낌새

 

 

나무들의 아미가 붉어졌다

무성하던 수다가 한 입씩 떨어졌다

지난한 폭염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수다였다

견딘다는 것은 그다지 웅숭깊은가

바람의 동공은 깊어져 가벼운 수다에도 몸을 날렸다

너에겐 너무 가벼운 잎사귀

점점 어두워지고 더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것

한밤중 고양이 울음처럼 무거운 것이다

길고양이 울음을 굴리며 팔랑귀처럼 떠나는

길 위에 서서 스러지고 있을 흐느낌들

우두망찰 그 배후로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떠나는 길 모롱이에서 돌아보면 차마

성글어진 나무들의 아미에 입 맞추지 못하리라

 

손을 잡고 잠시 온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훗날 좋은 봄볕에 만나면 알아챌 수는 있을까

가까스로 알아채더라도 처음인 척 해야 하는 것일까

가을 숲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밤이다

구절초 향기 수런거리는 시월은 지워지는 중이다

 

 

  

 

Photograph

 

  

먼데서 갸르릉 거리는 천둥소리

늑골을 흘러내리던 빗물이 울렁이며

예스퍼 랜엄*과 몸을 섞는다

창을 잡아채는 바람은 배곯은 승냥이처럼

덜컹거리며 울어 댄다

숨어 울기 좋은 방, 나는 뭐하고 있나

좀 얄미운 사람일까 는 쓸모없는 궁상

곰곰 곰삭다가 흩어지는 풍경이다  

눈까풀 눅눅해지다가

늦여름과 초가을이 상견례 중이라고

공손을 다하여 말랑말랑해지는 귀

 

 

*Jesper Ranum - Photograph를 부르는 덴마크 가수

 

 

 

진 란

2002년 계간《주변인과 》편집동인으로 작품활동, 현재 계간《문학과 사람》편집인

시집 『혼자 노는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