만큼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관용하며 발 아래만 내려다 보며 걸어간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우주의 이치를 잊어버린 채 그저 흘러가고,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경북 칠곡군 약목 출생 1994년[대구문학]과 1999년[불교문예]신인상 시 당선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대구여성문인협회, 불교문인협회 회원 '솔뫼'동인, 반짇고리문학회 회장 역임 시집 [낫골 가는 길][지금도 능소화는 피고 있을까] sgj1918@hanmail.net  
1 담쟁이 별사 외1편/위초하 file
편집자
39 2020-03-31
담쟁이 별사 지난 계절 퍼부어 놓았던 앙상한 말들의 뼈들만 드러났다고 비워낸 것들이 그냥 비워진 것들이 아니라고 벽들은 불손했고 바람은 냉혹했다고 등을 때리는 햇볕이 기력을 다할 무렵 비로소 꽃처럼 붉었지만 향기는 없었다고 습관적으로 팽창하는 무한질주도 잠들 수 없는 퍼레이드도 멈출 수 없는 징벌이었다고 전생과 헌생, 그리고 후생을 넘나들어도 끝내 닿지 못하는 어떤 해후였다고 갈대울음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서러움이란 지천명에 관절이 삐걱이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나란히 서기보다 서로 부둥켜안는 것이다 가랑 잎사귀만 쓸어 담은 붉은 노을들이 그 가슴팍에 피멍이 들도록 슥슥 문지르겠지 서설이 펑펑 내리는 날엔 흩어진 구름조각들만 쓸어 담았다가 눅눅한 졸음처럼 펴 말려야겠지 푸른 울음이라도 후미진 봄날을 적실 때 깨진 담벼락이 일렬로 죽 늘어선 수도원에서 풍문처럼 빠져나오는 수녀들처럼 헤지고 상한 인고의 날들이 넘실넘실 강물처럼 흘러간다 참으로 캄캄한 울음 갈수만 있다면 붙들려있기보다 도무지 모를 곳이라도 건너가고 싶은 날 질주하는 바람이 앞을 턱, 가로 막는다 위초하: 경북 예천출생. 작가회의 회원, 한내글모임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