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바삐 흘러가던 계절의 끝으로

서릿발 같은 겨울이 찾아와

이제는 조금 쉬라고

하얀 입김을 걸어 놓았습니다

 

화려했던 사는 일이

조금씩 퇴색되는 중에

이제는 조금 쉴까 하여

하얀 시선으로 공간을 가릅니다

 

촘촘히 엮은 거미줄에

지나던 계절이 매달리고

높푸른 하늘에 띄우던

숨의 회한이 하얗게 흔들리면

분주했던 걸음의 속도를 늦춰

잠시 허공의 안식을 문질러 봅니다

 

서리서리 차가운 복숭아나무 사이로

거미 한 마리, 어제 걸었던 흔적을 따라

따스한 삶 한 올씩 뽑아 다시 길을 내고 있습니다

 

 

 

*장자의 무하유지향 無何有之鄕

<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이지만

우리들의 의식 저 건너편에 확실히 존재하는 안식처를 말한다.

도원경, 이상향, 유토피아와 같은 의미.

 





들어주는 일

 

 

소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짊어지고 온 시간이 울퉁불퉁 달라붙어

거친 바다쯤은 이겨낼 갑옷이 되었고

해변을 때리는 파도를 동그래 안고서야

소리조차 품게 되었다고 했다

 

소리를 잃어버린 바다가

흔들리는 등대의 불빛 밑으로 잠들면

끈끈하게 지나온 지친 발자국들이 모여

조용히 펼쳐놓는 작은 이야기의 밤,

 

아직 다 못 들은 소라의 생

느릿하게 다가와 말을 건네면

그저 귀를 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고맙다고 했고 서로 그러했다


약력

                      2017. 1 격월간 문학광장 시 부문 등단

                      2018. 2 (봉놋방 시선집) 『씨앗,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공저

                      2018. 9 2018년 서울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시 공모전 선정

                      2019. 3 시와글벗문학회 동인지 제7집 『고요한 숲의 초대』 공저

                      2019. 6 『시마詩魔』 창간호 참여

                      2019. 7 월간 『우리7월호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