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 너 거기 있어서  

  

소리란 것을 만드는 곳에는 으레 움직임이 있다. 발에 채인 깡통이 데구루루 굴러가는 길바닥에 퍼지는 물결 같은 소리도 그렇고 강둑 퍼드득 나는 백로 날갯짓도 하늘에 구름을 둥둥 띄우며 소리를 만든다.

 

책아, 너 거기 있어 그래 보수동 책방 골목이라든지, 청계천변이라든지, 아니면 아직도 문 닫지 않고 헌책방을 지키는 충청도 작은 읍이라든지, 또는 먼먼 나라 관광지 좁은 골목 고서점에서 만나는 먼지 묻은 책이라든지, 그런 책들은 잔잔한 소리를 갖고 있다.

 

먼 여행 중 구입한 책을 여행에서 되돌아와 넘기는, 사랑하는, 첫사랑 사람의 손을 잡은 것처럼 손 끝 떨리는 그 순간 책 속 글자들은 진달래꽃처럼, 벚꽃처럼, 복숭아꽃처럼, 모감주꽃처럼, 능소화 꽃처럼, 호박꽃처럼, 볏꽃처럼, 웃음꽃처럼, 꽃으로, 꽃으로, 꽃으로 자꾸 피어나고 지고 피어나고

 

책아, 너 거기 있어 어제 즐거웠단다.

책아, 너 기기 있어 오늘 기쁘단다.

책아, 너 거기 있어 내일 행복하단다.

 

  

 

 

대숲

 

 

대숲 속으로

풍덩!

 

파도 같은 흔들림이

어울려 어울려

또 어울려

스크럼 짜고 움직이는 광장의 목소리로

때론 엄마가 들려주는 자장가로

공명할 수밖에 없는 공간

 

피리로, 단소로, 대금으로,

장난감으로

빗자루로, 바구니로  

그리고 그것들이 아닌 몸 전체로

하늘 향해

, 여름, 가을, 겨울

푸른 손 모아 기도하는

 

 

 

 

 

하재영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2년 《계몽사아동문학상》 장편소년소설 당선, 동화집 『 할아버지의 비밀』,  시집  『별빛의 길을 닦는 나무들』, 『바다는 넓은 귀를 가졌다』 등